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63
■ 362화. 뜻밖의 만남 (1) □ ᓚᘏᗢ
갈 때까지 본인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고 간 아리엘. 아리엘도 아리엘이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이 더 압권이었다.
그 마음 다 이해한다는 듯이, 측은한 눈빛으로 아르웬을 바라보거나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등.
사람 한 명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드는 상황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물론 아르웬은 몰려오는 죄책감에 그 날 하루를 우울 속에서 갇혀 지냈지만.
아리엘에게 속마음을 들켰다는 것도 있으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나 뭐라나.
아무튼 아리엘은 두 여인과 함께 미네르바 제국으로 돌아갔다. 기숙사로 곧바로 돌아가 아버지와 아델리아에게도 설명을 할 예정이라고.
과연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할 지 모르겠다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다른 종족도 아닌 천사가 떡하니 등장한 것이니.
그때까지 나와 아르웬은 남은 시간동안 즐거운 생활을 보내면 끝이다.
아리엘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이틀을 날려먹었으니 기간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애당초 일주일은 즐기기에 너무 짧았다.
알븐하임에 방문한 이유는 아르웬과 이어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여러 기관을 살펴보고 싶다.
세계수와 엘로디아는 이미 방문했으니 남은 건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자 세계 모든 도서가 모인다는 ‘성지’.
오늘은 그 성지에 방문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우와······”
아르웬과 함께 성지에 방문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절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도서관은 본래 정숙이 기본이지만 그것조차 깜빡할 정도로 성지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높게 뻗어있는 천장과, 그 천장에 닿을 정도의 서가. 그 서가에 빽빽히 채워져 있는 서적들.
책 특유의 퀴퀴한 냄새도 전혀 없었으며 향기로운 꽃내음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것만 해도 지상 최대의 지식 창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렸지만, 더 눈에 띄는 건 바로 공중에 돌아다니는 서고다.
마법을 사용하기라도 했는지, 축구장만한 성지 내에는 공중을 유영하는 서고가 곳곳에 존재했다. 정말로 판타지스러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세계수가 신의 축복이자 선물이라면, 이곳 성지는 우리 알븐하임이 직접 이루어 낸 자랑이니라.”
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성지를 둘러보고 있을 때 함께 따라 온 아르웬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 나에게 반쯤 기대고 있는 상황인데, 대충 눈치챘다시피 어젯밤의 여파로 다리에 힘이 거의 없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뺀다면 바닥에 주저앉겠지. 그렇다고 매일 매일 침대에서 지낼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첫날밤과 다르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아예 못 걷는 것도 아니다.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약간의 자제도 포함시켰다.
눈치 볼 것도 없겠다,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면 그만이다. 그 장소가 도서관인 게 흠이지만 충분하다.
“어떤 식으로 분류돼 있어?”
“우선 기본적으로 100년을 주기로 분류돼 있느니라. 저 위의 부유하고 있는 서고들은 문명이 막 설립되었을 때 기록된 고서지. 다만 고대어로 기록돼 있어 해독을 따로 해야 될 것이다.”
“오오. 다른 건?”
“그대가 좋아하는 역사는 시기마다, 그리고 종족마다 전부 따로 분류돼 있다. 여태까지 시리스를 통해 전달하던 책은 극히 일부지.”
기대했던 대로의 설명이 나오자 점점 가슴이 두근거렸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서고만 해도 눈이 즐거운데 디자인 자체도 예쁘다.
대충 눈으로 잡아도 축구장보다 훨씬 넓은 규모하며, 하얀색 계통의 디자인이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분명 퇴색된 부분이 있어야 될 텐데 그런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전부 하얗다.
분명 보존 마법으로 조치를 했겠지. 엘프에게 있어서 마법은 손발이나 다름없었으니 보존 정도는 쉬울 것이다.
“성지는 처음부터 크게 만들도록 설계한 거야?”
“그렇지. 신의 축복을 받는만큼, 우리 엘프가 외부의 침략에 쓰러질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세상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니라.”
“그러고 보니 악마 전쟁 당시에도 알븐하임은 전력을 보존했었지?”
“대신 인간과 수인이 많은 희생을 치렀지.”
아르웬의 설명처럼 악마 전쟁 당시 인간과 수인은 탱커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드워프는 그들을 필사적으로 지원했고.
