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86
■ 285화. 폭탄발언 (4) □ ᓚᘏᗢ
전술 핵폭격에 걸맞는 연설이 끝이 났지만, 광장의 뜨거움은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선 나와 귀족들은 지난 알븐하임 연설 때와 마찬가지로 인맥을 다지기 위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대부분 세실리의 연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의논하는 등.
그동안 마족을 묶어두었던 족쇄를 풀 수 있다는 증거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다른 나라 입장에서 여러모로 골치 아플 것이다.
안 그래도 마법과 문화에 있어서 몇 수 앞을 달려나가는 마족이다. 그나마 마법에는 엘프가 있다지만 문화를 비교하면 애매한 상황.
여기에 발목을 묶어두었던 족쇄마저 풀 수 있다는 잠재력까지 생겼으니 헬리움의 위세는 나날이 증가할 터.
하지만 그렇다 해서 헬리움이 우위를 점한 건 아니다. 잠재력을 보여준 건 분명 좋으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대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스칼이 기반을 잘 닦아놓아서 망정이지, 세실리가 마왕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온갖 정치적인 공격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의미.
그래도 내실을 닦기에 최적화된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아무리 세실리가 내면의 악을 굴복시켰다고 한들 쉽지 않은 길이 될 테니까.
아마 이 시간 이후 공문으로 하달되지 않을까. 특히 마족에게는 ‘소악마’라는 사춘기 시기가 존재한다.
마족 부모 입장에서 뒷골이 당기다 못해 양육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다. 말은 지지리도 안 듣지, 내면의 악이 날뛴다고 별의별 난리를 치지.
안 그래도 힘든데 자기도 내면의 악을 굴복시키겠다고 난동을 피우면 부모 입장에서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나는 마족 부모의 양육 난이도가 급상승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세실리의 연설을 지켜보던 헬리움의 국민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황혼 속에서 찾은 우리의 빛이여!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우리의 그림자에게 안녕을!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가세!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헬리움의 국가를 열창 중이다. 세실리의 연설은 마족들에게 허울뿐인 희망이 아니라 확신을 내려줬다.
내면의 악을 굴복시키는 것 또한 세실리가 친절하게 보여주었으니 망설임은 없다.
이제 남아있는 건 악마가 아닌 인류의 소속으로서 크게 도약하는 것 뿐.
탄생부터 몸을 구속시켰던 내면의 악은 더이상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닌, 극복할 수 있는 걸로 변화되었다.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겠지만, 나는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다.
‘내 정체가 들킬 염려도 없지만···’
나는 마리와 친분을 다지기 위해 다가온 귀족들과 대화하다가 다른 쪽을 힐끔거렸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은 리나도, 레오르트도 아닌 히리야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제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채 자신에게 다가온 귀족과 대화하고 있으나 가끔 가다가 이쪽을 힐끔거린다.
어째서 히리야가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나마 가능성 높은 건 내 정체다.
아델리아를 향한 보잘 것 없는 복수심 때문인지, 그녀는 세실리가 연설을 하는 도중에도 나를 쳐다봤다.
‘눈치를 챌만한 구석도 없는데··· 흠···’
세실리가 스스로를 제논의 여자라 칭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모티브가 된 인물임을 말한 것이다.
아마 몇몇 고위급 귀족들은 그녀를 추궁하여 정말로 제논과 아무런 관계가 없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까 말했던 것처럼 세실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신들에게 물어봐도 맞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터.
히리야가 잡을만한 건덕지가 전혀 없다. 정말로 우연히 세실리가 나를 쳐다봤을 때, 히리야가 나와 그녀를 동시에 쳐다본 것 빼고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세실리가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조심해야겠네.’
당분간 히리야는 피해야 될 것 같다. 그녀쪽에서 접근한다면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와의 시간을 더욱 길게 잡을 필요가 있다.
세실리는 당분간 국정 문제로 아카데미에 오지 못할 테니 마리와 함께 할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날 터.
더욱이 조교로 활동해야 하는 만큼, 히리야 쪽에서 나를 쥐 잡듯이 찾지 않는 이상 마주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정말로 세실리 공주님이 제논의 여자라 생각하시나요?”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귀에 쏙 들어오는 누군가의 질문. 그 질문을 듣자마자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질문을 날린 사람은 구불구불한 금발에 푸른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영애.
