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77
■ 276화. 난죽택 (1) □ ᓚᘏᗢ
헬리움에서의 생활이 무난하게 흘러가고, 모라와 약속했던 사흘의 시간 또한 빠르게 지나갔다.
모라가 나에게 경고했던 위기가 닥쳐온다는 날. 도대체 무슨 위기가 닥쳐오길래 직접 언급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르니까 신전에 방문할 예정이다.
겸사겸사 신성력도 받아내고. 요즘 아델리아와 신혼 못지 않은 뜨거운 밤을 날마다 보내고 있어서 신성력은 필수다.
마리와 세실리도 이번 방학동안은 양보한다는 마인드였는지 별다른 간섭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해야 될지 가끔 가다가 두 명이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경우가 빈번해졌다는 점. 아무래도 한계가 임박한 듯한 모양새라 달래줘야 할 듯했다.
어쩌면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 될 수도 있었기에 이번 기회로 듬뿍 받아낼 생각이다. 마리와 세실리가 아델리아를 꼬드길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
하지만 모라의 신전에 찾아가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대화다.
루미너스도 비슷하지만 모라는 자기가 아끼는 종족, 마족을 구원해줘서 그런지 유독 나를 아끼는 경향이 있다.
매일매일 내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니, 마이샬 영지에 자신의 신전이 세워져서 자주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니 등등.
마족이 제논 일대기로 구원 받음과 동시에 신성력의 농도 또한 몇 배나 짙어졌다고 말했으니 아마 이때문인 듯싶었다.
‘그래서, 무슨 위기가 닥쳐오길래 찾아오라고 하신 거예요?’
[그건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지~]질문을 날리자마자 모라다우면 모라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북유럽 신화 장난의 신, 로키가 딱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사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분명 모라에게도 꿍꿍이가 있기에 사흘이라는 기간을 콕 집어 찾아달라고 했을 터.
다만 신은 아끼는 신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걸린다. 위기가 닥쳐온다는 예언(?)도 나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에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며 꿍얼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전 그럼 바로 가보겠습니다.’
[앗! 미안! 이제 장난 안 칠게!]내가 진짜로 떠나려고 하자 모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간신히 말렸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나는 그녀의 만류를 듣자마자 떴던 눈을 도로 감았다. 눈을 감고 집중하자 모라의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려펴졌다.
[난 그냥 너랑 얘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히잉···]‘불쌍한 척해도 안 통해요.’
[쳇. 애가 가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어.]‘누구 덕분에.’
[명색이 어둠과 안식의 여신인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말이 되니?]‘저에게 해를 가한다면 저번에 말했듯이 숨겨진 악신으로 묘사해버릴 겁니다.’
[미안.]대화만 들으면 감히 신에게 개기는 불손한 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모라의 애교 혹은 장난이라 볼 수 있다.
빈말로 내가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모라의 손가락질 한 방이면 내 목숨은 날아간다.
악신으로 묘사한다는 것조차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그들로서는 거짓말이라는 걸 간파할 터.
모라를 포함한 신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귀엽디 귀여운 애완동물이지 않을까.
정상적인 주인이라면 자신이 아끼는 애완동물에게 무한한 사랑과 애정을 퍼부어주지, 짓밟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루미너스, 모라, 히르트 이 세 명의 신들은 결코 악신이 아니다.
애완동물이 투정을 부리거나 앙탈을 부리면 너그럽게 들어주는,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지극히 선한 신들이다.
그렇다고 선은 넘어서도 안 된다. 애완동물이 주인을 무는 순간 그 주인들이 따끔하게 혼을 내거나 엄하게 벌을 내리는 것처럼, 신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좋은 분이지만 히르트 님은 아프시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엄마도 요즘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더라. 조만간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히르트는 누누이 언급했던 것처럼 생명과 자연의 여신이시다. 자연의 여신인만큼 자연 재해도 담당하시는 분.
그녀가 화를 낸다면 화산이 폭발하고, 실수로 넘어져서 어디 한 곳이 다친다면 지진이 발생하는, 그야말로 자연과 한 몸인 여신.
최근에 국가가 멸망할 정도의 자연 재해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역사를 뒤져본다면 끔찍한 재앙이 발생하여 나라가 멸망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 인구가 늘어나고 과학이 발전한다면 자연 재해의 빈도도 늘어날 거야. 너희 지구처럼 말이지.]‘지구에도 히르트 님 같은 자연의 신이 있나요?’
