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93
■ 292화. 의심 (2) □ ᓚᘏᗢ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칭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웠는데 어느새부터 잠잠해졌다. 다시 말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뜻.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면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 법이다. 제논 일대기 22권도 타자기의 존재 덕분에 벌써부터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퇴고에 이어 출판사로 우편물을 발송하기만 한다면 22권의 집필은 끝. 너무 빨리 끝난 나머지 23권을 곧바로 작성할까 말까 고민했으나 잠깐 쉬기로 정했다.
어차피 쉰다고 해봤자 지인들이랑 사이좋게 노는 것밖에 되지 않지만. 참고로 아직 세실리는 없다.
아직 헬리움의 내실을 다스리느라 아카데미에 오지 않은데다가 어쩌면 이번 학기를 통째로 빼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헤일로 아카데미에서도 그 사실을 이해해주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하면 한 학기에 한해서 유급을 면해준다는 원칙이 존재한다.
하물며 헬리움 같은 경우는 특이 케이스인지라 경우에 따라 1년을 면해줄 수도 있다.
이렇듯 아카데미에 세실리가 없어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르츠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 중이다.
나도 아카데미의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며 편안한 휴식이 가능한 주말을 맞이했다.
“198··· 199··· 200! 그만!”
여름의 후덥지근함이 남아있는 공용 연무장의 구석진 곳.
나는 아델리아의 그만이라는 외침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팔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딱딱한 돌의 감촉이 가슴에 온전히 전달되고, 안락함이 몸에 감돌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자고 싶을 정도.
“30초간 휴식하고 다시 200회 실시야.”
그러나 내 등 뒤에서 들려온 아델리아의 잔혹한 말이 나를 일깨워준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내 등 뒤에 올라탄 아델리아에게 투정을 부렸다.
“조금만 더 쉬면 안 될까?”
“안 돼. 엄살 부리지 마.”
아델리아는 내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몸 관리만큼은 한치의 양보조차 하지 않는 그녀다.
지금도 평범한 팔굽혀펴기가 아니다. 그녀가 내 등 뒤에 올라탄 채로 반복해야 된다.
아델리아는 단련된 기사답게 근육이 많아 체중이 평균보다 높다. 자기 말로는 어림잡아도 75kg 내외라고.
그녀의 키가 정확히 173cm고, 그 키의 평균 몸무게가 60kg 정도인 걸 고려하면 근육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간단한 팔굽혀펴기라도 아델리아가 등 뒤에 올라타니 그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건 신성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신성력은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에 어울리지, 직접적으로 향상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 노력의 여하에 따라 성장폭이 달라진다.
“누나.”
“응?”
“누나는 신성력도 없이 노력만으로 몸을 키운 거지?”
“물론이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걸 보듯이 아델리아의 진정한 재능은 노력과 성찰이다.
단순무식하게 들이박는 게 아니라 머리를 굴려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까 고민하고, 그것을 직접 이행하여 결과를 나타낸다.
만약 그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 한다면 다시 이론을 세우고 또다시 실습한다. 이걸 무한반복하여 아델리아라는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난 다른 동생들과 달리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으니까.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지.”
여전히 내 등에 탑승한 아델리아가 약간 씁쓸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그녀의 말마따나 테르스 왕가는 기본적인 의식주만 지급했지, 그 외에는 아델리아가 모두 알아서 해결했다.
검술도 어느 한 기사가 남몰래 가르쳐 준 거라고. 하지만 뒤늦게 발각되고 그 기사는 다른 근무지로 좌천됐다.
아델리아가 겪은 고초를 들으면 들을수록 테르스 왕국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능력과 인성이 반비례하는 사람은 흔하다.
어쩌면 백성을 굽어살펴야 한다는 선민의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사실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
‘나야 좋지만.’
아델리아 덕분에 최근 들어 성장했다는 게 체감된다. 당장 한 달 전만 해도 그녀를 등 뒤에 태우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아델리아의 열정적인 가르침, 그리고 보좌 덕분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메이드 업무를 볼 때는 집중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니 더할 나위가 없다.
테르스 왕가에게는 볼품없는 사생아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아델리아는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이다.
“그런데 얘가 은근슬쩍 딴청을 피우네? 한 세트 추가하기 전에 빨리 해.”
물론 엄격한 선생인 건 변하지 않았다. 한 세트당 팔굽혀펴기 200회니 서둘러 끝내는 게 이롭다.
