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66
■ 365화. 27권 (1) □ ᓚᘏᗢ
오늘따라 놀람의 연속이다. 역사에 기록된 위인을 만나는 것도 모자라 그 위인의 아내가 지도 교수였다니.
특히 둘의 나이 차가 무려 400살 이상이나 된다는 건 놀람을 넘어 경악이었다.
아르웬과 세실리도 나와 100살 정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인간이기에 수명 차이를 고려한다면 적당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아이케르와 엘레나는 400년이다. 400년이라는 기간은 엘프에게조차 매우 긴 시간이다.
“엘프는 나이에 민감하지 않나요? 400년 이상은 그······ 엘프여도 많잖아요.”
“엘프임을 감안하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이지. 인간으로 따지자면 40살이나 차이가 나는 셈이니.”
“이이가 종족 전쟁에 나가고 있을 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어.”
엘레나의 추가 설명에 둘의 나이 차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슴에 와닿았다.
40살의 차이는 아버지와 딸 정도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녀급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그냥 이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고백했는데? 나도 알다시피 엘프는 성별을 막론하고 매끈한 얼굴이 대부분이거든. 이이처럼 호쾌하게 생긴 엘프는 드물어. 그래서 확 잡아챘지. 보기만 해도 든든하잖아?”
부창부수라고, 엘레나는 시원시원하게 아이케르와의 인연을 밝혔다.
실제로 아이케르처럼 상남자스럽게 생긴 엘프는 거의 없다. 특히 수염이 저런 식으로 자라는 경우는 몹시 희귀하다.
“그럼 나이 차이는요? 솔직히 그 부분이 가장 걸렸을 텐데.”
“처음에는 걸리긴 했지. 하지만 최소 300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거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그리고 엘프에게 나이는 크게 의미가 없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고 거절했는데 모두 의미가 없었소. 게다가 학자로서 나를 연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했으니 받아들였지.”
학자로서의 면모가 여기서도 튀어나오네. 하기야 아이케르는 살아있는 역사를 넘어 화석 그 자체이니 엘레나 입장에서는 군침이 돌만한 표본(?)이다.
게다가 얼굴도 본인의 취향에 딱 들어맞고, 심지어 사고도 상당히 열려 있으니 천생연분이었을 것이리라.
나는 둘의 나이 차이는 뒤로 묻어두기로 정하며 그들의 행복을 빌어줬다.
저렇게 서로 좋아하는데 내가 뭐라고 참견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응. 절대 안 되지.’
당장 나와 연을 맺은 여자만 해도 몇 명인데 참견하면 양심이 없는 거지.
아이케르가 순수한 의미로 도둑놈이라면, 나는 그냥 망나니에 수집가이니.
이쪽이 더 질이 나쁘다. 아이케르는 적어도 엘레나를 두고 다른 여자와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이작. 여왕님은 어디에 계시니? 너 혼자 성지에 왔을 일은 없잖아.”
“아르웬은 잠깐 책 보러 갔어요. 아마 곧 있으면 돌아올 거예요.”
“어머. 여왕님과 말을 놓은 거니?”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엘레나다. 나는 그녀의 유들유들한 말에 미소만 지었다.
아르웬과 내가 이어졌다는 소식은 알븐하임 전체에 퍼진 지 오래다. 씻을 때를 제외하면 사흘 동안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히 아리엘과 관련된 소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마리와 세실리가 잘 처신하면서 복귀한 것이다.
“그런 셈이죠. 알븐하임에서 주는 선물인데 거부할 이유도 없고.”
“잘 됐네. 약혼녀와 이야기는?”
“그것도 잘 됐어요.”
“그럼 복귀는 언제 할 거니?”
“그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확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악마 숭배자의 위협 이후 무력도 키워야 하고, 아리엘의 처우까지 정리해야 됐으니.
여기에 제논 일대기마저 막바지로 치닫고 있어서 조교직 복귀는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대답하기 힘든 모양이구나. 그래도 기다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렴. 정말 여의치 않으면 조기 졸업까지 시켜줄 수 있어.”
“그래도 되나요? 아직 배울 게 남았는데.”
