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56
■ 355화. 천기누설 (3) □ ᓚᘏᗢ
인생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때를 꼽자면, 나는 당연히 제논 일대기 흥행과 이왜진일 것이다.
취미로 발간했던 제논 일대기가 예상치 못한 흥행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마족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그리고 세계수 뿌리 오염을 시작으로 속속 터지기 시작한 이왜진들. 그때는 당황도 당황이지만 황당한 감정도 있었다.
그러니 순수한 의미의 당황은 제논 일대기의 흥행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로서 추가될 것 같다.
자연의 여신, 히르트에게 선물 받은 세계수의 씨앗이 반으로 갈라졌다면 믿을 것인가?
아니. 믿는 건 둘째치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히르트에게 받은 선물을 소홀히 관리했다며 천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볼 것인가.
지금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그런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 ···”
“··· ···”
나와 아르웬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세계수의 씨앗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받았을 때부터 찬란한 황금빛을 발산하던 씨앗.
뽀각! 하며 불길한 소음을 내던 씨앗에 변화가 발생했다. 듣기만 한다면 반으로 완전히 쪼개진 것 같은 소음.
우려대로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 건 아니고, 살짝 틈이 벌어진 정도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대형 사고이며 천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인데 그 틈에서 아주 귀여운 싹이 돋아난다면 어떨까.
자연의 색을 상징하는 초록빛의 싹. 나와 아르웬은 그 싹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통 씨앗에서 싹이 트기 위해서는 땅에 심어야 된다. 그 땅에 심은 뒤 물을 뿌리고, 그 물과 땅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싹이 나오는 것이다.
헌데 이 황금색 코코넛······ 아니, 씨앗은 그런 것도 없이 싹을 틔웠다. 물을 뿌리기는커녕 땅에 심지 않았는데도!
판타지 세상이라지만 이런 기본적인 법칙마저 거스르는가 싶었지만, 아르웬의 표정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듯싶다.
그녀도 당최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아마 나처럼 온갖 번민이란 번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르웬?”
“··· ···”
“아르웬?”
“어, 어?”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당황하며 대답하는 그녀. 나는 수줍게 피어난 초록색 새싹을 보면서 물었다.
“나 없는 동안 뭐 하고 있었어?”
“그······ 안고만 있었다. 어느 식물이든 간에 추위에는 약할 테니까······”
“그 외에는?”
“그대여. 난 아직 200살도 못 넘겼다.”
요컨데 아직 젊으니 오래 살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그녀를 의심하는 건 절대 아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씨앗이 반으로 쪼개지고, 그 틈에서 씨앗이 솟아났는지 알고 싶을 뿐.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현상이라 해도, 조건만 충분하다면 씨앗에서 싹이 트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무슨 씨앗이든 간에 ‘물’이 필요한 건 변하지 않는다. 전생의 초등학생 시절 솜뭉치에 콩을 넣고 키워본 적이 있어서 안다.
‘······아니겠지.’
순간 격렬했던 첫날밤과 그 이후가 떠올랐으나 금방 던져버렸다. 그때는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어서 안전한 곳에 숨겼다.
하물며 이건 평범한 씨앗도 아니고 세계수의 씨앗이니 꼭 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 대신 무엇을 줬길래 이렇게 됐는지가 또 문제지.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 아르웬에게 질문했다.
“안을 때 뭐 어떤 식으로 안았어?”
“그냥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그것밖에 없느니라.”
“마나도 줬어?”
“줬지.”
“흠.”
그래도 말이 안 된다. 내가 신전으로 떠나자마자 안았다고 해도 3시간도 안 된다.
그 짧은 시간동안 아르웬의 마나를 흡수하여 싹이 자라났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자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는 당사자 혹은 관계인에게 직접 묻는 게 현명하다.
“잠깐 모라 님을 뵙고 올게.”
“이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아르웬이 씨앗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제 막 싹이 피었으니 이대로 방치하는 건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수를 써야 된다는 의미인데, 이걸 땅에다 심어야 될지 아니면 아까처럼 안고 있어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고민에 약간의 시간을 투자했다가 임시방편을 세우기로 정했다.
“일단 아까처럼 안고 있어 봐. 어차피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테니까. 알겠지?”
