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37
■ 336화. 합법 스토킹 (3) □ ᓚᘏᗢ
핵융합 직전이나 다름 없는 체리와 케이트의 만남.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만약 이대로 가다간 둘이서 흉계를 꾸미고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
다행히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두 사람의 광기가 무섭다고 한들, 그 광기가 나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다.
케이트는 손만 잡아도 발정이 나지만 그걸 제외하면 직업 정신이 투철하고, 체리는 두말 할 것도 없다. 자존심이 바닥이라 내 곁에 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짓을 저지르게 된다면 다른 여자들이 직접 벌을 내릴 테니 안심할 수 있다.
“체리는 어떻게 아이작 님과 인연을 맺게 된 거예요? 듣자하니 메리가 당신인 것 같은데.”
“그전에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였어요. 그리고 우연히 편지 안에 선배님의 머리카락이 들어있어서······ 게다가 필기체도 똑같았고.”
“아. 그러면 눈치챌만 했겠네요.”
아니야. 납득하지 마. 저거 내가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일부러 가까이 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케이트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사고 방식이다.
“추기경 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나요?”
“편하게 케이트 씨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루미너스 님께서 직접 신탁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여 만나게 되었죠.”
“그렇군요······ 그러면 케이트 씨도 아이작 님을 좋아하시나요?”
“네. 루미너스 님처럼, 이 세상과 빛과 희망을 퍼뜨리고 계신 아이작 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분명 듣기 좋은 고백인데 그걸 말한 사람이 케이트이다 보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은연 중에 포함된 광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순수한 건 맞는데 다른 의미의 순수함이라서 살짝 불안하다. 저 순백의 광기로 타락한 추기경을 처단했지.
그사이, 체리는 케이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어두운 눈동자는 똑같았지만 진한 아쉬움이 깃든 것 같다.
제아무리 자존감이 바닥인 그녀여도 질투심이 없는 건 아닐 터.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는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자기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에 그녀의 기운을 복돋아 주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케이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쩌면 저도 체리 씨와 비슷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네요. 저도 아이작 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선택······ 이요?”
“네. 선택. 아이작 님의 선택을 받는다면 씨앗을······”
“거기까지 하죠.”
돌고 돌아 씨앗 주제가 나오려고 하자 곧바로 제지했다. 케이트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내가 사이비 교주가 되는 느낌이다.
나는 핵융합 직전인 케이트와 체리의 조합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옆을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아델리아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마리가 이 상황을 목격했다면 복장이 터졌겠지.
“누나.”
“으응? 왜?”
“······아냐.”
차마 재미있냐고 묻기에도 애매하다. 아델리아는 마리처럼 시시각각 위치를 위협받는 자리가 아니라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는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아델리아가 제일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랑에 차별을 둘 사람도 아닌데다가 과거의 속박마저 풀어줬으니.
나는 웃음을 참느라 코까지 먹는 그녀를 짜디 짠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얘기는 대충 끝난 것 같으니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볼 생각이다.
“그럼 체리. 앞으로도 이 생활을 꾸준히 유지할 거야?”
“네. 앞으로도 꾹 선배님의 뒤를 따라다닐 거예요.”
당당하게 스토킹을 하겠다고 속마음을 밝히는 체리. 순간적으로 사고가 굳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 스토킹은 힘들 것이다. 이건 범죄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녀의 신변과 관련된 문제다.
정체를 밝히기 전이라면 몰라도 현재는 악마 숭배자가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위협을 가할지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 실질적인 위협이 없어서 크게 와닿지는 않으나, 타락한 추기경도 존재했으니 위험은 남아있다.
“음······ 솔직히 말해도 될까?”
“네.”
“아마 앞으로 내 뒤를 밟는 건 힘들 거야.”
“네······?”
솔직담백하게 말하자 체리에게서 격한 반응이 나왔다. 눈이 커짐과 동시에 작은 입이 살짝 벌어졌으니.
그와 동시에 눈이 심연마냥 더 깊고 어둡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지체했다가 큰일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나는 제논이니까. 악마 숭배자들에게 큰 피해를 준 제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선배님과 가깝다는 이유로 저도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뚫기는 어려우니 주변부터 공략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견을 드러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제일 높다.