“말만 졸업이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연구실에 찾아와도 돼. 너는 특수한 경우니까 어쩔 수 없잖니?”
“감사합니다.”
“대신 이거 하나만 알려주렴. 네가 예언자라던가 그런 류의 질문은 아니야.”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전할 때 엘레나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뒤에 저런 말을 붙인 걸 보면 개인적인 의문인 것 같다.
어차피 거부할 이유도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제논 일대기에 나오는 엘프 영웅, 루덴 있잖니? 다크 엘프 영웅과 합체하여 세계수를 폭파시키는 사람들.”
“네. 당연히 알고 있죠.”
“그 사람 혹시 이이를 모티브로 삼은 거니? 성격이 다르긴 해도 제논 일대기 속 원로원에게 배신당했다는 걸 보면 누가 봐도 내 남편이라서.”
“맞아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루덴의 모티브가 아이케르라는 건 변명할 여지 없이 전부 사실이다.
아이케르가 이리 호탕하고, 호쾌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지만 모티브는 모티브.
또한 아이케르는 알븐하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제 한 몸 불사르며 희생까지 할 애국자다. 이건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거 봐. 내 말 맞지? 당신이 루덴 맞다니까?”
“사정이 비슷해도 나랑 완전히 달라서 아닌 줄만 알았는데······ 이거 쑥스럽구려.”
“자랑스러워해야지. 무려 그 제논이 당신을 모티브로 삼고, 더 나아가 정말 멋진 최후까지 만들었잖아? 다크 엘프 영웅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만난다면 인사해야지.”
엘레나가 아이케르의 듬직한 등을 팡팡 두드리며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이케르는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평소 그녀는 할 말만 하는 편이지만 남편 앞이라 그런지 꽤 들뜬 모습을 보였다.
서로 금슬이 좋아보이니 보는 나조차도 흐뭇해졌다.
“아.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아이케르 씨에게 피해는 없었어요? 아이케르 씨는 정말로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 귀찮게 구는 사람들 몇몇이 있을 텐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 종족 전쟁 이후로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으니. 알다시피 난 역사 속에 담긴 인물. 그런 사람을 끌어내어 이용하는 것만큼 몰상식한 일은 없지. 앞으로도 이 활동을 유지할 거요.”
“다행이네요.”
“뭐. 부관을 포함한 몇몇 사람은 확인 차에 묻긴 했소. 대부분 놀리는 식이어서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갔지.”
“이제는 다 의미 없는 거 알죠? 세계수와 함께 산화하는 루덴 씨?”
엘레나의 능청스러운 놀림에 아이케르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여태까지 주변인에게 꽤 많이 당했던 모양이다. 정말로 루덴의 모티브가 너냐는 질문을 받았겠지.
왠지 남일 같지가 않다. 당장 나만 해도 예언자니, 회귀자니 뭐니 하면서 각종 질문 세례를 받았다.
“두 분 사이가 좋아보이시네요.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자식은 있으신가요?”
“당장은 없지만 조만간 가질 예정이오. 한 30년 뒤쯤?”
역시 엘프다 보니 시간 개념이 한참 초월했다. 30년은 인간에게 3년에 해당하니 그닥 긴 편도 아니다.
“원래는 출장이 끝나고 가질 예정이었지만 미룬 거라오. 제논 일대기 덕분에 숨겨진 역사가 속속 발견되니 하루라도 쉴 수가 없다고 하더군.”
“어······ 그것도 제 책임인가요?”
“네 책임이라기보다는 내가 학자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반 정도는 있겠지.”
“아이케르?”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우리 사이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 책을 찾으러 나섰던 아르웬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전부 읽겠다고 작정했는지, 턱 밑까지 쌓인 책 무더기를 양손으로 겨우겨우 받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대신 들어줬다.
안 그래도 다리에 힘이 풀려있는 그녀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찾아갈 걸 그랬다.
“오랜만입니다, 여왕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아이케르는 아르웬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원래라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인사를 했겠지만 이곳은 공석이 아니다.
또한 권위의식과 거리가 먼 아르웬인데다가 아이케르 본인의 명성도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야 괜찮지. 그보다 그대는 반려와 함께 온 것이냐?”
