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57
■ 356화. 영물 (1) □ ᓚᘏᗢ
콕- 콕-
“··· ···”
콕콕-
“으음······”
콕콕콕-
누구야. 세상에서 가장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나는 작은 손길이 내 볼을 찌르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르웬이 먼저 일어나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현재 침대 위에는 나와 그녀밖에 없으니 확실하다.
역시 아르웬답다고 해야 할지 아침부터 귀여운 짓을 한다. 나는 약하게 웃으며 두 팔로 그녀를 껴안았다.
꽈악-
“우웅?”
두 팔로 껴안자 아기처럼 귀여운 소리를 내는 아르웬. 체구가 얼마나 작은지 내 몸에 쏙 들어오는······
‘······응?’
이건 진짜 쏙 들어오는 건데. 단순 비유가 아니라 아르웬의 몸 전체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단순히 상반신만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전체가. 아무리 그녀의 몸이 작아도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나는 차마 눈을 뜰 생각도 못한 채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부터 시작하여 작은 머리와 그 다리까지.
······작다. 너무 작다. 그냥 몸 자체가 줄어든 것처럼 위아래가 짧았다.
심지어 등 쪽에는 뭔가 잡힐 듯 말 듯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수증기나 안개가 내 손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
아르웬은 아니다. 그녀는 이 정도로 작지 않다. 이건 말 그대로 어린이 체형이다.
하물며 아르웬은 바디 로션을 바른 것처럼 달콤한 향기를 내지 않는다. 그녀는 은은한 백합 같은 체향이었던 걸로 안다.
‘누구지?’
나는 눈을 파르르 떨었다가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여왕의 침소는 아르웬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는다.
헌데 만약 다른 존재가, 그것도 침대 위에 있는 거라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뒤이어 내가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끔뻑- 끔뻑-
호박을 담은 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와 나처럼 붉디 붉은 머리카락.
“우응?”
정수리 위로 수줍게 피어오른 작은 새싹이었다.
“··· ···”
사람은 너무 놀라거나 어이가 없으면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딱 지금이 그 상황이다.
나는 과거의 나와 놀라울만치 닮은 새싹 머리의 아이를 보며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무슨 일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이의 뒤를 쳐다보니 아르웬이 곤히 자고 있다.
첫날밤에 비견될 정도로 격하게 했으니 오늘도 오전 내내 잘 것으로 보인다.
“우우.”
아르웬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이가 칭얼거린다. 왠지 몰라도 이쪽을 봐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이에 다시 아이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어젯밤 사랑하는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에 나를 닮은 아이가 사이에 떡하니 누워있다.
막장 드라마, 아니 소설도 이 정도로 전개를 개판으로 하지는 않겠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해서 무슨 반응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잠이 확 달아났다는 건 다행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일단 현실인 건 확실하다.
스윽-
나는 좀 더 면밀한 상황 파악을 위해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혹여 아이에게 안 좋은 꼴을 보일 수도 있으니 하체만큼은 이불로 가렸다.
내가 껴안은 탓에 강제로 누웠던 아이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이제 보니 머리카락이 나처럼 상당히 긴 편이었다.
또한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한 귀가 내 시야에 잡혔다. 엘프처럼 특유의 길쭉한 귀.
그것만 해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기 충분한데, 더 놀라운 건 다름아닌 등쪽이다.
“······이건 뭐야?”
“웅?”
안개처럼 흐릿하고 반투명하여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눈을 가늘게 뜨니 볼 수 있었다.
문헌 속에 등장하는 악마의 상징이 뿔과 박쥐 날개인 것처럼, 천사에게도 상징이 있다.
머리 위에 둥둥 떠나니는 ‘헤일로’와 순백의 날개. 천사는 현재로서 전멸하여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문헌에는 그렇게 나와있다.
그리고 아이는 머리 위에 헤일로 대신 작은 새싹이, 순백의 날개 대신 반투명한 날개를 등에 달고 있다.
뭔가 기묘하면서도 너무 깜찍한 외모 때문에 잘 어울리는, 정말로 신비스럽고 사랑스러움을 뿜어내는 모습.
