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95
■ 294화. 뛰는 놈 위에 (1) □ ᓚᘏᗢ
마리 하우젠 레킬리스. 레킬리스 공작가의 장녀임과 동시에 아이작의 약혼녀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공작가 여식과 남작가 영식의 교제. 이것만 본다면 어째서 마리 정도 되는 여인이 데릴 사위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시집을 가는지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비록 그녀의 친오빠, 케이가 가주직을 잇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라 약혼은 이해할 수 있어도 어째서 아이작인지 의아함을 품기에 충분하다.
레킬리스 공작가는 황실의 든든한 파트너인만큼 권력은 없을지언정 권위가 드높았으니까.
정략 결혼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받을 수 있을텐데 어째서 남작가 ‘따위’에 시집을 가는 건지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로 파악했을 때의 이야기지 조금만 파고든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의 아버지이자 붉은 사자, 호크 듀커르 마이샬을 제대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군대의 보조가 있었다지만 자그마치 폭주한 드래곤을 토벌한 위인인데 제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야 되는 전력이다.
심지어 군인에게 처음과 끝이나 다름없는 ‘명예’에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데다가 정치적인 욕망도 사실상 없다.
현재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빠른 은퇴 이후 그저 평범하게 은거하며 단란한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높으신 분 입장에서는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 셈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제국에 큰 미련이 없다는 뜻으로 귀결된다.
호크만한 전력이 다른 데로 가버린다면 제국 입장에서는 피눈물 정도가 아니라 각혈을 한다. 심지어 빠르게 은퇴한 탓에 아직까지도 실력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웠던 레킬리스 공작가에게 부탁하여 보낸 것이지 않을까.
리나처럼 황족을 보내기에는 너무 과한 면이 있으니 마리를 보낸 것이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예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꽤 설득력이 높은 가설이었기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다.
물론 위의 가설은 전부 다 틀린 말이고 그냥 서로가 좋아서 사귄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애당초 고백도 아이작이 아니라 마리 쪽에서 먼저 했다.
심지어 아이작이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이어진 것이니 둘의 관계가 진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이미 아카데미 내에서도 천생연분이라며 유명하다.
틈만 나면 둘이 손 잡고 여관에 들어선다는, 야시시한 소문도 돌고 있었으나 정작 장본인들은 신경 끄고 있다. 사실이라 부정할 생각도 없었으니.
이처럼 대외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마리와 아이작의 관계인데, 여기서 누군가 끼어든다면?
심지어 평범한 귀족이 아니라 타국의 왕족이 이들 중 한 명에게 깊은 관심을 표한다면?
강 건너 불 구경이라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꽤 재미있는 드라마가 펼쳐지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아니, 민폐를 넘어 심각한 외교적 결례로 넘어갈 수도 있는 사항이다. 마리와 아이작은 정식적으로 ‘약혼’까지 했으니까.
특히 그쪽에서 아이작의 첩으로 들어오는 건 몰라도, 빼앗는 것이 목적이어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아직 소문으로만 돌아다닐 뿐 그 누구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걸까.
너무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인지라 쉬이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왜 부르신 거죠?”
당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더럽다 못해 뭣 같았지만. 현재 마리가 그 심정이다.
그녀는 퉁명스러운 말투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불만을 표시하듯이, 팔짱까지 끼며 맞은편을 노려봤다.
표독스럽게 뜬 눈빛하며 적의가 가득한 분위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기분이 불편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에 그 눈빛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인, 히리야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이작의 뒤를 스토킹할 때처럼 변장을 한 게 아닌, 하늘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마리는 그런 히리야를 바라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현재 그녀의 심기는 불편하다 못해 마음 같아서는 뺨을 때리고 싶다.
아이작의 연인이자 약혼녀인만큼, 히리야가 현재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 똑똑히 인지하고 있다.
최소한의 개념은 있는 건지 몰라도 자신이 있을 때는 가만히 있지만, 아이작이 혼자 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예 대놓고 아이작과 스킨십을 하기 위해 시도하거나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 등.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나섰으니.
아무리 세실리가 여우짓을 해도, 아델리아가 알게 모르게 호감을 표현해도, 이외에 아이작에게 많은 여자가 달라붙어도.