그렇다 해서 엘프가 희생을 치르지 않는 건 아니다. 당시 인간과 수인이 특유의 번식력으로 인구가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뿐, 엘프도 많은 희생을 치렀다.
다만 인간은 문명을 이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수인은 부족 생활을 하고 있어서 속수무책으로 썰려나갔을 뿐.
만약 적절한 시기에 세계수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인간과 수인은 멸종했을 거라는, 이런 무시무시한 가설이 학자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그런데 도서관치고는 꽤 시끌벅적하네.’
아까 도서관 내에서는 정숙이 규칙이라 했으나 성지는 다른 모양이다. 일단 도서관 내에서 토론을 하는 사람이 곳곳에 눈에 띤다.
도서관보다는 서로의 학문과 지식을 나누는 전당이라 봐야겠지. 애당초 성지는 허가를 받은 인원만 출입이 가능한 기관이다.
초고 도난 당시, 내가 괜히 아르웬에게 성지의 책을 공급해달라 부탁한 게 아니다.
“저기 공중서고는 어떻게 가져오는 거야?”
“우리 엘프들은 마법으로 직접 날아가 가져오면 되니라. 그대와 같은 인간은 다른 학자에게 부탁하면 그만이고.”
“아. 그러고 보니 인간 학자들도 많이 방문하는 편이지? 혹시 차별을 받는다거나 그런 건 없어?”
다른 종족도 아니고 엘프다 보니 생기는 편견이다. 알븐하임에서 인정받은 학자만이 출입이 가능한데 인간은 더 엄격하지 않을까.
하지만 의외로 아르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토론을 나누는 무리를 가리켰다.
그쪽으로 바라보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두 엘프 남자가 정답게······ 아니,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또한 그들의 뒷편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여기서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과 엘프가 두루 섞여 있다. 비율만 따지자면 서로 비슷했으며 각각 한 마디씩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저기 보이는 것처럼 학문에 한해서는 차별이 거의 없지. 성지에 발을 디뎠다는 건, 종족을 초월하여 그 학문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니까. 그러니 차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구나. 그래도 엘프의 영향력이 더 강하지 않아? 인간은 수명이 짧아서 쌓인 지식이 엘프보다 현저히 적을 텐데.”
“맞는 말이니라. 하지만 인간에게는 엘프에게 없는 게 있지.”
“없는 거?”
“발상의 전환.”
그 한 마디로 바로 납득이 갔다. 엘프는 기억력이 좋고 수명도 길어 축적된 지식이 많지만, 누누이 언급했듯이 상당히 보수적이다.
반면 인간은 진취적인 면모가 강하며, 도전 정신이 매우 강하다. 여기에 뛰어난 습득력까지 있어서 세대가 흘러갈수록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그 탓에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나 결코 멈추는 일이 없다.
“그 반짝임 하나가 학문 전체를 뒤흔든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지. 특히 가장 인상적인 학문은 천문학이니라. 이 행성을 중심으로 태양과 달이 공전하는 게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이 행성을 비롯한 다양한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지.”
“아. 그······ 응?”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르웬을 쳐다봤다. 그녀가 언급한 학문은 천문학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지동설이다.
잘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시기상으로는 이 세상 사람들은 지동설보다 천동설을 더 믿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책에서 배운 것도 그렇고 아카데미의 교수들조차 지동설을 채택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데?’
지동설은 전생에서는 근대에 이르러서 겨우겨우 입증이 된 학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차차 밝혀진 가설.
이것만 해도 깜짝 놀라기는 충분한데 더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그건 다름아닌 ‘신’의 존재.
루미너스는 빛을 상징하는 만큼 이 세상의 ‘태양’을 상징하고, 그 반대로 모라는 ‘달’을 상징하는 존재다.
마지막으로 히르트는 이 행성 자체를 상징하는 자연의 여신.
당연하게도 히르트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원래대로라면 루미너스와 모라가 그 주변을 돌아다녀야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지동설보다 천동설을 굳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신들의 존재가 가장 크다.
“다른 건 몰라도 교단에서 반발이 심했을 텐데? 문제는 없었어?”
“많아도 너무 많았지. 곧바로 신성모독으로 처형당했으니. 하지만 그 인간은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동······ 아니, 그 학문을 채택했어?”