‘그런데 지금 지구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힘들지 않나요?’
[당연히 힘들지. 인류로 따지자면 열이 내려가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는 중인데. 자연 재해의 빈도도 늘어난 이유도 열이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기 때문이야.]신들과 대화하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생에서는 무신론자였던 나였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또다른 판타지나 마찬가지.
또한 무신론자였던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건 바로 이 세상 신들이 언급했던 지구의 신들.
이 말은 즉슨, 지구에도 이들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헌데 신화와 같은 책들을 제외하면 신들이 직접 인류에게 말을 걸거나 한 적이 없다.
예수나 부처처럼 실존했던 ‘성인(聖人)’이 있으나 이들이 과연 신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의아하네요. 지구의 신들은 어째서 인류에게 직접 신탁을 내리지 않는 거예요?’
[복합적인 이유가 많아서 그래. 우선 신들의 숫자가 세 자리 수를 넘을 정도로 많고,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으면 전부 따라할테니까. 어지간한 혼란이 닥쳐오지 않는 이상 지구의 신이 직접 신탁을 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 거야.]‘어지간한 혼란이라 한다면요?’
[악마 침공처럼 다른 차원에서 구멍이 뚫린 탓에 온갖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온다던가? 하지만 지구의 차원은 신들이 많은 탓에 워낙 견고해서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야.]헌터물이네. 그런데 나는 그 견고한 방어를 뚫고 이곳으로 환생한 건가.
문득 나를 소환한 악마 숭배자들이 무슨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지구의 차원까지 뚫어버렸는지 궁금해진다.
만약 정상적으로 실행되었다면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 사건 못지 않은 대사건이 터졌을지 않을까.
전화위복인지, 아니면 인과응보라 해야될지 내가 건너 온 바람에 악마 숭배자들의 머리통이 부서지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막 해도 되는 거예요?’
[이걸 소재로 삼아도 우리는 상관없는데? 오히려 이 세상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흠···’
확실히 모라의 말마따나 2차 세계 대전이 아닌, 제논 일대기 후속작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이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니 넘어가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일단 알겠어요. 그나저나 이야기가 중간에 새서 그런데, 모라님이 말씀하신 위기는 언제 닥쳐오는 거예요?’
[한 3···]’30분?’
30분이라는 시간은 부족한 것 같으면서도 대비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모라가 곧바로 대응해줄 테니 문제가 없···
[···분?]‘네?’
[3분 남았어.]이런 악신 같으니라고. 나는 앞으로 닥쳐올 예정인 위기가 3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당황보다는 황당함이 앞섰다.
설마 이때까지 재잘재잘거렸던 것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인가. 그런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헷.]맞네. 내 마음을 읽고 저렇게 웃는 걸 보니까 확실하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져 입을 벙긋거린 것도 잠시, 일단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부터 물색했다.
하지만 위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대처를 하던 말던 해야하지 않겠나. 이에 서둘러 모라에게 질문했다.
‘위기가 뭔지 알려줄 수 있나요? 3분밖에 안 남은 걸 보면 말해줄 수 있잖아요.’
[사실 위기라 해봤자 큰 것도 아니야. 그냥 너희 어머니가 신전에 찾아왔다는 것 정도?]‘네?’
아니. 어떻게 찾아오신 거야. 설마 내 방을 뒤져서 가르츠의 소환지라도 찾으신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때를 대비해서 소환지가 든 서랍을 자물쇠로 막아놓았다.
그리고 그 자물쇠의 열쇠 또한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기에 어머니가 그걸 뚫기는 매우 힘들다.
[아, 그거? 힘으로 자물쇠를 뜯어버렸지.]‘혹시 저희 어머니가 알고 보니 용사의 후예였다던가 그런 건 아니죠?’
[그건 아냐. 태생적인 재능과 더불어 너희 아버지와 지내면서 힘이 강해진 거지. 당장 너도 뒤늦게나마 재능을 꽃피우고 있잖아?]모라의 말대로 신성력과 훌륭한 선생(아델리아)이 있다지만 내 성장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긴 하다.
애당초 기초적인 기사 훈련만 받았을 때도 기준점이 너무 높아서 그렇지, 재목 자체는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
안 그랬으면 마리와의 첫날밤 당시 새벽 내내 운우지정을 보내지도 못 했겠지.
