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64
■ 363화. 뜻밖의 만남 (2) □ ᓚᘏᗢ
전에도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엘프에게 가장 심한 종족차별적 발언은 바로 ‘귀쟁이’다.
엘프의 길쭉한 귀는 신과 보다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한 부위로 알려져 있는데, 이걸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니 빡이 칠 수밖에.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내가 당장 아르웬에게 장난식으로 말해도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말실수 혹은 장난이겠거니 하며 넘어가겠지만 그 다음부터 얄짤없다.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마저 파탄날 정도인데 초면인 사람에게 말하면 어찌 될까. 당장 그 모욕을 퍼부은 사람을 죽여버려도 정상참작으로 여긴다.
아마 전생에 흑인에게 ‘N’으로 시작하는 발언과 비견되지 않을까. 그정도로 귀쟁이라는 발언은 엘프에게 가장 큰 모욕이자 상처다.
단, 다크 엘프는 예외로 두자. 그들은 스스로가 엘프임을 혐오하여 귀를 잘라버렸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인간은 의외로 종족차별적 발언에 민감하지 않다. 본인들이 가장 약한 종족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이케르가 집필한 이 역사 서적. 그는 첫 문장부터 엘프에게 가장 심한 욕을 박아버렸다.
본인이 엘프인데도 종족차별적 발언을 첫 장부터 넣다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울분이 쌓여있던 것일까.
‘빡치긴 하겠지.’
솔직히 나 같아도 화나긴 하겠다. 아이케르가 당한 수모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군은 상대방을 깔보고 있다가 연이어 패배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방법을 바꿨는데 원로원이 트집을 잡았다.
더 나아가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박히고, 그 결과 알븐하임은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다행히 나라가 전복되지는 않고 합의 하에 종전했으나 조항을 보면 그냥 패배나 다름없다.
만약 아이케르가 하자는 대로 했다면 알븐하임에 불리한 조항들을 전부 제외시켰을 터.
참고로 그 조항이 무엇이냐면 알븐하임의 성지 개방 및 마법 전수. 이와 더불어 향후 100년 간 무조건적인 개방이다.
[300년 전만 해도 인간들은 알븐하임을 신들의 나라라며 숭상했다. 우리는 그런 인간들을 우리 안의 가축 취급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다.] [헌데 지금을 보아라. 저들이 과연 우리 안의 가축인가? 저들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지성인이자 악마 전쟁 당시 무너진 문명을 기어코 재건축한 신의 피조물.] [또한 악마 전쟁 당시에도 멸종당하지 않고 굳건히 버틴 종족이다. 쓰러질지 언정 무릎을 꿇지 않고, 무릎을 꿇을지 언정 조아리지 않으며, 설사 조아려도 굴복하지 않는 존재.] [하지만 우리 엘프는 신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이 자신감은 오만으로 변하고, 그 오만은 우리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그 결과가 전쟁에서 드러났다.] [만약 인간이 옛날처럼 약했다면 상관 없었겠지. 그러나 나는 마족이 인간들에게 마법을 전수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 원로원 이 귀쟁이 새끼들은 내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마족이 어째서 인간을 돕는지 이해하기는커녕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내 행동이 그 고리타분한 ‘법률’에 어긋난다는 것만 집중했을 뿐.]전반적인 내용은 역사 서적보다는 자서전에 가까웠다. 그것도 엘프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이 대부분이다.
인간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도 있으나 아무래도 전쟁을 치른 사람이다보니 그렇게까지 호의적인 건 아니다.
대신 인간이 어떻게 엘프와 대등하게 겨루게 되었는지, 그들의 근성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마지막으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등등.
여러 의문들을 던지고, 본인이 연구한 대로 척척 가설을 내놓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 서적’이 완성되고 있다.