객관적으로 분명 아름다운 외모지만 마리가 옆에 있기 때문인지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음··· 저는 확신이 잘 서지 않네요. 선전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일단 제논의 말을 들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우선 제논이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판별할 수 있겠죠. 만약 제논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실리 공주는 모두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게 된 셈이니까.”
주제를 가지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편지 한 통 써야겠구나.
색욕, 릴리스의 모델이 세실리인 건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사실이다. 색기가 넘치는 외모하며 분위기, 더 나아가 전투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세실리를 통해 넣은 것이니 그녀가 모델인 건 명백한 진실이다.
그래도 세실리를 위해서 편지를 적어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대놓고 긍정할 수도 있으니 편지를 잘 써야된다.
“그런데 정말로 세실리 공주가 제논의 여자인 건 아닐까요?”
물론 정황이 있다고 쉽게 믿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 앞의 남자가 팔짱을 끼며 의문을 드러냈다.
그래. 저 남자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세실리의 연설을 믿는 건 아니다. 분명 뒤를 캐는 사람이 있을 터.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거짓말 사이에 끼여있는 미묘한 진실이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실리도 바보가 아니니 이런 경우를 대비했겠지만 앞으로 꽤 고생할 팔자라는 건 다르지 않다.
“설마요. 그런 거라면 저렇게 발표하지 않고 제대로 된 증거를 보여줬겠죠.”
“증거라면요?”
“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건 역시···”
“자식?”
움찔-
너무나 확실한 증거를 언급하자 마리의 몸이 크게 움찔거린다. 나와 손을 맞잡고 있는 탓에 더욱 생생하다.
이미 세실리와는 두 자리수가 넘을 정도로 관계를 맺은 상태다. 그나마 피임을 꼬박꼬박하고 있어서 사고가 날 일은 0에 수렴했다.
이렇듯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증거가 없지만, 세실리는 본인의 악마화를 보여줌으로서 확실한 증거 하나를 박아버렸다.
릴리스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 바로 자신이며, 내면의 악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나쁘게 표현하면 말장난 또는 기만 작전이지만, 세실리의 언변과 화술이 뛰어난 거라고 칭찬하자.
어쨌거나 이후로 귀족들간의 짧은 만남이 끝나고, 나와 마리는 잠깐 장소를 옮겼다. 장소를 옮기는 동안 멀찍히 지켜보고 있던 아델리아도 돌아왔다.
지금은 헬리움의 왕궁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일단 귀족 전용 여관에 숙식을 해결할 계획이다.
“흥. 제논의 여자라니··· 아주 대놓고 광고를 해요, 광고를.”
휴식을 위해 여관에 들어오자마자 마리가 투덜거린다. 귀족 전용에다가 부부를 위한 공간이라 방음은 철저하다.
그러므로 마리의 투덜거림이 바깥으로 새어나갈 일이 없다는 뜻. 나는 그녀의 투덜거림을 듣자마자 쓰게 웃었다.
“애매하게 말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너는 몰라도 내가 안 괜찮아. 이건 나에게 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이렇게 된 거 내가 아이작의 첫번째라는 걸 알려줘야겠어. 요즘 보면 살살 기어오르는 것 같더니 이때문이었네.”
그리 말하면서 드레스를 주섬주섬 벗기 시작하는 마리. 아델리아가 곁에 서서 그녀가 보다 더 쉽게 탈의할 수 있도록 보조해줬다.
격식을 차리기 위해 입은 드레스라 도움이 없으니 옷을 입는 건 물론 벗는 것도 힘들다.
아델리아도 처음에는 버벅였지만 방학동안 익숙해진 후에는 좀 더 쉽게 보조하는 중이다.
“너도 세실리한테 할 말은 있지?”
“조금은? 상의를 하지 않고 저지른 건 말해야겠지.”
비록 계획이 다 있었다지만 제논의 여자라는, 전술 핵폭탄에 맞먹는 발언에는 문제의 요소가 많다.
만약 조금이라도 삐끗했다면 악마화를 보여줘도 모든 걸 망칠 수도 있는, 희대의 도박수였으니.
