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61
■ 260화. 다사다난 (2) □ ᓚᘏᗢ
전시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체리가 우리 저택에 도착했다. 사람들에게도 그녀가 올 거라고 미리 말을 해놓았기에 무리 없이 저택에 들여보낼 수 있었다.
체리는 세실리의 마법을 통해 변화한 모습 그대로였는데, 복장은 마리처럼 수수한 편이었다. 현재의 갈색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여름용 갈색 드레스.
두 팔을 시원하게 드러냈으며 치마 또한 무릎까지 내려와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외모가 받쳐주다 보니 평범한 드레스를 입었음에도 귀족가 여식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하게도 흉부. 세실리와 맞먹는 크기다보니 유난히 돋보인다.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예쁜 건 예쁘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쭈볏거리는 체리를 보다가 진심으로 칭찬해줬다.
“잘 어울리네.”
“헤헤.”
내 칭찬에 베시시 웃어주는 체리. 눈동자가 여전히 시꺼멓게 죽어있다는 게 흠이었으나 전보다는 훨씬 밝아진 것 같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제논 전시회에 참석하는 건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 로즈베리 가문에서 노발대발했을 테니.
세실리에게 변장 마법을 받았다지만 외모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이에 조금만 자세히 들여본다면 체리만의 특징이 곳곳에 묻어있다.
살짝 처진 눈꼬리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수더분한 강아지 같은 인상. 특히 죽어버린 눈동자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도 쉽게 알아차리진 못 하겠지.’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빨간 머리’로 기억하듯이 체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체리처럼 변장해도 못 알아차릴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체리가 이번 전시회를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줄 것이다. 당장은 안내인 역할 때문에 힘들겠지만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곧바로 체리와 다닐 예정이다.
‘레오나는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참고로 레오나는 어머니와 전시회를 즐기는 걸로 결정했다. 내가 너무 바빠보여서 차마 부탁할 수 없다나 뭐라나.
정작 초대한 건 나였기에 미안한 나머지 돈과 공연 참석을 비롯한 여러가지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돈을 받자마자 정말 고맙다며 방방 뛰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때 레오나의 어머니가 너무 속물적인 거 아니냐며 따끔하게 혼냈다. 레오나도 머쓱했는지 혀를 내밀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튼 레오나에 대한 건 쉽게 해결되었고 남은 건 체리다. 나는 앞으로 안내를 해야 되기에 그녀와 함께 다닐 사람이 필요하다.
“기다릴게요.”
“뭐?”
“선배님이 절 찾으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이에 적당한 사람이 한 명 있다며 말하려던 찰나, 체리가 먼저 기다리겠다는 발언을 뱉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지 않고 저택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니. 당최 무슨 의미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자유시간을 가질 때까지 저택에서 기다리겠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섞여있다는 것인지.
나는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체리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서?”
“선배님이 말씀하신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저택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기다릴 거야?”
“네.”
맙소사. 나는 몰려드는 착잡함에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체리에게 있어서 사고의 중심이 나라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상대하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지면 저택에서 기다리는 일이 가장 현실적이고 괜찮은 방법이다. 어차피 안내인 역할은 점심 시간까지만 유효할테고 이후부터는 개인 시간이 주어지니까.
하이라이트 공연 또한 저녁 식사 이후부터 진행되니 나름대로의 절충안이라 할 수 있다.
‘정말 괜찮을까···’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체리를 쳐다봤다. 체리는 내가 물끄러미 응시하자 눈을 느릿느릿하게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로 감정 하나 없는 인형 같은 반응에 섬뜩한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전시회에 초대한 건 나인데 이대로 방치하는 건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결국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찾을 때까지 전시회를 둘러봐. 대신 위험한 일이 있으면 즉시 경비병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알겠지?”
“네.”
“당부하는 건데 외곽진 곳은 절대 가지 마. 그리고 또···”
혹여 좋지 않은 일을 당할까봐 신신당부했다. 체리는 내 말을 듣는건지 아니면 멍 때리는 건지 몰라도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다.
여러모로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저택에 방치하는 것만큼은 내가 용서할 수 없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라도 전시회에 참석하는 것이 좋다. 그러라고 체리를 초대한 거였으니까.
이윽고 내 당부가 거의 다 끝났을 때 쯤, 뒤늦게나마 떠오른 게 있었는지 체리가 입을 열었다.
“아참. 선배님.”
“응?”
“저희 아버지도 전시회에 오시는 거 알고 계시나요?”
“뭐?”
나는 체리가 예상 밖의 사실을 알려주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라 하면 로즈베리 가주가 찾아온다는 의미일 터.
로즈베리 가문은 백작가 즉, 현재 미네르바 제국 내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이다. 인맥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전시회에 참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제논 일대기에 대한 반감은 뒤로 미루고 정치를 위해 참석하는 듯했다. 의외라면 의외라지만 예상 못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너한테 편지로 알려준 거야?”