따로 작문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글을 쓴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체리는 꽤 똑똑한 편이다.
“맞아. 그러니 차라리 내 뒤를 밟는 것보다는 아예 내 옆에 오는 게 나을 거야.”
“······제가 선배님의 인생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네요?”
“어?”
이게 아닌데. 나는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체리의 눈빛을 보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딴에는 그냥 내 곁에 있으라고 부탁하는 건데, 체리의 자존감을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
아마 체리는 이렇게 생각하겠지. 만약 자기가 악마 숭배자에게 당한다면, 이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도 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방해물에 불과하며,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사람이라 문제다. 이에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왜 내 인생에 방해가 돼? 오히려 그 반대인데.”
“반대라고요?”
“응. 나도 네 글의 팬이거든. 요즘 내가 통 바빠서 그렇지, 네가 언제 글을 다 쓰는지 기대하고 있어.”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나는 취향만 맞는다면 웬만해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체리의 처녀작,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내 취향에 딱 맞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만약 지금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꾸준히 도와줬겠지. 변명 같지만 정말로 바빠서 그녀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 뿐이다.
“헤헤······”
내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는지 체리가 베시시 웃었다. 전처럼 섬뜩한 미소가 아닌, 눈매마저 곱게 휘어진 화사한 미소다.
이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건 몰라도 꿈, 그러니까 소설에 한해서는 자존감이 조금이나마 상승하는 그녀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나를 스토킹하던 히리야의 뒤를 밟았음에도 전혀 들키지 않았던 그녀지만, 위험한 건 위험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된다는 소리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체리.”
“네.”
“정말로 내 곁에 올 생각은 없어?”
그래서 물었다.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 차라리 내 곁에 두는 편이 훨씬 안전할 터.
허나 체리는 본인의 생각이 확고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요. 저 따위가 감히 끼어들 수도 없고, 제가 끼어들 자리도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럼 내가 강제로 옆에 둔다면?”
“어······?”
이 부분은 예상치 못 했는지 체리가 느릿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의 우울한 표정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동시에 새하얗던 두 뺨이 은은하게 붉어지는 걸 보니, 내 말을 듣고나서 핑크빛 상상이라도 한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빈틈이 발생하자 지체없이 돌파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가 마음을 추스린다면 많이 힘들어진다.
“아까 전에 네가 말했지? 내가 말하는대로 할 거라고. 몸을 원하면 몸을 줄 것이고, 노예가 될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 그렇지만 제가······”
“네가 위험해지는 게 싫어서라도 너는 내 곁에 둬야겠어. 이래도 거부할 거야?”
“··· ···”
내가 다소 강압적으로 나서자 체리는 우물쭈물하며 고민에 빠졌다. 내 곁에 서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내 부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쯤이면 심한 내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체리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마리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겠지.’
내가 진짜 망나니도 아니고 체리와 하룻밤을 치르고 싶은 게 아니다. 오로지 그녀의 신변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에게 호감이 있는 그녀이니 어쩌면 이어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당장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그리하여 체리의 고민이 얼마나 길어졌을까.
“······죄송해요.”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힘들었는지, 체리가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본인도 아쉽긴 마찬가지인지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아직은······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아직은 아니라고?”
“네······ 대신 선배님께 피해를 줄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전 그다지 눈에 띄는 아이도 아니니까······”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 아델리아의 중얼거림이다. 나 또한 그녀의 심정에 공감한다.
벛꽃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어둡기 가라앉은 눈빛이 마이너스 요소를 주지만 전반적으로 체리는 화사함을 풍기는 미녀다.
더군다나 지금 교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몸매로 인해 남자에게는 욕망을, 여자에게는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내 빨간 머리가 멀리서도 눈에 띄는 것처럼,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조합이다.
특히 그녀의 뒷배경은 철학 가문으로 유명한 로즈베리 백작가. 그녀의 배경 때문이라 말을 거는 사람이 있을텐데 기묘한 일이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니, 바닥난 자존감으로 인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저······ 체리? 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 자신이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라고?”