‘이게 무슨 상황이지.’
욕이 저절로 나오는구나. 나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만 깜빡거렸다가 시선을 뒤로 옮겼다.
분명 책상 위에 올려놓았을 세계수의 씨앗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다.
침대 위에는 갈색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아이 머리 위에 돋아난 새싹을 보면 어디서 나왔는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으나 그 흔적이 없어져서 확신을······
“끄윽.”
짱구를 최대한 굴리고 있을 때 아이가 느닷없이 트림을 했다. 나는 시원한 트림 소리에 흠칫하며 아이를 쳐다봤다.
잘 살펴보니 입가에 갈색 부스러기가 군데군데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과자를 먹다가 입가에 묻은 것처럼 보인다.
그걸 보자마자 재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모든 정황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으니.
박혁거세 탄생 비화처럼 이 아이는 세계수의 씨앗에서 태어났고, 나오는 동안 씨앗을 먹었거나 아니면 다 빠져나온 뒤에 먹었다.
거 참 치아와 잇몸이 튼튼한 아이구나. 루미너스가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언급했는데 그걸 다 먹었다니, 한 번 물리면 끝장나겠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조심히 닦아줬다. 일단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으응.”
내 손길을 아무런 반항 없이 받아주는 아이. 등 뒤의 반투명한 날개가 미약하게나마 파닥거렸다.
도대체 이 아이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날개도 있고, 머리 위에는 새싹까지 있는 것일까.
천사라고 단정 짓기에는 저 새싹 때문에 너무 이르다. 문헌에 나온 것처럼 헤일로가 달려있다면 기겁했을 텐데.
“얘야.”
“웅?”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옹알이를 한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3살짜리 꼬마애.
더군다나 여자애다. 외모를 살펴보면서 파악했다.
“넌 누구니?”
“우응?”
“히르트 님이 주신 씨앗에서 나왔니?”
“으응?”
연이어 질문해도 옹알이만 하는 아이. 나는 답답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가 뒤를 바라봤다.
아직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아니면 어젯밤의 여파가 심했는지 세상 물정 모르고 꿀잠을 청하고 있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놔뒀겠지. 하지만 지금은 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
“아르웬.”
“··· ···”
“아르웬. 잠깐 일어나 봐.”
“으응······”
몸을 약하게 흔들며 깨우자 방금 전 나처럼 아르웬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름다운 은회색 눈동자가 조금씩 드러나더니 두 손으로 눈을 비빈다.
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아이와 함께 잠자코 기다렸다. 아이도 조용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으음······”
스윽-
한 손으로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당긴 채 일어난 아르웬. 새하얀 나신이 아찔함을 선사했다.
“흐아암······”
잠시 후, 하품을 시원하게 한 그녀가 입맛을 다시면서 감았던 눈을 떴다.
여전히 비몽사몽했으나 그녀의 눈동자에 나와 아이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뒤이어 눈을 깜빡거리면서 아이와 나를 서로 번갈아 보던 그녀는······
“······어?”
도무지 믿기지 않은 상황에 예상대로의 반응을 꺼내고는.
“우리가 언제 아이를 낳았지?”
“우응?”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 * *
아르웬이 상황 파악을 하는 데까지 약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스스로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억지로 깨운 탓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 했으니까.
심지어 꿈 속이라 생각한 것인지 아이를 꽉 껴안으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기까지 하더라.
아이도 아무 반항 없이 아르웬에게 안겼다. 여기에 더해서 가슴에 얼굴을 비비기까지.
“이, 이 아이는 누구냐? 그리고 등에 날개는 또 무슨······!”
물론 그것이 전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경악했다. 특히 등 뒤에 반투명한 날개가 달린 걸 봤을 때의 반응이 일품이었다.
마치 전설 속의 동물을 본 것처럼 눈을 몇 번이나 비볐으니까. 솔직히 내 반응이 담담했던 거지 아르웬이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악마와 달리 문헌에서나 등장하는 존재니까. 악마 전쟁 전부터 천사가 지상에 등장했다는 기록은 사실상 전무하다.