“그 주장을 심도 있게 파고든 엘프 학자가 있었지. 그 자는 300년을 걸친 연구 끝에 많은 것들을 알아냈느니라. 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데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어째서 수직으로 떨어지는지, 우리는 왜 이 행성이 도는 걸 알 수 없는지 등등. 특히 300년 동안 월식과 일식 현상을 연구하여 거리까지 계산했느니라. 그 결과 모두가 인정하게 됐지.”
뭐 저런 변태적인 엘프가 다 있나.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집념 하나만큼은 엄지를 치켜세울만 했다.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 신성모독으로 처형한 마당에 무서워서라도 피할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하는 정신.
보수적인 마인드에 고집불통의 엘프라지만, 특유의 종족 특징이 좋은 쪽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나는 감탄을 숨기지 않은 표정으로 있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신학은? 신학도 뒤집어졌을 거 같은데?”
“상징과 과학적 사실은 별개로 두어야 된다고 바뀌기 시작했느니라. 그 학자도 필멸자를 보필하는 건 신들임을 부정하지 않았으니.”
“많이 싸웠을 것 같은데?”
“종교계와 과학계가 서로 싫어하는 이유지.”
전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루트를 타고 있다. 과학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하늘의 벼락을 보면서 신이 강림했다며 벌벌 떨어졌으니.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그 현상에 대한 이유가 하나 하나 과학적 사실을 통해 밝혀지면서 많이 퇴색되었다.
때문에 종교는 진정한 의미의 신앙에 가까워졌다. 믿든 말든 상관없으며 이곳과 달리 무신론자가 많다.
허나 이곳은 다를 것이다. 종교계와 과학계는 이 세상이 멸망해도 끝까지 싸우겠지.
“성지에는 그대가 흥미를 가질 지식들이 저장돼 있다. 뇌가 우리 몸의 장기와 신체를 조종한다는 학문을 비롯하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존재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까지. 너무 많아서 뭐부터 확인해야 되는지 골치 아플 정도이니라.”
“난 역사면 되는데?”
“후후. 그대다운 대답이구나.”
칼 같은 내 대답에 아르웬이 그럼 그렇지라며 약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웃음에 미소로 화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성지의 책 전부를 읽고 싶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려 알븐하임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도서관이니.
그러니 이것 저것 다 읽을 바에야 차라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를 파고드는 게 낫다. 가끔 가다 다른 것도 읽어보고.
“너도 같이 있을 거야?”
“그대가 원한다면 잠깐 자리를 비워줄 수도 있느니라. 나도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으니. 아! 만에 하나 있을 습격도 걱정할 필요는 없느니라. 성지는 마법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을 뿐더러 신의 눈이 닿고 있으니까.”
그러면 마음 편히 읽어도 되겠네. 무려 성지에 설치된 헤일로 아카데미에 설치된 보안 마법보다 훨씬 단단할 터.
더군다나 신의 눈이 닿는다는 건 폭력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폭력을 저지르는 순간 쫒겨나는 수준이 아니라 천벌이 내려지겠지.
나는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역사 관련 서적이 배치된 서고는 약간 걸어가야 된다.
“음? 이보게. 저 사람 혹시······”
“빨간머리를 보아하니 맞는 거 같은데? 곁에 여왕님까지 있는 걸 보니 확실하군.”
“성지를 구경하러 온 건가?”
“글쎄. 학자라고 했으니 자료 조사를 하러 온 게 아닐까 싶네만.”
성지에 들어왔을 때부터 간간이 들려오던 소리가 전보다 늘어났다. 아르웬도 아르웬이지만 이놈의 머리카락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들 고명한 학자인지라 선뜻 나에게 접근하지는 않았다. 자기 할 것만 하거나 잠깐 멈췄던 토론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게 정상인 것이, 원래 학자라는 사람들은 본인의 관심사를 제외하면 신경 끄고 생활한다.
특히 본인의 학문에 진취적인 성과를 이룩한 사람이라면 더욱이. 오직 본인의 연구에만 몰두하는 진짜배기 괴물들.
‘저 사람들도 이상한 착각을 하진 않겠지?’
아니면 연구 대상으로 보거나. 나는 여기저기 박히기 시작한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역사관 쪽으로 나아갔다.
