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71
■ 370화. 이벤트 (3) □ ᓚᘏᗢ
머스크의 권유로 시작한 이벤트는 예상했던대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낳았다.
세이비어가 정식으로 ‘성전’을 선포했으나 용의주도함으로 무장한 악마 숭배자는 좀처럼 처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자폭 테러까지 서슴치 않아 정보를 입수해도 섣불리 나설 수도 없다. 그사이 악마 숭배자가 도망치는 시간을 버는 건 덤이고.
하지만 머스크의 말마따나 목숨마저 아깝지 않은 보상이 있다면 모두 의미가 없다. 애당초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대신 시작할 때의 여론은 마냥 좋지는 않았다. 누누이 언급하지만 이 이벤트는 목숨을 걸어야 된다.
나와의 독대가 정말로 목숨을 걸만한 가치냐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벤트를 여는 건 아니지 않냐는 여론이 흘러나왔다.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자의 손아귀에······]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이어져 오던 끔찍한 풍습.] [현재 마을은 각 교단마다 이단심문관을 파견했으며, 그곳에서 고문을 비롯한 정서적 학대를 받던 아이들은 교단의 보호를 받아······]그러나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자에 빠져들고, 더 나아가 아이들까지 세뇌 및 고문했다는 소식이 퍼지고 나서는 180도 달라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은 보호의 대상이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절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심지어 범죄자들마저 쓰레기로 취급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그런데 저런 소식이 터져나오니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주변과 교류하지 않는 마을이 제일 취약하다.] [도시가 아닌 낙후된 지역이 악마 숭배자가 노리는 먹잇감.]이 세상의 정보는 오직 신문을 통해 흘러간다. 때문에 정보의 전달 속도가 느리거나 외진 곳은 아예 차단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노예와 같은 인신매매가 활성화된 곳이 있으며 대부분 광산이나 사창가에 팔리는 편이다.
심지어 영주와 인신매매범이 작당하여 마을 사람들을 팔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치안이 좋다는 건 어디까지나 수도 혹은 대도시에 한해서다.
악마 숭배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이 모양 이 꼴인데 마을 전체가 빠져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리르스 지역의 영주. 베르크 남작의 인신매매 정황이 밝혀져······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실종 신고를 무시한다며······] [영지에 정식으로 포함돼 있지 않은 마을이 가장 위험하다. 상층부조차 전혀 모르고 있던 끔찍한 사실.] [뇌물을 통해 귀족을 회유한 노예상들. 가축 취급을 받으며 생활하던 광산 인부를 구출해······ 이들조차 악마 숭배자를 맹신하고 있었다.]이벤트의 효과는 단순히 마을 하나를 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무슨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온갖 지역을 들쑤셨다.
그 덕택에 수많은 영주들의 비리 및 범죄 행각이 드러났으며, 가축처럼 취급받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둘 씩 수면 위로 드러났다.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자라는 사건도 충격이었지만, 그것을 한참 넘어서는 사건들이.
[구출한 노예 중에는 인간이 아니라 수인과 드워프, 심지어는 엘프도 있었다. 팔다리의 힘줄이 잘린 건 물론, 마나마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상등품’으로 취급받던 엘프. 이들은 대부분은 성노예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연금술 재료, 그리고 악마 소환을 위한 제물로도 활용되어······] [드워프는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수인은 독특한 성벽을 가진 사람들이······]미의 화신이자 신들의 선택을 받았던 엘프마저 악마 숭배자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엘프는 분명 강하지만, 이들조차 함정에 빠진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특유의 교만함으로 인해 방심하는 일이 잦으며, 악마 숭배자는 그걸 노려 납치한 것이다.
