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91
■ 390화. 주술 (4) □ ᓚᘏᗢ
주술의 결과는 다소 애매했으나 영혼을 부르는 건 성공이었다. 영혼이 남긴 게 흔적을 보면 확실히 이곳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하지만 이것마저 성공이냐고 묻는다면 너무 애매하다. 보통 영혼을 부르면 그 자리에 남아야 하는데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보통 같으면 자리에 남아 주술사와 대화를 한다던가 그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났다.
“원래 그런 양반이었지. 가기 전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났으니.”
순식간에 폭풍이 스쳐지나가도 아버지는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말라는 식.
대신 씁쓸함을 감추진 못하셨다. 관계가 나빴다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은 꽤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성질머리는 더러워도 등만큼은 누구보다 든든하셨던 분이라고.
지금 생각해도 무인으로서는 누구보다 가장 강할 거라고 하셨다. 자그마치 아버지가 그리 말할 정도니 얼마나 강한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대체 뭘 하다가 간 건지 알려주고 가던가. 여기 온다는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후우······ 답답하구만.”
“기다려보면 되지 않을까요?”
“당분간 그러자구나. 계속 신경 써봤자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얘야.”
“네, 네?”
아버지는 제사를 진행했던 레오나를 불렀다. 그에 레오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화들짝 놀랐다.
뒤이어 아버지는 고맙다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고맙구나. 비록 씁쓸하긴 해도 답답한 건 모두 사라졌으니.”
“어······ 그 영혼이 정말로 아버지라 생각하시는 거예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단다. 저렇게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건 그 양반 특징이거든.”
슥- 슥-
그리 말하면서 두터운 손으로 레오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버지. 레오나도 그 손길에 베시시 웃음을 흘렸다.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는 걸 보아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모양.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아리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리엘은 우리 중에서 할아버지로 추측되는 영혼을 본 사람이다. 그러나 확실한지는 모른다.
“아리엘.”
“웅?”
“아까 네가 봤다는 그 영혼. 지난번처럼 입만 덩그러니 있었니?”
악마 숭배자의 영혼은 달걀 귀신처럼 입만 있고 다른 곳은 전부 밋밋했다.
그러니 할아버지로 추측되는 영혼도 똑같을까, 라는 생각 하에 물은 것이다.
아리엘은 내 질문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엽게 답했다.
“아니? 이번에는 있을 거 다 있던데?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머리카락도 있어. 온통 새하얀 색이었지만.”
나는 아리엘의 설명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 쪽으로 쏠려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아리엘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악마 숭배자를 아주 맛있게 먹은 것 또한 마찬가지.
이에 아버지는 약간 진지해진 얼굴을 하더니 다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야. 혹시 그 영혼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줄 수 있니?”
“우웅······”
아버지의 질문에 아리엘은 눈을 감고 최대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단어를 조합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고 있는 단어가 원체 적은지라 제대로 된 설명은 힘들다. 아리엘은 태어난지 이제 막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신생아였으니.
아버지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아 반쯤 포기하셨을 때쯤, 아리엘이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쳐다봤다.
“아빠. 아빠.”
“무슨 일이니?”
“이거 있어? 이거, 이거.”
아리엘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하면서 나에게 부탁했다. 보아하니 펜과 종이 하나를 달라는 듯했다.
그 뜻을 알아차린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마법필과 수첩을 그녀에게 건네줬다.
아리엘도 펜과 수첩을 받은 후, 생각보다 유려한 손놀림으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리엘?”
“웅?”
“혹시 따로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니?”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리엘이 그린 건 단순히 잘 그렸다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펜으로 끄적였다는 수준이 아니라 생동감이 넘쳤으며 심지어 세밀한 명암 조절까지 모두 담아냈다.
나도 그림에 일가견이 있어서 가끔 삽화를 책에 넣기도 하지만 아리엘은 그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아니? 그냥 머릿속에 있는 걸 그린 건데?”
“그냥 그린 거라고?”
“응. 안 어려워.”
“화가들 울겠다, 얘.”
마리의 말마따나 아리엘의 실력은 거장으로 부르는 화가들에게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 만약 저 말을 들었다면 화가 지망생들이 절망하겠지.
나는 얼떨떨해진 것도 잠시, 칭찬을 원하는 것처럼 아리엘이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자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리엘도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베시시 웃으며 내 다리를 꽉 껴안았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 ···”
그 사이 아버지는 그녀가 수첩에 그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깊이 생각하는 건지 미간이 잔뜩 좁혀져 있다.
나는 아리엘을 번쩍 안아들고 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함께 그림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림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
“······허벅지가 이렇게 두꺼우셨어요?”
영혼이라 알몸으로 그려진 건 상관없다. 어차피 영체 상태라 중요 부위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다 배제하더라도 허벅지 굵기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빈말이 아니라 무슨 허벅지가 여자 허리보다 굵다.
상체는 또 어떠한가. 하체도 하체지만 상체는 우락부락한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할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하기에는 좀 미안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오우거를 축소시킨 것 같다.
게다가 사자 갈기처럼 삐죽삐죽하면서도 길게 자란 머리카락으로 하여금 전반적으로 맹수를 연상시켰다.
‘전생의 격투 만화가 생각나는 몸이네.’
단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이게 정녕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몸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우리 아버지도 이 그림에 그려진 할아버지 못지 않게 굉장한 몸을 가지셨다. 그림처럼 옷을 벗는 일이 거의 없어서 잘 부각되지 않을 뿐이지.
