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83
■ 382화. 주사위 (5) □ ᓚᘏᗢ
“······해서, 서로가 그 무기를 갖고 있으니 선제 공격은 하지 않아. 저쪽이 쏘면 우리도 쏘고, 우리가 쏘면 저쪽도 쓰니까. 다 같이 죽자 마인드가 아닌 이상 쓸 일은 거의 없어.”
“아, 아이러니하네. 그래도 이해는 가. 가진 게 많을수록 잃는 건 더 많을 테니까.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쓰진 않겠지. 말 그대로 반쯤 봉인된 셈이네.”
나는 리나가 전달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개념을 알려줬다.
개념 자체는 중세 사람인 리나조차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간단히 말해 너 죽고 나 죽자에 가까우니.
그것을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여러 문제점과 한계가 나올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언젠가 사용할 날이 올 것 같은데······”
리나는 나에게 미안한 시선을 주면서 조심스레 자기 의견을 꺼냈다. 나도 손수건을 그녀에게 돌려주며 무던히 답했다.
“사용하는 순간 전세계의 적이 되는 거지. 그래도 네 말대로 한계가 있어. 한 번 수틀리는 순간 유연한 대응따위는 집어치우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되거든.”
“그런 무기는 대체 왜 만든 거야? 아무리 적을 확실하게 굴복시키기 위함이라지만 너무 대책이 없는 것 같아. 심지어 하나만 있어도 도시가 소멸하는데 수천 개라니······”
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납득은 할 수 있어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굳이 리나만 아니더라도 당장 아인슈타인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다면 상대성 이론을 찢어버렸을 거라고.
심지어 지구조차 핵무기를 감축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고 있지, 없앤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강력하니까. 국력이 약한 국가라도 핵무기만 있다면 강대국이 군사적으로 어쩌지 못 하니까.
제아무리 미국조차 핵미사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를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하려면 제 2차 세계대전부터 설명해야 된다. 그러기에는 너무 길다.
대신 핵무기를 마구잡이로 찍어낸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대책이 없다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전쟁 이후 세계가 두 개로 쪼개졌거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두 개로 쪼개져? 너희 세상은 100개가 넘는 국가가 있다며.”
“사상 때문이야.”
“사상?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거?”
“맞아.”
사상 자체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철학도 지구처럼 고대 시절에 기반을 닦아 놓은지 오래.
더군다나 인간은 엘프의 문명을 지켜보고 배우면서 철학이 발달돼 있는 편이다.
게다가 종족 전쟁 직전까지 엘프에게 하등 종족이라 차별까지 받았다.
시대상에 어울리지 않게 인권 개념이 의외로 확실한 걸 보면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중요시 여기는 사상과 개개인을 중요시 여기는 사상. 이 두 개의 사상이 세상을 둘로 쪼개놓았어. 게다가 그 사상을 지닌 나라들이 각각 당대 최강국이었지.”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상들이네. 그러면 또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아?”
“기이하게도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어. 전쟁 직후라 싸울 여력이 없었기도 하고 전쟁 당시 두 국가가 서로 연합하고 있었거든. 대신 다른 나라들이 사상을 두고 전쟁을 벌였지. 우리 세상은 이걸 냉전이라 불러.”
“마치 종족 전쟁 직후 인간 연합을 보는 것 같네.”
“비슷해.”
여기에도 냉전 비슷한 상황이 있다. 종족 전쟁 직후 인간 연합이 바로 그 과정을 거쳤으니.
인간 연합은 미네르바 제국이 되었으나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충돌이 일어났다. 최후의 승자가 바로 현재의 황실이자 레킬리스 공작가다.
나머지는 후일 황실에 위협이 될 수도 있었기에 모두 싹을 잘라버렸다.
테르스 왕국도 이 전쟁에 참여했으나 큰 이득은 얻지 못했다. 반쪽짜리 냉전인 셈이다.
“그나저나 사상 때문에 세계가 반으로 분리될 수도 있구나. 그 조건이 강대국이어야 하지만 뭔가······”
“알븐하임과 헬리움의 미래 같지?”
“응? 어어. 맞아.”
속을 읽힌 리나가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은 덤.
나는 그 반응에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금만 깊게 파고들어도 간파할 수 있다.
당장 내가 살아있는 이상 직접적인 충돌은 없을 테지만, 알븐하임과 헬리움은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과, 악마에게 피해를 받은 자들.