아르웬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는 이상 그들이 먼저 접근할 일은 없다. 특히 내가 알븐하임에 당도한 이유를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터.
그 생각을 하니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은 역사책이나 뒤져보도록 하자.
“······어우.”
역사 관련 서고에 도착하자마자 질린다는 반응부터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게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보통 역사 서적은 근현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고대부터 중세는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을 보아라. 역사책이 시대마다 세세하게 분류돼 있다.
당장 몇 천년 전에 기록된 서적부터 시작하여 가장 최근에 발매한 책까지.
‘쩌······ 쩐다!’
이 무슨 아름다운 지식 저장소란 말인가. 심지어 단순한 역사책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서도 세밀하게 분류돼 있다.
종족, 문화, 정치, 사회, 종교, 예술, 과학 등등.
기본 골자가 역사인지라 어떤 식으로 발전되는지, 또 어떻게 바뀌는지 알려줄 뿐이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며 무수히 쌓여있는 책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혹시 몰라 옆을 쳐다보니 아르웬이 뿌듯한 얼굴로 가슴을 쭈욱 내밀고 있다.
“마음에 드느냐? 앞으로 그대가 마음대로 빌려도 되는 책들이니라.”
“정말 마음대로 빌려가도 돼?”
“그래. 하지만 반납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대가 제논이어도 지식의 소실은 학자들에게 민감한 문제이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것보다 뭐부터 읽을까······”
양도 양이지만 너무 다양한 나머지 뭐부터 읽을지가 난제다. 일단 고대에 기록된 책은 패스.
고대의 책은 고대어로 적힌 탓에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번역본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원본’이 가득 찬 도서관이다.
제논 일대기도 초고가 가능하면 ‘초판’이 보관되겠지. 만약 초고를 보관하겠다고 공표하면 헬리움과 전쟁까지 치를 수도 있다.
‘초고를 어디에 보관할 지 생각해 둬야겠네.’
이 부분은 제대로 못 박는 게 나을 것 같다.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둘러보고 있어라. 나도 잠깐 책을 갖고 오겠다.”
“알았어.”
이후로 아르웬이 책을 찾으러 떠나고, 나 혼자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최근에 발매된 것부터 살펴보자.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깨달았다.
‘대부분 다 읽었던 거네?’
시리스가 전달해줬던 서적들밖에 없다. 성지에는 없는 서적이 없는데 그만큼 내가 읽었다는 뜻.
하물며 엘레나로부터 자료 수집이라는 이유로 온갖 책이란 책을 다 읽은 참이다.
나는 최근에 발매된 서적을 대충 둘러보다가 옆쪽을 바라봤다. 옆으로 갈수록 과거에 발매된 것이다.
‘종족 전쟁 관련 책이······’
그래도 제일 재미있는 건 종족 전쟁이지. 역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전쟁 중에서도 가장 큰 전쟁.
관점에 따라, 그리고 종족에 따라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가는 역사. 오늘은 종족 전쟁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인간 기준으로 기록된 거 말고, 엘프 기준으로 기록된 게······ 응?’
책을 찾다보니 문득 눈에 띄는 책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제목 자체는 평범했으나 저자가 눈에 익었다.
[아이케르 라이트싱어]종족 전쟁 당시, 엘프측 사령관이었으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당한 아이케르.
그가 투옥당하지 않았다면 종족 전쟁은 엘프측의 승리로 귀결되었을 거라며, 최소한 굴욕적인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 거라며 수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아 칭하는 비운의 영웅.
그런 영웅이 작성한 역사책이라니, 심상치가 않았다. 심지어 제목마저 엘프 특유의 교만을 탐구하고 있다.
‘이것도 역사와 관련돼 있나?’
흥미가 있으니 한 번 봐야겠다. 나는 그 책을 서고에서 뽑아냈다.
서고에 저장된 책은 알아서 관리가 되는지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나는 그 책을 들고 유유히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테이블에는 웬 ‘토르’처럼 생긴 엘프 하나가 독서를 하고 있었으나 가볍게 무시했다.
이윽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기고······
[좆 같은 귀쟁이 새끼들. 다 뒤졌으면 좋겠다.]“······?”
충격과 공포의, 그리고 자기혐오로 가득 찬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