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26
■ 425화. 축제가 아닌 장례식 (1) □ ᓚᘏᗢ
레오나 일러스트 올리겠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다들 알 거에용 ㅎㅎ
* * *
아이작이 축제가 아닌 장례식을 보며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손님방에서는 아름다운 두 여인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와 헬리움의 공주, 세실리. 두 명 모두 세간에 정평이 나 있는 미녀들이며, 아이작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됐냐면······”
겉보기에는 두 명의 미녀가 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겉보기만 그럴 뿐이지 자세히 본다면 썩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작이라는 튼튼한 연결 고리가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굉장히 미묘했으니까.
만약 아이작이 없었더라면, 더 나아가 리나가 아이작과 정략 결혼을 하게 될 운명이 아니었더라면 평범한 친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함께 다니고,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들 외교에 한해서는 철저해야 된다.
게다가 현재 헬리움은 이제 막 국제 정세에 뛰어들었으나 알븐하임에 맞먹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바.
리나는 물론 세실리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때문인지 기묘한 분위기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세실리에게 있어서 리나는 아카데미에서 제일 먼저 말을 걸어준 소중한 친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리나도 다를 바가 없다. 만약 국제 정세가 평범하게 돌아간다면 모를까, 현재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물론 피해를 줄만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건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피해는 주지 않더라도 손해는 받지 말아야 하지 하겠는가. 겸사겸사 이익까지 본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헬리움의 반응은 어땠어? 악마의 기원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퍼졌을 때 말이야.”
리나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면서 세실리에게 질문했다.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고양이처럼 뾰족한 눈매가 유독 돋보였다.
이에 세실리도 빙긋 웃어주며 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달콤하면서 쓴맛이 일품인 커피. 헬리움에서 직접 갖고 온 물건이다.
뒤이어 그녀는 웃음기를 유지한 채로 고개를 들어 리나와 똑바로 마주했다.
“난리도 아니었지. 너도 알다시피 악마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침략자로 알고 있었으니까. 특히 우리 마족은 직접적인 피해자여서 사상마저 흔들릴 뻔했어.”
아직도 기억이 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세실리.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조금씩 흔들린다.
리나는 하마터면 그 가슴 쪽에 시선이 갈 뻔했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자신도 전혀 꿀리지 않는데 세실리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다.
그사이 세실리는 제논 일대기 29권이 발매되었던 당시를 상기했다. 제논이 진의 뒤를 추적하면서 하나 하나 파헤친 악마의 기원.
악마의 기원이 인간이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진실에 헬리움을 넘어 마족 전체가 동요했다.
마족은 악마에게 피해를 입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으며, 막강한 힘을 얻은 대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떠안게 되었으니까.
이뿐만이 아니라 악마 전쟁 이후 끝없이 이어졌던 차별 어린 시선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악마들이 내린 저주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악마의 기원이 사실 인간이었다는 게 제논 일대기를 통해 밝혀지면서 수많은 혼란을 안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수습은 할 수 있었어. 악마가 가해자고, 우리 마족이 저주를 받았다는 건 변치 않았으니까. 오히려 우리도 인간 즉, ‘사람’이라는 게 더 명확히 밝혀졌으니 더 좋아졌지.”
“그렇긴 하겠네.”
이번에 드러난 진실은 마족의 정체성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여태까지 마족은 스스로의 기원을 인간, 즉 사람으로 굳게 믿고 있었으니.
제논 일대기는 마족의 인식을 바꾸었을 뿐이지, 마족의 기원이 악마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건 다른 종족들만이 아니라 마족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가슴 속에 시한 폭탄이 존재하는데도 묵묵히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숭고한 신념.
그 신념을 품고 나아가는 도중에 이런 진실까지 드러났으니 진정한 의미로 숙원이 풀린 상황이다.
아이작을 향한 세실리의 사랑과 존경이 깊어진 것도 당연한 수순. 이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떳떳하게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다.
“헌데 그게 진실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잖아. 헬리움에서는 따로 조사단을 안 꾸려?”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사흘 전에 세이비어 쪽에서 사절단을 보냈더라고. 그것도 추기경 한 명과 대주교 3명을 대동한 채로.”
“······사절단으로 그만한 인원을 보냈다고? 본국에서?”
“응.”
리나는 세이비어가 헬리움으로 보낸 사절단의 편성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야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미네르바 제국으로 따진다면 레킬리스 공작 및 대신들을 보낸 셈이다.
게다가 세이비어가 루미너스 교단을 국교로 삼는 것처럼 헬리움은 모라를 국교로 삼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종교에 뿌리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사절단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헬리움으로서는 굉장히 놀랐겠지.
