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11
■ 410화. 기인 (1) □ ᓚᘏᗢ
황궁의 규모가 넓어서 그런지, 정원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여태까지 방문했던 헬리움, 알븐하임, 심지어 숙적인 테르스 왕국의 궁전보다 몇 배는 넓은 것 같다.
마리에게 듣자하니 영토가 막대하게 넓은 만큼 그에 따른 부서도 넓기 때문이라고.
각 영지마다 법이 다르고, 그곳을 관리하는 영주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이유도 관리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란다.
당연히 그 영지마다 받아야 하는 보고 절차 복잡하니 부서가 다양해질 수밖에. 사실 눈으로 보이는 것조차 극히 일부라고 한다.
‘백악관이나 크렘린 궁전도 이렇게 넓진 않겠다.’
무시무시한 땅넓이로 유명한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 집무실도 이리 크진 않을 것이다. 여러모로 ‘황제’에 걸맞는 규모라 할 수 있다.
빈말이 아니라 황궁 전체의 규모가 우리 영지의 규모와 맞먹을 것 같다. 우리 영지가 발전이 덜 되어 작긴 하지만 황궁이 너무 크다.
“언제쯤 도착해?”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될 거야. 정원이 연회장이랑 이어져 있거든.”
수많은 조각상이 배치된 복도를 지나칠 때 마리에게 물으니 아직 10분 정도 더 남았단다.
상상 그 이상으로 넓은 규모에 헛바람이 내뱉었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도 복도 전체에 메아리가 울릴 만큼 넓은 곳이다.
가장자리에는 아까 말했던 조각상들이 나란히 나열돼 있다. 누가 설계했는지 몰라도 미적 감각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테르스 왕국에도 비슷한 장소가 있긴 하다만 그곳은 이처럼 넓은 편도 아니며 조각상도 없다. 오직 그림만 있을 뿐.
때문에 테르스 왕국에는 자기들을 따라했다고 신나게 까는 반면, 미네르바 제국은 그래서 너희들은 이런 거 할 수 있냐고 역으로 받아치는 편이다.
‘전시회를 이런 곳에서 개최하면 좋겠다.’
물론 힘들겠지. 차라리 건물을 새로 하나 짓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최근에 아버지로부터 듣자하니 비슷한 일을 추진 중이라고.
나는 복도를 걸어가면서 조각상들을 하나 하나 눈에 담았다. 당장이라도 살아움직일 것 같이 생동감이 넘치는 조각상들.
개중에는 저걸 어떻게 석고로 제작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그물을 표현한 석고상이 있더라.
“······이거 진이랑 릴리 아냐?”
심지어 진이랑 릴리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조각상까지. 나는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어느 한 조각상을 가리켰다.
겉보기에는 남녀가 서로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맞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의 머리 위에 솟아난 뿔을 보면 그가 마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여자의 복장은 누가 보아도 성직자다.
마족 남성과 성직자 여성의 조합. 이 조합이 전부터 존재했을 리는 0에 수렴할 테니 진과 릴리라고 봐야된다.
“그런 거 같은데? 전에는 이런 조각상이 없었거든. 아무래도 최근에 배치했나 봐.”
“······여기에 조각상을 배치하는 기준이 뭐야?”
“황제 폐하께서 원하는 대로?”
“··· ···”
뭔가 심히 조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설마 황제께서도 진과 릴리를 응원하시는 분인가.
나는 애틋함이 절로 묻어나오는 조각상을 바라보다가 뒤쪽을 바라봤다. 맞은편에 제논 일대기와 연관된 조각상이 있나 싶어서.
다행히 제논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조각상이 있더라. 그런데 문제는 제논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히로인인 메리와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카이르.
그것도 카이르에게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있는 제논의 조각상이다. 대체 저런 건 왜 넣은 거야.
“그······ 황제 폐하께서 독특한 걸 좋아하시나 봐?”
“그렇지? 차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마리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는지 키득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전에 리나도 중간만 가자는 사상과 달리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답한 적이 있다.