또한 나와 상의하지 않고 발표한 건 이처럼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너무 혼내지는 마. 세실리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스윽-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나는 마리의 가녀린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이어서 귀에 입을 가까이 댄 후,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제논임을 밝혀도 네가 첫번째라 말할 거야.”
“···그 말은 꼭 지켜.”
“물론이지.”
슬쩍 얼굴을 귀에서 떼어내니 백설기 같은 피부가 새빨개진 마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침한 반응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이대로 본방에 들어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아델리아도 있는데 여기서 들어간다면 괜스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으니.
거기다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라 벌써부터 몸을 더럽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처에 장인어른도 계실 테고···’
직접 만나진 않았으나 마리의 아버지이자 나의 장인어른, 레킬리스 공작도 이곳에 있다.
그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어서 아직까지 다른 귀족과 얘기를 하고 있을 터.
장인어른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놈팽이처럼 그의 딸과 나뒹굴기에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럼 왕궁에 있을 때 데스칼은 무시한 거냐고? 데스칼은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세실리와 열심히 놀라고 부추겼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는 신들이 내려준 보물 그 자체이니 뭘 하던간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거들어주겠지.
심지어 세실리와 첫날밤을 보낼 때 아이실리아가 친히 ‘디저트’까지 챙겨줬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똑똑똑-
[아이작. 나야. 들어가도 될까?]나와 마리가 서로 간편한 복장으로 환복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나가 아닌, 세실리의 목소리가. 나를 포함한 여인들은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깜짝 놀란 얼굴로 문 쪽을 쳐다봤다.
분명 연설 이후에 바쁠 몸인 그녀가 어째서 이곳에 온 것인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어안이 벙벙했으나 우선 아델리아에게 문을 열라고 눈짓했다. 아델리아도 눈짓을 받자마자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덜컥-
문을 열자마자 연설 당시 입었던 복장 그대로의 세실리가 등장했다. 곁에 가르츠도 없는 걸 보면 혼자서 이곳에 온 모양이다.
누구에게 들킬 염려도 없다. 세실리의 마법이면 은신 마법을 사용하던 텔레포트를 사용하던 했을 테니까.
세실리는 문을 열어준 아델리아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다.
“무슨 일이야?”
이윽고 세실리가 나와 마리 앞에 서자 의문을 담으며 질문했다. 아델리아는 문 앞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세실리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나와 마리를 번갈아 보더니 붉은 입술을 열었다.
“연설 때 많이 당황스러웠지? 아마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야. 상의도 하지 않고 그런 말을 했으니까.”
“당황스럽고 말고. 제논의 여자라니, 아무리 너라도 조금 막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상했던 주제가 세실리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마리가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마침 잘 걸렸다는 말투다.
나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실리를 묵묵히 쳐다봤다.
세실리는 그윽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넘어 허리까지 꾸벅 숙였다. 명백한 사죄의 표시다.
“미안해.”
“··· ···”
“그 부분은 내가 욕심낸 게 맞아. 상의를 하지 않은 것도 내 추악한 욕심을 알리기 싫었거든.”
“추악한 욕심?”
“응.”
이어서 굽혔던 허리를 편 세실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방금 전에 지었던 미소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슬픈 미소.
“언듯 들으면 아이작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야. 헬리움의 눈을 피해 나의 뒤를 캐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러면 아이작의 신변도 위험해질 거야.”
“··· ···”
“그래서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악마화를 하면서까지 그런 말을 한 거야.”
“왜?”
“아이작이라면 분명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테니까.”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세실리다. 그녀의 말마따나 상의를 했어도 내가 시원하게 허락했을 공산이 크다.
일종의 죄책감이라는 것일까. 어쩌면 그녀도 나에게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녀가 나를 아는 만큼, 나도 그녀를 알고 있다. 세실리가 나에게 보여주는 헌신은 그만큼 강했으니.
“그리고 악마화를 얻으면서, 내 진정한 욕망에 대해 알게 됐어. 아까 말했던 추악한 욕망을.”
“욕망?”
“응. 마리를 밀어내고, 아이작의 곁에 서는 것. 내면의 악이 나에게 속삭인 거지만, 다르게 말하면 내가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욕심이기도 해.”
그 말을 듣고나서 눈을 살짝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납득이 간다.