종교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종족 차원에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당장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거야. 헬리움은 아직 외교에 있어서 부족한 면이 많고 증명해야 할 것도 있으니까. 더 나아가 아르웬과 세실리가 통치하는 이상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거의 없을 테고.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그럼 우리 제국은? 제국은 어떻게 돼?”
“난 예언자가 아니야, 리나.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그리고 내가 살던 세계와 이곳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아.”
내 단호한 대답에 리나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동안 여유롭게 쿠키를 하나 집었다.
솔직히 이 세상은 변수가 너무나도 많아 확답을 줄 수 없다. 중간에 신이 개입할 수도 있고, 악마 숭배자가 개짓거리를 저지를 수도 있다.
실제로 악마 숭배자가 몇몇 역사를 비틀었다는 정황이 있지 않은가. 최근 엘레나가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있어. 너희 세상에도 제논 일대기 같은 책이 있어? 정확히는 세상을 뒤집어버린 책이 있는지 궁금해.”
“아까 말했던 전체를 중요시 여기는 사상. 그 사상이 깃든 책이 발간되고 세계가 반으로 분리됐지.”
“그렇구나.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사상이 나라의 기둥이 된 거야? 그것도 최강대국 중 하나가?”
“설명하기에는 좀 길어서 넘어갈게. 다른 건?”
리나는 이후로 이것 저것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대부분 정책과 정치, 그리고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과학은 내가 아무리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반면 위의 것들은 아니다.
중세 시대를 표방하고, 더 나아가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기이하게도 인권 개념이 흐릿하게나마 잡혀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테르스 왕국을 보아라. 제이로스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혔고, 최근 제논 일대기 때문에 또다시 혁명이 발발할 뻔했다.
비록 둘 모두 무위로 돌아갔으나 백성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없으며, 그들도 힘을 합치면 무서운 존재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너희 세상에 귀족은 없었어?”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어. 있는 곳에서도 체제가 갈리는 편이지. 황제 혹은 왕이 모든 걸 관할 및 통치하는 전제군주제. 그리고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 입헌군주제 등등.”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 듣기만 해도 군주의 권력이 대폭 줄어드는 정책이네. 그게 가능한 거야?”
“어느 정도 단계를 거친 후에 정착된 체제야.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현대의 입헌군주제가 완벽하게 정착하기 전까지 여러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사법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이후에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차례차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입헌군주제가 완성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는 두 번째 단계에 간신히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조금이나마 자리잡기 시작하는 시기.
알븐하임과 헬리움은 종족 특징으로 인해 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니 다른 것과 비교하기가 어렵다.
“단계라······ 우리 세상에도 네가 언급한 체제가 들어서려나?”
“난 힘들 거라고 봐. 설령 들어온다고 해도 근본은 다르겠지.”
“어째서?”
“여기는 집단도 집단이지만 개개인의 힘이 너무 강하니까.”
지구의 인류는 개개인으로 분류하면 너무나도 나약하다. 덩치 큰 개 한 마리조차 못 이기는 사람이 허다하다.
하지만 다른 동물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지능이 있어 먹이사슬 최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반면 이곳은 노력과 재능만 받쳐준다면 아버지처럼 막강한 군사 전력이 될 수도 있다. 칼질 한 번에 적들이 쓸려가는 그런 전력이.
이건 문명이 발전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강한 무력을 지니면 지닐수록 그에 따라 막강한 권력이 딸려올 테니까.
그걸 잘 조율하는 것이 리나 같은 정치인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너도 정치학을 배웠으니 알고 있을 거야. 정치는 기본적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자 권력의 핵심.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힘이 있다면 쉽게 무너질 거야. 당장 나를 보면 알 수 있잖아?”
“어렵네. 우리 쪽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모험가나 용병도 포함시켜야 되겠어.”
“뭐, 굳이 조언을 하자면 왕이나 귀족보다는 백성들을 더 신경 써. 테르스 왕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거든.”
그 악명 높은 나치 독일마저 민심을 한데 모았기에 광기 어린 전쟁을 터뜨리는 게 가능했다. 그만큼 민심은 국가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도 똑같다. 현재 나의 위상이 신 바로 아래에 위치했더라도 민심 앞에서는 얄짤없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문명은커녕 콩가루마냥 흩어졌을 테니까.