혹시 이 조각상과 황제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후로 우리는 조각상들을 지나치며 복도 끝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는 연회장이 있지만 현재는 개방되지 않은 상태라 열 수 없다. 대신 그 옆의 길로 향하면 정원으로 곧장 나갈 수 있다.
“근데 왜 이렇게 텅 비어있어? 관리를 하거나 경호를 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감시 마법이 있어. 만약 우리가 조각상을 건드리거나 수상한 짓을 한다면 곧바로 경보가 울릴 거야. 감시 마법을 무효화해도 기사들이 곧바로 뛰쳐나올 거고. 사실 지금은 사람이 없는 편이 낫지 않아?”
나는 마리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중간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도 크게 상관없었으니.
아카데미라면 모를까, 여기는 황궁이다. 악마 숭배자가 절대 기어들어올 수 없는 곳.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곘지.
“사인 정도는 해줬을 것 같은데?”
“사인까지? 그 사람 완전 행복하겠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복도 끝까지 도달했다. 복도 끝에 도달하면서 내가 마주한 건 천장과 맞닿을 정도로 거대한 대문.
나는 고개를 끝까지 들어 대문을 상세히 관찰했다. 특유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었으며 이 뒤에 연회장이 펼쳐져 있을 터.
빠른 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 문이 열리는 걸 보게 되지 않을까. 지금처럼 마리의 손을 꼭 붙잡고 당당히 들어서겠지.
그렇게 미묘한 감정을 지닌 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마리가 살풋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이지, 봐도 봐도 절대 질리지 않는 미모다.
“······왜?”
“너무 잘생겨서. 앙!”
살짝 부끄러워져서 조용히 물으니 마리가 특유의 애정 표현으로 내 팔뚝을 깨물었다. 여기에 입을 우물거리거나 쪽쪽 빨기까지.
나는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반응했다. 그러자 마리도 깨무는 걸 멈추고 내 팔에 자기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잠깐동안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후에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정원으로 향했다. 원래의 목표지이자 마리가 그토록 가자고 했던 곳.
“오······”
“어때? 이색적이고 예쁘지?”
기대했던대로 아름다운 정원이 눈 앞에 펼쳐졌다. 동시에 예상 밖이었다.
보통 서양식 정원은 구조물의 테마에 어울리도록 기하학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인위적인 면모가 눈에 띈다.
하지만 반면 내 눈 앞에 펼쳐진 정원은 서양식 정원이 아닌, 동양풍에 가까웠다.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형식.
알븐하임의 궁전, 엘로디아도 자연에 녹아든 듯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그것마저 동양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네.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넣은 것 같아. 여기가 정말 정원이라고?”
“응. 참고로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정원이야. 전대 황제까지만 해도 없었거든.”
그렇다면 현대에 들어서 제작된 건가. 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길고 긴 강 끝에 만들어진 연못은 더럽기는커녕 매우 깨끗하여 그 안의 물고기들까지 선명했다.
가끔 가다가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를 보면 그 크기가 굉장하다.
다양한 의미로 운치가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의문이 하나 든다. 최근에 지어진 정원이라면 그전까지는 대체 어떤 곳이었을까.
연회장 바로 옆인 만큼 원래부터 정원으로 사용되기 적당한 곳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존재했어야 정상이다.
“전대 황제까지만 해도 없었다고? 그럼 여기는 어떤 곳이었어?”
“리나 말로는 울창한 숲이었다던데? 일종의 데이트 코스였지. 대신 지금과 달리 벌레도 많고 짐승도 튀어나와서 평가는 별로였어.”
“그래서 이렇게 넓은 거구나.”
하여간 미네르바 제국의 스케일 하나는 인정해줘야 될 것 같다. 나는 마리와 팔짱을 낀 채 정원으로 발을 디뎠다.
연못이 있기 때문인지 무더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불어왔다.
알븐하임과 달리 동양적인 면모를 강하게 풍기는 정원. 연못 위에는 지나갈 수 있도록 디딤돌까지 배치돼 있는 상태다.
“뭔가 순수한 느낌이 들지? 난 이런 곳이 좋아.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옛날에도 온 적이 있어?”
