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40
■ 239화. 웅장하다 (4) □ ᓚᘏᗢ
아델리아 일러스트 올렸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용!
* * *
사람이 ‘수치심’이라는 걸 느낄 때가 언제일까.
상대방이 모욕했을 때? 맞는 말이다.
자신의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이것도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괜한 부끄러움이 들 때? 이것도 맞는 말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창피함 혹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는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처럼,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아무 소리나 내뱉었다가 수치심을 겪는 일이 매우 많다.
뒤늦게 아차했지만 방금도 말했듯이 이미 뱉은 말은 도로 먹을 수 없다. 이런 경우는 두고 두고 회자되어 흔히 칭하는 ‘이불킥’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그 뱉었던 말이 남녀관계에 있어서 아주 민감한 부분이라면? 그것도 어쩌다 보니 툭 튀어나온 말이라면?
“저··· 아르웬?”
“··· ···”
알븐하임을 통치하는 엘프 여왕이라도 몰려오는 수치심을 감당하지 못해 몸을 숨길 것이다. 지금의 아르웬이 딱 그렇다.
엘프식 공산주의적 발언을 용기있게 꺼낸 그녀였지만,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곧바로 숨어버렸다.
어디로? 이불 속으로.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내 이불이라는 걸 생각하지도 않고 지체없이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그 뒤로 침대 위로 올라가 번데기마냥 자기 몸을 꽁꽁 숨겼으며 내가 조심스럽게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참···’
나는 침대 위에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는 아르웬을 보며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처음의 그 적막감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아르웬이 나와 동침을 하고 싶다는 발언이 마치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착각이 들었으니.
그 다음에 이어진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녀가 얼굴을 잔뜩 붉히더니 번데기가 되어버렸다.
듣는 사람마저 창피해질 지경인데 본인은 오죽할까. 덕분에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왠지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르웬의 겉모습과 매우 잘 어울리는 것 또한 함정이고.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아르웬이 이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 할 것이다. 어떻게든 달래주어야 이 어색한 상황이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이에 슬쩍 세실리를 쳐다보니 그녀는 한 쪽 입꼬리를 비죽 올린 채 어처구니없어 하는 중이다.
아르웬이 수치심에 속으로 몸부림치는 중이라면, 세실리는 황당함에 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정말이지 같잖다는 표정의 세실리는 처음 보는 것 같다.
“큼. 큼. 아르웬?”
“··· ···”
“아르웬. 말 좀 해봐.”
연이어 이름을 불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아르웬. 내가 너무 작게 불렀나 싶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가자 번데기처럼 이불로 둘둘 말려진 아르웬이 눈에 띄게 움찔거린다.
소리는 듣지 못 하더라도 진동을 느꼈을 테니 아마 내가 접근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윽고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에 얼굴을 갖다 댄 후, 그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거 내 이불인데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
펄럭!
지금의 아르웬에게 상당히 자극적이었던 말이었는지 이불 자락이 펄럭거리며 내 얼굴을 덮어버렸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녀가 완전히 이불 속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이어서 높게 펄럭였던 이불이 아래로 스르르 내려가고, 번데기가 성충이 되는 것처럼 아르웬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에 내 얼굴을 덮어버렸던 이불을 치우니···
“아르···”
“··· ···”
이제는 이불조차 덮지 않고 구석탱이에 엎드려 있는 아르웬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든 나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만, 자세가 자세인지라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탐스럽게 익은 거대 복숭아가 바로 앞에 주렁주렁 맺혀있다. 다 필요없고 저 말 하나면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그녀는 지금 벽을 향해 절을 하는 것처럼 엎드려 있었는데 자세가 자세인지라 우월한 뒷태 라인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안 그래도 평소 눈에 띄던 골반에다가 엎드려 있으니 홀린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세실리의 가슴 못지 않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아주 유혹을 하세요, 여왕님. 자랑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네요.”
세실리는 그런 아르웬의 자세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빈정거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르웬도 그제서야 본인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는 말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나 그럼에도 벽을 바라보는 건 그대로였으며 엎드려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무릎을 꿇고 바짝 붙어버렸다.
웃기는 건, 그렇게 했는데도 뒷태 라인을 숨길 수 없었다는 것. 오히려 자세를 바꿀 때마다 강점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나는 이대로 가다간 아르웬의 골반 라인만 보고 끝날 것 같다고 판단.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턱-
내가 어깨에 손을 얹자마자 아르웬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굳이 떨 필요까지 있나 싶어서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맨 처음에는 반항하는 것처럼 힘을 주는 그녀였으나 내가 강하게 잡아당기자 고개를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아르웬?”
“히끅. 끄읍···”
은회색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아르웬과 마주하게 되었다.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붉어져 있었고, 입술은 앙 다물려 있다.
여왕이 아닌, 사적의 상황에서 아르웬은 감정 표현이 유달리 많아지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참을 수 없는 창피함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 해 감정이 격해져버린 모양이다.
