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48
■ 347화. 선물 (2) □ ᓚᘏᗢ
아카데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당시는 영웅이 아니라 유명인이 왔다는 반응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엘로디아로 향하는 길은 개선장군이 받는 환대와 다름없었다. 사방에는 내 이름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화사한 흰색 꽃잎이 하늘에서 흩뿌려졌으니.
나는 그 환대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얼마나 큰 위업을 달성했는지 늦게나마 인지한지 오래다.
비록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이라 할지라도, 악마 숭배자의 음모로부터 세상을 구원했다. 게다가 몇몇 나라가 비극적으로 몰락할 뻔한 걸 미연에 방지했다.
전생의 마르크스처럼 책이 세상을 바꾼 경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세상을 구한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영웅이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열렬한 환대를 받는 건 내 성정과 맞지 않았다. 전생에 뿌리 깊게 새겨진 성향 때문인지, 나는 주목 받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작품이 주목 받는 건 좋아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목을 끄는 건 껄끄러워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이유 필요없이 전부 내 성격이다.
물론 정체를 밝히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물론 이런 환대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냥 내 성격상 그게 싫을 뿐이지.
이에 용기를 내어 손을 흔들어주면 더 열렬한 반응이 나와 내가 다 부끄러웠다.
‘헬리움에 가면 난리도 아니겠네.’
알븐하임이 이 정도인데 헬리움은 도대체 얼마나 큰 환대를 받게 될까. 이번에 알븐하임을 ‘공식적으로’ 방문했으니 머지않아 헬리움에서도 초대를 할 터.
특히 마족은 이것보다 더 격렬할 것이, 내가 예언자로 취급되기 전부터 그들은 나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알븐하임처럼 국가가 은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종족 차원에서 나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 따지고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족은 과장을 보태지 않고 신앙 수준일테니.
“세계를 구한 영웅을 위해! 경례!”
척!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엘로디아의 대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게 경례를 받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양이 각인된 갑옷과 등 뒤에는 방패를, 검을 양손으로 들고 있는 기사들.
그런 그들이 나에게 절도있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얼굴이 또다시 달아올랐다.
“알븐하임의 수호군입니다. 전사들 중에서 실력이 출중한 인재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죠.”
“그렇······ 군요.”
베아트리스의 설명에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국으로 치자면 네이비 기사단이 직접 마중하러 나온 셈이다.
여러모로 나를 맞이하기 위해 알븐하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전사장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걸어올 때 받은 환대, 지금의 기사단까지.
이런 수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위안 정도는 줘도 될 것 같다. 나는 길을 터준 수호군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시네요.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우. 놀래라. 귀 떨어질 뻔했네.
남녀가 두루 섞인 혼성임에도 그들의 감사는 고막을 찌르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뒤이어 우리가 대문을 지나치자, 수호군이 또다시 인사했으나 가볍게 흘려들었다. 지금은 엘로디아의 모습을 확인해야 했으니.
“오······”
“어때요. 멋지지 않습니까?”
하스의 자부심 가득한 말처럼, 알븐하임의 정치 기관 엘로디아는 그 명성에 맞는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알븐하임은 종족 전쟁 전까지만 해도 공화제를 채택하던 나라. 신들의 보살핌 아래에 지배자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종족이다.
때문에 엘로디아는 타국의 왕궁과 달리 신전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다. 올림푸스 신전을 기본 골자로 두고 로마식 건축을 덧붙인 형태.
또한 외양처럼 신전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신이 지켜보는 곳에서 감히 허튼 짓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근데 유일하게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침소였던가?’
나는 여태까지 보았던 왕궁과 또다른 위엄을 뿜어내는 엘로디아를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갔다.
역시 엘프여서 그런지, 분명 사람의 손으로 쌓아올린 건물인데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목들은 마치 성벽처럼 건물을 둘러싸고, 엘로디아 뒤에는 세계수가 굳건히 버티는 중이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있을 때, 내 귀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어왔다.
“드디어 왔구나.”
“응?”
정말 익숙한 목소리에 세계수를 쳐다보다 말고 앞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한 엘프 여인을 보며 눈을 느릿느릿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아르웬?”
아르웬이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만 본다면 반갑게 맞이했겠지만 평소의 그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복장부터. 그녀가 본인의 강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옷을 선호하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다.
지금 입은 옷도 마찬가지다. 흰색 계통의 슬림 드레스. 몸에 짝 달라붙어 몸매가 정말 좋지 않은 이상 소화하기 어려운 복장.
무엇보다 흔히 옆트임이라 불리는, 한 쪽이 시원하게 노출되어 뽀얀 허벅지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가녀린 허리와 아래로 이어지는 골반 라인으로 하여금 그녀답지 않게 관능적이었다.
분명 복장 자체는 수수하고 노출된 건 한 쪽 허벅지밖에 없는데 섹시함을 풍기는 분위기.
게다가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시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께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미묘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베아트리스와 하스 또한 정중하게 물러났다. 지금은 물러나겠으나 아마 주변을 배회하면서 경호하고 있을 터.
그래도 나와 아르웬만 남게 되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달리 힘을 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르웬은 그런 내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시선을 회피하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미묘하게 붉어진 얼굴은 덤.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이 말을 꺼내기에는 충분했다.
“정말 예쁘네. 원래도 예뻤지만 지금이 더 예뻐.”
“우으…”
진심이 담긴 칭찬에 아르웬이 말도 못 꺼내며 수줍어한다. 이제껏 몰랐지만, 드레스가 그녀의 연한 속살을 약하게나마 비추고 있다.
