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10
■ 409화. 충격과 공포 (5) □ ᓚᘏᗢ
저택과 출판사 앞에 시위대가 몰리고, 이외에 각각 다양한 반응이 터져나오고 있을 시점.
아이작의 동문 겸 조력을 받고 있는 작가, 체리는 제논 일대기 29권 결말을 보면서 눈을 느릿느릿하게 깜빡거렸다.
그녀도 기본적으로는 제논 일대기의 열렬한 팬으로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정독하고 있다.
이건 정식적으로 작가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집필하는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도 중요하지만 제논 일대기가 더 중요했으니.
“우와······”
그리고 그녀는 결말부를 읽자마자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순수한 의미로 감탄한 것에 가까웠다.
진이 어떻게 디아볼스의 영혼이 잠든 곳을 찾고, 더 나아가 어떤 이유로 악마 숭배자를 뜯어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권에 천천히 밝혀질 터.
이걸 제외한다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났다. 완결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은 덤.
하나 하나 계산하여 전개를 꾸민 것인지, 아니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 때려박은 건지 모르겠다만 무엇이든 간에 대단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음 권 줄거리를 생각하는 것도 힘든데······”
체리는 제논 일대기를 잠시 덮고는 특유의 어두운 눈동자로 책상을 쳐다봤다. 책상 위에는 집필하다가 만 원고가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아이작처럼 타자기가 아닌, 펜촉으로 집필 중인 붉은 노을은 다시 한 번.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제논 일대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어디까지나 제논 일대기를 동경하는 마음에 쓰기 시작한 작품. 그래서인지 3권 이후로 쓰는 것조차 벅차다.
아이작이 조언해준 대로 플롯을 노트에다가 정리하고 있으나 그것과 별개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하물며 자신의 작품은 전례가 없던 장르인 회귀물. 제논 일대기보다는 아니지만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도 회귀물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허나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현재 체리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회귀물을 통해 사건을 미리미리 알면서 전부 타파하는 건 좋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가 터져야 지루해지지 않는 법.
제논 일대기를 보아라. 사람들이 방심하는 찰나에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집중을 끊지 못하게 만들지 않는가.
3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꾸준히 구독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체리는 눈을 느릿느릿하게 깜빡이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모험물이 아닌 정치물에 가깝다.
남주인공의 무력이 강하긴 해도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수단에 사용할 뿐. 게다가 스케일조차 제논 일대기에 비해 협소하다.
제논 일대기는 전세계를 누비는 반면,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특정 왕국에 한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니.
게다가 인간을 제외한 종족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교계에서 몇 마디 하거나 회의에 참석하는 것 정도다.
‘렉스를 전쟁에 반강제적으로 참전하도록 만들까?’
렉스는 남주인공의 이름이다. 여주인공, 그레이스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자 전생에서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다가 죽은 남자.
설정상 그레이스는 백작가의 영애이며, 렉스는 평민이다. 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이유도 렉스가 그레이스의 호위 기사이기 때문이다.
회귀 이후로 그레이스는 어떻게든 렉스를 지켜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렉스도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아이작의 기준으로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회귀물 자체가 없는 이 세상에는 또다른 파란을 모는 중이다.
‘개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 대뜸 참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거야.’
아이작이 누누이 강조했던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개연성 즉, 원인과 결과다.
확실한 원인이 있어야만 그 결과가 납득이 되는 법. 특히 정치물에서는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 개연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회귀물의 가장 큰 난제라 할 수 있는 ‘나비효과’를 고려하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그러니 밑밥을 까는 것만 해도 오랜 기간이 소요될 터.
만약 개연성이 떨어진다면 무수한 비판 세례가 이어질 것이며 독자들도 이해하기 어렵겠지. 체리는 아이작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니면······’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그레이스는 백작가 영애인 것과 달리 렉스는 무력이 강한 평민.
이 둘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깝게 볼 사람이 많다. 우선적으로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있다.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딸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존재다. 참고로 모티브는 자신의 친부, 레티시 백작으로부터 따왔다.
지금은 그럭저럭 갈등도 해소하고 나름 친해졌다지만 그전까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이걸 교묘히 이용하면 되겠어.’
위기가 있어야 작품의 긴장감도 올라가고 재미도 잡을 수 있다. 제논 일대기 29권을 보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편의주의로 쭈욱 이어져도 재미만 있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첫 작품인만큼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엔딩은······’
체리는 집필을 하다가 우뚝 멈췄다. 그리고 다시 제논 일대기 29권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태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 진이 제논의 손에 죽는 건 기정사실에 가깝다.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지만 뭐 어쩌겠나. 체리에게 이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본인이 어떤 엔딩을 내야 이처럼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리할 뿐.
우여곡절 끝에 낸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결을 어떻게 내야 할지 제대로 정하지도 않았다.
“음······”
체리는 제논 일대기 29권을 물끄러리 쳐다보다가 또다시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어둡고 탁한 눈동자가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다.
진·릴리 커플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 주변 반응과 신문을 보면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하다.
만약 자신도 그런 결말을 낸다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까. 살짝 궁금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연성을 모조리 확립하면서도 비극적인 서사가 필요하다.
