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08
■ 407화. 충격과 공포 (3) □ ᓚᘏᗢ
절망으로 가득한 제논 일대기 29권이 발매되면서 내가 황궁으로 도망치듯이 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대신 여기서 계획이 살짝 변경되었는데, 원래라면 곧바로 황제를 알현했겠지만 중간에 일이 생겨 나중으로 미루어졌다고.
어차피 불만도 없는 데다가 내가 무작정 찾아온 것도 있으니 며칠동안 머물러도 큰 상관은 없었다. 물론 리나는 늦어봤자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얼 하느냐. 간단하다. 대망의 제논 일대기 30권을 집필하면서 동시에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시한 폭탄을 심어놓고 나 몰라라 도망친 탓인지 신문을 안 보고 있었다. 애당초 황제와 얼굴을 마주해야 되니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시간을 얻으면서 여유도 늘어났겠다, 나는 리나에게 부탁하여 신문을 부탁했다.
신문을 가져오던 그녀가 미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긴 했다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아참. 마리와 아델리아가 읽을 제논 일대기 29권도 함께 부탁했다. 책이 발매되기 직전에 황궁으로 온 거라 못 읽고 있었다.
“아이작.”
“응?”
“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가 네가 사람 새끼······ 아니,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그걸 보며 눈을 끔뻑거리고 있을 때 뒤를 힐긋 쳐다봤다. 뒤의 아델리아도 눈치만 살살 보고 있을 뿐, 마리와 비슷한 눈빛이다.
보아하니 내가 신문을 읽는 동안 제논 일대기 29권의 결말을 전부 본 것 같다. 이에 신문을 조용히 덮으며 그들과 똑바로 마주했다.
“인상 깊었어?”
“인상 깊고 나발이고 너무 잔인해. 아델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잔인······ 하긴 하지. 독자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새길 정도로.”
“흠.”
나는 색다른 그녀들의 반응에 턱을 긁적거렸다. 다른 사람과 달리 이 둘은 제논 일대기를 작품 그대로 좋아한다.
그러니까 누구처럼 예언서나 미래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그들도 이런 전개는 꽤 충격일 것이다.
“그래도 진이라는 캐릭터성에는 부합하잖아?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30권에 다 설명할 거야.”
“여기서 더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대답에 마리가 설마하는 목소리로 다급히 물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얼마나 더 독해질 거냐는 표정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30권의 전개에 대해 곰곰히 떠올렸다. 그녀의 말이 맞다고 볼 수 있겠지.
30권의 전개는 진이 어찌하여 악마 숭배자를 짐승처럼 잡아먹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미쳐버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올 예정이다.
또한 진의 영혼과 디아볼스의 영혼이 하나로 합쳐지고, 동시에 중화되면서 릴리의 건강이 크게 호전된다.
그 결과로 릴리가 의식을 차리게 되지만, 눈을 뜨자마자 진의 영혼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다.
‘신이 알려줬다고 하면 될 테고.’
그러는 와중에도 디아볼스의 영혼을 먹은 진과 제논과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논은 방어에만 급급하지, 진에게 직접 검을 겨누지는 못하여 시간만 소비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라고 외치는 제논과, 가장 밝은 빛을 지키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진의 처절한 전투.
아마 그걸로 1권 분량을 다 잡아먹지 싶다. 진이 걸어온 여정도 묘사해야 되고 전투씬도 꽤 길어질 테니.
“무슨 생각하는 거야? 30권 줄거리에 대해 생각하는 거니?”
생각이 너무 길어졌던 걸까. 마리가 얼굴을 불쑥 내밀며 나를 독촉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잠깐 현혹되어 멍해졌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얼굴을 살짝 움직였다.
쪽-
뒤이어 가볍게 키스를 해주니 마리의 커다란 눈이 깜빡거린다. 뺨이 삽시간에 붉어지는 건 덤.
나는 귀여운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녀라지만 최종 결말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
“마리는 어땠으면 좋겠어?”
“······진짜 못 됐어. 이러면 내가 넘어갈 줄 아니?”
내 장난에 마리가 새침하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얼굴에 일어난 미약한 홍조와 부들거리는 입꼬리로 하여금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대번 유추할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아델리아가 살짝 부러워하는 눈길을 보내는 건 덤. 나는 약하게 웃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결말에 대한 파급력은 얼추 예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예상했던 것보다 격렬하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격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너를 악마 취급하는 사람도 있던데?”
마리의 말마따나 신문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람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새기는 건 오직 악마만이 할 수 있다는 거라면서.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비유에 가깝지, 실제로 내가 악마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루미너스와 모라가 직접 성자(?)로 인증한 전적이 있는데다가 당장 내 옆에는 케이트가 호위하고 있다.
워낙 결말이 악독해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그만큼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이것 말고 다른 비극들도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조력자에 가까웠잖아. 그런데 진과 릴리는 1권부터 함께 한 주인공들이고. 체급 자체가 다르지.”
“아델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
“응. 게다가 난 진·릴리를 더 좋아해서······”
아델리아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보니 그녀의 품에 제논 일대기 29권이 꼬옥 안겨있다.
성별은 달라도 비참한 과거사를 가진 진에게 묘한 동질감을 안고 있는 아델리아다.
듣자하니 릴리처럼 따뜻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걸 포용할 마음을 가진 남자를 원했다고. 실제로 그녀는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사생아라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이번 전개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음 권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진이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아델리아는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매우 조심스럽게 질문을 날렸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보아하니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응. 진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상세히 묘사할 거야.”