안 그래도 성숙함과 거리가 먼 외모라 어린 아이가 우는 것 같다. 괜히 내 마음이 다 아픈 건 착각일까.
“···울어?”
“흐끅. 우, 우는 게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코가 딸기처럼 빨갛게 익어있구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르웬은 앙증맞은 두 손으로 눈물을 허겁지겁 닦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싶었으나 이미 그녀가 전부 닦은 터라 손 쓸 새도 없었다. 옆에 세실리가 지켜보고 있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한동안 눈물을 닦던 아르웬은 코 끝이 빨개진 지도 모르는지 코맹맹이 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바, 방금 전 그 소리는 모른 척 하거라. 부끄러워 죽을 것 같으니···”
“음··· 알았어.”
싫은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겨우겨우 인내했다.
여기서 장난이라도 친다면 진짜로 울 것 같으니 참는 게 좋다. 아르웬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는다 해도 세실리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그녀는 오히려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놀리기 바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거 아시죠? 솔직히 한 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마리가 노발대발하겠지만.”
“···누나.”
“우으으···”
나는 못 말린다는 얼굴로 세실리를 바라봤고, 아르웬은 창피함에 두 손으로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실리는 잔망스럽게 혀를 내밀며 특유의 장난기를 드러낼 뿐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르웬이 돌아간다면 아주 혼쭐을 내줘야지. 저렇게 까불거리는 걸 보면 그녀도 내심 원하고 있을 것이다.
“후우··· 미안하구나. 어린애처럼 뭐하는 짓인지···”
“알면 됐어요. 그런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취, 취향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거라!”
어쨌거나 상황은 여차저차 종료되었고, 아르웬은 손부채질을 하면서 얼굴을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가끔 가다가 내 얼굴을 볼 때면 다시 열이 오르는 탓에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건 마법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원래는 엘프와 마족 간의 다툼이었지만, 갑자기 가슴과 골반 대결로 이어지다가 종래에는 엘프식 공산주의로 끝을 맺었다.
세실리와 아르웬 둘 모두 더이상 언쟁을 벌였다간 이상한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직감했는지 말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마족은 대부분 그대와 같은 몸매를 갖고 있단 말이냐?”
“대신 저처럼 가슴이 큰 사람은 드문 편이죠. 예로부터 척박한 환경 탓에 아이를 무사히 낳아야 됐으니까요. 엘프는 그런 건 없나요?”
“엘프에게 그런 역사는 없지만 성관계를 치르기 전 신전에 방문하여 신성력을 하사받지. 그러한 신성력을 지닌 채 아이를 갖게 되면 부모의 신체적 재능을 모두 물려받게 되니라.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순혈 엘프와 다를 게 없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하지.”
덕분에 엘프의 우수한 유전자의 원인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엘프는 성관계를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으로 본다는 건 수업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신전에 방문하여 신성력을 받는 건 처음 듣는 사실이다. 그 신성력이 아이에게 스며들어 부모의 재능을 전부 물려받는다는 것까지.
인간도 가능하지 않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엘프여서 신성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거지 인간은 아니다. 애당초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이라 불리는 이유부터 알아보자.
언듯 보면 신이 차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대신이라 해야 할지 인간은 무한한 번식력을 물려받았다. 선조가 지식을 남기고, 그 후손이 그 지식을 디딤발 삼아 발전하는데에 아주 유리하다는 뜻이다.
‘무슨 후반왕귀 종족도 아니고.’
그런데 역사를 보자면 반은 맞는 말이다. 엘프는 그냥 처음부터 강하고, 인간은 발전력이 미친듯이 뛰어난 종족이다.
나는 새삼 인간의 특성에 대해 알아본 것도 잠시, 아르웬에게 시선을 옮겼다.
육체적 재능을 전부 물려받았다면 아르웬의 키는 왜 저렇게 작은 걸까. 골반만큼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굉장하지만 키가 매우 아쉽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르웬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가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흠. 흠. 왜 그리 쳐다보는 것이냐? 부담스럽구나.”
“그냥 네 키는 왜 그리 작은 건가 싶어서.”
“···아버지께서 깜빡하고 신성력을 덜 받았다.”
“그렇구나.”
궁금증 하나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아르웬은 편안해진 내 얼굴을 찌릿, 하며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그녀는 표독스러워진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툭, 하고 말했다.
“그럼 그대는 어디가 가장 자신이 있느냐?”
“어? 나?”
“그래. 이때까지 우리만 얘기하면 불공평하잖느냐. 그러니 그대도 얘기하거라.”
또다시 엘프식 공산주의 발언을 꺼내버린 아르웬.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눈을 끔뻑거렸다.
아무래도 내가 콤플렉스를 건드리자 너도 한 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나온 것 같다. 조금 머쓱해지네.