“다치지 않게 소중히 안고 있으마.”
그리 말하면서 싹이 튼 씨앗을 품에 안는 아르웬. 마치 소녀가 아기를 안는 듯한 모양새라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후로 그녀에게 손을 흔어주고는 다시 신전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모라가 아니라 루미너스를 찾아갈 예정이다.
루미너스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고, 모라와 달리 친절하게 대답해줄 터.
그렇다고 모라가 불친절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이럴 때일수록 어른스러운 루미너스가 더 믿음이 간다.
[그건 말할 수 없단다.]‘에?’
그리고 그 믿음은 철저히 배신당했다.
나는 루미너스가 부정적인 대답을 꺼내자 멍청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무슨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할 수 없다니, 이제는 황당함을 넘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려 신이다. 그것도 세상과 개인의 미래를 신탁을 통해 알려줄 수 있는 신.
신성력과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게 조건이나 나는 예외다. 나는 언제든지 내 미래에 대해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건이 풍족하다.
헌데 그런 나조차 세계수의 씨앗에 대한 걸 알려줄 수 없다니. 이해할래야 할 수가 없다.
‘말할 수 없다고요? 대체 왜?’
[그것도 알려줄 수가 없구나.]‘아니······’
한국인이 가장 답답하고 황당할 때 나오는 말, 아니. 나는 무어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라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더니 루미너스는 아예 말할 수 없단다. 모순 아닌 모순에 머리가 슬슬 아파왔다.
도대체 저 씨앗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신들조차 함부로 미래를 꺼낼 수 없는 걸까.
혹시 히르트가 말하지 말라고 압박을 넣은 것일까? 자연의 여신이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알려주지 않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제가 무슨 제안을 하던 간에 말할 수 없는 건가요?’
[그래. 혹시 천기누설이라고 아니?]천기누설(天機漏洩)
하늘의 비밀이 새어 나간다는, 누설되면 말 그대로 큰일나는 비밀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보통 같으면 말 그대로 비유로 치중하겠다만 진짜 신이 저 단어를 언급하니 그 파급력이 남다르다.
덕분에 짜증이나 답답함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그대신 불안감이 자리잡았다.
천기누설이라 부를 정도면 미래에 어떤 사건이 터진다는 의미이니. 이에 한층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제가 큰일이라도 겪는 건가요?’
[당장은 아니란다.]당장은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래에 큰일을 겪긴 겪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저걸 굳이 천기누설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다. 제논임을 밝히고 악마 숭배자에게 위협을 받으면서 충분히 예측했던 부분이니.
또한 저것과 세계수의 씨앗이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 씨앗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는 건가요? 저조차도 알 수 없는 큰 변화라 말해줄 수는 없고?’
[그렇단다.]‘이미 싹이 나왔는데도요?’
[그걸 망치로 산산조각낼 수도 있잖······ 악!]말을 하다가 중간에 비명을 지르는 루미너스. 나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불렀다.
‘루, 루미너스 님?’
[아야야······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셔서.]지난번에는 모라가 등짝을 맞더니 이번에는 루미너스 차례였던 모양이다.
가끔 가다 정말로 신의 권위를 보여주면서도, 이처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정감이 안 갈 수가 없다.
[어쨌거나 씨앗을 소중히 다루렴.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망치로 내려치진 말고.]‘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럼 땅에 심든, 아니면 그대로 방치하든 제 마음대로라는 거죠?’
[그래.]‘주의해야 할 점은 있어요?’
[그냥 사랑으로 키우렴.]사랑으로 키워라. 너무 애매한 대답이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신들도 미래를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 깨달았다.
저 씨앗이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겠지만, 루미너스의 말마따나 사랑으로 키워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일단 알겠습니다. 정말로 제 마음대로 키워도 되는 거 맞죠?’
[그래.]‘그러면······’
[네가 그 아이와 침대에서 뭔 짓을 하던 간에 상관없으니 부수지만 마렴. 애초에 흠집조차 못 내겠지만.]아무래도 씨앗의 강도가 강철보다 단단한 모양이다. 보기에도 코코넛처럼 생긴 게 딱 그럴 것 같더라.