아무튼 우리 가족의 재능에 대한 건 넘어가고, 당장은 위기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정말로 가르츠를 통해 헬리움에 도달했다면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머지않아 알아차릴 터. 신전을 방문할 때 세실리와 같이 온 참이다.
‘그게 뭐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도중에 모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에 모라는 장난꾸러기처럼 키득키득거리더니 기대가 듬뿍 담긴 어조로 대답했다.
[한 번 눈을 뜨고 거울을 볼래?]‘···설마.’
이 상황,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데쟈뷰인가.
나는 그녀의 권유를 듣자마자 눈을 뜨며 거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개인 예배실마다 전신 거울이 배치돼 있어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제발···’
과장이 아니라 가슴에 수박을 달고 있는 적발금안의 미녀가 거울에 당당히 서 있다. 여기서 머리만 풀면 천상 여자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모.
사랑스럽고 귀여운 나의 여동생, 릴리의 성장한 모습이면서 내가 여자로 바뀌면 변할 외모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커다란 가슴만큼은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세실리와 체리보다 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심히 고민하게 만드는 크기.
죽어도 싫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말지.
나는 거울에 비추어진, 정말로 쓸데없이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녀를 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대로 나가면 어머니도 못 알아볼텐··· 아얏!]‘응?’
한숨을 쉬며 모라에게 따지려 할 때 갑작스레 그녀의 비명 소리가 뇌리에 울려퍼졌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비명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모라의 투정이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이씽··· 왜 때려! 아프잖아! 나는 장난도 못 쳐?]‘··· ···’
[알았어! 알았어! 안 하면 되잖아! 성별 말고 다른 걸로 바꿀게! 치사하게 정말···]보아하니 루미너스나 히르트 중 한 명에게 제대로 혼이 난 모양이다. 하기야 솔직히 선을 넘기는 했어.
이어서 그녀는 한동안 툴툴거렸다가 실망감 어린 음성으로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하지 말래. 지구로 치자면 애완동물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거라는데 난 잘 모르겠어.]‘푸흡!’
거 참 적절한 비유네요, 히르트 님.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정말로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신들이다.
보통 신이라 함은 인간적인 면모가 하나도 없이 이익만 추구하는, 소시오패스 같은 이미지가 널렸는데 이들은 자애롭기 그지 없다.
그렇다고 만만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히르트의 비유처럼 신에게 있어서 인류는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을테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주실 거죠? 정 귀찮으시다면 안 해주셔도 돼요. 말만 위기인 거지, 그냥 혼만 좀 나고 끝날 거예요.’
[아냐. 내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끝까지 도와줘야지. 어디 보자··· 응. 그래. 이게 좋겠다. 한 번 거울을 볼래?]나는 거울을 보라는 모라의 지시에 눈을 조심히 뜨며 거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오?’
비슷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내 모습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라면 정말로, 어머니가 모를 수도 있겠다.
* * *
“안녕하세요, 공주님. 여전히 아름다우시네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니도 아름다우세요.”
한편 신전 밖에서 기대하고 있던 세실리는 아이작의 어머니, 안나와 서로 마주 인사하는 중이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안나가 이곳으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가르츠에게 상황을 들었을 때는 살살 달래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진의 죽음이 충격이어도 아이작을 방해할 수 없다는 이유다.
“생애 처음으로 헬리움에 방문했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 있죠. 그렇다 보니 신전을 방문하는 시간이 늦어졌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어머니께서 우리나라를 칭찬하시니 저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지만 안나가 헬리움에 도착하고 나서 상황이 반전됐다. 안나가 헬리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홀딱 반해버린 것.
아이작을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헬리움 관광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탄생하여 선뜻 돌려보내기도 애매해졌다.
세실리에게 있어서 아이작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안나 또한 아이작의 어머니로서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단호히 대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헬리움을 칭찬하면서 세실리의 경계는 이미 와르르 무너진지 오래였다.
“크로스 경도 이곳에 있고, 마리는 어디에 있나요?”
“마리는 지금 왕궁에서 머물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원하시다면 왕궁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염치가 있지, 그냥 아이작이 잘 지내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거니까 곧바로 돌아갈 거예요.”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정작 안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가르츠는 죽을 맛이었다.
은인의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해서 들어줬다간 아이작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른다.