이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디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할 때쯤, 곁에 있던 세실리가 끼어들었다.
“어쩌면 여왕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응?”
“뭐가 말이냐?”
그 말에 나와 아르웬의 시선이 그녀 쪽으로 옮겨졌다. 내 신체적 장점이 아르웬과 비슷할 수도 있다니 무슨 의미일까.
나조차도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던지라 의문을 품었을 때, 세실리는 요망하기 그지 없는 미소를 짓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작도 여왕님처럼 하체가 뛰어나거든요.”
“··· ···”
내 저럴 줄 알았어. 과연 섹드립의 공주답다. 저래야 세실리지.
나는 듣기만 해도 부끄러운 농담에 한 손으로 얼굴을 뒤덮었다. 보아하니 예전의 나한테 그러했듯, 아르웬을 놀리는데 맛을 들린 모양이다.
“하체? 아이작도 골반이 발달된 것이냐? 여자는 몰라도 남자가 골반이 발달된 건 처음 듣는데.”
처음에 그쪽으로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는 걸까. 아르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하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 하체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르웬은 무언가 떠오른듯, 이내 몸이 덜컥- 하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어서 목부터 시작하여 귀까지 얼굴이 붉어진다.
음. 드디어 그쪽으로 생각이 미쳤나보군. 부디 그쪽은 순수하길 바랬는데 혼혈에게 너무 기대한 건가.
까닥- 까닥- 까닥-
얼마나 흥분했으면 엘프 특유의 기다란 귀가 위아래로 까닥거린다. 엘프는 격한 감정을 느끼면 귀가 위아래로 흔들린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아르웬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는 뜻이겠지.
다행히 방금 전의 수치심이 예방 주사라도 되었던 것일까. 아르웬은 빙글빙글 돌아가기 직전인 눈을 한 채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그렇구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아이를 잘 낳긴 위해서는 남자의 하, 하체도 중요한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
“···아르웬.”
“아아. 괜찮다.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니라. 나도 성인이니 이정도 농담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것 치고는 귀가 계속 까닥거리고 있어, 이 엘프야.
한편 세실리는 아르웬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지 고개를 돌린 채 숨죽여 웃는 중이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겠지.
여러모로 어색해진 상황 속에서, 아르웬은 겨우겨우 얼굴의 열기를 가라앉혔다. 그럼에도 시선이 자꾸만 내 고간 쪽으로 향하고 있다.
“후우··· 그나저나 너무하는구나, 헬리움의 공주여. 너무 놀리진 말거라.”
“푸웁. 죄, 죄송해요. 여왕님께서 너무 귀여우셔서···”
세실리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사과했다. 일국의 여왕에게 귀엽다는 말은 다소 무례하지만 그만큼 둘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아르웬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자 시선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제 가려고?”
“그래.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지만 시간은 멈출 수 없지.”
“언제라도 좋으니까 찾아와도 돼.”
“고맙다. 헌데 아이작.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으마.”
“뭔데?”
이별의 시간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많은 의미로 유익한 시간이었기에 아쉬움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아르웬은 앉아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조용히 말아올렸다. 그 미소에는 진한 애정과 따스함이 담겨있다.
빨려들어갈 듯한 은회색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쯤,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논 일대기를 보면 확신이 들지만 그대와 만나는 일이 잦아질수록 헷갈리더구나. 아이작, 그대는 세간이 추측하는 것처럼 예언자 또는 미래인인가? 시리스에게 들은 바로는 아니라고 하던데.”
“너까지 그 소리야? 아니라니까. 그거 다 개소리야.”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나는 손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부정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여기서 믿어주겠지만, 아르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 반응을 보고 역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이 질문에도 대답해다오.”
“뭔데?”
“그대는···”
그 다음에 이어진 아르웬의 질문은···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건가?”
“뭐···”
‘환생자’인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심장이 철렁거리며,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여태까지 내가 제논 일대기의 작가인 건 은연 중에 밝힌 적은 있어도 환생자라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애시당초 전생에 미련이 하나도 없었기에 이 세상에 완전히 스며들 수 있었다. 가끔 가다가 상식 면에서 차이가 발생해도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이유로 저런 질문을 날린 걸까? 설마 세상이 떠들고 다니던 ‘제약’ 때문에?
신들이 나에게 제약을 걸었으니 직접적으로 밝힐 수 없고 저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질문한 걸까?
도통 모르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얽히며 지극히 혼란스럽다.
내가 아무런 말조차 못 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을 때, 아르웬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었는지 아까보다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미소가 아닌, 은회색 눈동자까지 반짝반짝거리기 시작해 명백한 ‘기쁨’을 표현하는 중이다.
그리고는···
“그 대답이면 되었다!”
그 힘찬 말과 함께 텔레포트로 돌아가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가고도 남아있는 일이 있었으니···
“아이작?”
“··· ···”
“저게··· 무슨 말이야? 정말이야?”
세실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