또한 악마 숭배자에는 강경파 마족도 있었기에 혼자 다니는 엘프를 납치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악마 숭배자와 결탁해 엘프를 집중적으로 노리던 범인은 현재 수색 중에 있어······ 다만 유통망이 넓어 오래 걸릴 것.] [알븐하임의 격노. 곧바로 수색대를 파견하여 범인을 잡는데 집중할 것.] [알븐하임은 혼자 여행하는 국민들에게 안전을 당부했으며, 강하다고 자만하지 말 것을 강조해······]당연히 알븐하임은 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자국민이 타지에서 노예로 팔리다 못해 ‘재료’로 사용되었으니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종족 전쟁 당시에도 몇몇 엘프들이 붙잡혀 노예로 취급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시 상황이기에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과 거리가 먼 시기다. 말이 많은 걸 넘어서 외교적인 분야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현재 헬리움이 치고 올라오는 중이라지만 알븐하임은 엄연한 패권국가. 이건 아르웬이 아이작과 이어지기 전부터 통용되던 것이다.
전생으로 치자면 미국이 분노를 터뜨린 격이라 다른 나라들이 눈치를 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
특히 사건이 발생한 나라, 미네르바 제국이 가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땅이 가장 넓은만큼 온갖 괴악한 사건사고들이 터져나오는데 엘프 노예까지 터졌으니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질어질한 사항인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엘프마저 당했는데, 과연 ‘마족’들이 당하지 않았을까? 악마 숭배자에 강경파 마족이 소속돼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진실.
[마족은 ‘악마화’를 통해 주변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재료 혹은 제물로 취급되고 있었다.] [성노예로 사용하면 악마가 되어 쓸모가 없다는 노예상의 증언이 이어져······] [다행히 헬리움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립된 상황이어서 피해자는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가끔 가다가 발생한 악마화 사태는 악마 숭배자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제논 일대기가 발간되기 전, 마족의 인식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데에 일조한 악마화 사건들.
특히 미네르바 제국은 황녀, 리나가 그 사건에 휘말려 큰 파장을 낳은 적이 있다.
허나 그 사건들 대부분이 악마 숭배자가 행한 일이라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었다.
안 그래도 악마 숭배자와 결탁한 고위층들을 숙청하느라 바쁜 상황인데, 이런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헬리움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이 너무 좋지 않자 미네르바 제국도 주변 국가의 협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라면 복잡한 절차를 통해 다른 나라의 병력을 투입시키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모두 해제한 것이다.
워낙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어서 완전히 뿌리 뽑기에는 제아무리 미네르바 제국이어도 한계가 있다.
다행히 지금 밝혀져서 망정이지, 시간이 조금만 흘렀더라면 악마 숭배자에게 완전히 잡아먹혔을 터.
지난번에는 테르스 왕국이 위기였다면, 이번에는 미네르바 제국에 위기가 닥쳐온 셈이다.
“많이 힘들어 보이네?”
“······죽을 것 같아.”
그리고 그 결과가 내 눈 앞에 앉아있다. 나는 며칠 사이에 퀭해진 리나를 쳐다봤다.
이벤트가 발생하고나서 꽤 고생했는지 다크 서클이 내려왔으며, 탱글탱글하던 피부가 약간이지만 상했다.
그나마 황금을 실로 짠 듯이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건재했으나 피로가 누적돼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하기 시러. 자고 시퍼. 디질 거 가타?”
그때 내 귀에 앙큼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현재 내 품에 안겨있다.
머리 위에 솟아오른 새싹과 등 뒤로 반투명한 날개. 나를 닮은 붉은색 머리카락과 황금의 눈동자.
유일무이의 천사, 아리엘이 리나의 속마음을 읽고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그런데 그 애는 누구야? 너를 닮은 것 같은데 머리 위에 새싹이랑 날개까지 달려있네?”
“설명하면 믿을거야?”
“네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 해도 믿을 걸? 어쨌거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응. 아리엘 천사 마자.”
리나의 질문에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할 대답을 대신 꺼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그녀를 꽉 껴안아줬다. 내가 안아주자 아리엘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리나는 퀭해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살다살다 천사까지 보네. 너도 참 대단하다.”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아니야?”
“나중에. 지금 생각할 게 많아서. 하암······”
정말로 피곤했는지 내가 보는 앞에서 크게 하품을 하는 리나. 하품을 하는 것조차 우아함이 깃들었다.
아무래도 행동이 몸에 배여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는 동안 아리엘을 내려다봤다.
