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06
■ 405화. 충격과 공포 (1) □ ᓚᘏᗢ
케이트 러프본 밑에 있습니다!
* * *
충격과 공포의 제논 일대기 29권이 발매된 지 어언 사흘이 흘렀다. 아마 지금쯤이면 신문으로도 온갖 평가들이 줄줄이 나올 타이밍이다.
그리고 나는 전에 계획했던 대로 지체없이 황궁으로 향했다. 만약을 대비해 출판사 쪽에서 어머니에게는 조금 늦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황궁으로 향하는 인원은 나, 마리, 아델리아 이렇게 세 명이다. 리나는 당연히 안내역이라 포함돼 있다.
어째서 케이트가 빠졌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그녀는 할 일이 생각났다면서 교단으로 복귀한 상황이다.
내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더 나아가 내 조언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나 뭐라나.
깨달음은 성직자에게도 아주 중요한 거라 터치할 수도 없어서 일단 그녀가 원하는대로 돌려보냈다.
어차피 황궁은 기숙사보다 훨씬 안전한 장소라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하늘 위에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테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리나가 교단의 도움을 받을 거라 했으니 안심해도 괜찮을 것이다.
“마리는 황궁에 자주 갔지?”
“응. 우리 저택은 사실상 업무를 보기 위한 개인 저택에 가깝거든. 덕분에 길은 다 알아.”
아카데미에서 황궁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차를 이용해도 상관없다.
문제는 그 마차를 호위하는 병력들이지. 나는 창문 밖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마차 안에는 황녀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마리까지 있는 상황. 그로 인해 거의 군대 수준의 병력이 마차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전에 언급했듯이 미네르바 제국의 수도, 글로리아는 치안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서 레오르트나 리나가 황궁으로 갈 때도 호위 병력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시선을 끌기 때문에 곤란한 점이 많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악마 숭배자가 대놓고 암살을 시도하니 호위를 최대치로 늘릴 수밖에 없다.
당장 밖에 보이는 것만 해도 기사와 마법사, 더 나아가 교단에서 파견한 성직자들도 보였다.
이걸 뚫으려면 자폭 공격밖에 답이 없을 테지. 게다가 리나의 말로는 사전 차단을 위해서 근처에 수색대를 쫙 깔아놨단다.
‘고생이시네.’
실제 테러 위험이 있다보니 정신적으로도 꽤 예민하겠지. 나는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앞을 쳐다봤다.
내 양옆에는 마리와 아델리아가 나란히 앉아있으며, 맞은편에는 리나가 중앙에 앉아있다.
어깨와 쇄골이 완전히 노출되어 새하얀 피부가 전부 드러났지만, 가슴은 대부분 가린 노란빛 계통의 드레스.
대놓고 가슴을 부각시켜 섹시함을 풍기는 세실리와 달리 리나는 우아함이 한층 돋보였다. 특히 전체적인 색감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저런 애가 그렇고 그런······’
독특한 성적 취향만 말하는 게 아니다. 리나는 유독 내 앞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여러번 보였다.
내 진짜 정체를 알고 입에서 차를 줄줄 흘린다던지, 얼굴을 향해 차를 분사하는 등.
솔직히 리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지만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라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내가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리나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나를 보면서 생각하는 건 맞지만 사실상 멍 때린 거나 마찬가지여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냥 멍 때린 거야.”
“재미없기는. 황궁에 대해 궁금한 건 없고?”
“궁금한 거라······”
나는 팔짱을 끼며 미네르바 제국의 황궁에 대해 떠올렸다. 미네르바 제국의 황궁은 대외적으로 꽤 유명하다.
일단 넓다. 진짜 말도 안 되게 넓은 부지를 자랑한다.
수도 안의 소도시라고 부르는 헤일로 아카데미조차 황궁 앞에서는 한 수 접어들 정도다. 애초에 법적으로 황궁보다 규모가 큰 건물은 못 짓도록 막아놨다.
그렇다 해서 과시욕만 가득한 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황궁 안에 다양한 정부 기관들이 배치돼 있다.
이외에도 기사 혹은 마법사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양성소와 저번에 사용했던 텔레포트 기관도 포함돼 있다.
영토가 말도 안 되게 넓다보니 그 정부 기관들의 규모조차 방대하게 클 뿐이지, 황궁 자체의 규모는 영토에 맞게 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궁금한 건 딱히 없어. 내부가 궁금하긴 하다만 곧 알게 될 테고. 굳이 있다면······”
나는 말을 흐리며 리나의 눈치를 봤다. 조금 난감할 수도 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리나도 그 점을 빠르게 눈치챘는지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물어봐도 괜찮을 듯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어떤 분이야?”