세실리와 가까워지면서 알음알음 마리에게 질투심을 품고 있던 그녀다.
아이를 자기가 먼저 배고 싶다니, 정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니 등등.
비록 장난식으로 말했으나 본인이 알지 못하는 진심 또한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면의 악을 굴복시키면서 그러한 진심과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본인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졌겠지.
나의 선택과 마리의 자비로 내 곁에 있게 된 건데, 본인은 배은망덕한 흑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나와 상의를 하지 않고 폭탄을 터뜨린 것도, 어느 정도 정을 떨어뜨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말한 거야. 진심을 마주했으니 더이상···”
“아, 제발. 그딴 소리 좀 하지 마.”
그런 의미에서 세실리가 또다른 폭탄 발언을 꺼내려던 찰나, 마리가 짜증을 가득 담아 말을 잘라버렸다.
그에 시선을 옮기니 무언가 불만이 가득 찬 듯한 마리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세실리는 그녀가 말을 자르자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밤일을 그렇게 치렀는데 이제 와서 떨어진다니 뭐니 하는,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 그렇긴 한데··· 마리. 난 너를 밀어내고···”
“답답해라. 차라리 연설 때 이렇게 말했어야지! 내면의 악이 나에게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의 진정한 진심이었죠. 그 진심을 마주할 용기를···”
방금 전에 세실리가 보여주었듯이, 연설톤으로 익살스럽게 말을 줄줄이 잇는 마리.
얼마나 답답했으면 쉬지 않고 말을 쭈욱 잇는다. 그렇게 마리의 연설 아닌 연설이 끝날 때쯤, 그녀가 세실리에게 물었다.
“그 말은 아이작의 곁에서 떨어질 거라는 뜻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 누군가 내가 아이작이랑 붙어있는 모습을 본다면···”
“후우··· 아이작.”
“응?”
“넌 그런 각오도 없이 세실리를 받은 건 아니지?”
“아니.”
정실의 품격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나는 마리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앞으로 세실리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나와 가까이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필시 의심할 테니까.
몸이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지는 법. 악마화도 습득했겠다, 실연의 아픔으로 악마가 되지도 않는다.
세실리 입장에서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와 마리가 보기에는 멍청하기 짝이 없다.
“누나.”
“으, 응?”
“고작, 그런 걸로, 나한테, 떨어지려고, 한 거야?”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하며 알려줬다. 결코 그녀를 떠나보낼 생각이 없다.
정치적인 공격이든 뭐든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애당초 세실리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내가 바보 병신이지.
더군다나 흑심이라고 한들, 세실리는 내 곁에 서고 싶어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진심이다.
“누나는 절대 포기 못 해. 누나가 떨어진다면 내가 갈 테니까. 알겠어?”
“··· ···”
내가 굳게 다짐한 목소리로 선언하듯이 말하자 세실리의 붉은 눈에 점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악마화를 터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현재 세실리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이러한 선택을 한 것도, 굳이 우리를 찾아와서 고백한 것도 이때문이겠지.
이성은 내 곁을 떠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으나, 실제로는 내 곁에 있고 싶어한다. 이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여 지극히 혼란스러운 상태를 낳았다.
“흐극···”
결국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한 세실리. 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의 작은 어깨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등을 토닥여주자 더이상 놓지 않겠다는 듯, 세실리가 나를 꽉 껴안는다.
그녀의 뿔이 내 가슴을 찌르는 탓에 따끔거리기는 하나, 지금 상황에서 말했다간 초를 치는 거겠지.
“에휴. 공주라는 사람이 울기나 하고.”
마리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세실리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깨를 으쓱이는 반응을 보면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뒤이어 그녀는 세실리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더니 울적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건넸다.
“그럼 정실 자리는 넘보지도 마? 아이도 내가 먼저 가질 테니까 알겠지?”
그리고 세실리의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시, 시러···”
“뭐?”
“내가··· 먼저···”
울먹거리는 통에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가까이 있던 덕분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리의 반응은···
“이 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렇듯, 세실리와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진 계기가 된 상황이 끝난 후.
[알븐하임의 여왕. 릴리스의 모티브가 헬리움의 공주라면, 엘리샤의 모티브는 바로 자신.]또다른 폭탄 발언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