마리는 짜증날지언정 너그럽게 이해해줬다. 어차피 자신이 뭐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위인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나 눈 앞의 하늘색 머리카락의 미녀, 히리야는 절대 곱게 봐줄 수가 없다.
미네르바 제국의 라이벌, 테르스 왕국의 왕족인 건 상관없다. 제일 중요한 건 히리야가 본인의 복수를 위해 아이작을 이용한다는 것.
아델리아와 히리야의 사이가 어떤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아이작을 통해 면밀히 체크한 지 오래다.
‘개년이.’
속마음처럼 마리의 입장에서 히리야는 개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끔 가다 세실리에게 여우년이라고 욕을 하고 있으나 그건 반쯤 장난에 가깝지, 히리야처럼 진심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때문에 평소 히리야를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 못해 최악이었는데 갑자기 따로 찾아온 상황이다.
일단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라는 입장이어서 순순히 따랐으나 만약 예상대로의 개소리를 한다면 가차없이 돌아설 예정이다.
“묻고 싶은 게 있다고요?”
“그래.”
“아이작과 연관된 거라면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왕족과의 만남이기에 예의를 차렸으나 말 속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있었다. 애초에 좋은 말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히리야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반응만 없다 뿐이지, 마리의 요구는 상큼하게 무시할 무례 정도는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 개인적인 궁금증을 위해서라도 물어봐야겠다.”
“하. 테르스 왕족은 상대가 거부한다는데도 무시하는 건가요?”
마음 같아서 가정 교육을 그따위로 받았냐고 욕을 박아버리고 싶으나 선을 넘는 행위기에 가까스로 억눌렀다.
저쪽에서 선을 넘는다고 해서 자신도 똑같이 되받아치면 명분만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정치에 있어서 명분이 제일 중요하나 힘 또한 명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저쪽에서 먼저 선빵을 걸었다고 해서 힘과 계급의 차이가 명확한 이상 입조심하는 편이 좋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 그렇다.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후우. 무슨 이야기인지나 들어보도록 할게요.”
마리는 짜증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수락했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라면 그냥 박차고 나올 생각이다.
히리야는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꺼내기 전, 일단 그녀의 마음을 살살 긁기로 정했다. 일단 빈틈을 만드는 게 중요했으니.
아이작의 약혼녀인만큼 남들보다 그에 대해서 아는 것들이 훨씬 많을 터. 그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아이작의 약혼녀인만큼 그가 뭘 좋아하는지 알겠지.”
“그래서요?”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나?”
그 질문을 듣자마자 마리는 한 쪽 눈을 치켜뜨며 생각했다.
‘쌍년이?’
마리의 마음 속에서 히리야는 개년에서 쌍년으로 격하되었다. 순간 울컥할 뻔했지만 간신히 추스렸다.
아이작은 몰라도 평소 마리와 접점이 거의 없던 히리야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사실상 첫번째다.
헌데 만나자마자 선전포고를 하는 것마냥 미사일을 발사해버리니 분노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불안감이 들었다. 히리야의 속셈이 당최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대체 무엇을 원하길래 약혼녀인 자신에게 저딴 도발성 가득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대답부터 해보자.
“…히리야 왕녀님. 공주님께서는 제가 아이작의 연인이자 약혼녀라는 걸 알고 계실 거예요.”
“안다.”
“그런데 어째서 제 약혼자에게 깊은 관심을 표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에게 굴욕감을 선사한 아델리아에게 어떻게든 복수하기 위해서지.
하지만 이건 히리야의 크나큰 치욕이었으니 입 밖으로 거론하는 건 최대한 삼가할 예정이다.
저쪽에서 대놓고 모욕을 주지 않는 이상 이쪽도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사릴 것이다.
그사이, 히리야는 불편한 기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마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저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잘생겨서.”
“…네?”
“내 취향이다. 그것밖에 말은 못 하겠군.”
무언가 납득이 가는 대답에 마리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히리야는 진심이다.
모두 알다시피 마리는 상대방의 진의를 본능적으로 깨닫을 수 있는, 일종의 독심술 비슷한 능력을 타고났다.