“아바마마?”
“응. 여태까지 들은 적이 거의 없거든.”
미네르바 제국의 황제, 베리트 우르미 재클리스 미네르바. 그는 테르스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국서와 달리 대외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가끔 가다 외교적인 사안으로 각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얼굴을 비추긴 하다만 소문 하나 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평가라고는 국정을 나름 잘 운영하고 있다는 것과 자식이 레오르트, 리나 이 두 명밖에 없다는 것.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 어떤 소문도 나지 않아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내가 리나와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신경 끄고 있었겠지. 하지만 앞으로 얼굴을 마주쳐야 할 사이이니 미리 알아놓는 게 낫다.
“아바마마께서는······ 솔직히 말하면 딱 기본만 하자는 분이셔.”
“기본만 가자는 분?”
“응. 그 사상 때문인지 나라의 발전보다는 현상 유지에 힘을 쓰시는 분이야. 괜히 급하게 발전만 추구하면 구멍이 숭숭 뚫린다며, 차라리 기강부터 단단하게 잡자는 분이시지.”
명군은 되기 힘들지만 암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나는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겠지만 현재 미네르바 제국의 상황을 보면 전화위복이라 볼 수 있다.
당장 악마 숭배자들로 인해 국력에 금이 간 걸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기강마저 부실했다면 문제가 더 커졌겠지.
지금도 악마 숭배자의 보금자리라며, 욕을 주구장창 얻어먹고 있음에도 잘 해결하는 걸 보면 결코 무능하지는 않다.
“그렇구나. 그럼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이시야?”
“글쎄······ 일단 화를 잘 안 내시는데다가 약간 괴짜 같은 면모를 가지셔서······”
“푸흡.”
괴짜라는 답에 옆에서 마리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시선을 옮겨 마리를 쳐다보니 그녀는 끅- 끅- 소리를 내며 웃음을 참는 중이다.
보아하니 마리도 베리트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고 있는 모양이다.
“괴짜라 하니 좀 더 궁금해지네. 좋은 분인 건 확실하지?”
“응. 대신 말을 너무 잘 하셔서 긴장을 해야 될 거야. 말 하나로 신하들을 꽉 쥐어잡고 계시거든.”
“알았어. 그거 말고 주의할 건?”
“그다지 없어. 의외로 너랑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어머니, 황후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그리고 리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부창부수 딱 하나였다.
대신 현재도 금슬이 좋다고. 그러나 금슬이 좋은 것과 별개로 자식이 두 명밖에 없는 건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황제나 왕은 대가 끊기는 걸 막기 위해 많은 후손들을 낳아야 되는 의무가 있었으니.
실제로 테르스 왕국을 보면 자식만 해도 4명이며, 그중 한 명은 벨루아 공국으로 시집을 간 상황이다.
‘이건 넘어가도록 하자.’
분명 사정이 있겠지. 이건 아까보다 훨씬 실례되는 질문이라 가급적 안 하는 게 낫다.
그렇게 서로 즐겁게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낸지 얼마나 되었을까. 황궁 입구를 통과하고 10분 정도가 흘렀을 쯤이었다.
“황녀님!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춤과 동시에 바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황궁에 다 도착한 모양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황궁의 자태에 감탄했다.
보통 궁궐은 당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기록이 남기 마련이다. 황궁은 그에 걸맞도록 건축돼 있었다.
헤일로 아카데미가 호그와트를 본딴 것 같다면, 황궁은 높게 뻗어있는 요새형 성에 가까웠다.
이것만 본다면 평범해 보이겠지. 하지만 황궁의 진가는 바로 황금이다. 성 전체가 도금돼 있는 것처럼 휘황찬란했다.
방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만큼 제국에 묻혀있는 자원도 풍부하며 황금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막말로 돈지랄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미네르바 제국의 경제력을 고려하면 거뜬할 터.
여러모로 미네르바 제국의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기에 적합한 궁궐이다.
“우선 너희들이 머물 방부터 데려다줄게. 안내는 그 다음에 하자.”
리나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마차 밖으로 내려갔다. 호위 기사 중 한 명이 그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에스코트했다.
이어서 내가 뒤따라 내려가고, 마리도 내 손을 잡으며 조심스레 하차했다. 마지막으로 아델리아가 내려오면서 모든 인원이 하차를 완료했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마리는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흰색 드레스를, 아델리아는 활동하기 편한 와이셔츠에 가죽 바지 차림이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매력에 맞는 옷을 입다보니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진다.
