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06
■ 305화. 떡밥 (4) □ ᓚᘏᗢ
이전까지 내 편지 하나로 세상이 난리법석을 떠는 건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보다 훨씬 큰 반응이 주를 이루었으니.
이제 슬슬 익숙해져야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럼에도 어깨에 짊어진 짐은 무거웠다. 나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 담력은 높지 않았으니.
게다가 폭풍의 눈이라고, 내 주변이 난리가 나도 정작 나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기 바빴다.
신문을 보며 재미있는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설마 이번에도 이왜진이 터졌나 등등. 이왜진이 터져도 황당하다는 감정만 들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폭풍의 눈에서 벗어나 직접 폭풍 속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야 된다.
내가 연재를 하면서 갈고 닦게 된 ‘제논’이라는 값어치. 이건 평범한 대문호가 아닌 신성의 영역에 다다랐다 해도 무방하다.
약간 과장을 보태서 내 말 한 마디로 나라 전체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사크란의 희생과 악마화 당시에는 헬리움.
세계수의 오염과 혼혈에는 알븐하임.
마지막으로 타락한 추기경은 세이비어.
위의 업적 아닌 업적들이 모두 제논 일대기를 통해 이룩한 것들인데, 그 업적을 세운 내 말 한 마디로 나라를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저 나라가 무슨무슨 짓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전후사정을 가리지 않고 돌격하겠지. 이번 테르스 왕국이 그런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폭풍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간다니 여러모로 무서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은 산책을 나가는 느낌이다.
분명 긴장해야 정상인데 긴장감은커녕 평온하기 그지 없다. 테르스 왕국에서 이미 정체를 밝혔기 때문일까.
언젠가 밝혀야 할 진실이기도 했고, 이이상 숨겼다간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착각을 가질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스택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마당인데 이게 거품이라는 게 들통난다면 그에 따른 역풍도 강해질 터.
무엇보다 테르스 왕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이상 내 정체가 탄로나는 건 시간 문제다.
카마르 백작이 찔러보기 식으로 신문에 알렸다만 이미 반쯤은 사실이었고, 아버지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한 상황이다.
이걸 수습하기 위해 일단 편지를 부친 것이다. 참고로 편지는 시리스가 아닌 가르츠를 통해 전송했다.
시리스는 아르웬과 나를 이어주는 전령이지, 진짜 심부름꾼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가르츠는 내가 무슨 부탁을 하던 간에 기꺼이 들어줄 테니 마음을 좀 더 편히 먹을 수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습을 숨겼던 제논. 정말로 정체를 드러내나?] [2년도 채 안 된 시간에 시대의 흐름을 바꾼 위인. 마이샬 영지에 정체를···]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이기 시작한 마이샬 영지.]난리도 아닌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소식은 단연코 각 국의 지도자들이 모인다는 소식이다.
일단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헬리움, 알븐하임, 벨루아, 마지막으로 몇몇 작은 나라들.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 그리고 마키나를 비롯한 애니머즈의 지도자는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을 내보냈다.
다만 이걸로 트집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대리인을 보냈다는 건 즉 그 사람이 다음 대 왕이 될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셈이니.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럴 때 꼭 나타나는 소식이 있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제논이 어째서 정체를 밝히는 건가?]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의 합작?] [만에 하나, 악마 숭배자들의 계획일 수도···]흔히 말하는 ‘음모론.’ 내가 아닌 제 3자가 보기에 지금 벌어진 상황은 음모론을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앞뒤 잘라먹은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셈인데 의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으니.
몇몇 나라의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을 보낸 것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아무리 치안이 좋은 영지라 해도, 만에 하나 악마 숭배자가 미친 척 하고 대규모 테러를 저지르면 세계는 혼란에 빠질 테니.
물론 루미너스뿐만 아니라 모라의 신전까지 있는 마당에 그런 확률은 0에 수렴하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게 존재한다.
전시회와 비교도 되지 않은 인사들이 한참 발전 중인 영지에 모이다보니 두려움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이비어 교국. 어둠이 아닌 ‘악’은 결코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 [케이트 추기경을 비롯한 수많은 성직자들이 마이샬 영지로 모이기 시작해···] [루미너스 교단뿐만 아니라 모라 교단도 동참. 어두운 곳은 우리가 더 잘 알아···]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음모론을 완전히 해소시키는 소식이 내 귀에 들어왔다.
루미너스 교단과 모라 교단이 힘을 합쳐 사고가 발발하지 않도록 힘을 쓰겠다는 이야기.
히르트 교단은 다른 두 교단과 달리 계급이 없을 뿐더러 정형화돼 있지 않아 아무 소식이 없었지만,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이렇듯 내 커밍 아웃 하나만으로 역사책에 실릴만한 대규모 이벤트가 성사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오히려 마음의 응어리를 속시원하게 풀 수 있다는 생각만 들어 편해진다.. 그나마 긴장되는 건 어떻게 밝힐지 정도?
이건 저택에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 바깥은 온갖 귀빈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저택은 조용···
“이 옷은 어떠니? 이거면 되지 않을까?”
“그냥 넉넉하게 흰색 티셔츠에 정장 바지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얘는 그게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거니! 앞으로 너를 볼 사람이 몇 명인데!”
···하진 않고 내 옷을 고르느라 매우 바빴다. 나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내 옷을 열심히 골라주는 여인들을 보며 쓰게 웃었다.
마리와 아델리아는 물론이고, 심지어 소식을 듣고 저택으로 달려온 세실리마저 옷을 고르고 있다.