처음 보는 리나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리엘. 문득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가 기억난다.
‘아버지가 헤프게 웃으시는 것도 오랜만이었지.’
아리엘을 번쩍 안아들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우리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인데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까지 생겼으니 웃음이 넘쳐나시겠지.
또한 마리가 미리 설명을 해놓은 참이라 내가 따로 말할 것도 없었다. 남은 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밖에 없었다.
“아리엘?”
“우응?”
“리나는 앞으로 뭐라고 부를 거야?”
“언니.”
역시 예상했던대로네. 나는 리나를 언니라 지칭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아델리아는 엄마라 부르고, 케이트는 언니라 불렀다. 그리고 리나는 언니라 불렀다.
이로서 확정됐다. 아리엘은 나와 연을 맺은 여인들은 엄마라 칭하고, 그게 아니라면 언니라 부른다.
‘남은 건 릴린데······’
이건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자. 릴리는 아리엘과 달리 신생아다. 걷기는커녕 기는 것조차 못하는 신생아.
그나마 몸을 뒤집는 건 가능하더라. 저택에서 낑낑거리며 몸을 뒤집었을 때 너무 귀여워서 까무러쳤다.
릴리와 아리엘. 우리 가문에 있어서 때아닌 선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나는 앞으로 무럭무럭 성장할 그들을 상상하면서 앞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졸음을 내쫒기 위해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눈이 반쯤 감긴 채 피곤해하는 리나가 눈에 들어왔다.
“리나.”
“······응?”
“많이 피곤하면 돌아가도 돼.”
현재 미네르바 제국은 건국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이비어가 타락한 추기경으로 위신이 바닥을 찍을 뻔했다가 케이트의 하드 캐리로 끌어올렸으나 제국은 그런 거 없다.
오죽하면 악마 숭배자의 보금자리라는 오명까지 쓰기 직전이다. 광활한 영토는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나 관리할 수 없다면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다행히 미네르바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통제하고 있었으나, 이건 단순히 나라와 나라가 아니라 세계 전체에 위협이 되었으니 문제가 된다.
“아냐. 괜찮아. 너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될 소식도 있어서.”
“소식이라니?”
“아바마마께서 너와 만나고 싶다 하셨어.”
“······?”
흘러가듯이 이야기를 한 터라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리나에게 ‘아바마마’는 단 한 명밖에 없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갖고 있는 인물, 황제. 그 황제가 나와 만나고 싶단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내 품에 안겨있던 아리엘이 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압빠. 황제가 머야?”
“응? 황제?”
“응.”
“음······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라에서 가장 높은······ 아니, 대단한 사람이란다. 나라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지.”
“아빠도?”
“어······”
나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리나의 눈치를 봤다. 리나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바로 대답했겠지만 앞에 있으니 조금 그렇다.
내 권위가 이미 황제를 넘어섰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리나도 이런 내 곤란함을 알아차렸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아리엘에게.
“아리엘이라고 했지?”
“응!”
“너희 아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너희 아빠보다 대단한 존재는 신들밖에 없거든.”
“우와······ 정말로?”
“그럼.”
리나의 대답에 나를 보는 아리엘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나는 그걸 보며 머쓱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나라가 무엇인지 모를 텐데 대단하다고 하니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래도 잘 넘어간 것 같아 다행이다.
“흠. 흠. 아무튼 황제 폐하께서 나를 보고 싶다고?”
“응.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야. 네가 거절하면 그대로 끝인 거지.”
“만나서 뭐 하려고?”
솔직히 황제와 만나봤자 할 일은 크게 없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식사를 하면서 간단한 대화만 하고 끝낼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나를 회유시키려 하겠지. 그리고 그 회유에 이용되는 건······
“너도 대충 알고 있잖아?”
“정략 결혼?”
“맞아.”
역시나. 나는 덤덤하게 차를 마시는 리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략 결혼을 요청할 것이다.
비록 레킬리스 공작가와 약혼 관계라지만 좀 더 확실히 묶어두기 위해 조치하겠지.