가령 렉스를 지켜주지 못해 동반자살을 한다거나 이 모든 게 꿈이었다는······
“으으······”
체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우울증에 가까운 심리 상태를 가진 그녀이나 이런 결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작품 속의 캐릭터는 작가의 창조물. 창조물에게 비참한 결말을 내린다는 건 제아무리 그녀여도 버티기 힘들었다.
오히려 심리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우중충하기에 밝은 빛이 필요하다. 먹구름이 낀 땅에서 햇살을 기다리는 꽃처럼 말이다.
반면 아이작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기꺼이 캐릭터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애정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진과 릴리의 서사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마족과 성직자라는 이단적인 요소를 사랑으로 잘 풀어나갔으니.
‘······진짜 사람한테는 안 그러겠지?’
왠지 불안해진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창조물에게조차 이러는데 실제 사람도 똑같을까.
설마 자신도 그러는 건 아닌지, 언젠가 헌신짝처럼 버리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까득-
체리는 또다시 몰려오는 불안감에 버릇 적으로 손톱을 깨물었다. 예전부터 불안 증세가 도질 때마다 나오는 악습관.
최근에는 거의 나아졌다지만 29권의 결말을 보자니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아닐 거야. 아니고 말고.’
아이작은 애정이 가득한 캐릭터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지언정 실제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번질대로 번진 마음은 결코 쉽게 다스릴 수 없는 법. 심지어 그녀는 이런 점에 매우 취약하다.
이에 체리는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책상 서랍을 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한 ‘약’이 하나 있다.
이윽고 그녀가 꺼낸 것은 다름아닌 유리병 하나. 그 유리병에는 붉은빛을 띄는 머리카락이 여러 가닥 담겨있었다.
누가 보아도 아이작의 머리카락이었으며, 실제로 그녀가 부탁해서 담은 것이다.
“스으읍······ 하아······”
마치 마약을 흡입하듯이, 유리병의 뚜껑을 따고 시원하게 냄새를 맡는 체리.
평범한 머리카락이었다면 모를까. 신성력을 가득 품은 아이작이라 그런지 특유의 향이 온전히 보전된 상태다.
진한 라일락 향기가 머릿속을 깨끗하게 만들고, 이어서 달콤한 복숭아 향이 불안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마지막으로 깊은 숲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풀내음까지. 원래는 라일락과 복숭아 향밖에 없었는데 최근에는 풀내음까지 추가됐다.
“후우.”
약(?)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킨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둡게 가라앉은 분홍빛 눈동자가 모두 드러났다.
뒤이어 향기가 빠져나갈까봐 뚜껑을 재빠르게 닫은 다음, 서랍에 고이 보관시켰다.
“······난 절대 안 그럴 거야.”
독자의 원성을 사는 건 상관없다. 애초에 그럴 강심장조차 못 된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비극은 주기 싫어.’
아이작은 여러모로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신성 교국, 세이비어.
잠깐 할 일이 있다며 본국으로 복귀한 케이트도 제논 일대기 29권을 접했다.
본국으로 귀환하기 직전, 마이샬 영지로 돌아와 출판사를 방문했기에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었다.
‘이 또한 아이작 님이 예언하는 거겠지. 사랑을 위한 희생은 언제나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거라고.’
그리고 결말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케이트는 제논 일대기는 예언서로 취급하고 있었으니. 약간 놀라워 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처럼 충격과 공포 수준은 아니었다.
단지 줄거리 속에서 아이작이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것. 그것이 케이트가 제논 일대기를 정독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타락한 추기경도 제논 일대기에 언급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때는 아이작이 미리 자신에게 언질까지 해줬다.
그녀가 제논 일대기를 성서로 취급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케이트 님. 그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의자에 앉아 다소곳이 책을 읽던 케이트 쪽으로 어느 한 성기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에 케이트는 책을 덮고는 고개를 조심히 들어올렸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성기사의 우직한 얼굴.
뒤이어 옆쪽을 바라보니 쭈볏쭈볏한 자세로 눈치만 보고 있는 가녀린 소녀였다.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의 귀여운 인상의 소녀. 다만 눈치를 보는 모습이 썩 불쌍해 보였다.
“고마워요, 형제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아닙니다. 그럼 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기사는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한 후, 소녀를 놔두고 등을 돌렸다.
그리하여 남게 된 케이트와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 케이트는 그 소녀를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반면 소녀는 그녀가 낯설었는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불안해 하는 것 같은 반응.
이에 케이트는 빙긋 웃으며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자매님의 이름이······ 로라. 로라 맞죠?”
“네, 네······!”
케이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게 놀라웠는지 화들짝 놀라는 소녀. 케이트는 그 반응을 보며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만남 같았지만, 이어서 나온 케이트의 말은 상당히 놀라웠다.
“악마 숭배자에게 세뇌된 마을에서 나오셨죠?”
“네, 네······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군요.”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로라는 악마 숭배자를 숭배하던 마을로부터 구출된 소녀.
악마 숭배자였던 가족으로부터 무수한 학대를 받았으며 현재 등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본래라면 신의 교리에 따라 당장 척결해도 아무 상관없지만, 최근 참회를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케이트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로라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혹시 저와 같이 다닐 생각은 없으세요?”
로라를 가르침으로서, 한 번 자신을 뒤돌아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