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93
■ 392화. 클라크 (1) □ ᓚᘏᗢ
지하 사원의 조사는 현재 미네르바 제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리나가 알려주길 다른 나라도 각자의 문제로 바쁜데다가 자칫하다가 비밀, 그러니까 소환 의식이 성공했다는 게 유출될 수도 있다고.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숨겨야 되는 진실이었기에 미네르바 제국, 그리고 세이비어의 약소한 지원만 받고 있다.
그 비밀은 극소수만 알고 있으며, 당장 미네르바 제국측만 해도 황실과 나밖에 모른다.
이건 세이비어도 마찬가지. 세이비어는 미네르바 제국과 달리 소수의 인원만 파견하여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설령 아는 사람이어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떠벌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리나는 각 지도층을 한데 모아 이 일에 관한 회의를 나눌 거라고 했으니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나올 것이다.
“루미너스 님이 가시라고 하셨다고요?”
“네.”
그래서 케이트가 간다는 건 내 입장에서는 다소 의아했다. 루미너스가 가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다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다.
“루미너스 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그곳에서 귀빈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귀빈? 정말 귀빈이라 하셨어요?”
“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그마치 루미너스가 귀빈이라 칭할 정도면 엄청 중요하다는 건데.
대체 사원에 무슨 일이 있길래 케이트가 직접 데리러 가야 될 정도일까. 조금 궁금하다.
겸사겸사 사원에 잠들어 있을 할아버지, 즉 클라크의 유골도 회수할 수도 있을 테니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으니 칼 같은 대답만이 돌아왔다. 참고로 저 대답은 케이트가 아니라 옆의 아델리아로부터 나온 거다.
아델리아는 내 대답을 듣고 철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절대 안 된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하기야 기숙사에서 지하 사원까지의 거리도 먼데다가 극소수의 조사단만 파견된 상황이라 고급 인력도 거의 없다.
다시 말해 마차를 이용해야 된다는 뜻인데, 거기까지 마차를 이용했다가 습격을 받을 확률이 대폭 올라간다.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케이트 씨.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죠?”
“만약에 사원에…”
나는 꿈에서 보았던 상황을 토대로 천천히 설명했다. 가장 먼저 클라크부터다.
정말로 꿈대로 클라크의 유골이 지하 사원에 있는지, 있다면 회수할 수 있는지 등등.
이건 아버지에게도 미리 말했던 상황이었으나 그도 깜짝 놀랄 뿐 썩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게 그런 얘기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아버지를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도 어디 가서 죽지만 말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장 나조차 정말로 확신을 못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케이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아이작 님의 조부님이 사원에 잠들어 계신다고요?”
케이트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녀가 저렇게 놀라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하지만 아까 언급했듯이 확실하지는 않다. 만에 하나 내 상상 속에서 나온 개꿈일 수도 있었으니.
설령 개꿈이더라도 맛있는 소재거리가 늘어나서 상관없다만 어디까지나 확인을 위해서다.
클라크가 어째서 아버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건지, 또 어떻게 지하 사원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조만간 알게 되겠지.
주술을 펼쳤을 당시 직접 이리로 온다고 메세지까지 남기셨다. 어떤 형식으로 올 지 전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아리엘이 있다.
그녀는 영혼을 볼 수 있으니 클라크가 이리로 온다면 먼저 신호를 줄 것이다.
“확실한 건 아니에요. 저도 꿈에서 본 거라서. 그러니 이참에 한 번 확인을 부탁드려요.”
“음. 알겠습니다. 어쩌면 신들이 내려주신 계시일지도 모르겠네요.”
“계시라…”
대충 추측하자면 내가 이 세계로 막 넘어왔을 때의 상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환 자체는 성공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영혼이 넘어오고, 그 상태로 그 상황을 지켜봤지 않았을까.
이걸 계시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만 클라크의 행방을 알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가능한가요? 대신 무턱대고 유골을 가져오진 말고 몇 번 정도 확인하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괜한 충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입니다. 그런데 조부님께서도 악마 숭배자를 처치하셨다니. 혹시 호크 경도…”
케이트가 은근한 목소리로 뒷말을 흐렸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악마 숭배자를 대대적으로 토벌한 경험이 있냐고 묻는 거겠지.
아무래도 악마 숭배자 토벌이 선조 때부터 내려온 우리 가문만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악마 숭배자를 조져버리는데 크게 공헌했으니.
