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87
■ 386화. 소 뒷걸음 (3) □ ᓚᘏᗢ
난데없이 팬덤 싸움으로 아이작을 포함한 세상이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세상이 예상치 못한 사안으로 시끄러워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제논 일대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던가······
“정말 이런 걸로 놈에게 타격이 갈까요?”
제논 일대기가 추락하는 걸 즐겁게 지켜보는 사람이라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촛불 하나만이 주위를 밝히는 공간 속에서 한 남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상당히 젊은층으로 추측되는 목소리였으나 워낙 어두운 탓에 실루엣만이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대신 미인은 그림자마저 잘생겼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높은 콧대와 날카로운 턱선으로 하여금 그의 미모를 짐작케 만들었다.
“원래 이런 건 내부부터 살금살금 무너뜨려야 하는 법이지. 새하얀 종이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조용히 잠식하면 그만이야.”
젊은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목소리하며 몸 전체를 뒤덮는 로브까지.
누가 보아도 수상쩍어 보이는 생김새였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저 정도는 마법으로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이에 그는 두 손을 맞잡으며 잠깐 고민하더니 조심스러운 태도로 앞의 인물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너무 하찮게 느껴집니다. 겨우 이걸 위해 긴 작업을 거쳤다고 하니······”
현재 세상에 퍼지고 있는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소문. 남자가 보기에 이들이 하는 짓은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아이작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아닌 겨우 팬덤의 분열이라니. 심지어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이곳저곳에서 몰래 퍼뜨렸다.
그만한 자금과 인력이 있으면서 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불가능했다.
아예 작정하고 총공격을 퍼부어도 모자랄 판에 장난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직 새파란 놈답게 식견이 부족하군. 아니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그런 건가?”
그 말에 소리없이 웃은 낯선 이가 깔보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쳤다. 명백히 남자를 아래로 보는 태도다.
그런 태도에 남자도 기분이 나빠졌는지 눈 밑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지금 울컥해봤자 하등 좋을 게 없다.
남자는 최대한 침착을 되찾으며 퉁명스러운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도 처음이지 않습니까? 제논 일대기와 같은 작품은 역사를 뒤져봐도 없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영웅을 소리없이 죽이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진행하고, 또 성공했지.”
“··· ···”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대답에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처럼 그나마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전, 이 세계는 가히 영웅의 시대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마나와 마법이 존재하는 만큼 일신의 무력이 강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만큼 권력이 집중된다.
하물며 종족 전쟁 전후로 수많은 전쟁이 터졌으니 영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영웅을 소리없이 죽이는 방법을 터득했다니, 새삼 자신이 속한 곳, 악마 숭배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됐다.
“영웅에게는 추종자가 생기기 마련이지. 추종자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수 있지만, 때로는 독을 품은 암기가 되기도 해. 게다가 영웅이라 해서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거든. 종족전쟁 당시 아이케르조차 원로원에게 휘둘려 결국 투옥당했지.”
“아이케르? 하지만 엘프는······”
“엘프라 해서 욕심이 없는 줄 아나? 교만이야 말로 궁극의 죄악. 굳이 깊숙히 침투하지 않아도 이용하는 건 쉽지. 그놈들은 알아서 자멸할 테니까.”
현재 악마 숭배자가 대대로 척결되고 있는 상황이나, 알븐하임에서 악마 숭배자가 등장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아르웬과 대놓고 척을 졌던 피렌조차 악마 숭배자에 소속돼 있지 않았다.
그딴 놈들에게 왜 자신이 힘을 빌려야 하냐는, 지극히 엘프다운 발언과 본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는 풍문이 들릴 정도다.
그는 순수히(?) 권력을 독점하고 싶었기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인간보다 엘프가 이용하기 쉬운 종족이라네. 워낙 앞뒤가 꽉 막혀있어서 한 번 선동을 당하면 끝까지 믿거든.”
물론 종족 전쟁 당시 악마 숭배자가 술수를 부린 건 맞다. 간악한 전략을 통해 아이케르를 자극시켜 원로원과 본격적으로 대치하게 만들었으니.
비유를 하자면 화약이 가득 찬 공간에 작은 불똥을 튕긴 셈이다.
“그리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 뚫을 수 없다면 이쪽으로 오게 만들거나, 아니면 내부부터 천천히 무너뜨리면 돼. 더군다나 예술가는 명예야말로 모든 것. 그 명예가 더럽혀진다면 방어는 알아서 느슨해질 걸세.”
“느슨해져도 그의 옆을 지키는 수호자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그의 곁에는 케이트 추기경이 있는 데다가 헬리움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지켜주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들중 한 명이 공들여 진행했다던 그 계획조차 무위로 돌아갔지 않습니까.”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
남자의 하나 하나 맞는 말에 낯선 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말해 남자가 언급한 계획은 거의 100% 확률로 성공해야 정상이다.
그 계획이라는 건 바로 아이작의 몸을 빼앗아버리는 것. 이 세상은 사령술조차 간악한 마법이라며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마 숭배자는 사령술을 비롯한 주술에 깊은 지식을 가진 집단. 순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밥 먹듯이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계획이 실패했으니 경악보다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도 원인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영혼이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육체를 준비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거짓 신들에게 축복을 받는 놈이니 예상보다 더 강했던 거겠지.’
당장 지금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전설 속의 천사가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리라.
때문에 악마 숭배자는 다른 계획을 수립했다. 외부에서 무너뜨릴 수 없다면 내부부터 차근차근 부수자고.
