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89
■ 388화. 주술 (2) □ ᓚᘏᗢ
다시 말하지만 아리엘 머리 위에 돋아난 새싹은 뽑을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뽑으려 할 때마다 뿌리가 깊숙히 박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힘을 강하게 줘도 마찬가지였다.
칼로 자르는 건 당연히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래서 새싹은 가만히 놔두기로 결정했다.
헌데 지금을 보아라. 레오나의 손에는 아리엘의 새싹이 쥐어져 있다.
심지어 리필이 되는 건지 새싹을 뽑았던 정수리에는 또다른 새싹이 돋아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리엘?”
“웅?”
“그······ 저 언니가 아리엘 머리에 있던 걸 뽑았는데 안 아프니?”
나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으나 일단 아리엘의 상태가 우선이다.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레오나의 손에 쥔 새싹을 바라봤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금빛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안 아픈데?”
“안 아파?”
“응.”
안 아프면 다행이긴 한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뭐부터 해야 할 지 감조차 못 잡겠다.
이것도 레오나가 언급한 주술의 일종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나는 레오나가 쥔 새싹과 아리엘 머리 위에 새로 돋아난 새싹을 번갈아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아리엘? 잠깐 머리 좀 내밀어 줄 수 있니?”
“머리를?”
“응.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이렇게?”
내 부탁에 작달만한 머리를 내미는 아리엘. 정수리에 난 새싹은 오뚜기처럼 파릇파릇하게 솟아나 있었다.
나는 그 새싹을 조심스레 붙잡고는 힘을 약하게 주면서 잡아당겼다. 레오나처럼 쉽게 뽑힐까 싶어서.
하지만 새싹은 아까 전과 달리 소나무가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을 좀 더 강하게 줘도 변화는 없었다.
“스읍······ 안 되는데?”
“내가 한 번 해볼게.”
내가 손을 놓고 마리가 이어서 시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심지어 뿌리까지 뽑을 기세로 강하게 당겼는데도!
이윽고 마리까지 손을 놓자 아리엘은 숙였던 머리를 다시 천천히 들었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는지, 표정에는 뭘 했냐는 생각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진심을 담아 레오나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정말 손쉽게, 마치 잡초를 뽑듯이 뽑았는데 나와 마리는 기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특별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이것도 주술의 일환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레오나도 이 상황이 얼떨떨했던 건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그, 글쎄? 그냥 간절히 바라니까 되던데?”
“그런 게 주술인 거야?”
“말했잖아. 주술의 원천은 믿음이라고. 이 믿음에는 그 어떤 불신도 가져서는 안 되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이 새싹을 뽑을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안 돼. 내가 이 새싹을 뽑게 해주세요, 라고 해야 되는 거지.”
레오나는 한 손에 새싹을 쥔 채 알기 쉬운 설명을 꺼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아리엘의 새싹을 뽑은 건 어디까지나 장난식에 가까웠으며 진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에 의문을 담아 묻자 그녀가 난처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놀랐어. 이렇게 쉽게 뽑힐 줄은 생각치도 못했거든. 네 생각대로 예시를 둔 거에 가까웠고.”
“한 번만 더 해볼 수 있어?”
내 요청에 레오나는 스스로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다가 말고 아리엘의 머리 위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어서 아까 전처럼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줄기를 붙잡은 후, 손목을 가볍게 튕겼다.
뽁!
그러자 너무나도 쉽게 끊어지는 새싹 줄기. 잠시 후, 그 끊어진 부분으로부터 또다른 새싹이 쑤우욱- 하고 자라났다.
아까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현상에 레오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난감했다.
“······하나 가질래?”
“······응.”
일단 새싹 하나는 가지도록 하자. 나는 레오나가 수줍게 건네는 새싹을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정작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아리엘은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채 우리를 번갈아 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속마음을 읽는 것 같았는데, 다행스럽게도 교육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아, 아무튼 주술이 어떤 건지 잘 알겠지?”
“예시가 너무 명확해서 더 심오해지는 기분이야.”
“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걸 가능케 만들어주는 힘. 그게 바로 주술이지 않을까 싶다.
단순해 보여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심오하며 그 끝을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
마법과 달리 순리를 거스를 수 있으나 불안정하고, 또 불완전한 능력.
“주술이 원래 그런 거야. 인간이 과거와 달리 주술을 멀리 하고 마법을 채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
“그럼 수인은 어째서 마법을 멀리하고 주술을 채택한 거야?”
“수인인 내가 이런 말하기는 뭐 하지만 수인은 사고방식이 여러모로 단순하잖아? 단순한만큼 믿음이 굳건하고 때가 묻지 않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설명이다. 수인은 겨우 300년 전에 문명을 건립하여 옛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대족장부터 시작되는 정치 체제가 건재하며 건국제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
흔히 민간 신앙이라고도 불리는 샤머니즘. 그 이념이 애니머즈에 깊숙히 박혀 있기에 주술이 주를 이룬다.
하물며 레오나의 말마따나 수인은 복잡한 걸 싫어하고 단순한 면모가 있기에 주술이 적합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수인이 무식하다는 건 아니다. 그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고 호전적일 뿐이지 결코 우둔하지 않다.
“악마 숭배자가 주술에 도가 튼 것도 그 특유의 광신 때문일 가능성이 커. 그들이 누구를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성력이 없으니 자연스레 주술로 넘어가는 거겠지.”
“그럼 수인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거나 빙의를 한 적이 있어?”