그그그극-
고개를 높이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대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대문에는 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장엄한 크기를 자랑하는 대문이 열리는 것만 해도 위엄이 느껴진다.
알븐하임이 자연에 녹아든 것 같은 우아함과 따뜻함이 일품이라면, 미네르바 제국은 그냥 크고 아름답다.
저것만큼 달리 표현할 게 없을 정도로 하나 하나의 규모가 굉장히 크다.
‘길을 잃어도 할 말이 없겠네.’
과장이 아니라 황궁 내부가 너무 넓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혼자 다닐 일은 없겠다만 그래도 약간 걱정된다.
그리 생각하면서 역대 황제 및 황후들의 초상화가 걸린 복도를 지나치고,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쯤이었다.
“응? 오라버니?”
“아. 이제 왔구나.”
모퉁이를 돌자마자 공교롭게도 황태자, 레오르트와 딱 마주쳤다. 아무래도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맞이하기 위해 온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았다.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으나 눈 밑에 깔려있는 다크 서클이 줄넘기를 할 정도로 내려온 상태다.
리나의 말로는 매일매일 야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던데 사실인 것 같다. 당장 표정조차 피곤해 죽으려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레오르트 황태자님.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하하. 누구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네.”
내 인사에 레오르트가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괜히 찔리는 기분이라 애써 모른 척 웃어넘겼다.
뒤이어 레오르트는 우리를 한 번씩 둘러보더니 리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혹시 황궁을 소개시켜주던 참이었나?”
“아뇨. 당분간 머물 방부터 알려주고 그 이후에 알려줄 생각이었어요.”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르트. 그는 이다음으로 리나 뒤에 있는 나에게 부탁했다.
“그래? 그럼 아이작. 정말 실례되는 부탁이지만 객실에 도착하면 리나를 잠깐 불러도 되겠나? 급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다네.”
레오르트가 저리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급한 사안인 듯싶다. 실제로 현재 제국의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객실에만 있어도 상관없는 것이, 30권의 원고와 타자기를 갖고 왔다.
이것도 아니면 황궁의 안내를 마리에게 부탁해도 된다. 옛날에 리나와 잘 어울렸던만큼 황궁의 배치 정도는 알고 있다고 들었다.
“상관없습니다. 급한 일인 것 같으니 빠르게 보내도록 할게요.”
“그대의 배려에 감사를 전하겠네. 그럼-”
꽤 바쁜 일인지 레오르트는 간단한 손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마저 빠른 걸 보면 확실히 급한 일인 것 같다.
나는 그의 뒤를 쳐다보다가 다시 리나 쪽을 바라봤다. 무언가 눈치챈 표정이나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굳이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는데.’
리나가 나를 초대했다면 모를까, 오늘은 내가 먼저 가고 싶다며 그녀에게 부탁한 상황이다.
내가 제논이 아니었다면 며칠은커녕 몇 달은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 더군다나 방금 전 레오르트의 얼굴을 보았듯이 현재 제국은 악마 숭배자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나는 이에 쓰게 웃으며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도 내 표시에 안심이 됐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정말로 괜찮은 거 맞지?”
“괜찮아. 너도 할 일은 해야지.”
내 말에 리나가 피식 웃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힘을 쥐고도 정말 하나도 안 변하네.”
“뭐가?”
“너라는 사람 자체가.”
이어서 그녀는 마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소 능청스럽게 굴었다.
“슬슬 네가 부러워질 것 같아. 저런 남자는 흔치 않을 텐데.”
은근히 질투심을 자극하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옆방에서 자지 마. 당당하게 같은 침대에서 자야지.”
“··· ···”
도리어 역공만 당했다.
* * *
아이작 일행을 객실에 데려놓은 리나는 레오르트가 말한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로 향하는 동안 마리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옆방에서 자지 말라는, 리나의 성적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발언. 그 말 하나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조차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공공연히 밝혀진 그녀의 취향이었으나 결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입에서 언급되니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다.
‘설마 들켰나?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것까지는 모를 거야.’
아르웬의 연설 당시, 리나는 마법 아이템을 이용해 그들의 관계를 훔쳐본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은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는 중이다.
당장 기숙사 옆방이 아이작의 방인데다가 구조적으로도 아이템을 이용하기 편하다.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방음이 철저하게 돼 있으나 귀를 갖다 대면 안 될 것도 없······
‘아냐. 대체 무슨 생각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레오르트가 무슨 말을 할 지부터 생각해야 된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잡념을 떨쳐냈다.
아마 십중팔구 악마 숭배자에 관한 주제가 나오겠지. 여태까지 그랬으니까.