실수로 씨앗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이후로 여러 잡담을 나누다가 접신을 끊고는 다시 여왕의 침소로 돌아갔다. 침소로 돌아가니 아르웬이 정말 소중하게 안고 있더라.
“나 왔어.”
“아. 왔구나. 신들께서는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어. 특별한 씨앗이라 땅에 심지 않아도 괜찮은가 봐.”
“그럼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하게 보관하겠노라. 씨앗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안고 있으마.”
“알았어. 그전에······”
나는 음흉한 미소를 띄며 침대에 누운 아르웬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도 내 미소를 보더니 얼굴을 붉히고 안고 있던 씨앗을 옆에 놓았다.
이윽고 그녀를 덮치듯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내 바로 아래에는 아르웬이 다소곳이 두 손을 모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지?”
“늘 말하지만 나는 그대를 위한 선물이다. 그러니······”
그리 말한 아르웬은 두 팔을 벌려 나를 환영해줬다.
“마음대로 다루어도 좋다.”
아직 저녁 식사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럼 다시 개봉할게?”
“언제든지 개봉하거······ 하읏!”
뜨거운 밤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 * *
이른 저녁부터 이어진 정사는 새벽이 되어서야 종료되었다. 수행원이 기껏 정돈했던 침대는 엉망진창으로 바뀌었고, 이불을 포함한 시트는 온갖 액체로 스며들었다.
새로운 자극에 눈을 떠버린 아르웬도, 그녀를 만족시키느라 체력을 소진한 아이작도 깊은 잠에 빠져든 시간.
마치 등불처럼 홀로 빛을 내는 존재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은 세계수의 씨앗.
관계를 맺을 때 혹시라도 다칠까봐 멀리 떨어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특히 루미너스가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언급했을 때는 전보다 멀리 떨어뜨렸다.
움찔-
그런데 그 씨앗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움직임이라 해야겠지.
아무런 접촉조차 없었는데 한 번 흔들린 씨앗. 벌어진 틈 사이에는 갓 피어오른 새싹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데굴데굴데굴-
놀랍게도 한 번 움찔거렸던 씨앗이 자기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처럼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쿵-
이윽고 씨앗은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그 강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무거운 소리가 나는 건 덤.
씨앗은 한동안 시계추마냥 제자리에서 좌우로 움직였다가 다시 한 번 굴러가기 시작했다. 씨앗이 향하는 방향은 다름아닌 침대 쪽.
한바탕 격전을 치른 아르웬과 아이작이 깊은 잠에 빠져든 침대였다. 어두컴컴한 침소에서 홀로 빛을 뿜내는 씨앗이 스스로 굴러가는 모습은 퍽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왕의 침소는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공간. 이건 아르웬의 숨겨진 호위 기사, 시리스조차 출입할 수 없기에 그 누구도 씨앗을 막을 수 없었다.
펄쩍-
스스로 구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여기서 더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씨앗이 구르는 걸 넘어 벼룩마냥 높게 점프한 게 아닌가.
얼마나 높게 점프했는지 침대 위로 가볍게 착지할 정도였다. 그 작은 기척을 아르웬과 아이작이 감지할 리가 만무.
뒤이어 씨앗은 온갖 분비물로 엉망진창이 된 침대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쮸읍- 쮸읍- 쮸읍-
마치 표면에 입이 달린 것처럼, 이불과 시트에 묻은 분비물을 깨끗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정사를 치른 지 시간이 지나 거의 다 말랐지만,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몇몇 있다.
그걸 전부 빨아들이는 중이다. 만약 두 남녀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단지 꿈이라고 치부할 만큼 말이 안 되는 상황.
“끄윽-”
그 후로 얼마나 흘렀을까. 분명 씨앗인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트림 소리가 들렸다.
과연 이것을 단순히 씨앗이라 치부해도 되는 걸까. 씨앗은 식사를 마친 후에도 침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윽고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것처럼, 아르웬과 아이작 사이에 쏙-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빈 공간이 있었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뽀각-
들어서자마자 씨앗에서 들리는 불안한 소리.
뽀각- 뽀각-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빠각!
새싹 바로 옆으로 작디 작은 ‘팔’ 하나가 힘차게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