외부의 공격에서 무너진 제국은 재건할 수 있지만, 내부부터 무너진다면 답이 없어진다. 예로부터 통용된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어딜 가나 과격해지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싫어하는 세력도 분명 나올 테고. 그러면 그 화살은 자연스럽게 제논을 향하게 될 거야.”
“너무 비약적이지 않습니까? 그전에 제논이 해명을 하면요?”
“그러면 그 극단적인 추종자를 더 싫어하게 되겠지. 네놈들 때문에 제논이 직접 결말을 발설했다면서. 서로 싸우면 싸우는대로 추종자가 줄어들 거야.”
“아.”
남자는 감탄했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치닫게 된다.
아이작이 현재 상황을 보면서 생각했듯이, 그야말로 외통수를 맞은 격.
하지만 이것마저도 과연 아이작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명예를 깎는 것밖에 되지 않는가.
“그게 끝입니까? 제논의 명예를 깎아버리는 게?”
“아주 중요하지.”
“왜죠?”
“여태까지 영웅들이 그런 식으로 무너졌으니까. 영웅은 신과 같은 초월자가 아니야.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며,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지면 장애를 얻는 필멸자지.”
제아무리 주변에서 예언자라니, 회귀자라니 추앙해도 아이작은 근본이 필멸자다.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업적을 세웠기에 신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을 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을 가려주고 있는 것이 명예다. 그 명예가 조금씩 뜯겨져 나간다면 파고들 틈이 보일 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건 영웅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때로는 심한 인격적 결함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게다가 제논이 결말을 좋게 낸다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좋게 낸다라······ 예를 들면? 자네도 알다시피 세계수조차 버티지 못한 어둠이라네. 그런 어둠을 릴리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제논 일대기를 싫어하는 것 치고는 내용은 알고 계시는군요?”
놀람과 비꼼이 함축된 질문. 낯선 이는 그 질문에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를 잡을 수 있으니까.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네, 새파란 애송이.”
“······그래. 그건 그렇다 칩시다. 오히려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군요.”
남자는 속에서부터 우러러 나오는 화기를 조금 가라앉히고 특유의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릴리는 신에게 사랑을 받는 성녀. 그런 존재가 조금씩 시들어가는데 과연 신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봅니까? 탐식에게 당한 진조차 각성하고 나서 전부 되돌려줬으니 릴리라 해서 다를 건 없죠.”
“정화는 불가능하다네. 그런 거라면 그런 위기감을 조성할 이유가 없지. 그리고 자세히 읽지도 않았군. 마지막 묘사를 보면 쐐기가 왼쪽 가슴을 관통했어. 다시 말해 심장이 있는 곳이지.”
“··· ···”
왜 저렇게 잘 아는 거야. 남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로브로 가려져 있다 해도 목소리가 한없이 진지했으니까. 만약 여기서 웃기라도 했다간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심장은 생명의 근원. 필멸자들은 심장이 손상되면 대개 죽음을 맞이하지. 이건 릴리라 해서 다를 게 없어.”
“진처럼 천사로 각성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필멸자가 초월자로 승천할 수 없다. 육체가 다르기 때문이지.”
“그럼 영혼만 빼내서 초월자가 되는 건······”
싸아아아-
남자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낯선 이에게서 사나운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나왔다.
그 위압감을 느낀 남자는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입을 한 번이라도 벙긋했다간 목이 날아갈 것 같았으니.
단순히 기운을 발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그러한 착각이 들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건가.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낯선 존재는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명백히 ‘분노’와 ‘증오’를 내포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말 조심하게나.”
“··· ···”
“아버지 없이 생명이 탄생하는 건 불가능한 일. 자연조차 ‘씨앗’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땅에 불과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순리. 가짜 신들이 우매한 필멸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에 모르는 진실이지.”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아버지 없이 자식이 태어날 일은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
남자는 낯선 존재의 분노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하지만 제논은 작가입니다. 놈이 마음대로 적을 수 있다는 거죠.”
“··· ···”
“만약에 놈이 그렇게 적는다면, 어떻게 나설 생각입니까?”
“거짓된 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지. 이건 만물의 아버지가 떠나기 전 그들에게 걸어놓은 제약. 진실은 은폐할 수 있어도 거짓말을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아이작이 모라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디아볼스를 먹어치워 영혼이 타락한 진을 정화한 뒤, 초월자로 환생시킬 수 있냐고.
그리고 루미너스는 가능하다는 대답 대신 천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려줬다.
어찌 보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것이지만, 사실상 답을 회피한 거나 다름없다.
이후로 아이작이 자연스레 천사로 환생시키는 걸 포기했으니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았다.
“천사로 부활시키면 우리야 좋지. 훗날 먼 미래에 진실이 알려진다면 놈의 명예를 제대로 깎아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그럼 제논이 진을 죽인다는 소문은 왜 퍼뜨린 겁니까? 단순히 진과 릴리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면 충분한데.”
“분열을 시키려면 확실하게 시켜야 됐으니까.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려서 이어지게 만들 건데 신경 끄게나.”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진짜 악마도 아니고 둘을 찢어놓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테니.”
전혀 예상치 못한, 그것도 매우 충격적인 전개가 이어진다는 것을.
“아니면 차라리 진이 릴리를 옆에서 간호하다가 같이 죽는 전개가 나아.”
아이작이 악마보다 더한 놈이다라는 것을.
“그것만 해도 난리를 칠 것 같은데요?”
“그만큼 둘의 영향력이 크다는 거지.”
이때까지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