“그렇구나. 사실 전개 자체는 이해할 수 있어. 나 같아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테니까. 그런데 그 방식이 조금 충격적이라······”
하늘색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는 걸 보아 내상을 강하게 입은 모양이다. 나는 그토록 심한 건가 싶어 의아해진다.
누누이 언급했듯이 본디 이 세상의 책은 수능 영어 혹은 철학에 가까울 정도로 난해한 것밖에 없다.
그러나 이걸 배제하더라도 이상하리만큼 ‘비극’을 다루는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그 비극마저 탐험가가 쓴 자서전에 나온 내용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실수로 동료를 잃는다던지 그런 식으로.
‘신화도 마찬가지고.’
지구에서는 신화,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다양한 비극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건 단연코 오이디푸스 서사시다.
반면 이 세상은 가슴 아픈 역사를 제외하면 비극을 중점으로 다룬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
시대상으로는 문학의 절정기가 찾아와야 할 시점인데 이상하리만큼 발전이 더디다.
‘아니면 맛이 너무 매운 걸 수도 있고.’
지구였다면 안타깝네, 정도로 넘어갈만한 이야기다. 지구는 이미 이런 이야기에 강한 내성을 얻은지 오래다.
특히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로 유명한 작품을 읽는다면 피를 토하겠지.
아니지. 어쩌면 폐인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잊혀지지 않고 꾸준히 회자되는 엔딩이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저게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비극들을 접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사실상 최약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집필하게 될 2차 세계 대전은 꿈도 희망도 없을 것이다. 내 옆의 사람이 다 뒤지는데 희망은 무슨.
“그럼 전개가 어떻게 이어졌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들을 거치면서 마리와 아델리아에게 물어봤다. 질문은 저렇게 했다만 전개는 바꾸지 않을 거다.
어디까지나 의견만 구할 뿐, 진의 죽음은 이미 확정돼 있는 상태다.
영혼이 깨끗하다면 카이르처럼 환생시켜주면 되겠지만 진은 그럴 여지도 전혀 없었으니.
더군다나 만일에 대비하여 보험격으로 외전까지 마련해 놓았다. 상황이 말도 안 되게 심해지면 부랴부랴 적을 예정이다.
“좋게 끝나면 읽는 우리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평론가들은 진이 죽어야만 캐릭터가 완성된다고 해서······”
“어떻게 안 될까? 희망의 여지는 만들어도 되잖아.”
반쯤 체념한 마리와 달리 아델리아는 미끼를 덥썩 물어버렸다. 진이라는 캐릭터에 본인의 인생을 이입한만큼 꽤 다급한 모양이다.
나는 그걸 보며 다시 한 번 전개를 떠올렸다. 희망의 여지라······ 남겨놓긴 할 거다.
대신 그것이 아델리아가 예상하는 것과 한참 동떨어져 있겠지.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지를 만들겠다고만 해도 큰 스포일러로 다가올 테니 이럴 때는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야 된다.
“그건 다음 권을 보면 되겠지. 사실 곧 있으면 30권을 출판사로 보낼 예정이거든.”
“정말로? 벌써?”
“응. 계속 애태우기만 하면 사람들이 불안해하잖아. 차라리 빨리 해소하는 게 낫지.”
내 대답이 긍정적으로 들렸던 걸까. 아델리아의 꿀꿀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아무래도 행복 회로를 돌리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냥 해피 엔딩은 아닐 것이다.
우선 중간에 진이 정신을 차리면서 제논을 알아보긴 할 것이다. 허나 디아볼스의 영혼과 합쳐지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몸이 됐다는 것.
하물며 신에 가까운 디아볼스와 달리 진은 유달리 강한 마족이다. 단지 악마의 핏줄을 진하게 이어받은 마족.
때문에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이상 디아볼스가 또다시 부활하여 세상을 유린할 터. 그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완벽한 소멸을 이룰 수 있다.
‘신에 가까워졌다는 묘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역시 천둥 벼락이 나으려나?’
천둥 벼락은 예로부터 신의 힘이라 묘사되고 있다. 이곳에서도 천벌을 내릴 때 벼락을 떨어뜨린다.
그러니 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이 먹구름으로 가득해지고, 천둥 벼락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대신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불완전하게나마 완성된 신의 힘을 묘사하기에는 적당하다.
‘최후에는 심장에 검이 꽂히고, 비척비척 걸어갈 때······’
흔적을 따라온 릴리와 마주하는 거지.
그리고 손을 잡자마자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음. 완벽해.’
나는 아주 좋은 전개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아델리아는······
“혹시 먹고 싶은 거 없어? 객실이라도 주방도 있고 요리도 있거든.”
“그럼 난 쿠키.”
본인이 돌리는 행복 회로에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러 떠나갔다.
나는 총총 걸음으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다른 데로 옮겼다.
시선을 돌리니 아직까지 오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는 마리와 딱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작.”
“왜?”
“전부 거짓말이지?”
“난 거짓말은 하나도 안 했는데?”
이럴 줄 알고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말만 골라서 했다. 다시 말해 독심술을 타고난 마리조차 내 의중을 파악할 수 없을 터.
그래도 무언가 짐작하는 거라도 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악마가 따로 없네.”
“다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건 쓰레기고. 쓰레기보다는 악마가 더 낫지.”
납득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