가르츠 입장에서는 가불기에 걸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 부디 아이작이 선처를 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대신 아이작과 만나도 혼내지는 말아주세요. 아셨죠?”
“걱정 마세요, 공주님. 저도 진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단지 도망치듯이 헬리움에 방문한 아이작이 괘씸할 뿐이죠. 같이 방문했다면 모를까, 며느리들이랑만 가니 어머니로서 섭섭했거든요.”
“그 마음 이해해요.”
저벅- 저벅- 저벅-
그순간 신전 안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어왔다. 이에 신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시선을 입구 쪽으로 옮겼다.
아이작이 예배를 위해 신전으로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나 지금 남아있는 사람은 아이작밖에 없다.
이건 일일이 계산했기에 알 수 있는 정보였으며 세실리가 안나에게도 알려준 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가오는 사람이 아이작이라는 의미인데···
“어?”
“응?”
“어라?”
누구라고 할 것없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전 안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외모 또한 곱상하여 언듯 보면 여성으로 착각할만하다.
그러나 든든한 어깨와 더불어 날렵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매를 보면 남자가 확실하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이작의 특징이다.
허나 얼굴을 본다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명 아이작처럼 생겼는데 색상이 완전히 달랐으니.
마족에게만 자란다는 칠흑색 머리카락과 더불어 피처럼 붉은 눈동자. 마지막으로 머리에 난 검은색 뿔까지.
양뿔처럼 자란 가르츠, 위로 곧게 뻗은 세실리와 달리 뿔이 작게 튀어나와 있다.
수많은 여심을 홀릴 듯한 분위기와 외모. 이와 더불어 옷에 맞춰입은 듯한 검은색 예복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마족의 등장에 아이작의 지인들은 저마다의 각기 다른 이유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실리는 검은 마나도 없는데 뿔을 지닌 마족의 존재에 의문을, 아델리아는 미남이고 자시고 아이작이 어디 갔냐는 부분에 의문을, 안나는 호크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닌 마족에 관심을.
마지막으로 가르츠는··· 별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도 아델리아처럼 아이작이 어디로 갔냐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이윽고 신전 안에서부터 등장한 마족이 그들을 지나치려고 할 때 쯤, 세실리는 그에게서 풍기는 ‘복숭아’ 향기가 코로 찔러들어오자마자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거기 있는 남자분.”
“네?”
마족 남성은 세실리의 부름에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세실리는 자신처럼 붉디 붉은 눈동자와 마주하다가 예의바르게 질문했다.
“혹시 안쪽에 붉은 머리 남성 분을 보지 못 하셨나요? 눈동자 색도 황금색이에요.”
“음··· 죄송하지만 못 본 것 같네요.”
남자는 그리 말하며 곧바로 지나쳤다. 그가 지나치자 짙은 복숭아 향기가 사방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작은 아직 안에 있는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저 마족이 너무나 의심스러운데.
무엇보다 그에게서 마족의 특징인 검은 마나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말은 즉···
‘···모라님이 또 장난을 치셨구나.’
저 마족은 아이작이 분명하다. 세실리도 모라의 장난에 피해를 본 적이 있던만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 안나를 피하기 위해서 변장을 한 것 같은데, 그 변장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마족, 아이작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래 아이작은 훈훈한 분위기를 띄었는데 고작 색상만 바꾸었다고 색기가 줄줄 흘러내린다. 남자에게 색기라 하니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지금 중요한 건 그의 연기에 맞춰줘야 하나 말아야 하냐는 것. 웬일로 평소와 달리 연기를 잘 하고 있었으나 이미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던 세실리다.
당연히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입술이 흐물거리는 것조차 막기 힘들다.
다른 사람을 보아하니 그가 아이작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흐음··· 이거 이상하네요. 잠깐만 아이작?”
너무나 자연스러운 안나의 자식 부름에.
“네?”
살짝 긴장을 낮췄던 마족, 정확히는 아이작이 허당미를 내뿜으며 뒤를 돌아봤다.
“··· ···”
“··· ···”
“···푸흡!”
푸하하하하!
결국 세실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했다.
아무리 외모를 바꾸어도, 분위기가 변해도, 아이작은 아이작이다.
빈틈이 많고, 허당끼가 넘치는, 정말이지 한치의 긴장조차 낮추면 안 되는 사람.
‘아.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