나는 그냥 검소하게 가고 싶었지만 이들은 절대 안 된다며, 나라의 지도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그런 옷을 입었다간 무례라며 한사코 반대했다.
원래는 검소하게 차려입고 나갈 계획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안 좋은 인상을 준다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검소한 복장을 입고 나간다면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내가 지금까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그렇지,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한테도 미리미리 말을 했어야지! 게다가 적어도 최소한 한 달로 잡아놓아야 됐어.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어머니가 내 옷을 골라주면서 역정을 내셨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 심지어 아델리아마저 지극히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러한 반응들에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판단 하에 편지를 보냈는데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굳이 장소를 공연장으로 잡은 이유도, 연설처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정체를 간단히 밝힌 후 내가 하고픈 말만 할 계획이었다.
“이후의 계획은 잡았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질 텐데.”
다른 여자들처럼 내 옷을 맞춰주고 있던 마리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정체를 밝히고, 그것이 진실임이 드러난다면 지금과 비교조차 못 할 정도로 바빠지겠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호위 기사를 붙이는 건 기본이고 악마 숭배자들이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하물며 정치적인 공격도 서슴치 않고 들어오겠지. 이런 것들은 감안하고 있다.
“응. 우선은···”
나는 말을 흐렸다가 내 앞에서 열심히 옷을 맞춰주고 있는 마리를 바라봤다.
내가 빤히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일에 열중하는 중이다.
“너랑 결혼식부터 잡아야겠지?”
“···에?”
나의 발언이 꽤 충격적이었을까. 마리는 하던 일을 우뚝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움으로 크게 떠진 파란색 눈이 정말이지 귀여워서 꽉 껴안아 주고 싶다.
나는 깜짝 놀란 마리를 보며 약하게 웃었다가 다른 쪽을 쳐다봤다.
어머니는 내가 뭐라고 하던 말던 옷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아델리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딱 한 명, 세실리만큼은 예외다.
그녀는 내가 결혼식을 입에 담자 하던 행동을 우뚝 멈추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결코 쉬이 흘려들을 수 없던 사항인 모양이다.
“아카데미 졸업 후가 예정일이었잖니?”
어머니가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지나가듯이 질문하셨다. 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마리를 두고 대답했다.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힘들 것 같아서요. 히리야 왕녀처럼 누군가 비집고 들어올 수도 있고, 자칫하다간 마리도 위험해지잖아요. 차라리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한 집에 사는 게 훨씬 낫죠.”
“음. 그렇구나. 확실히 그게 낫긴 하겠다. 대신 곧바로 하는 것보다는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됐을 때 하렴. 반년 정도는 일이 복잡해질 테니 1년 후에 하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새겨들을게요.”
대답을 하면서 세실리를 힐긋거리는 건 잊지 않았다. 아까 전에 우뚝 멈췄지만 지금은 내 옷을 고르는 중이었다.
비록 평온한 척하고 있지만 아마 마음은 복잡하겠지. 여태 그랬던 것처럼 세실리는 나를 향한 욕심이 마리 못지 않게 강하다.
시시때때로 아이는 자기가 먼저 낳을거라며 도발했을 뿐더러 지난번에는 아예 폭탄발언까지 꺼냈으니.
그런 세실리인데 마리와 가장 먼저 결혼한다고 하니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이게 정상이라는 건 알고 있어도 그녀도 사람이니 섭섭해 하는 건 정상이다.
일부다처제인만큼 결혼식을 여러번 치르는 건 상관없다. 오히려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계약마냥 넘어가버리면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결혼식은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는 행위나 다름없다. 정략 결혼이라 한들 결혼식은 반드시 치러야 된다.
“마리는 좋지?”
“으, 응? 나, 나야 좋지! 헤헤. 결혼식. 결혼식.”
마리는 내가 확실하게 도장을 찍는 발언을 꺼내자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여기서 아이까지 낳자고 하면 아예 얼굴이 녹아버리겠네.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세실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딘가 우울해져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는요?”
“응? 어어?”
“누나는 결혼식을 언제 치르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결혼식 일정을 잡았다.
그에 세실리는 내가 그 말을 하자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행복감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지금 당장 하자! 지금 옷을 고르는 게 결혼식 날 입을 옷이지?”
“야! 너 또 그러지!”
“헤헤.”
장난기는 여기서도 멈추지 않구나. 나는 또다시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한 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또다시 아이는 자기가 먼저 낳을 거라니, 결혼식과 아이는 별개의 이야기라니 싸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과연 그들을 닮은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이젠 나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나저나 아이작.”
“네?”
“여기 있는 며느리 말고도 결혼식을 올려야 되는 며느리가 있니?”
“그건 왜요?”
“더 있으면 아카데미는 중퇴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단다. 거의 6개월에 한 번 결혼하는 셈인데 공부할 시간은 있겠니?”
“··· ···”
할 말이 없어졌다. 일단 최소로 잡아도 2명인데 여기에 더 끼게 되면 어머니의 말씀처럼 시간이 거의 사라진다.
“에휴. 또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거니? 아델.”
“네. 남작 부인.”
“이제부터 네가 1년 단위로 아이작의 스케줄을 짜렴. 안 그러면 또 이런 일이 발생 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너는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 없니? 첩이어도 결혼식은 올릴 수 있단다.”
“죄송하지만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지금도 충분하니까요.”
여러모로 바쁘디 바쁜 일과가 지나가고.
“무슨 말부터 하는 게 좋으려나?”
“그냥 네가 편한대로 해.”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