[나는 격렬하게 항의했다. 인간들의 전술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우리들조차 큰 피해를 입을 정도인데 차라리 먼저 선공을 가하는 게 어떠냐고. 살생에 거부감이 든다면 마법을 이용해 보급로를 궤멸시키는 게 어떠냐고 건의했다.] [근데 이 귀쟁이 새끼들이 거부했다. 굶겨 죽이는 것만큼 야만적인 것도 없다면서. 그리고 알븐하임은 ‘전술’ 같은 건 필요없다며 무작정 방어만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우리 알븐하임은 악마를 제외하면 인류끼리의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고. 다크 엘프를 추방했을 당시조차 정치 싸움에 가까웠다. 허나 인간들은 문명을 이룩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통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전략전술을 수립했다.] [가끔 멍청이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놈이 있다. 저 놈이 따라 한 걸 너도 따라 하면 똑같은 놈 된다고. 귀쟁이들도 똑같이 말했다. 신에게 축복받은 우리들은 그런 저급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언제나 고귀한 마음가짐으로 다스려야 된다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건 전쟁이다. 창칼을 비롯한 온갖 살상 마법이 오고 가며, 고귀함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전쟁에서 그딴 말을 지껄이는 새끼가 내 위에도 있고 심지어 밑에도 있다. 그나마 부관이 정상이지만 통수권자가 그딴 망언을 지껄이니 큰 의미는 없다. 부디 부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말을 잘할 수밖에.]글을 쓰면서도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신랄한 욕설이 한가득 담겨있다.
이제 적응이 된 세계에서 어찌 하여 전생의 구수한 욕설이 생각나는 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케르라 반전으로 다가왔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한 아이케르는 말 그대로 비운의 영웅이었으니. 언제나 조국을 사랑했으나 정작 그 조국에게 배신당한 영웅.
이런 종류의 영웅은 군법적으로는 엄격해도 사적으로는 조용한 편이다. 개인적인 고민은 가슴 속에 묻어두는 유형.
그리고 지금 자서전에 본인의 심정을 모조리 토해내는 중이다. 사실상 일기에 가까워서 발매하기에도 애매했을 것이리라.
대신 성지에 보관돼 있는 이유는 그도 엘프이기 때문이겠지. 성지의 취지는 지상의 모든 서적을 보관하는 것이니.
‘그럼 이걸 읽은 사람이 얼마 없는 건가?’
아이케르와 관련된 기록물은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서적에는 아이케르가 보급로를 차단했다가 감옥에 투옥했다는 것 뿐.
대부분 ‘비운의 영웅’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이처럼 개인적인 것과 연관된 건 전무하다.
제논 일대기에서 아이케르를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루덴.
다크 엘프측 영웅, 에이르와 ‘합체’하여 악마를 모조리 쓸어버린 뒤, 디아볼스의 양분이 된 세계수와 함께 산화한다.
그야말로 영웅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성격조차 매사에 침착하고 진중하다.
‘정작 아이케르랑 정반대였네.’
자서전 속 아이케르는 상당히 유들유들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대신 군법에 한해서는 매우 엄격하다.
이건 엘프라서 그런 게 아니라 군인이기 때문이겠지. 구세대임에도 생각이 깨어있는 엘프다.
단, 자서전이니 몇몇 부분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종족을 불문하고 사람은 본인에게 관대한 면모가 있으니.
아무튼 아이케르는 시기를 잘못 태어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현 시대에 태어났다면 필히 알븐하임의 큰 전력이 되었겠지.
“쯧쯧.”
나는 혀를 차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귀쟁이라는 단어만 가득 할 뿐, 알븐하임을 욕하는 경우는 없다.
이를 보면 사람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다.
게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는지 여러 방면으로 연구까지 한, 절대 놓쳐서 안 되는 인재다.
듣자하니 현재 저택에서 칩거 중이라는데 언젠가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한 번 만나자고 부탁하면 마지못해 만나주겠지. 하지만 밖에 나오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부르기는 싫다.
“······응?”
또다시 책에 집중하려던 찰나, 문득 옆에서 강한 시선이 느껴진다.
아까 전까지 집중하느라 전혀 몰랐지만 이토록 강렬한 걸 보면 대놓고 쳐다보는 수준이겠지.
이에 고개를 돌리며 누구인지 확인했다.
“··· ···”
“··· ···”
토르다. 귀가 긴 토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구렛나루와 이어지는 수염. 우묵한 눈가와 오똑한 콧대.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바이킹에 등장하는 전사처럼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렀다.
전생의 영화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과 똑 닮은 엘프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보통 엘프는 남자든 여자든 의미 그대로의 아름다운 미모로 유명하다. 반면 지금 저 엘프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남자답게 생겼다.
그렇다고 못 생긴 건 전혀 아니고 상남자처럼 생겼다. 왠지 양손에 도끼를 들 것 같은 인물.
“······안녕하세요?”
너무 부담스럽게 쳐다보길래 괜히 어색해진 마음에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엘프는 책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가 제논이오?”