“예. 잠시 성지에 방문했는데 우연찮게 제논과 만나게 되었죠.”
“그렇군. 혹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니. 아니다.”
아르웬은 반갑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것도 잠시, 이내 무언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뒤이어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아이케르와 엘레나 부부를 바라보며 따스하게 말했다.
“나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대들에게는 피해일 터. 아이작?”
“응?”
“우선 그 책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우리만의 즐거움이 있는만큼 저들에게도 저들만의 즐거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아이케르는 스스로가 언급했듯이 위기의 상황이 아닌 이상 역사에 담겨있는 인물.
당장 칩거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있는데 우리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누군가 본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질 것이다.
물론 아르웬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 내가 있는 이상 그녀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일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대신 아이케르가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특히 그의 명성은 아직까지 건재한 걸로 알고 있다.
“알았어. 그게 낫겠네.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이케르 씨. 그리고 엘레나 교수님.”
“우리도 즐거운 시간이었다네.”
“나중에 아카데미로 복귀하면 연락해.”
서로 서로 좋은 인상만을 남기고 떠나려던 찰나였다.
“여왕님.”
“음?”
“좋은 반려를 찾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이케르가 훈훈한 미소를 지어주며 덕담을 던져줬다. 아이케르 성격상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아르웬도 그걸 알았는지 칭찬을 들은 어린애처럼 베시시 웃고는 내 팔을 살포시 붙잡았다.
나는 양손으로 책을 받치고 있었기에 말없이 그녀의 머리에다가 얼굴을 갖다 대었다.
“허허허.”
아이케르는 그런 우리 둘을 보며 호쾌하게 웃어줬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할아버지가 어울리는 한 쌍을 보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 * *
아이작이 알븐하임에서 며칠동안 행복한 신혼 아닌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어도, 제논 일대기 집필은 멈추지 않았다.
애당초 27권은 알븐하임으로 향하기 전부터 이미 완성돼 있었으며, 행성의 이름을 정하지 못하여 늦어진 것뿐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흐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고가 출판사에 도달했을 시간.
“으음······”
머스크는 원고와 함께 날아 온 ‘편지’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멋들어지게 자란 회색 콧수염을 손으로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것이, 그가 현재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원래 같았으면 원고가 왔다며 싱글벙글했겠지만, 원고뿐만 아니라 편지까지 함께 도착했으니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머스크 사장님. 27권을 발송함과 동시에 알려야 될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했다시피 제논 일대기가 슬슬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생각하는 완결 권수는 30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세기의 명작, 제논 일대기의 완결. 이 하나가 무게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제논 일대기가 완결된다고 해도 앞으로 읽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닐 테고, 더 나아가 현재 인구는 점차 증가세를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제논 일대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감히 귀족조차 헤어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이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금광이었으니. 지금도 비밀 창고에 금덩어리가 산처럼 쌓여있다.
‘어차피 완결 이후에 다른 작품도 낸다 했고.’
그 작품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만 아이작의 작품이니 분명 히트를 칠 게 뻔하다. 제논 일대기만큼의 파급력은 아니더라도 분명 가치가 뛰어날 터.
완결 권수를 알려준 걸 보면 지금이라도 대비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은 그에 따른 대비만 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머스크의 눈에 들어온 건 완결뿐만이 아니었다.
‘질문과 답변이라······’
독자들이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면, 작가가 책에 넣어서 답변하는 이른바 QnA.
완결을 매듭 짓기 전에 하고 싶었던 행사이자 여태까지 바빠도 너무 바빠 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악마 숭배자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기숙사에만 박혀있는 상황.
원고도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겠다, 여유 시간이 넘쳐나는 지금 같은 상황에 적합한 이벤트다.
물론 완결을 어떻게든 뒤로 미루고 싶은 아이작의 본심이 있는 건 덤. 그래도 팬들에 대한 예우만큼은 진심이다.
‘주의 사항은 작품 외 관련된 질문은 거부할 것. 문제는 이걸 곧이곧대로 발표한다면······’
자신이 힘들어지겠지. 분명 온갖 로비란 로비는 다 시도할 것이다.