“······위험하지는 않았어? 세이비어는 헬리움과 사이가 매우 나쁜 걸로 예상되는데?”
“네 예상이 맞아. 귀족 중 한 명이 우리 선조를 학살한 후예들이 어쩐 일로 찾아왔냐고 대놓고 물었으니까.”
“··· ···”
리나는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절단에게 저런 망언을 하는 것 자체가 너희와는 친해질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이비어는 과거 마족들을 악마로 단정하고 학살을 저질렀다. 광신에 물든 채 앞뒤 가리지 않고 자행된 학살.
다행히 루미너스의 중재 덕분에 간신히 중지되었으나 마족은 그 아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심지어 수명마저 엘프 못지 않게 긴 터라 인간으로 따지자면 할아버지대에 그런 학살이 발생한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 우리 아버지가 곧바로 중재해서 심각한 일은 나지 않았어. 세이비어 쪽에서도 과거에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속죄하는 중이었고.”
“그럼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려줄 수 있어?”
“너희와 비슷해. 세이비어에게 탐사의 지휘를 맡겨달라는 거였지.”
너희와 비슷하다. 이 말은 즉슨 미네르바 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갔다는 걸 눈치채고 있다는 뜻이다.
원래라면 흠칫거릴만한 비밀이었으나 리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세이비어의 사절단이 제국에 방문한 건 사실이나, 사절단 쪽에서 미리 말을 해놓았으니까.
즉, 세실리 또한 세이비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마의 지대이자, 진실이 파묻힌 회색 사막의 공략. 그곳을 탐험하자는 거다.
“허락했어?”
“허락할 수밖에 없지. 헬리움으로서는 이런 국제적인 협력이 거의 전무했으니까. 지휘권을 쥘 수는 없어도 큰 도움은 될 거야.”
“반발이 심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심했지. 우리도 세이비어를 완전히 믿는 게 아니라 정찰 목적으로 몇몇 인원을 보내긴 했어.”
“······그런 걸 말해도 돼?”
너무 손쉽게 기밀을 밝히는 세실리. 이에 리나는 살짝 떨떠름해졌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특히 밝혀진 게 얼마 없는 미지라면 더욱이.
정찰을 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인데 세실리는 대놓고 말했다.
“뭐, 어때? 솔직히 우리 헬리움은 다 필요없고, 그 진실이 제일 중요하거든. 무엇보다 아이작이 쓴 제논 일대기에 나온 거잖아? 안 믿을 수가 없지.”
세실리는 전적으로 아이작을 신뢰하다 못해 광신에 가까운 믿음을 드러냈다.
그의 말이 진실이자 모든 것이라 믿는, 흡사 광신도와 비슷한 반응.
리나는 그걸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감정을 추스렸다.
아이작을 향한 세실리의 마음은 원래부터 심상치 않은 것도 이미 알고 있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진실이 책에 나오자마자 아이작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었어. 하지만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지. 그가 한 말인데 과연 거짓일까? 그럴 리가 없잖아?”
“어······ 그래. 그렇지.”
오늘따라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못 본 사이에 집착이 더 강해진 것 같다.
리나는 스스로를 꽉 끌어안으며 행복해 하는 세실리를 보다가 찻잔을 들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며, 왠지 몰라도 심정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녀는 세실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정보를 정리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세실리만 아니라 마족 전체가 그럴 것이며, 이번에 진실이 밝혀진다면 마족을 ‘인류’에 포함시킬 수 있다.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는 이유 하에 흔히 꼰대라 불리는 족속들이 그들을 정식으로 인류라 단정짓지 않았으니.
특히 이건 엘프, 자세히 말하면 구세대 엘프가 가장 심한 편이었다. 이건 아르웬 여왕이 잘 처리할 터.
‘현재 헬리움은 강해보여도 부족한 점이 많아. 특히 학문에 한해서 그 점이 뚜렷할 거야.’
헬리움은 잠자는 사자라 평가받고 있지만 정확히는 어린 개체라 비유해야 될 것이다.
1000년 이상을 반강제적으로 고립되었는데 문화면 몰라도 학문에 한해서는 상당히 뒤쳐져 있을 터.
특히 ‘수학’에서 가장 큰 약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세실리와 함께 수업을 들으며 알아낸 사실이다.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유독 수학에서 난관을 겪던 그녀였으니까. 한 나라의 공주마저 이런데 그 밑의 사람들은 오죽할까.
물론 그것도 초창기에 한해서지, 지금은 일취월장하여 수석 자리를 꿰차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지식이 부족했던 것뿐이지 멍청한 건 절대 아니다.
본래 지식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인 것들이 융합을 이루어 또다른 지식을 낳는 것.