헌데 남편을 닮은 꼬마 천사가 침대에 떡하니 있다. 그것도 머리 위에 작은 새싹을 피운 채.
“빠아.”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아르웬의 이불을 끌어당기고 있다. 만약 이대로 빼앗긴다면 그녀의 알몸이 완전히 드러날 터.
아르웬도 그걸 알고 있기에 기를 쓰며 막고 있다. 아이답지 않게 힘이 엄청 강한지 그녀가 밀리고 있다.
“무, 무슨 힘이 이리 센 것이냐! 어서 놓거라!”
“빠아!”
청개구리 기질이 있구나. 아이는 아르웬이 당황하자 오히려 힘을 더 강하게 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정리를 못 할 것 같아 아르웬을 돕기로 나섰다.
우선 아이의 겨드랑이 밑에 두 손을 집어넣고는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이도 이불을 놓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못 써요. 아르웬이 싫어하잖아.”
“우웅?”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못 듣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정수리에 난 새싹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나는 아이를 내 다리 사이에 앉혀놓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줬다. 내 머리카락보다 훨씬 부드럽고 윤기까지 흐른다.
게다가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게, 정말로 문헌 속의 천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암냠냠.”
나에게 쓰다듬을 받던 아이가 길게 자란 내 머리카락을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래도 배가 고픈 듯한 모양이었으나 다급히 막는 것부터 우선이다.
“어허. 머리카락 먹으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우움?”
“빨리 뱉으렴.”
입에 문 내 머리카락을 당기자 순순히 입을 연 아이. 그리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 씨앗을 먹던 치악력답게 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있다.
머리카락은 가위나 칼처럼 날카로운 도구가 아닌 이상 자르기 어려운데 그걸 치아로만 행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도대체 이 아이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날개를 보면 분명 천사의 일종이긴 한데 머리에 난 새싹을 보면 또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정체는 둘째 치고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것이 난관이다.
일단 나와 나란히 있으면 누가 보아도 부녀 관계로 보인다. 붉은 머리카락에 황금빛 눈동자.
가족이 아니라고 하면 절대 못 믿을 정도로 닮았다. 귀가 엘프처럼 뾰족하고, 머리 위에는 새싹이 돋아났으며, 반투명한 날개가 달린 건 상관없다.
가장 큰 개성이 닮았는데 부모 중 엄마의 유전자라 생각하겠지. 솔직히 뾰족한 귀만 해도 엘프의······
“··· ···”
“왜, 왜 그렇게 보는 것이냐?”
그 엘프가 바로 내 앞에 있네. 게다가 엘프는 천사의 후예라고 널리 알려진 종족.
만에 하나, 그 핏줄이 아이에게 발현되었다면 반투명한 날개도 설명이 가능하다.
새싹은 뭐······ 세계수의 씨앗에서 나왔다고 하면 말이 되긴 하고. 아무튼 간에 이건 확실하다.
아이의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은 나와 아르웬이라는 것을.
다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언제 유전자 정보를 얻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얘야?”
“우응?”
“혹시 엄마가 누구니?”
말을 알아듣진 못 하겠다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아이는 내 질문을 듣고 황금빛 눈동자를 깜빡이더니 고개를 돌리며 아르웬을 쳐다봤다.
이어서 조막만한 손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힘차게 답했다.
“맘마!”
“나, 나 말이냐?”
“맘마!”
방금 막 태어났을 텐데 정확하게 맘마라 소리친다. 나는 아르웬이 당황하는 동안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 질문은 하나마나인 것이, 아이는 누가 뭐라 해도 나와 붕어빵 수준으로 닮았다.
“······그럼 아빠는?”
“압빠!”
질문을 꺼냄과 동시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가리키는 아이. 나는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신전부터 가서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좆 됐네.’
이걸 마리에게 보여주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주 좆 됐어.’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그런데 나도 좀 억울한 것이, 이건 신들이 나를 골치 아프게 만든 거다.
나는 속으로 너털 웃음을 흘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선 상황 정리부터 하고 천천히 설득해야 할 듯싶다.
좆 된 건 여전하지만.
“조······ 조······”
“응?”
“조오대따?”
“··· ···”
왠지 더 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