“그렇구나. 민심이라······”
리나는 내 조언을 듣고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호수처럼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더욱 깊어진다.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몰라도 부디 좋은 쪽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그럼 아이작. 이 세상은 네가 살던 세상과 몇 백년 정도 차이가 나?”
잠시 후, 리나가 좀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두 눈은 전보다 반짝였으며 왠지 모를 깊은 신뢰가 담겨있었다.
나는 눈에 띄는 리나의 변화가 약간 당황한 것도 잠시, 곰곰히 생각했다.
“아마······ 최소로 잡아도 300년일 걸?”
“300년? 그렇게나 길어?”
리나가 감탄 아닌 감탄을 드러냈다. 난 짧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에게는 까마득히 먼 세월인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는 현대에서 살면서 역사를 배운 사람이고, 리나는 현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니.
나는 목을 축이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더 길어질 수도 있어. 여기는 과학 발전에 제약이 될만한 부분들이 많고, 마력 기관도 인간이 아니라 드워프가 발명했잖아. 무엇보다 종족 전쟁에 버금가는 전쟁이 무조건 터진다는 보장도 없고.”
“너는 꼭 전쟁이 터져야만 과학이 발전한다고 생각해?”
“그건 우리 세상에서도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가고 있는지라 확답을 못 내리겠네. 하지만 전쟁이 과학 발전에 영향을 준 건 확실해.”
인간은 필요에 의해 과학을 발전시키지만, 전쟁은 그걸 대폭 앞당기는 부스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2차 세계대전 전후와, 냉전 전후의 과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하면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같은 것도 거의 없을 테고.’
결정적으로 과연 제국주의가 깊게 박힐지 의문이 든다. 산업 혁명 이후 유럽에 제국주의가 유행을 타고 그 영향으로 1차 세계 대전이 터졌으니.
하지만 이 세상은 지구와 달리 국가가 별로 없다. 손으로 하나 하나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식민지라는 개념이 거의 없을 수밖에. 산업 혁명이 발발해도 제국은 그냥 자기네 영토에서 물자를 획득하면 끝이다.
“누누이 언급하지만 내 말을 맹신하지 마. 내가 살던 곳과 이곳은 근본 자체가 다르다는 걸 명심해.”
“알았어. 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뭐든지.”
“그런 지식이 있으면서 왜 가만히 있던 거야?”
나는 쿠키를 집다가 멈칫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 했으나 아주 날카로운 질문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침착을 되찾으며 쿠키를 입에 넣었다.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히 퍼진다.
이윽고 잘게 부서진 쿠키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리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은 회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 제논 일대기가 있잖아.”
“내 말은 왜 처음부터 그쪽 세상을 바탕으로 둔 책을 내지 않았냐는 거야. 이 세상은 인간보다 손재주가 훨씬 뛰어난 드워프도 있고, 더 나아가 그쪽 세상에 없는 마나와 마법도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거지.”
“너도 처음에는 내 말을 믿지 않았잖아?”
“난 과학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알고 있는 ‘역사의 흐름’ 그 자체지.”
역사의 흐름이라······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찻잔을 들었다.
실제로 본질이 다르다지만 흐름 자체는 매우 비슷한 구석이 많다.
우선 종족마다 달라도 문명을 세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흐름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
이외에 제이로스 혁명이라던가, 과거 세이비어가 저질렀던 만행, 그리고 종족 전쟁까지.
과학과 문화가 다르다 해도, 흐름은 아주 유사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산업 혁명이 터지게 되면 자연스레 노동자들을 향한 탄압이 이루어질 테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가 탄생하는 건 사실상 ‘운명’이라 단정지을 수 있다.
달그락-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리나는 기대된다는 듯이 미소 지은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예언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해진다.
“일단 네가 알고 가야 할 사실이 있어. 제논 일대기는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제논 일대기가 완성된 이후에 내 세상과 관련된 소설을 쓸 거라는 점.”
“정말로 쓸 거야?”
“이미 쓰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하지만 네 말을 들으니 살짝 걱정되네.”
“뭐가?”
“리나.”
리나는 분명 똑똑하고 명석하다. 그와 동시에 이성적이며 계산적이다.
국가에 이익이 되는 거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성격은 아니나, 그녀는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이미 그녀는 나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상황이다.
저렇게 말하는 건 분명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걸 얻기 위해서겠지. 예를 들자면 석탄, 석유와 같은 ‘자원’이라던가.