아이작에게 고백한 이유도 그의 거짓없는 언행 때문이었으며, 지금도 숨기는 건 있을지언정 사랑에 한해서 진심을 드러내는 중이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데 히리야가 꺼낸 말이 ‘진심’이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적어도 얼굴이 취향이라는 건 진심이라는 소리다.
‘진짜 쓸데없이 잘생겨 가지고는…’
납득이 간다는 게 더 짜증난다. 마리는 허탈한 표정을 지을 뻔한 걸 최대한 인내했다.
키가 170을 겨우 넘겼던 펭귄 시절에도 잘생겼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전혀 남자답지 않은 체격을 지닌 탓에 인기는 크게 없었다.
오직 붉은 머리카락과 금안이라는, 특색이 짙은 조합에만 관심을 표했을 뿐.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몸이 성장하고 미모가 제대로 폭발했다. 특히 신성력을 받고 풍기기 시작한 라일락 향기가 페로몬 역할까지 하는 바람에 인기가 더욱 상승한 건 덤.
천만다행히 그때는 아이작과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참이라 무던히 흘러갈 수 있었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히리야 같은 여학생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취향이라고요?”
“그래.”
“겨우 그것만?”
“배려심이 강한 성격도 마음에 들더군.”
돌아버리겠네. 마리는 한치의 거짓도 없는 히리야의 대답에 속으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역시 기사여도 일국의 왕녀인 것일까, 히리야는 교묘하게도 진실만 말하는 중이다.
표정에 미세한 반응이나 일체의 떨림조차 없었고, 말투 또한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이대로라면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을테지만, 마리는 지체없이 공격에 들어섰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 …”
이것만큼은 말하기 어려웠는지 히리야는 대답 대신 침묵으로 화답했다.
침묵은 곧 긍정의 의미. 마리는 무언의 긍정에 그럼 그렇지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
히리야가 아이작의 얼굴과 성격을 마음에 들어하는 건 맞지만, 이성적인 호감까지는 아닌 건 확실하다. 외모는 그저 부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히리야 왕녀님. 저는 아이작의 약혼녀로서, 그의 호위 기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왕녀님과 어떤 관계인지 알고요.”
“··· ···”
“헌데 그 알량한 보복을 위해 끼어드는 건··· 윗사람이 된 입장으로서 속이 좁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제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겠다, 마리는 뒤가 없는 팩트폭력을 날려버렸다. 히리야도 그 말을 듣자마자 눈매를 좁히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히리야에게 아델리아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발작 버튼이나 다름없지만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참아야 된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안하고 마리를 부른 것이니.
이에 그녀는 숨을 천천히 내쉰 뒤, 특유의 무뚝뚝한 화법으로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뭘 원하길래 저를 찾아오신 거죠? 전 약혼을 포기하라고 온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평소 가면을 쓰는 사교회를 싫어하는 마리지만 그렇다면 화술이 약한 건 절대 아니다. 지금도 간접적으로 까는 기술을 본다면 공작가 영애답다는 생각이 들 것이니라.
히리야도 하마터면 욱할 뻔했지만 겨우겨우 참았다. 아직 목표도 이루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화를 내면 안 되니까.
이윽고 그녀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퉁명스레 있는 마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질문을 날렸다.
“너는 네 약혼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이미 첫날밤까지 치렀는데요?”
명료히 되받아친 마리였으나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심히 자극적이었다. 이런 건 면역이 거의 없었는지 히리야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의도로 물은 게 아니다. 히리야는 헛기침을 통해 달아오르기 시작한 얼굴을 억눌렀다.
“···난 그런 걸 물은 게 아니다. 그 남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건지 물은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설마 저보다 아이작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런 거라면 조금 싱겁네요.”
“그러면···”
히리야는 마침 잘 됐다는 듯이, 하늘색 눈을 서슬퍼렇게 빛내며 단도직업적으로 물었다.
“그 남자가 제논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건 알고 있나?”
판도라의 상자를 과감하게 열어젖힌 히리야. 하지만···
“네?”
정작 마리는 무슨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예쁜 얼굴을 인정사정 없이 찌푸리더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개소리에요.”
적절한 카운터도 쳐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