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16
■ 315화. 명예 (1) □ ᓚᘏᗢ
가끔씩 명예가 밥 먹여주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놈의 명예를 포기하지 못해 사단을 내거나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답답함과 별개로 명예가 밥 먹여준다는 건 사실이다. 명예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 마련이지만 대부분 이미지와 직결된다.
첫 인상이 오래 간다는 것처럼, 한 번 박힌 이미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전생의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만약 명예에 타격이 가해지고 이미지가 무너진다면 그 손실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당장 돈줄이 끊길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 사회적 매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중세에 가까운 이 세상이라 해도 다를 건 없다. 명예에 이것저것 부여해도 근본적으로 이미지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가끔 가다 명예보다 실리나 금전적인 이득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조차 자각하진 못 해도 기본적인 명예는 있다.
제아무리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더라도 ‘법’의 울타리 안에 사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실리고 뭐고 곧바로 감옥행이다.
사람들이 법을 충실하게 지키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위법을 저지르게 되면 주변인들이 당연히 손가락질할 것이며, 자연스레 이미지가 실추하게 되니.
이건 범죄가 아니라 도의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해도 마찬가지. 귀족들이 정쟁에 패배하는 이유가 권력도 권력이지만 본인의 명예가 실추될만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아버지와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남작 출신이지만 제국에서 대놓고 지원을 해줄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고, 나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만약 아버지가 붉은 사자가 아니라 평범한 기사였고, 내가 제논이 아니었더라면 평범하디 평범한 귀족가로 남았겠지. 이처럼 명예로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이렇듯 명예는 사회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뿐더러 어찌 보면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에게 있어서 명예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건 단순 비유가 아니라 사실인 게, 군인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명예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 천지라지만 군인처럼 대놓고 목숨을 버리면서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군인을 모욕하면 강제로 입대시키는 미네르바 제국만의 독특한 법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네 놈이 함부로 까내릴 명예가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명예를 잠깐 내려놓을 때도 있는 법이다. 사실 전생의 역사를 탐구한 나로서는 프리드리히는 약소한 편이다.
명예를 끝까지 고수한다면 무슨 일이 터지는지 아주 적절한 예시가 떡하니 존재한다. 많이 우려먹는 것 같지만 바로 전쟁이다.
전생에서는 명예를 포기하지 못 하던 유럽으로 인해 세계 구급 전쟁이 2번이나 터졌으며, 환생한 이 세상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종족 전쟁이 발발했다.
이처럼 명예는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하며 쟁취하기 위해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럴 때 보면 프리드리히의 선택이 옳았다고 볼 수 있겠지. 만약 그가 끝까지 명예를 놓지 않았다면, 제 2의 제이로스 혁명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프리드리히 국왕이 직접 나서서 평민 대표단들에게 본인의 과오를 하나 하나 밝히다.] [과거의 혈기를 이기지 못해 마리아 왕비가 아닌 다른 여자와 정분을 나누어······] [그 아이를 받아들였지만 가족으로 받지는 않았다. 과거부터 홀대와 무시를······]마리아 왕비의 설득이 제대로 통했는지 프리드리히는 본인의 잘못에 대해 전부 밝혔다.
신문으로 보이는 소식만 하더라도 이정도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하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이 사태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 눈치채겠지.
이때문에 설마 우려했던대로 아델리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곧바로 응징에 나설 것이다.
[카마르 백작. 등 떠밀듯이 책임을 질 생각이라면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와라. 우리 테르스 왕국은 앞으로 다른 제도를 찾아야 된다.] [우리 테르스 왕국의 백성들은 정신이 깨어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나설 줄 알며, 한데 뭉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과연 현재의 제도가 우리 테르스 왕국에 어울리는가? 하다못해 알븐하임처럼 혈연이 아닌 최소한의 선거를 통해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이 뒤로 카마르 백작의 숨겨져 있던 본심이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투표’를 입에 담았다.
알븐하임조차 귀족이 아닌 평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평민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말을 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평민 대표단에게 주어지는 거겠지. 민주주의에 가까운 것 같으나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래도 파격적인 발언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칫하다가 혁명이 터질 뻔했으니 명분조차 각이 예쁘게 잡혀있다.
귀족들은 혁명이 두려워서라도 할 수밖에 없고, 평민들은 본인들에게도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신성로마제국 특유의 선출제도와 공화국의 선거권이 두루 섞여 있는 기이한 형태를 띄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까지.
역시 문화의 나라답다고 해야 될지, 이번 일을 양분 삼아 한층 더 발전할 기미가 보인다.
물론 사태가 완벽하게 종결되었다는 건 아니다. 프리드리히의 고백 이후로 쏟아지는 비난들은 스스로 감수해야 됐으니.
[프리드리히 국왕도 로맨티스트가 아니라 평범한 왕에 불과했다.] [사실상 제일 큰 피해자는 마리아 왕비.]다만 평범한 귀족도 아니고 왕이라 그런지 위처럼 담백한 비판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판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용기가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평소 프리드리히 국왕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 그런지 평민 대표단도 고작 그런 걸로?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잘못은 잘못인데 그게 부끄러워서 혁명이 일어날 뻔했으니 여러모로 허탈할 수밖에. 왕이 아랫도리를 잘 간수하지 못해 발발한 일 치고는 쓸데없이 판이 커져 버렸다.
이 탓에 화살은 자연스레 제논, 그러니까 나에게 쏘아질 수밖에 없었다. 프리드리히 국왕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것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여기서는 내가 친절하게 편지 한 통을 날려줬다.