이에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녀의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아뇨. 우리 아버지께서는 들은 게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요. 정말로 그곳에 제 조부님이 눈을 감고 계시면 조부님 때부터 사명이 끊겼을 거예요.”
“꽤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직접 조사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일단 정말로 그곳에 조부님이 계시는지 확인해야죠.”
꿈에 나온 내용에 따르자면 클라크는 영웅의 사명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것이 심한 압박감 때문인지, 아니면 무력함 때문인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어떻게 된 경위인지 몰라도 아버지는 악마 숭배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빨간머리를 지닌만큼 어딜 가나 눈에 띌 텐데 말이다. 이건 아버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집안 전체가 그렇다.
국경지대에서 야만 수인과 치열하게 싸워 심신이 고통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찬란한 명예를 얻었다.
그 안에는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사명’이 전혀 없었으며 쓸쓸하게 눈을 감은 클라크와 대조적이다.
“알겠습니다. 있다는 게 확인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분의 행적을 모두에게 알리실지 궁금하군요.”
“우선 책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쓰긴 할 거예요. 정말로 제 조부께서 그 일을 하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스쳐간 영웅은 많으니까요.”
겸사겸사 제논의 영웅적 행적에 대한 개연성도 부과하고. 죽어서도 이어지는 의지라 표현하면 되겠지.
다만 어디까지나 모티브지, 그의 이야기를 완전히 담아내지는 않고 어느 정도 각색할 예정이다.
“스쳐간 영웅이라······ 분명 아이작 님이 원하시는대로 될 겁니다.”
내 말에 케이트는 화사하게 웃더니 조용히 눈을 감으며 성호를 그었다. 단순히 성호를 긋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이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온갖 의미를 부여할 테니 뭐라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겠지.
“혹시 그쪽까지 통신 구슬의 연락이 닿나요?”
“아뇨. 지하 사원의 입구부터가 산 속 깊숙히 있어서 대부분의 통신은 닿지 않을 겁니다.”
“텔레포트도 안 되나요?”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게 아니라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아마 전서구를 사용해야겠죠.”
“전서구?”
나는 전서구를 사용한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서구는 알다시피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이용해 만든 통신 수단.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상당수 소요될 뿐더러 새를 잡는 것마저 고역이다. 그나마 사용하는 곳이 있다면 군대 정도.
심지어 오늘 날에는 그 군대조차 중요한 물건은 텔레포트를 이용한다. 속도, 보안성, 마지막으로 유효 거리마저 텔레포트가 압도적이니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의아해진 거고.
“네. 만일에 대비하여 교단에서 훈련시킨 전서구가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훈련시킨 거지만 지하 사원은 텔레포트마저 여의치 않으니까요.”
“그렇군요. 편지는 누가 받는 건가요?”
“원래라면 제가 받는 편이지만 오늘부로 제가 없으니 교단측에서 전달할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작 님의 기숙사로 전송하고 싶지만 악마 숭배자가 이걸 이용할 수도 있거든요.”
치밀하구나. 나는 케이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서구까지는 생각치도 못했는데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유용히 사용될지도 모르겠다.
“한 번 확인해봐도 될까요? 전서구는 저도 처음이라서.”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케이트는 그리 말하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 전서구는 그녀의 방에 있으니 얼마 걸리지도 않을 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새하얀 털이 뽀송뽀송하게 빛나는 비둘기를 손 위에 올린 채.
새하얀 몸체와 달리 두 눈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 전설 속에 등장할 법한 외양이다.
“우와. 정말 예쁘네요. 이거 정말 비둘기가 맞나요?”
“예. 교단의 신성력을 듬뿍 먹고 자란 비둘기입니다.”
“구구구.”
푸드득-
케이트가 말을 마치자마자 비둘기가 힘차게 날개짓을 했다. 나는 전서구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몸을 크게 움츠렸다.
그러나 비둘기는 살포시 내 어깨에 안착할 뿐이었지, 그 이상의 행동은 더이상 취하지 않았다.
아니.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마냥 내 뺨을 부리로 몇 번 쪼다가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구구구!”
“어······”
“구구구! 구구!”
이거 설마 히르트로부터 받았던 순수한 축복 때문인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이, 처음 보는데도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 확실하다.
순수한 축복은 가히 권능에 가까워 동식물들에게 사랑받는다. 단, 몬스터로 분류되는 것들을 제외하면.
나는 얼굴을 비비는 전서구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엽게 울었다.
“구구!”
“귀엽네요. 얘 이름도 있나요?”