“네.”
“너는 안 데리고 간다고 했어?”
“네.”
“뭐 그런···”
쓰레기 같은 아버지가 다 있나. 그런데 아버지만 콕 집은 걸 보면 어머니는 참석하지 않는 건가.
“어머니는?”
“옛날에 돌아가셨어요.”
“···미안”
괜히 말했네. 가정사에 대해서는 최대한 언급을 피하려다보니 대참사를 낳아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가라앉은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갔다.
“로즈베리 백작도 너처럼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지셨지?”
“네.”
“음···”
한 번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다. 로즈베리 가문은 철학 가문인데 어째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철학자가 나온 건지.
철학은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학문이다. 전생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만 알게 된다면 금방 겸손해질 것이다.
그런데 로즈베리 백작은 체리의 꿈을 응원해주기는커녕 잔인하게 짓밟았다. 철학자가 저지른 행동이라기에는 심각한 결점이다.
“일단 알겠어. 가능하면 최대한 피하고 다녀.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했으니 눈에 띌테니까.”
“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무슨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경비병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알겠지?”
“네.”
저 놈의 인형 같이 딱딱한 대답은 언제쯤 끝날까. 나는 어두컴컴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체리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체리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다시 한 번 눈을 느릿느릿 깜빡였다가 갸웃거렸다.
‘진짜 애를 물가에 내놓는 기분이 이러할까···’
당장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삶의 의욕을 전부 잃었던 체리였으니 걱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나는 체리에게 재차 당부를 한 후에야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윽고 정문에 도달하니 아주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왔어?”
본인의 스타일과 정말 잘 어울리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마리와.
“조금 늦었네?”
카지노에서 볼법한 예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아델리아였다. 두 명 다 각자 저마다의 매력을 뿜내고 있다.
마리도 마리지만 특히 아델리아가 정말 잘 어울린다. 평소 와이셔츠와 가죽 바지 하나만 달랑 입었던 때와 달리 호위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겠으나 딱히 불편할 거라는 예감은 들지 않았다.
히리야도 리나가 잘 커버해줄 테고 세실리와 아르웬도 나름대로 사이가 가까운 편에 속했으니.
“세실리는 먼저 갔지?”
“응. 아마 지금쯤 아르웬 여왕님을 만나러 갔을 걸?”
“그래? 리나는 어디에 있다고 했어?”
“마을 중심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마 히리야 왕녀도 거기에 있을 걸?”
나는 마리가 히리야를 언급하자마자 아델리아를 힐긋 쳐다봤다. 아델리아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싱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트라우마를 떨쳐낸 듯,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시. 나는 그 표시를 확인하자마자 넌지시 물었다.
“그럼 오늘 잘 부탁해, 누나.”
내 물음에 아델리아는 걱정 말라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랑 세실리 몫까지 책임져야 할텐데.”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마리의 목소리. 바로 옆에서 말한거라 똑똑히 들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한 탓에 순간 지나칠 뻔했으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에 시선을 옮기니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푸른색 눈은 내가 아니라 아델리아에게 향하고 있다.
그 시선을 따라 아델리아를 바라보니···
“··· ···”
자신만만했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는 아델리아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어지고 입매도 물결처럼 흔들리는 중이다.
나는 마리와 세실리, 아델리아 이 세 명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간지 모른다. 하지만 저 반응을 보고 모종의 확신을 가졌다.
‘···진짜로 양보하는 건가?’
여러 의미로 밤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 * *
한편 아이작 일행이 이제 막 저택 밖으로 나섰을 시간.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는 안내원 역할을 하게 될 아이작을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곳은 마을의 중심부였으며, 언제인지 몰라도 중심부에는 분수대까지 설치돼 있다.
마이샬 영지를 문화 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미네르바 제국의 포부처럼 분수대조차 예술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사실 안내 역할을 맡은 귀족이 황녀를 기다리게 하는 건 큰 무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내 역할을 부탁한 건 리나 쪽이었기에 아무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견제해야 할 대상이 있었기에 아이작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늦는군.”
그리고 그 대상은 현재 리나 바로 옆에 당당히 서 있다. 익숙한 목소리에 리나는 옆을 힐긋거렸다.
양산을 펴고 있는 리나와 달리 덥지도 않은 것인지 제복 차림의 히리야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기사답게 몸이 단련돼 있어서 제복핏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모습. 그럼에도 히리야의 아리따운 외모는 감출 수 없었다.
리나는 투덜거리는 히리야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정 시간보다 빨리 온 건 우리야. 조금 인내심을 가지는 게 어때?”
“너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직접 찾아갔을 거다.”
리나의 명료한 대꾸에 히리야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리나는 그 눈빛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벼이 넘겼다.
히리야의 말마따나 만약 리나가 아이작에게 안내를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저택을 찾아갔을 터. 그러나 리나가 끼어듦으로서 히리야의 계획은 원천봉쇄당했다.