하물며 지금은 아르웬과 이어졌다는 소식도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으며, 세실리와의 관계도 머지않아 공표할 예정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나와 리나를 잇기 위해 황실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약간 성급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거라면 세실리와의 관계가 공표되거나 마리와 결혼하고 나서 해야되지 않아?”
“그러고는 싶지만 이벤트를 시작된 이후로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어서 그래. 악마 숭배자가 제국 내에 깊이 침투한 탓에 백성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건 물론, 우리를 불신하고 있지. 최근에는 영주가 영주민을 악마 숭배자에게 팔아넘기는 일도 발생했고.”
“흔들리고 있구나.”
간단명료한 내 말에 리나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잠깐 생각에 빠졌다.
이벤트가 시작된 이후로 악마 숭배자의 토벌에 가속도가 붙었다. 허나 가속도가 붙으면 붙을수록 수면 아래에 묻혀있던 끔찍한 만행들도 속속 터지기 시작했다.
그 만행을 덮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 속도도 속도지만 그 이벤트를 발췌한 사람이 나다.
제국 입장에서는 이벤트를 멈출 수도 없으니 차라리 내부적인 기강을 다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현명한 선택지일 것이다.
“물론 바로 결혼을 하자는 건 아니야. 자칫하다간 마리가 붕 떠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여론을 만드는 것밖에 안 돼.”
“그정도면 괜찮지. 시간은?”
“받아주는 거야?”
“안 받을 이유는 없지. 대신 이벤트 도중에 사건이 터지면 뒤로 미룰 수도 있다는 점. 이 점은 명심해줘.”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이벤트였으나, 도중에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특히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된다.
대신 악마 숭배자 쪽에서 이걸 교묘히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 무작정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나는 내 답을 듣고 전보다 밝아진 표정을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덕분에 한시름 놓았네. 다시 말하지만 곧바로 결혼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럼 너랑 내가 결혼하는 건 확정인 거네?”
“그런 셈이지.”
“그러면 그것도 하겠네?”
“··· ···”
내 장난스러운 질문에 리나가 찻잔을 든 상태로 정지되었다. 뒤이어 목덜미부터 붉어지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빨개졌다.
전부 말하진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겠지. 나는 낄낄 웃으며 쿠키를 하나 집어들었다.
리나도 내가 장난을 쳤다는 걸 뒤늦게 눈치 챘는지 찻잔을 내려놓고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못 됐다는 눈빛을 받는 건 덤.
이윽고 그녀는 앞으로 넘어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우아한 말투는 유지하고 있다.
“······결혼을 하면 할 수밖에 없겠지. 그건 일종의 관례니까.”
“정말 괜찮겠어?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정략 결혼만 하고 안 할 수도 있어..”
“아냐. 어쭙잖은 남자들에게 시집을 갈 바에야 너와 이어지는 편이 훨씬 낫지. 그리고······”
뒷말을 하다 말고 말을 멈추는 리나. 그녀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나를 힐끔거렸다.
부채질을 하던 손도 아래로 내려가더니 드레스를 꼭 붙잡았다. 왠지 몰라도 몸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이해할 수 없는 리나의 행동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후우······ 아냐. 이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지금은······”
“누구한테 부탁하지?”
“응?”
“어?”
리나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아리엘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에 우리의 시선이 그녀 쪽으로 향했다.
아리엘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리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앙큼하게 말했다.
“마리? 세실리? 아니면 가치?”
“······?”
“빨리 보고 싶다. 아니면 연습이라고 미리 부탁해볼까?”
뭐라는 거야. 나는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아리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걸 보면 그녀의 속마음을 읽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 뜻을 전혀 모르겠다.
“애들이 머라 하지 않겠지? 어차피 볼 거 다 볼 사이인데.”
“어, 어어?”
“이건 내가 변태여서 그런 게 아냐. 걔네들이 너무 야해······ 야해?”
도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그럴까.
“압빠. 야하다는 게 뭐야?”
“··· ···”
“변태는 또 머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리나를 스윽- 바라봤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열이 너무 올라서 그럴까.
쿵-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