현재 헬리움은 그 부분이 약했으며 보다 더 심도 깊은 학문이 필요하다.
‘마족의 학자가 위그드라실에 향하는 건 어렵겠지만······’
전세계의 학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거나 논평을 한다는 지식의 성지, 위그드라실.
특히 알븐하임은 모든 문명의 근원지인만큼 학문이 크게 발달돼 있다. 모든 기초가 알븐하임으로부터 나왔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모든 학문의 기초가 알븐하임으로부터 나왔으며, 인간은 특유의 습득력으로 그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었다.
‘우리 제국이 뼈대를 만들어주면 될 거야.’
뼈대를 튼튼하게 제작하는 대신 헬리움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것이다. 가장 먼저 농경법 및 아이작이 언급한 연금술의 지식 체계 정립.
헬리움은 농법이 유독 잘 발달돼 있었다. ‘콩’이라는 작물도 그렇고 척박한 환경에 비해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씨앗을 대충 뿌려도 작물이 알아서 잘 자라는 알븐하임과 명확히 대비된다. 그쪽은 땅이 워낙 사기이니 예외로 쳐야된다.
“그러고 보니 세실리. 헬리움은 농법이 잘 발달돼 있는 편이지?”
“응? 농법?”
“응. 농법.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제국에 심한 흉년이 들었거든. 그런데 헬리움은 척박한 환경에 자리잡은 것치고는 인구를 꾸준히 증가시켰잖아? 그 비법을 알려줄 수 있어?”
그 질문에 세실리는 붉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솔직담백하게 얘기했다.
“비법이라는 것도 없어. 그냥 비 올때 하늘에서 번개 마법을 떨어뜨리면 되거든.”
“······뭐?”
“라이트닝 스톰이라는 마법 알아? 조금 힘든 마법이긴 한데 비가 올 때마다 그걸 사용하면 작물이 알아서 잘 자라더라고. 대신 출력이 엄청 높아야 되서 마족이 아닌 이상 힘들 거야.”
“··· ···”
리나는 대답을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생각해 보니 마족도 엘프 못지 않게 마법을 잘 쓰는 종족이었지. 역시 마법은 사기가 맞다.
그나저나 실제 번개 못지 않은 출력의 마법을 사용해야 된다니. 그녀는 답도 없는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인력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제국에도 뛰어난 마법사는 많으니까.
차라리 애니머즈처럼 주술로 번개를 떨어뜨리는 게 더 나을 뿐이지. 효율적으로 매우 뒤떨어지는 짓이다.
‘······인간은 역시 기술 발전밖에 없어.’
마법 따위 때려치우자. 아이작이 살던 세상처럼 과학 및 공학에 올인하는 게 더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헬리움이 아니라 마키나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만 헬리움에게 도움을 받아 번개를 떨어뜨리던지 해야지.’
리나는 실로 오랜만에 겪는 종족 차이에 잠시 우울해졌다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안타깝긴 해도 현실은 현실. 인간은 인간만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된다.
“알았어. 하는 수없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아, 그러고 보니 콩이라는 것도 심는다는데 맞아? 땅에 좋다고 들었거든.”
“응. 번개를 떨어뜨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콩도 심는 편이야. 그런데 콩이 땅에 좋다는 건 어떻게 알아?”
세실리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콩은 헬리움에서만 나는 특수한 작물이고, 이 작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헬리움과 교류를 할 때는 마법에만 치중하고 있지, 리나처럼 농사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알고 있는 걸 보면 따로 조사했거나 아니면······
“아이작이 가르쳐줬어. 콩이 땅에 어떤 영양분을 남겨둬서 지력의 소모를 늦출 수 있다고 했거든.”
“역시······”
예상대로의 대답에 세실리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데도 예언자가 아니라니 말이 안 된다. 헬리움에서 며칠동안 지낸 적이 있으나 지식 교류는 거의 없었으니.
반면 리나는 아이작이 헬리움에서 며칠동안 지냈기에 알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이렇듯 서로의 착각 아닌 착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세실리는 빙글빙글 미소를 유지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리나.”
“말해.”
“리나는 아이작이 정말로 예언자라 생각해?”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질 법한 질문. 리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세실리가 저런 질문을 하는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터. 여기에 개인적인 사랑도 포함돼 있겠지.
이윽고 리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세실리와 똑바로 마주했다. 그녀는 여전히 특유의 농염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하던 두 미녀.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리나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러면······”
“대신 더 고차원적인 존재라 생각하고 있어.”
이어서 나온 리나의 대답에 세실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라니. 그 말은 즉······
“혹시 아이작을 정체를 숨긴 천사라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야. 나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고차원적인 존재인 건 확실해.”