“··· ···”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어도 케이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 이상한 눈초리로 전서구를 빤히 쳐다볼 뿐.
표정 또한 심상치 않은 것이, 입매가 1자로 다물려져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이었다.
케이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무언가 소름이 끼칠 때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럽네.”
“저······ 케이트 씨?”
“나도 하루빨리 저렇게······”
대체 욕망이 얼마나 쌓여있길래 동물을 시기하는 거지.
* * *
비슷한 시간. 한바탕 난리가 났던 지하 사원.
[······니까. 내가 너희를 해치지도 않았잖아. 비록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어도 이성은 멀쩡해. 나는 만물의 아버지가 아니라 히르트 님이 허락하신 존재니까. 알겠어?]“크윽······!”
[뭐, 그래도 너희를 이해할 수 있어. 그래도 어쩌겠냐. 아들이 내 시신을 묻어주고 싶다는데. 이 방법밖에 없지.]현재 사원은 소강 사태에 접어들었다. 조사단에 파견된 인력은 정예라 할만했으며 실제로도 강했다.
클라크가 더 강했을 뿐이지. 생전에 악마 숭배자 최고 간부들을 모조리 도륙한 걸 넘어서 소환 의식까지 방해한 위인.
따지고 보면 엘프 전사장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전력을 가진 셈이니 조사단이 무력하게 제압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야. 힘드냐?]클라크는 밑에 있는 기사를 툭- 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가 의자 대용으로 사용(?) 중인 기사는 현재 굴욕적이게도 엎드려 뻗쳐 중이었다.
그에 기사는 부들부들거리면서도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중간중간 이를 가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클라크는 뚝심이 있다고 해야 할지, 고집이 세다고 해야 할지 모를 기사의 의지에 끌끌 혀를 찼다.
[기사는 시대가 지나도 똑같구만. 쓸데없이 고집만 세서는.]“그 자신감도······ 얼마 가지 않을 거다······!”
[예. 예. 믿든 말든 너희들 자유니까 상관없지.]현재 근방에는 클라크가 모조리 제압한 조사단이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누가 보면 학살의 현장이라 믿어도 될 정도.
그러나 압도적인 힘 차이를 통해 하나 하나 기절시켜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의자 대용으로 사용 중인 기사도 끝까지 버틴 사람이라 클라크의 눈에 들어온 거다.
여러모로 운이 나쁘다고 할 수 있었으나 기사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판단하여 끝까지 버티고 있다.
버티기만 하면 밖으로 도망친 동료가 지원군을 부르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버티자는 마인드로 이를 악 깨물고 있다.
“크윽······ 흐윽······”
[엄살은. 지금은 뼈밖에 없어서 가벼울 텐데.]엄살 아니다. 존나 무거워 뒤질 것 같다. 기사의 속마음이다.
정말로 뼈밖에 없는 몸이다만 그 뼈마저도 어마어마한 중량을 자랑했다. 게다가 뼈도 뼈지만 생전 착용한 갑옷까지 입고 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클라크는 기사를 그저 나약한 놈이라 생각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나가버리고 싶다만, 상황이 이 모양 이 꼴이니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다.
괜히 나갔다가 몬스터라 오해받기 딱 좋으며 심할 경우 제국측에서 군대를 이끌고 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말이 통할만한 상대가 오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뒤적- 뒤적-
클라크는 버릇대로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이미 헤지고 낡은 바지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에 그는 혀를 쯧- 하고 차더니 밑에 깔려있는 기사를 바라봤다.
[야. 너 혹시······ 아니, 아니다.]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클라크. 뒤이어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봐. 거기 너.]“··· ···”
[깨있는 거 아니까 대답해라.]“예, 예!”
클라크가 위협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번쩍 드는 한 남자.
사태가 벌어지기 전, 클라크의 시신을 분석하고 연구하던 고고학자 중 한 명이었다.
원래라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절한 척할 생각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클라크는 그가 의식을 차렸다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에 클라크는 고고학자를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너 혹시 담배 있냐?]“담······ 배요?”
[그래. 담배.]느닷없이 담배를 부탁하는 클라크. 고고학자가 그 말을 들으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그가 진한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죽기 전에도 담배가 없어서 아쉬웠거든.]“··· ···”
[아. 손자한테 한 번 부탁해서 책에 넣어달라 할까? 죽기 직전에 담배를 한 번 시원하게 빠는 걸로. 크으. 얼마나 멋지냐!]뭔가 심히 어긋난 스켈레톤이다. 고고학자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