리나는 그런 히리야가 가소로웠는지 특유의 우아한 목소리로 살짝 꼬집었다.
“그러게 약혼녀가 있는 남자를 건드리면 안 되지. 그것도 레킬리스 공작가의 사위를.”
“흥.”
이 부분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히리야는 콧방귀만 뀔 뿐, 별 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리나의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
아델리아가 사랑해 마지 않는 아이작을 뺏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나 예상 외로 스케일이 커져버렸다.
천천히 머리를 식힌 후에 자기가 무리수를 던졌다는 걸 깨달았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애초에 목표를 이룬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아예 의문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히리야는 그 의문을 리나에게 던졌다.
“그런데 그 빨간 머리라는 놈이 뭐길래 그리 아끼는 거지? 레킬리스 공작가가 허울뿐인 공작가라 해도 엄연히 권위는 존재할 텐데.”
“… …”
리나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대답이 늦어졌다.
히리야의 의문처럼 레킬리스 공작가는 황실의 비지니스 파트너다. 권력은 부족할지언정 권위는 드높기에 다른 귀족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약혼도 마찬가지. 만약 아이작이 데릴사위였다면 모를까, 마리가 마이샬 가문으로 오는 것이다.
물론 레킬리스 가문에는 마리가 아니라 장남 케이가 가주직을 승계받으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마이샬 가문은 백작이 아닌 남작이기에 오리무중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왕녀인 히리야가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명분이 있다지만 황실에서 개입하는 건 조금만 파고들어도 낌새가 느껴질 것이다.
아이작의 정체를 고려한다면 위의 부자연스러운 사항들이 단번에 이해가 되겠지. 그러나 리나는 그럴 추호도 없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그 이상의 차이를 낳는 법이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테르스 왕국에게만큼 아이작이 제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서는 안 된다.
때마침 적당한 이야기도 있어서 리나가 당황할 건덕지는 없었다.
“그거야 아이작의 가문, 마이샬 가문의 영지가 제논을 위한 도시로 바뀌는 중이니까. 교제 자체는 1년 전에 해도 약혼은 얼마 되지 않았거든.”
“그런가.”
“그런 거지. 그러니까 포기하는 건 어때? 그 알량한 복수심 하나 때문에 외교 문제로 번지는 건 좀 그렇잖아?”
중간에 도발하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러라고 배운 정치 기술이다.
히리야는 리나의 말 속에 담긴 뜻을 깨닫고 눈 밑을 꿈틀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버럭 소리치고 싶지만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흥. 너 같으면 뭣도 아닌 반푼이가 설치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나? 그리고 모욕까지 당했는데?”
“그러게 옛날부터 잘해주지 그랬어. 사생아라도 가족은 가족이잖아?”
“웃기는 소리. 사생아는 결국 하찮은 종속에 불과하다. 너라고 다르겠나?”
“미안하지만 아바마마께서는 골육상쟁을 싫어하시거든.”
현재 리나의 형제는 레오르트 한 명뿐이다. 황제가 리나까지만 낳고 이후로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황제부터가 골육상쟁을 통해 즉위하였으며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원천차단하는 중이다. 신하들이 후대를 낳으라고 부탁해도 선을 칼같이 긋고 있다.
그러니 리나의 말은 즉, 자기는 너희 왕족처럼 사생아도 없으니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되로 주다가 말로 받은 셈이다.
“…언제나 느끼지만 재수 없는 건 여전하군.”
“칭찬 고마워. 아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그게 뭐지?”
리나는 시선을 옮겨 히리야와 마주했다. 푸른색 눈동자와 하늘색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한다.
“테르스 왕국은 제논이 정체를 밝히면 어떻게 나설 거야?”
“뭐?”
“제논이 정체를 밝히면 너희 왕국은 어떤 입장을 보일 거냐고. 역시나 결혼?”
히리야는 리나의 질문을 듣자마자 눈 밑을 꿈틀거렸다. 상당히 뜬금없게 들리겠으나 저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으니.
만약 제논이 정체를 밝힌다면 그와 연결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그중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결혼이고.
다시 말해 기꺼이 제논과 결혼할 여지가 있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히리야 자신에게.
히리야는 리나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는 피식거렸다. 도발을 하려는 것 같지만 이제는 넘어가지 않는다.
“글쎄. 내가 아니라 라라와 이어지겠지. 나는 아이작 그 놈이랑 결혼할 수도 있으니.”
“꿈도 크셔라. 그것 말고는? 테르스 왕국 차원에서는 뭘 해줄 생각이야?”
“당연히 모든 지원을 퍼부어주겠지. 작위, 명예, 돈, 마지막으로 여자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줄 것이다.”
“음…”
리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피식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다 가진 사람한테 무슨…”
“뭐라고?”
“힘내라고. 열심히 응원할게.”
“그럼 너희들은? 뭘 해줄 생각이지?”
히리야의 질문에 리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유롭게 답했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