“네······ 선배님을 제외하면 저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없고, 말을 거는 사람들조차 없었어요.”
“조별 과제는? 조별 과제가 있을텐데?”
“이름만 넣어주고 저한테는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았는데요?”
“······뭐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체리 정도 되는 미녀, 그것도 세실리만큼 좋은 미녀인데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니.
이건 나뿐만 아니라 아델리아도 비슷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찌하여 체리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되었는가.
어쨌거나 이 부분은 제쳐두고, 우선 내 생각부터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알겠어. 그대신 수상하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나에게 말해줘. 그래야만 너를 지켜줄 수 있을테니까. 알겠지?”
“네.”
“아참.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혹시 레티시 백작과는 어떻게 됐는지 알려줄 수 있어?”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는데요? 다만 철학서적이 아니라 다른 서적도 읽어보시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레티시 백작에게 가했던 팩트폭력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듯했다.
“원고는 지금 숙소에 있지?”
“네. 가져올까요?”
“아냐. 천천히 가져와도 돼. 어차피 내일도 내 뒤를 따라다닐 거잖아?”
“네.”
원래도 그랬지만 부정하지도 않는구나. 이건 다른 사람에게도 언질해놓아야겠다.
벛꽃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여자는 신고하지 말라고. 그녀는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합법 스토킹이라니 조금 웃긴 이야기이긴 해도 그녀가 성장할 때까지는 조용히 기다려줄 생각이다.
“이야기는 대충 여기서 끝내고······ 케이트 씨. 혹시 체리에게 얘기할 거라도 있나요? 씨앗 이야기 빼고요.”
“없습니다.”
“아델 누나도 없지?”
“응.”
“그러면 여기서 끝내······ 는 게 아니라 체리.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레오나를 신고한 게 혹시 너야?”
지난번 레오나가 내 앞까지 끌려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가 도통 찾아오지 않자 주변을 서성거리다 신고를 받았다.
보통 같으면 즉시 처벌을 내렸을 테지만 다행히 첫번째로 신고 받은 사람이어서 내 앞까지 끌려온 것이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루시아와의 대담까지 끝마친 거고.
그러니 신고자가 체리라는 건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설령 신고자라 해도 딱히 혼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체리와 레오나는 안면도 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훗날 시간을 내어 차근차근 얼굴을 익힐 예정이다.
“레오나라면······ 그 밤색 머리 여자요?”
“맞아.”
“그 사람은 아니에요. 선배님과 안면을 튼 사람이라서 넘어갔죠.”
“그래?”
그럼 다른 사람이 수상함을 느껴서 신고한 건가. 딱히 신경 쓸 부분은 아니라서 쉬이 넘어갔다.
“저······ 선배님.”
“응?”
“한 가지······ 딱 한 가지 부탁만 해도 될까요?”
이제 슬슬 이야기를 끝내려던 찰나, 체리가 우물쭈물거리며 부탁을 건넸다. 부끄러움이 가득 담긴 표정은 덤이다.
처음에 의아해진 것도 잠시, 체리의 부탁이라는 말에 금방 수락했다. 평소 나에게 부탁을 한 적이 거의 없던 그녀라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윽고 체리가 망설이며 쉬이 입을 못 떼고 있을 때, 그녀의 입이 열렸다.
“머리카락······”
“응?”
“머리카락 한 올만······ 부탁해도 될까요?”
“··· ···”
“아니면 손톱이라도······”
역시 체리는 체리구나. 전혀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 혹시 가능하다면 저도 주시면 좋겠습니다.”
“케이트 씨는 또 왜요?”
“부적으로 만드려고요.”
“··· ···”
여러 의미로 끔찍한 혼종들이다. 어째 죄다 나사가 빠져있지.
“체리 씨. 혹시 아이작 님과 손을 잡으신 적이 있나요?”
“네. 정말 부드럽고 좋았어요.”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혹시 이후로 아랫배가 울린다거나 느낌이 야릇해지단거나 그러지 않나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그만해. 이 사람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