이곳보다 문명이 몇 단계가 진보된 세상에서 온 존재니까. 과학이 마법을 대신하고, 현재로서는 절대 상상조차 못할 세계에서 온 인물.
뒷말을 삼켰으나 리나에게 있어서 아이작은 정말 그런 존재다. 제논 일대기도 제논 일대기지만 사람 자체가 비범하다.
본인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강조하고 있으나 그런 세상에서 왔다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물론 아이작이 아무런 명성도 없는, 그저 그런 평민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그의 지식은 분명히 전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터. 리나는 입꼬리를 올렸다가 두 손으로 턱을 받치며 은밀하게 말했다.
“그래서 포기하기 싫어. 옆에 계속 있으면서 그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 또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거든.”
“······설마 너도 아이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거니?”
“아직 그런 건 아니야. 단지 사람 자체에 흥미를 지녔을 뿐. 그래도 정략 결혼을 하고, 그와 생활하면서 이성적인 마음을 품긴 하겠지. 얼굴도 충분히 잘생긴데다가, 너희와 하는 걸 보면 그······ 밤일도 잘할 테고. 아냐?”
마지막 언급은 스스로 말하기 부끄러웠는지 더듬거리는 리나였다. 얼굴 또한 약간 붉어진 게 말하고도 창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실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옆에 계속 있다는 건, 아이작과 단 둘이 있을 날이 줄어든다는 것이니.
왠지 모르겠지만, 강력한 라이벌이 새로 등장한 것 같은 기분이다. 과연 이 사실을 마리도 알고 있을까.
“마리는 알고 있어?”
“아직 모를 거야. 단, 내가 원하는 건 아이작의 지식이라는 점만 알아줘. 알겠지?”
“글쎄······”
세실리는 썩 못 믿겠다는 듯이 중얼거리더니 리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뒤이어 피식 웃더니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 넌 아직 아이작이 어떤 남자인지 모르는구나.”
“바람둥이인 건 알고 있어.”
“그럼 왜 여자들이 아이작에게 끌리는 걸까? 한 번 잘 생각해 봐.”
“잘생기고 몸 좋고 제논이라서?”
“그건 부가적인 요소야. 그의 진정한 매력은······”
“됐어. 말하지 마. 그것만 말하다가 시간 다 가겠다.”
리나는 손을 흔들며 바로 멈췄다. 실제로 아이작을 향한 세실리의 찬양을 듣게 된다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게다가 말만 그렇게 했지, 사실 그녀도 아이작을 향해 이성적인 호감을 약간이나마 품고 있는 중이다.
뭐랄까······ 가까이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 비밀마저 들킨데다가 그의 앞에만 있으면 가면이 모조리 벗겨진다.
정치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이건 가장 큰 장점이자 그의 매력이다.
‘마리도 이 점 때문에 제일 먼저 다가간 거겠지.’
리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녀로 태어나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던 운명.
그 운명 때문에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어버렸으나, 아이작 덕분에 그 관계가 회복되었다.
사이에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으나 다행히 잘 해결됐고. 여러모로 자신과 제국에게 있어서 축복이라 할 만한 남자다.
‘조금 욕심 부려도······ 되려나?’
지은 죄가 있어서 힘들겠지만, 지식을 얻는다는 명목 하에 붙어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만 마리는 물론 세실리도 안심할 테니. 리나는 최대한 표정을 숨긴 채 조용히 차를 마셨다.
똑똑똑-
[얘들아. 너희 여기 있다며? 나야, 나. 마리.]잠깐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파고들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실 부인 취급을 받고 있는 마리가 도착한 모양이다.
이에 리나와 세실리는 서로 쳐다봤다가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허락을 내린 건 리나였다.
“들어와.
[그럼 들어갈게.]덜컥-
문을 열자 수수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 걔는······”
“아, 안녕? 헤헤.”
겸사겸사 레오나까지. 이사를 오는 도중에 공교롭게도 마리와 마주친 모양이다.
이렇듯 우연스레 만났으나,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마리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나저나 너희 바깥 상황 봤어? 지금 재미있는 걸 하려는 것 같은데?”
“재미있는 거?”
“응. 재미있는 거.”
“그게 뭐야?”
리나의 질문에 마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애매하게 답했다.
“장례식 같은 축제랄까?”
“······아.”
“풉.”
뭔가 깨달았는지 탄성을 지르는 리나와, 웃음을 터뜨린 세실리.
그들은 아이작과 달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작은 어디로 갔어?”
어디로 갔기는.
“지금 이 시간부로, 진을 위한 장례식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 ···”
실시간으로 장례식 같은 축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저택으로 가면 좆된다.’
타이밍이 참 거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