당장은 기술이 없어 다루기 힘들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네르바 제국은 안 그래도 땅덩어리가 넓어 무슨 자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내 말을 듣고 닥치는대로 모은다면?
“급진적인 발전은 필연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게 돼. 그것이 과학이든 문화든 상관없어. 내가 살던 세상도 그랬고, 이 세상도 그랬지.”
“··· ···”
“내가 살던 세상에도 제이로스 혁명과 비슷한 사건이 터졌어. 프랑스 혁명이라고, 제이로스 혁명이 성공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어떤지 알려줄까?”
“어, 어떻게 됐어?”
“왕과 왕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귀족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어. 그들을 단두대로 올린 사람은 바로 시민, 즉 평민이었지.”
“··· ···”
꿀꺽-
내 말을 들은 리나가 긴장한 낯빛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후로 증기 기관차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의 산물들이 등장하고, 종족 전쟁 같은 세계구급 전쟁이 2번씩이나 발발했지. 너는 그 전쟁 중에 희생자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그, 글쎄? 종족 전쟁에서 희생자가 300만 정도 됐으니까 비슷하지 않을까?”
종족 전쟁 중에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약 300만 명. 그 중에 학살된 수인의 숫자가 대부분이다.
의외로 적다고 할 수 있으나 백병전이 주를 이루었기에 어찌 보면 납득이 가는 결과다.
대량살상마법도 당시 인간은 거의 쓰지 못했고, 엘프는 그냥 안 썼다.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하지만 당시 수인은 부족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인구 자체가 상당히 적었다. 그래서 종족의 씨가 마를 뻔한 것이다.
본래 문명이 세워져야 인구의 숫자도 불어나는 법. 수인의 인구가 짧은 시간에 대폭 증가한 이유도 뒤늦게나마 문명을 세워서다.
“총 1억이야.”
“뭐, 뭐?”
“1억의 희생자가 발생했어. 단 두 번의 전쟁으로.”
“··· ···”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리나의 입이 꾹 다물렸다. 과학과 문화의 급진적인 발전은 이와 같은 끔찍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다음 차기작을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 미래에서 온 지식이라며 리나처럼 따라 하려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계 2차 대전을 적는 거다. 과학과 문화가 크게 발전된 상황에서, 전쟁이 터지면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지.
“어디까지나 선택은 네 몫이야. 문명이 발전하면 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기 편해질 테니까. 게다가 내가 경고까지 한다면 전쟁이 터질 가능성도 낮아질 테고.”
“······어차피 책으로 낼 텐데 나에게 말할 이유가 있어?”
“너는 이 나라의 황녀니까. 그리고 책을 내면 보나마나 싸우게 되겠지. 책에 나온 걸 따라 해야 된다는 사람들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쪽. 세상이 원래 그렇잖아?”
드워프는 내가 경고를 날리든 말든 참신하다며 다 따라 하겠지만. 실제로 루미너스도 드워프들이 전차를 끌고 온다고 예언까지 했다.
리나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꽤 힘든 결정인 듯싶다.
“······그냥 미래에 어떤 자원을 쓰는지 알려주면 안 될까?”
대신 욕심은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피식 웃었다.
“알려주면 뭐 하려고? 당장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 석탄은 좀 다르겠다.”
“석탄? 그 까만 돌을 말하는 거야?”
“응. 조만간 석탄의 수요량이 폭증할 거야. 내가 살던 시대에도 석탄은 꾸준히 연료로 사용됐거든.”
“알았어. 나중에 오라버니에게 말해야겠다. 다른 건?”
“또 뭐가 알고 싶은데?”
“문화라던가, 아니면 내가 관심 있어 할 만한 거라던가?”
“흠······”
심각한 주제를 뒤로 하고 가벼운 걸로 넘어가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특유의 우아한 기품을 뿜내는 리나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리나가 정말 관심 있어 할만한 것. 딱 하나가 있다.
“하나 있긴 있네.”
“그게 뭔데?”
곧바로 관심을 드러내는 리나. 나는 최대한 웃음을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포르노라고. 어떤 거냐면······”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리나는.
“야! 너 진짜!!”
손에 찻잔을 집어던질 뻔했다.
씩씩거린 탓에 얼굴은 새빨개지고, 새하얀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이를 악 물고 있는 모습.
‘아.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