공용 연무장에서 행하는 수련이라 눈에 띌 법하지만 그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힐긋거리긴 했으나 아무래도 겉보기에 트레이너와 회원 같은 상황이니 금방 신경을 껐다.
어차피 자기들도 훈련하느라 바쁜데 시선을 줄 여유가 있겠나.
몸 좋고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이 천지라 굳이 우리에게 시선을 이유도 없다.
“아이작.”
“응?”
“너 혹시 무술 같은 거 배울 생각은 없니?”
팔굽혀펴기를 하는 도중에 아델리아가 넌지시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진지하디 진지한 말투를 보아하니 결코 장난은 아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들고 골똘히 생각하면서도 팔굽혀펴기를 멈추지 않았다.
“음… 딱히? 기본적인 호신술은 아버지에게 배운 적이 있어서 괜찮은데 무술은 딱히 끌리지가 않아. 그걸 배울 시간도 없고.”
“그래?”
“내 몸이 그렇게 좋아?”
다소 중의적인 표현이긴 했으나 아델리아라면 알아듣겠지. 대신 순간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지긴 했다.
뒤이어 그녀는 헛웃음으로 어색함을 무마시킨 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단순히 좋은 수준이 아니야. 신성력이 있다지만 단기간에 몸이 이렇게 좋아지는 건 어렵거든. 분명 재능이 있는 거야.”
아델리아가 칭찬까지 했지만 그닥 끌리진 않다. 아까도 말했다만 제논 일대기 집필하는 것도 힘든데 무술을 배울 여유는 없다.
어찌 보면 비옥한 토양에 감자만 심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래도 내 생각은 확고하다.
“미안. 아직은 생각이 없어. 그리고 몸이 좋아도 내가 검술에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잖아?”
“굳이 검이나 창을 잡지 않아도 돼. 도끼나 메이스처럼 휘두르기만 끝인 게 있거든. 내가 간단한 파지법이랑 방식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 그것도 일종의 호신술이라 할 수 있지.”
“한 번 고려해볼게. 일단 이것부터 끝내자.”
무술이고 나발이고 당장은 운동이 중요하다. 아델리아도 그걸 알고 있는지 조용히 나를 도와줬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들어가서 쉬어도 돼.”
“고생했어. 아참, 누나.”
“응?”
“오늘은 마리가 양보해준대.”
“… …”
내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아델리아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그러나 이윽고 얼굴에 눈에 띄게 달아올랐는데, 그녀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하다가 조용히 답했다.
“…기다리겠습니다.”
방금 전과 달리 존댓말을 사용하는 아델리아. 호위 기사가 아닌, 전속 메이드의 태도다.
나는 그녀의 뺨을 한 번 쓸어주고는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샤워도 기숙사에서 하면 끝.
샤워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땀을 빼겠지만 언제나 청결은 매우 중요하다.
찝찝한 상태에 방치되는 것보다 차라리 귀찮은 게 훨씬 낫지. 그 생각을 가슴 속에 품으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델리아는 마리나 세실리와 달리 겉으로 표출하지 않으니 여태까지 쌓인 게 있을 터.
방금 전까지 몸을 혹사시켰으니 아마 내일 일어나는 건 힘들지 않을까, 로 예상하는 중이다.
“응?”
밤에 있을 또다른 격전을 기다리며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였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없었던 웬 봉투 한 장이 현관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기숙사 문 아래에는 우편을 넣는 구멍이 뚫려있어서 이처럼 가끔 가다가 편지나 우편이 놓여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저택에서 전송된 편지나 제논 일대기 원고였고, 간혹 공지문이 발송된다.
‘어머니가 보낸 건가?’
최근에는 세실리와도 편지를 주고 받고 있어서 세실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택에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편지를 보낼 이유도 없고.
나는 수건으로 쓸데없이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뽀송뽀송하게 말리며 편지를 주웠다.
편지지는 어디서나 볼 법한, 흔하디 흔한 흰색 봉투다. 세실리나 어머니의 편지지는 매우 화려한데 차이가 난다.
‘누구한테 온 편지지?’
설마 러브 레터 같은 건가. 그러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편지지를 개봉했다.
개봉한 편지지 안에는 종이 한 장만 달랑 들어있다. 이에 점점 더 알쏭달쏭해지는 심정으로 편지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당신이 제논입니까?]또박또박 쓰여있는 글씨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히리야인가?’
증거만 없을 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근데 어쩌라는 거지?’
뭘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다.