“절대 아냐. 사령술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니 당연히 안 하고, 빙의는 주술을 시전한 사람이 당하는 거야. 빙의를 통해 조상들에게 조언을 받거나 판결을 내리는 식으로. 아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주술자가 빙의를 하는 경우는 이때까지 없었어.”
확실히 빙의는 보통 당하는 거지 주체가 되는 능력이 아니다. 아리엘이 맛있게 먹었던 그 악마 숭배자가 특이 케이스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말을 듣고나니 궁금한 게 생겼다. 레오나는 빙의를 통해 조상들로부터 조언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순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정확히는 아직까지 현세를 떠돌고 있는 영혼들.
“그런데 조상들에게 조언을 받는다고?”
“응.”
“조상들의 영혼이 현세에 남아있는 거야?”
“남아있는 건 아니고 발할라에 계시는데?”
발할라는 모두 알고 있다시피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공간이다. 전사들의 천당이자 용맹한 자들만이 죽어서 갈 수 있는 곳.
알븐하임의 수도 위그드라실, 그리고 수인의 문화 중 하나인 홀름강처럼 이 세상은 북유럽 신화가 곳곳에 묻어있다.
지구와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군데군데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단순히 우연이라 취급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나는 레오나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책을 많이 읽어서 발할라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
“발할라는 종족을 불문하고 용맹한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천당이지?”
“그렇지.”
“그리고 그 전사들은 신들로부터 축복을 받아 천사로 다시 태어나는 거고.”
“맞아. 역시 잘 알고 있네.”
그렇다면 어째서 천사가 태어나지 않는 걸까. 나는 그 의문이 들어 아리엘을 쳐다봤다.
아리엘은 지극히 특수한 케이스를 통해 태어난 천사이니 예외로 둬야 된다.
또한 레오나의 말대로 천사로 분류될 영혼이 있는데도 태어나지 않는 거라면, 필시 내부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악마 전쟁 이후 태어난 천사는 아리엘을 제외하고 단 한 개체도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전사들이 태어나 죽었는데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일단 마음에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괜히 파고들어봤자 얻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럼 지금도 주술을 통해서 조상의 영혼을 데려올 수 있어?”
“가능해. 나도 조건만 갖춰지면 할 수 있어. 한 번 해보려고?”
“그정도까지는 아니야. 단지 악마 숭배자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궁금했거든.”
“있긴 있지. 조상의 영혼을 호위로 쓴다던가, 아니면 부적을 만든다던가.”
“그건 좀······”
전자는 너무 미안해지는데. 나는 살짝 꺼려했으나 내심 궁금해졌다. 우리 집안은 어떤 핏줄을 타고났는지.
일단 우리 집안 핏줄은 결코 범상치 않다. 신체부터가 수인에 버금갈 정도로 튼튼한데 그 조상은 오죽할까.
이외에도 대대로 전승된 무술까지 겸비하고 있다. 필시 평범한 집안과는 거리가 멀 것이리라.
“한 번 시도만 해 봐. 너희 아버지를 보면 조상도 분명 대단한 인물일 걸?”
레오나가 호기심이 왕성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에게 권유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는 진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나도 좀 궁금해지네. 시아버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그렇고.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몸을 가졌잖아. 게다가 무에 대한 재능도 출중하고. 게다가 가문이 귀족으로 승계하기 전의 행적도 미묘해. 빨간머리라 분명 눈에 띌 텐데 그런 소문은 거의 없었어.”
심지어 레오나뿐만 아니라 마리까지 거들었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마음이긴 했다.
당장 아버지만 하더라도 붉은 사자라며, 자그마치 백작의 자리까지 권유받았던 인물인데 조상들은 오죽할까.
현재는 평화로운 시대지만 그전까지 내부적으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허구한 날 영지전이 발발했으며 이뿐만이 아니라 테르스 왕국과도 잦은 다툼을 벌였다.
여기에 더해서 야만수인이 시시때때로 약탈을 자행하던 국경지대까지. 지금의 평화는 수많은 시체더미 위에 올린 거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다니,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들이 많다.
“음······ 나도 궁금하긴 한데 조상님을 호위로 쓴다는 건 좀 그렇지 않아?”
“허락만 받으면 돼. 물론 허락을 받는 건 네 몫이지만.”
“허락은 받지 말고 한 번 시도만 해 봐. 시아버님도 궁금해하시지 않을까?”
“으음······”
살짝 긴 고민 끝에 일단 해보기로 결정했다. 우선 아버지에게 허락부터 받아야 된다.
“하거라.”
너무 쉽게 허락을 받아버렸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게 맞나.
“기왕이면 내 아버지를 불렀으면 좋겠구나.”
“왜요?”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무덤을 만들던가 해야지.”
“··· ···
이걸 효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 하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뽁! 뽁! 뽁! 뽁!
아리엘이 느닷없이 자기 머리 위의 새싹을 마구잡이로 뽑기 시작했다. 뽑을 때마다 새로이 돋아나는 광경이 퍽 신기하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저래도 되는 건가. 아리엘이 스스로 뽑는 건 괜찮지만 저런 식으로 뽑는 건 누가 봐도 안 좋아 보인다.
“아, 아리엘?! 대체 뭐 하는 거니?!”
“응? 레오나 언니한테 새싹이 더 필요한 것 같아서.”
“그, 그렇긴 한데 너도 뽑을 수 있는 거야?”
“응. 더 줄까?”
“아니! 아니! 아니! 필요없어! 언니가 미안하니까 그만해!”
저걸로 무침 해 먹을 수도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