과연 이번에는 어떤 골치 아픈 문제를 떠뜨렸을까. 생각만 해도 피곤해졌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이윽고 그녀는 레오르트의 집무실 앞에 서자마자 얼굴에 올라왔던 화기를 간신히 가라앉혔다.
똑똑똑-
[들어오거라.]노크를 하자마자 문 뒤로 들리는 레오르트의 피곤한 목소리. 리나가 왔다는 걸 단번에 짐작한 모양이다.
리나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피곤에 쩔어있는 레오르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그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책 한 권을 읽고 있다. 멀리서도 무슨 책인지 바로 알 것 같다.
‘제논 일대기? 아, 그러고보니 신간이 발매된다고 했는데 오늘이었나 보구나.’
할 일이 많아서 제논 일대기가 발매되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편 레오르트는 리나가 들어오자마자 책을 덮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얼굴이 왠지 모르게 더 피곤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오라버니?”
“후우······ 리나.”
“네.”
“혹시 제논 일대기 신간을 읽었나?”
뜬금없이 신간을 읽었냐고 질문하는 레오르트. 리나는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바빠서 깜빡하고 있었어요.”
“그럼 신문에서 나온 평가는?”
“그것도······ 모르겠네요.”
보통 같으면 제논 일대기 신간을 읽고도 남았을 터. 그러나 리나는 악마 숭배자 외에 따로 착수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번 아이작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조언까지 받음으로써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였으니.
황족을 제외한 귀족들의 권력을 분산시키면서, 더 나아가 황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라 홀로 진행하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아이작이 황궁으로 온다고 말했기에 여러모로 준비할 부분이 많아 주변에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면 이것부터 읽는 게 좋겠구나.”
레오르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제논 일대기 29권을 보여주면서 제안했다.
리나로서는 아무렴 상관없는 제안에다가 휴식까지 가질 수 있어서 즐겁게 받을 수 있었다.
“물론이죠. 오라버니. 혹시 차를 준비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렴.”
이때까지 리나는 깜빡하고 있었다. 전에 아이작이 어느 정도 스포일러했던 결말을.
그저 간만의 휴식이라 생각하면서 읽었던 제논 일대기 29권은······
“······어?”
리나에게 생소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녀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결말이었으면 입에서 다과 부스러기가 흘러내리고, 페이지를 연신 앞뒤로 반복해서 넘길 정도.
비록 진·릴리 커플이 아닌 제논·메리 커플을 응원하는 그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하다.
“아, 아니. 이, 이게 무슨······ 이게 뭔······ 아니······”
더 큰 문제는 이런 잔인한 결말이 진이라는 캐릭터성에 완벽히 부합하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데, 가슴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들어 인지부조화가 올만큼 내상이 심하다.
“······악마 숭배자 놈들이 개판을 칠 때도 잠은 잘 잤어. 그런데 그걸 읽고 한동안 잠도 못 자겠더군.”
레오르트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허탈에 가까운 음성으로 말했다. 믿기 싫은 현실을 본 것 같은 목소리.
그에 리나가 멍한 눈길로 책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쳐다봤다. 동시에 전에 아이작이 넌지시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도 대충 예상은 했다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끽해도 진이 악마 숭배자에게 중상을 입는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마주한 현실은 그 이상이다. 어떻게 두 주인공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가.
개연성이 없다면 모를까, 하나 하나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아서 더 충격적이다. 사람의 마음에 절망을 억지로 우겨넣는 듯한 느낌.
“그 결말 하나 때문에 독자들이 전부 동요하고 있어. 심지어는 제논이 사실 악마가 아닐까라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지.”
“악마라고요?”
“그래. 물론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알고 있다만······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거야. 내가 널 부른 이유도 이때문이고.”
레오르트는 그리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에 기대었던 등을 서서히 떼어냈다.
그리고 리나와 똑바로 마주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악마 숭배자들이 이걸 이용하기 전에 언론이란 언론에 다 뿌려. 아이작은 결코 악마가 아니라고. 어디까지나 비극일 뿐이라고 말이야. 음모론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요. 대충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면 되는 거죠?”
“그래. 예를 들어 이런 미래를 직접 보았기에 글을 쓴 거라던가, 아니면······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안 나네.”
레오르트는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막상 리나를 부르긴 했다만 결말이 워낙 치명적이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진짜 악마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반쯤 성공했다던 소환 의식이 실제로는 다 성공한 건가······”
“··· ···”
장난식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리나는 결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대체 아이작이 살던 세상이 어떻길래······ 설마 이런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 건가?’
착각이 깊어지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