이야. 목소리 엄청 섹시하네.
순간 동굴에 들어왔다고 착각할만큼 저음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보통 외모가 저러면 목소리가 깨는 경우가 많은데 저 토르······ 아니, 엘프는 외모와 정확히 부합하는 목소리를 지녔다.
나는 내 목소리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대답은 해야겠지.
“예. 그렇습니다.”
“듣던대로 빨간 머리가 인상적이구려. 외모도 훌륭하고.”
“가, 감사합니다.”
저런 칭찬은 여태까지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막상 직접 입으로 들으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더구나 다른 종족도 아니고 엘프에게 들으니 그 효과가 배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가 엘프가 읽고 있는 서적을 체크했다.
‘역사 서적이네. 그런데······’
저거 왜 저렇게 작은 것 같지? 나는 엘프가 두 손으로 쥔 책을 보다가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책 자체가 작은 건지, 아니면 그 엘프의 덩치가 큰 건지 몰라도 원근감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무슨 수첩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작을 수가 있나.
운동을 꾸준히 거친 나조차 한 덩치 하는 편인데 저 엘프는 우리 아버지와 비견될 정도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오?”
엘프의 우람한 체격을 가늠하고 있을 때 저음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귀를 파고들었다.
사극톤의 말투가 다소 특이했으나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정말 잘 어울린다.
“네. 관심 전에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요.”
“어느 시기가 가장 관심이 많소?”
“당장은 종족 전쟁에 관심이 많은 편이죠. 인간이 최초로 엘프에게 도전장을 내민 기념비적인 사건이자 변화의 시작이니까요.”
“변화라······ 그것도 맞는 말이지.”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감한다는 의사를 나타났다.
전사처럼 보이는 외견과 달리 역사에 많은 관심을 품은 사람인 걸로 보인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오. 단지 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유명인이 내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궁금해진 것 뿐이지.”
“그럴 수도 있죠.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역사보다는 종족 자체에 관심을 두는 편이오. 특히 인간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지.”
“인간이요?”
“그렇소. 나약하게 태어났지만 앞으로 올라갈 길밖에 없는 종족.”
인간의 태생적인 약함과, 그에 반대되는 성과를 단번에 요약한 말이다.
나는 그의 말주변에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엘프는요?”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어나 아래를 못 보는 종족이라 할 수 있겠군.”
“상당히 예리하게 파고드셨네요.”
내가 감탄하며 말하자 엘프는 부드럽게 웃으며 미약하게 웃었다.
무표정으로 있을 때만 해도 무뚝뚝해 보이는데 저리 웃으니 쾌활하게 느껴졌다.
“그 책은 재미있소?”
그러다 엘프가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질문을 날렸다. 아이케르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서적.
솔직히 말하자면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엘프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도 시선이지만 아이케르라는 사람 자체를 알 수 있어서 좋다.
비운의 영웅이라 해서 매사에 진중하지 않고 유쾌함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
그러고 보니 앞의 엘프를 똑 닮은 캐릭터도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걸로 안다.
“네. 당신도 아시다시피 아이케르는 비운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하지만 서적을 보면 대부분 사건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 개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죠. 이 책은 그걸 전부 알려주니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렇구려. 그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떻소? 자그마치 제논이 내려주는 평가이니 문득 궁금하구려.”
“아직 다 읽지는 못 했지만······”
완독한 건 아니어도 아이케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는 전부 파악한 지 오래다.
나는 강렬하디 강렬한 첫 문장을 상기하면서, 왠지 기대하고 있는 엘프에게 말했다.
“애국자. 이 단어 하나면 충분하겠네요.”
“애국자?”
“네. 알븐하임은 아이케르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이케르는 엘프를 귀쟁이라며 욕하고 있지, 알븐하임을 욕하고 있지는 않아요. 조국이 자신을 버렸을지언정 자신은 조국을 버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애국자라 볼 수 있죠.”
“애국자라······”
애국자라는 말에 여운이 느껴진 것일까. 엘프는 시선을 위로 들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나는 문득 생각난 점이 떠올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고 있었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음? 나 말인가?”
“네.”
엘프는 내 질문을 듣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약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특유의 저음으로 또박또박 이름을 알려줬다.
“아이케르.”
“아. 그렇······ 네?”
“아이케르 라이트싱어.”
토르를 닮은 엘프.
“그 책의 저자라오.”
“··· ···”
욕쟁이가 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