“자주 왔었지. 리나랑 한바탕 싸운 후에는 얼씬도 안 했지만.”
확실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는 딱 적당한 곳이다. 부지가 넓어서 걷는 것만 해도 시간이 전부 소요될 것 같다.
“연인들을 위해 으슥한 곳도 마련돼 있더라. 어릴 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
“······그래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곳인 걸? 어떤 곳인지 궁금해?”
마리는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내 명치에서 배꼽까지 살살 그어내렸다.
의도가 다분히 들어있는 행동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그럴 생각은 없다.
이에 마리의 손가락을 붙잡고는 조용히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녀도 아쉬워할 뿐이지, 실망하지는 않은 기색이다.
“정말 괜찮은 제안이지만 더위를 생각해. 땀을 뻘뻘 흘린 채로 돌아가고 싶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아. 그 생각은 못 했구나. 어쩐지 밤에만 그런 소리가 들리더라.”
내 말에 납득이 가는지 마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심인 것 같아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마리와 단 둘이 있는 것이었으니. 마리도 오랜만의 데이트라 그런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완결이 되는 거지? 완결하면 쉬다가 차기작을 연재할 거야?”
“그건 모르겠네. 일단 외전을 몇 권 정도 낼 생각이야. 클라크 할아버지를 보고 떠오른 게 있거든.”
“외전이라······ 그럼 그 등장인물은 죽겠네?”
“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으며 등장인물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는 외전의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을 단번에 예측했다.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이런 내 반응에 그녀는 피식 웃더니 전부 예상이 간다는 투로 대답했다.
“네 이야기가 그렇잖아? 그리고 이번에 진까지 아예 확정이지. 외전으로 등장한 사람들은 전부 죽는다. 이런 식으로. 카이르도 그랬잖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억측인데?”
“그래서 그 사람 죽어, 안 죽어?”
“······죽긴 죽지.”
제논의 친아버지에 대한 스토리라 반드시 죽어야 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스쳐간 영웅’에 대해 쓰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마리는 내 대답에 그럼 그렇지라며 키득키득거렸다. 그리고는 장난식의 어조로 내게 말했다.
“좀 안 죽이면 안 될까? 주변에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면 무슨 맛으로 봐?”
“잘만 보던데?”
“그래. 네 작품은 보겠지. 그래도 희망을 주란 말이야, 희망을. 내가 진·릴리 커플을 응원하진 않지만 너무 안타깝다고.”
“음······”
세계 2차 대전 소설을 집필하면 아주 까무러치겠네. 나는 눈치를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보통 침묵은 긍정의 의미로 쓰이나 지금은 약간 다르다. 약간 고집을 피우는 느낌이 강할 테니까.
마리도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반쯤 포기한 듯했다.
“뭐, 작가는 너니까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좀 헤아려 줬으면 해. 당장 시어머님도 진·릴리 커플을 응원하시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
“남자가 뚝심이 있어야지. 그래도 네 말대로 보험은 들어놓을 거야. 상황이 심각해지면 외전을 써야겠지.”
“그래. 그래야······ 응? 외전? 본작이 아니라?”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외전이 정사가 아니라는 걸 대충 간파한 모양이다.
진의 부활까지는 백번 양보해줄 수 있다. 그러나 정사로 편입될 일은 결코 없다.
그래야만 제논 일대기의 차기작에 더 나은 설정을 부여할 수 있을 테니까. 참고로 2차 세계 대전을 말하는 게 아닌, 진정한 의미의 후편이다.
“응. 진이 죽는 건 무조건 정사로 넣으려고. 외전은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두는 편이고.”
“와······ 꼭 그래야겠어? 어떻게 감당하려고?”
마리의 기가 차다는 말에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그러게 말일세. 어떻게 하면 살려줄 텐가?”
“······?”
느닷없이 뒤쪽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걸걸하면서도 중후한 중년의 목소리.
이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보니 금발 벽안의 중년 남자가 우리 뒤에 당당히 서 있었다.
구렛나루와 이어진 수염과 우묵하게 패여있는 눈. 평범한 예복이나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무릎이라도 꿇으면 되겠나?”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