나는 그림 속의 할아버지로 추측되는 인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계셨지만, 어딘가 착잡하다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이 분이 제 할아버지인가요?”
“그래.”
“성함은요?”
“클라크 마이샬.”
내 이름이 아이작이고, 할아버지 성함이 클라크. 둘을 합치니 공구 하나만으로 괴물들을 처치할 것 같은 이름이 완성된다.
일단 이건 둘째치고 클라크 할아버지는 대체 무얼 하시다가 돌아가셨을까. 세계 곳곳을 떠도는 낭인이라지만 어디서 객사할 것 같지는 않다.
객사했다면 필시 그건 재앙급에 맞는 사고였을 터. 나는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곧 간다는 말이 대체 뭐지?’
영혼이 다시 이리로 온다는 건가.
* * *
악마 숭배자의 비밀 사원을 조사하고 있던 조사단은 때아닌 난리를 겪고 있다.
분명 만일에 대비하여 곳곳에 성수를 뿌렸을 뿐더러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신성력을 뿌렸다.
스켈레톤이나 좀비는 사령술처럼 사특한 힘으로 부활하는 존재. 당연하게도 신성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 원래라면 그래야 정상이다.
쨍그랑!
성수가 담긴 유리병이 스켈레톤의 두개골에 정확히 적중했다. 그와 동시에 유리병이 산산조각나며 안의 내용물이 흘러내렸다.
루미너스의 힘이 담겼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미약하게나마 황금색으로 빛나는 성수.
[아.]“뭐, 뭐야? 아무렇지도 않잖아!!”
“성수! 성수를 더 갖고 와!”
“성직자! 성직자는 어디에 있나! 빨리 주문을 외워!”
하지만 사원에서 느닷없이 부활한 스켈레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냥 땀을 흘리는 것처럼 두개골이 성수가 흐르고 끝.
산산조각난 유리병은 볼품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당연히 성수를 던진 조사단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스켈레톤이기에 신성력마저 통하지 않는 걸까. 게다가 어떤 존재이길래 말까지 하는 걸까.
난데없는 돌발 상황에 모두가 패닉에 빠졌을 때, 스켈레톤은 맨들맨들한 두개골을 만지다가 손을 바라봤다.
앙상한 뼈만 남아있는 자신의 손. 분명 죽은 존재가 확실한데 기이하게도 살아있다.
[느낌이 영 이상하군.]스켈레톤은 그리 중얼거리며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움직였다. 가장 먼저 갈비뼈에 박혀있는 검이다.
째앵-
갈비뼈를 비롯한 곳곳에 박혀있는 무기를 하나 하나 빼내기 시작한 스켈레톤.
죽기 직전까지 그가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지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급소에 찔린 무기까지 있었다.
더 나아가 오른쪽 팔은 강한 힘으로 인해 뜯긴 흔적까지 있었다. 고고학자가 분석을 위해 이어붙였을 뿐, 그의 상태를 짐작케 해줬다.
쨍그랑-
마지막으로 심장 쪽에 박혀있던 검을 빼낸 스켈레톤은 앞을 쳐다봤다.
아까 전 성수를 던졌던 인원과 더불어 지원을 온 조사단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와 마법사, 더 나아가 성직자들까지.
누가 봐도 자신을 적대하고 있는 상황. 하기야 스켈레톤으로 부활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도 대화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스켈리톤은 생전의 버릇대로 기침을 하며 목을 풀더니 점잖게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잠깐 얘기를…]“저기다! 성직자! 어서 축복을!”
[아니. 잠깐만 내 말을…]파앗!
스켈레톤이 말을 하기도 전에 성직자가 주문을 읆조리며 축복을 펼쳤다.
신앙심이 꽤 강한 성직자였던 것인지, 사원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 정도.
“천벌을!”
콰앙!
마지막 외침과 함께 스켈레톤 머리 위로 황금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일반적인 스켈레톤이라면 분명······
[사람 말 좀 들으라니까.]“어, 어째서?”
“대체 무슨······”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력을 흡수한 것마냥 두개골을 비롯한 뼈에 윤기가 더 흐르는 게 아닌가.
신성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사단이 경악할 때, 스켈레톤이 살짝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라 하기에는 육성으로 낸 게 아니라 마치 녹음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질문 하나만 하겠네. 호크 듀커르 마이샬.]“······뭐?”
[그리고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 이 두 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정말 정중하게 질문했지만.
“아, 악마 숭배자가 수를 쓴 게 분명하다! 저 놈을 반드시 막아야 된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준비해라! 여차하면 이 사원이 무너져도 상관없으니 저 놈을 못 빠져나가게 막아!”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사실 조사단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인 것이, 스켈레톤 입에서 아이작의 이름이 거론됐다.
누가 봐도 악마 숭배자가 술수를 부렸고, 저 스켈레톤이 아이작을 죽이려 한다.
결코 생각이 짧은 게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허, 참······]물론 스켈레톤, 아니 클라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이윽고 조사단이 하나 둘씩 무장을 갖추자, 클라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웬만해서는 조용히 가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안 될 듯하다.
[어쩔 수 없지.]두 손으로 양날도끼를 굳게 쥔 클라크. 그는 앞의 조사단을 바라보다가 한 쪽 다리를 서서히 들었다.
그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조사단이 공격에 나서려던 찰나, 클라크 쪽이 한 발 빨랐다.
쿠웅!
들었던 발로 땅을 구르니.
콰앙!
거대한 흙더미가 해일처럼 솟구치며 조사단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