아이작이 정체를 밝히기 전에도 뇌물을 주거나 협박까지 하는 등 난리도 아니다. 다행히 현재에 와서 그 부분이 전부 퇴색······ 되기는 개뿔 똑같았다.
아이작의 인간 관계는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협소하다. 그런데 그 협소한 관계가 말도 안 되게 강하다.
여기서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다. 자신은 돈이 많은 평민이지, 어느 나라의 왕자나 왕녀가 아니었으니.
‘이 인간 가만 보면 생각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꽤 있단 말이지?’
몇 번 만나보진 않았으나 꽤나 정확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아이작은 이 이벤트를 단순히 팬을 위한 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거대한 피바람이 발생할 지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상정하더라도 약하게만 생각했을 터.
어쨌거나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건 변함이 없다. 감히 하지 말자는 권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머스크는 편지를 다 읽고 난 후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원고를 전달해준 비서, 매튜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 말고 다른 것도 왔다고?”
“예. 메리 작가의 작품도 왔습니다. 2권과 3권을 동시에 보냈더군요.”
“오! 그거 정말인가?”
“예.”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 메리(체리)의 원고가 드디어 왔다는 소식에 머스크가 반색했다.
제논 일대기보다는 아니지만, 특유의 따뜻한 문체와 독특한 설정으로 절찬리에 인기를 끌고 있다.
제논 일대기가 머스크에게 있어서 신이자 존엄 그 자체라면,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효녀 작품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상당히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설정이 설정이다 보니 많은 남성들도 구독 중이다.
최근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신간이 오지 않았는데 2권이 동시에 왔으니 상관없다.
“좋아. 좋아. 벌써부터 돈이 굴러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곧바로 인쇄소로 발송해.”
“그······ 사장님?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응? 그게 뭔가?”
매튜는 사장의 질문을 살짝 우물쭈물하더니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벨루아 공국에 있던 인쇄소 있지 않습니까?”
“그 인쇄소가 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머스크는 매튜의 말을 듣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벨루아 공국은 세계의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립 국가.
그곳에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면 세계 무역에 큰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머스크도 그걸 잘 알고 있어서 투자금이 생기자마자 인쇄소를 설립했다.
왔다 갔다 할 바에야 차라리 벨루아 공국에 인쇄소를 세운다면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을 테니. 실제로 그 생각은 적중하여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였다.
“예. 테러로 인해 지반이 완전히 무너졌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머스크의 불안감은 적중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뒷골이 당겨왔지만, 일단 전후사정부터 들어야 된다.
이에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한 짓이지?”
“악마 숭배자가 자폭을 했답니다.”
“······허허.”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서 헛웃음만 나왔다.
아이작을 직접적으로 노릴 수 없으니 차라리 제논 일대기가 널리 퍼져나가는 걸 막겠다. 아무래도 이런 심보인 듯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이 떠맡게 될 테고. 다른 곳도 아니고 벨루아 공국에 설치된 지부가 타격을 받았으니 머리가 슬슬 아파왔다.
“······거기 직원들은?”
“총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중 2명은 안타깝게도······”
“위로금으로 금괴 3덩이를 보내고 편지까지 발송해. 이런 일은 진작에 예측했어야 됐는데······”
돈은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틀테면 죽은 목숨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금괴 몇 덩이를 추가로 보내도 가족을 잃은 유족은 신경 쓰지 않겠지. 그저 슬퍼할 뿐이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최초라는 것. 앞으로 다른 지부의 인쇄소가 테러로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머리를 자를 수 없다면, 차라리 팔다리를 잘라버리자. 팔다리가 무력화된다면 몸통을 노리겠지.
이대로는 안 된다. 사실상 저건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다.
그렇게 결론이 나왔겠다, 남은 건 행동뿐이다. 머스크는 자리를 박차며 매튜에게 지시했다.
“일단 저택으로 가도록 하지. 이건 나 혼자 상의할 게 아니야.”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네?”
매튜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머스크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돈이 있지.”
“··· ···”
“그러니 자네는 잠자코 날 따라오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매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말없이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