[프리드리히 국왕이 언급한 숨겨진 자식은 현재 저의 충실한 전속 메이드로 근무하는 중입니다. 그리고······(중략)······하여, 현재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저의 옹졸한 복수심으로 인해 피해를 볼 뻔한 테르스 왕국민에게 사죄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나의 편지를 통해 모든 전말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나의 명예가 깎일 수도 있는 선택이지만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걱정하던 것과 달리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었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며, 감정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게다가 욕은 이미 테르스 왕가가 먹을대로 먹는 중이라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그럼 그전까지 뭐라고 생각한 거야?’
허구한 날 글만 쓰는 기계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래도 어찌 어찌 잘 넘어간 것 같아 다행이다.
제논 일대기도 예정대로 발매한다고 하니 테르스 왕국민들도 두 팔 활짝 펼치며 열광했다. 이렇듯 긴 시간동안 흘러간 사건에 종지부가 찍으려던 찰나······
“뭐? 아버지······ 아니, 프리드리히 국왕이 왕위에서 물러났다고?”
“응. 대신 마리아 왕비님께서 왕위를 이어받는데. 앞으로 마리아 여왕님이라고 불러야겠네.”
“그런 일이······”
놀랍게도, 프리드리히가 왕위에서 물러나 마리아에게 양위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다.
그 소식에 아델리아는 물론, 나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명예를 내려놓는 건 예상했어도 왕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왕위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한 나라의 지도자다. 특히 군주제를 표방하고 있는 테르스 왕국으로서 왕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런데 그 왕위를 왕비에게 양위했다는 건 분명 범상치 않은 일.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신문을 바라보다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카마르 백작이 견제하지 못 하도록 막기 위해선가?’
현재 카마르 백작은 민주화 아닌 민주화를 채택하고 있는데, 만약 실제로 이행된다면 다음 대 군주는 누가 보아도 카마르 백작이 올라갈 것이다.
또한 프리드리히 국왕과 아델리아를 직접적으로 괴롭힌 몇몇 왕족과 달리 마리아 왕비는 엄연히 ‘피해자’다.
하물며 마리아 왕비는 아델리아를 직접적으로 괴롭히기는커녕 남몰래 후원해줬다.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자식을 지원해준 것만 해도 그녀의 대인배적 기질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 왕비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될시 현재 상황을 타파할 수 있겠지만, 원래 사람은 권력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과연 무엇 때문에 프리드리히가 왕위를 내려놓은 것일까. 신문으로 소식을 전달받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다.
“아바마마께서 어마마마에게 왕위를 승계했다고요?”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라라가 쿠키를 우물거리며 끼어들었다. 참고로 쿠키는 아델리아가 직접 구운 것이다.
처음 구웠을 때는 무슨 석탄마냥 다 태웠지만 실력이 점차 늘어나는 중이다. 오늘은 소금을 많이 넣은 탓에 짜다는 것이 함정.
나는 불쑥 끼어든 라라를 한 번 힐긋거렸다가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줬다.
“응. 그렇다네.”
“이상하다. 어째서 라오스 오라버니가 아니라 어마마마에게 준 거지? 냠냠.”
쿠키가 입에 맞는지 맛있게 먹으며 의문을 표하는 라라. 그녀의 말마따나 프리드리히는 라오스도 아니고 마리아에게 양위했다는 게 가장 큰 의문점이다.
마리아 왕비의 출신 가문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귀족가지만, 이제부터 여왕이 되었으니 최소 백작 이상급으로 성장할 터.
더 나아가 말은 쉽지 수많은 반발에 부딪힐텐데 프리드리히 국왕은 속전속결로 왕위를 넘겨줬다. 이를 보아 내부적인 회의를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도통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프리드리히의 행동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 오빠. 이것 좀 보세요.”
“응? 뭐가?”
“여기 신문 한 번 읽어보세요.”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라라가 손가락으로 어느 부분을 가리켰다. 이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뭔 지랄을 하는 거지. 이게 음모론인가 뭔가 하는 건가. 나는 라라가 지목한 신문기사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제는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 포기하는 게 편하다.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라지.
“오빠는 정말 이걸 위해서······”
“전혀 아니야. 난 그냥 아델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 뿐이지,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럼 말고요.”
전혀 믿는 얼굴이 아니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괜히 일일이 해명했다가 나만 피곤하고 믿어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쿠키만 야금야금 먹는 라라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아델리아가 맞은편에서 다소곳이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빙긋 웃어주니 아델리아도 부드럽게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델 누나.”
“네. 아이작 도련님.”
“이제 괜찮지?”
내 물음에 아델리아가 대답했다.
“행복합니다. 정말로.”
“그거면 됐어.”
아델리아가 미련을 완전히 떨쳐놓았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했던 걸까, 과자만 우물거리던 라라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래서 오빠랑 언니 사이에 아기는 언제 생겨?”
“··· ···”
“··· ···”
“원래 같은 침대에서 자면 아기가 생기는 거 아니었어?”
이 요망한 애가.
* * *
프리드리히 국왕이 마리아 왕비에게 왕위를 넘겨준지 며칠이 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드리히의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번에는 누가 온다고요?”
“프리드리히 국······ 서가 히리야 왕녀와 함께 찾아온다는 모양이구나. 아마 사과를 하러 오는 듯해.”
프리드리히와 히리야가 우리 저택으로 찾아오기로 예정되었다.
“라오스 왕태자는요?”
“그건 잘 모르겠구나.”
라오스 왕태자를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