* * *
‘이거면 되겠지.’
약간의 시간을 거슬러 아이작이 몸을 깨끗하게 씻고 있을 시간.
히리야는 아이작이 거주하는 기숙사의 우편함에 편지를 밀어넣고 재빨리 자리를 떠나갔다.
변장을 했기에 누가 알아볼 걱정도 없고, 혹시 몰라 인상을 어느 정도 가려주는 안경까지 착용한 상황이다.
‘저 녀석은 뭐 이리 부지런한 거지?’
그녀는 기숙사에서 떨어지면서 며칠 동안 파악했던 아이작의 생활 패턴을 상기했다.
그동안 파악했던 아이작의 생활은 모범생 그 자체. 가끔씩 마리나 아델리아를 만나는 걸 제외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낸다.
설령 연구실 바깥으로 나왔다고 한들 그가 향한 곳은 언제나 도서관이다. 그리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간다.
전형적인 학자의 표본이었으나 히리야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세실리와의 정확한 관계다.
하지만 세실리는 현재 헬리움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부재 중인 상태. 들리는 소식에 따르자면 한 학기를 통째로 휴학할 수도 있다고.
이로 인해 히리야는 더욱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가 제논인지 아닌지 파악해야 되는데 벌써부터 차질이 발생했으니까.
그녀가 원하는 건 아이작이 제논임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그가 제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 뿐이다.
‘편지를 본다면 반응을 하겠지.’
만약 제논이 아니라면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할테고, 진짜로 제논이라면 약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걸 꿰뚫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그 이후의 계획은 천천히 수립해도 상관없다.
아이작이 제논이 아니라면 본래의 목표대로 빼앗으면 그만이고, 정말로 제논이라면···
‘아니야. 그래서는 안 돼.’
히리야는 고개를 홱- 홱 저었다. 그가 정말로 제논이라면 자신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의 뒤를 미행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델리아와의 관계가 전보다 깊어졌다는 것.
이건 그가 굳이 제논이 아니더라도 레킬리스 공작가의 영애, 마리의 허락만 있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반대가 문제지. 아이작은 분명 아델리아와 테르스 왕가 사이에 얽힌 사정을 알고 있을텐데 정말로 제논이라면?
‘테르스 왕국은 철저하게 고립된다.’
제논을 건드리게 되는 순간 헬리움과 루미너스 교단이 직접 나설 테고, 어쩌면 알븐하임마저 손을 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어떻게든 막아야 된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히리야지만 최소한의 상식과 개념은 보유하고 있다.
비록 팔려나가듯이 결혼하는 게 싫어서 기사가 되었으나 외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델리아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할 테지만···’
히리야가 복잡한 머리를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성큼성큼 걷고 있을 때였다.
퍽-
“아!”
“응?”
시선을 내리깔면서 걷고 있었기 때문일까. 지나가던 행인이 히리야와 부딪혔다.
충돌을 했음에도 히리야는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반면, 그녀와 부딪혔던 행인은 바닥에 넘어졌다.
엉덩이를 살살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꽤 강하게 넘어진 모양이다.
‘분홍색?’
신기하게도 히리야와 충돌하여 넘어진 여인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아이작의 붉은 머리카락처럼 세상에 몇 없는 걸로 유명한 벚꽃색.
본래라면 분홍색 머리카락을 보며 어느 가문인지 유추했겠지만, 현재 마음이 급한 바람에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쯧. 일어나.”
히리야는 혀를 찬 뒤에 손을 내밀며 여인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건 자신이 딴 생각을 하다가 부딪힌 거니 도와주는 게 합당하다.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인도 그녀의 손길을 받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 감사합니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라.”
히리야가 할 말은 절대 아니었지만 자존심 때문이라도 저렇게 말했다.
눈꼽만큼의 예의를 찾아볼 수 있는 언행이어도 행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곁을 쌩- 하고 지나쳤다.
그에 눈밑을 꿈틀거린 히리야였으나 속으로 꿍얼거리기만 할 뿐, 지체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 쯤.
‘진짜 스토커였네.’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인, 체리는 완전히 사라진 히리야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난번에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 들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혹시 몰라 멀리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스토커도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 했다.
‘바로 알려드려야겠다.’
체리는 스토커를 인지하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정확하게 아이작이 머무는 기숙사.
이윽고 기숙사의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손을 들어 가볍게 노크했다.
똑똑똑-
“아이작 선배님. 저 체리에요.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