대체 무슨 재질로 만들었길래 시스루마냥 안쪽이 비춰지는 걸까. 천만다행히 중요 부위는 다 가렸으나 그걸 제외해도 아찔했다.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걸어가 코앞까지 도달했다. 아르웬은 내가 바로 앞까지 와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뒤이어 우리 사이에 조용한 기류가 흐를 때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아르웬.
이어서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와 얼굴을 똑바로 마주했다. 촉촉하게 젖은 은회색 눈동자에는 진한 애정이 들어있었다.
‘망나니가 되기로 결심은 했지만…’
아르웬을 받아들인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쉬웠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부족하지 않을 사랑을 돌려주는 것.
아니. 그 이상의 사랑으로 보답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 이건 마음이 아니라 육체 관계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아르웬은 어떤 형식의 사랑으로 보답해야 될까.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델리아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세실리도 이와 비슷하다.
마리와 레오나는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사랑을 퍼부어주면 된다. 그렇다면 아르웬은…
‘아니지.’
지금 이걸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일단 그녀와 알븐하임이 준비해둔 ‘선물’부터 알아보자.
이에 아르웬의 뺨에 갖다 댄 손을 슬며시 떼었다. 그러자 아르웬이 아… 하며 아쉬운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나에게 줄 선물이라는 게 뭐야?”
“서, 선물? 아, 아. 그렇지.”
머리까지 뜨거워져서 그럴까. 아르웬은 선물이라는 내 말에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알븐하임의 국민들에게는 뚝 부러지고 강단 있는 여왕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사랑에 빠진 바보가 되어버린다.
이 두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녀를 귀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난 못 할 것 같다.
“흠! 흠! 선물은 엘로디아 안에 준비돼 있다. 그대가 원한다면 곧바로 줄 수 있지만…”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입을 꾹 다문 아르웬. 동시에 새하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지기 시작했다.
대충 무슨 선물인지 예측이 가능해 미약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대낮부터 선물을 받기에는 너무 급진적인데다가 무드도 없다.
적어도 데이트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나는 입을 열지 못 하는 그녀에게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나중에 받을게. 당장 급한 건 아니잖아?”
“그, 그렇지. 급한 건 아니니…”
“그러면…”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툭- 툭- 건드리며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성지를 먼저 거치고 세계수로 가고 싶었으나, 그러면 시간이 훌쩍 지날 것이다.
왜냐하면 성지에 도착하고나서 책만 읽을 것 같거든. 아르웬도 나처럼 책벌레다보니 곁에서 독서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지를 마음껏 오갈 수 있어서 대부분의 책은 읽었을테지만, 이쪽에도 준비한 ‘선물’이 있다.
만약을 대비하여 시리스에게 맡긴 거지만 조금 있다가 아르웬에게 줄 예정이다.
그러면 남은 곳은 단 하나. 나는 약간의 고민을 거치고 아르웬에게 부탁했다.
“세계수까지 인도해줄 수 있어?”
“세계수… 말이냐?”
“응.”
세계수로 향하는 것. 아르웬은 내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자 건물 뒤로 보이는 세계수. 세계수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르웬조차 사제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
물론 내 업적이 업적이라 허락을 받는 건 쉽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그, 그게… 조금 힘들 것 같구나.”
“응? 왜? 나도 안 되는 거야?”
“그대라면 되겠지. 그러나 세계수는 히르트 님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성목. 다시 말해 루미너스 님이나 모라 님이 아닌, 히르트 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느니라.”
그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어째서 아르웬이 곤란해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쓰게 웃으며 설명해줬다.
“히르트 님은 자연의 여신. 그리고 자연은 이 세상 그 자체지. 다른 분들과 달리 히르트 님에게 직접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느니라.”
“준비?”
“혹시 그대는 신성력을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열이 펄펄 끓는 성직자들을 본 적이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
알다마다. 케이트가 그 일을 겪었고, 상황이 다르다지만 최근에 내가 그런 경험을 겪었다.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아르웬은 이야기가 쉽겠다면서 곧바로 말을 이었다.
“히르트 님은 자연의 여신이기에 신탁조차 자연현상으로 화답하지. 그러나 신탁을 직접 내린다면 그 성직자는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신성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래. 그건 우리 엘프라 해도 힘든 일이지. 때문에 히르트 님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 간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니라. 당장은 힘들다는 거지.”
“흠······”
그런 사정이 숨어있을 줄이야. 그러나 히르트의 위치를 고려하자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쌍둥이 남매, 루미너스와 모라의 어머니이자 자연 그 자체를 대변하는 신. 이 세상의 주신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존재다.
아쉽긴 해도 사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천천히 가도 될 것이다.
“알았어. 그러면······”
그때였다.
후우우웅!
느닷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나의 붉은 머리카락과 아르웬의 은회색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푸드득!
“짹! 짹짹! 짹!”
“까아악! 까악!”
그와 동시에 엘로디아를 에워싸고 있던 나무에서 수많은 새들이 힘차게 비상했다. 나는 그 새들이 향하는 곳을 멀거니 바라봤다.
새들이 힘찬 날개짓을 통해 날아가는 장소는 정확히 엘로디아의 뒤쪽, 세계수.
또한 바람이 부는 방향과, 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이 일치했다. 바람 속에는 잎사귀가 섞여 그 방향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듯이, ‘자연’이 나를 세계수 쪽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
우리 둘은 한동안 멀리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아르웬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본인이 보고 있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얼굴.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허락이 떨어진 것 같은데?”
“··· ···”
“가도 되지 않을까?”
아르웬은 내 물음에 홀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작게 중얼거린다.
“자연이······”
“응?”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연이······ 곧바로 답해준 경우는······ 없는데······”
“··· ···”
신화를 포함해서, 기도나 주술 없이 자연(히르트)이 답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