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35
■ 434화. 이래서 판타지란 (3) □ ᓚᘏᗢ
아인슈타인이 들었다면 상대성 이론을 찢어버리다 못해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질 발언들이 속속 튀어나왔지만, 어찌 저찌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이과가 아니고 문과에다가, 이 세상의 마법조차 전혀 모른다.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봤자 세실리와 아르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말해주니 놀라는 건 비슷했다.
마나와 마법 없이 오직 기계의 힘으로만 비행기와 증기선을 운용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들에게 ‘마법’이나 마찬가지일 터.
더군다나 세실리와 아르웬은 각각 마족과 엘프다. 두 종족 모두 생활 속에 마법이 물들어 있는 종족이다.
인간에게 ‘도구’는 뗄래야 뗼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이들에게 마법은 그것과 비슷한 위치다.
그래서인지 마법 없이 텔레포트를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런 질문이 역으로 돌아왔다.
“아이작 너는 손 없이 글을 쓸 수 있어?”
“······많이 힘들겠지?”
“우리에게 마법은 그런 거야.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도구이자 손발 같은 느낌이거든.”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개사기 종족들이라고. 다른 종족은 아득바득 과학을 발전시키며 사는데 이들은 마법 하나로 뚝딱 해치운다.
지구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텔레포트를 쉽게 여기는 것도 저 이유 때문이겠지. 시작 지점부터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만약 헬리움이나 알븐하임 내에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탄생하고, 더 나아가 종족 전쟁을 일으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역사만 보면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
헬리움은 1000년 이상 동안 모든 종족에게 박해를 받았으며, 알븐하임은 인간 연합에게 굴욕적인 조항까지 받으며 전쟁에서 패배했다.
극단적인 사상을 지닌 자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며, 실제로 헬리움은 강경파 마족이 등장했다.
강경파 마족이 정권을 완전히 잡았다면 세계 전체를 쥐어잡으려 시도했겠지. 알븐하임은 이걸 필사적으로 막았을 테고.
이 둘이 붙는다면 판타지판 독소 전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지 않을까.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는지 세실리가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그럼 아이작은 전생의 나이를 합쳐도 우리보다 적네?”
“응? 아. 응. 그렇지.”
“마리랑 아델 씨, 그리고 가족분들은 어떻게 한다고 했어? 나는 누나라 부르면 되지만 약간 어색할 텐데.”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그냥 그대로 부르기로 정했거든. 현생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직 아델 누나한테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부탁할 거야.”
물론 마리가 나를 보고 애 같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 부분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사람은 환경을 따라 간다고, 환경에 몸을 맡기다 보니 정신 연령도 자연스레 따라가더라.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었다면 모를까, 창창한 20대에 요절해서 그런지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알았어. 앞으로도 쭈욱- 누나라 불러줘. 알겠지?”
“그러긴 할 텐데······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당연히 있지. 너한테 누나라는 말을 듣는 게 얼마나······ 하아.”
세실리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감고 달뜬 숨소리를 내뱉는 것이 아닌가.
뭔가 야하게 느껴지면서도 성취감으로 가득한, 속내를 알 수 없는 반응.
내가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세실리는 눈을 뜨며 황홀함이 깃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수에 젖어있는 붉은색 눈동자에 살짝 흠칫거렸지만, 뒤이어 나온 발언으로 인해 황당해졌다.
“얼마나······ 얼마나 짜릿한데.”
“······짜릿하다고?”
“응. 설명하기 힘들지만 짜릿해. 제논에게 누나라 불리는 마족이 사실상 나밖에 없잖아? 게다가 귓가에다 대고 누나라 소근거린다면······ 정말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어······ 그래.”
“그, 그것 참 특이한 취향이로구나. 나는 지금이 훨씬 낫다만.”
나이대가 비슷한 아르웬조차 세실리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애매모호한 표정이었다.
세실리가 뿜어내는 색기에 얼굴이 붉어지긴 했다만, 엉덩이를 슬금슬금 옮기는 걸 보면 꺼림칙한 모양이다.
아무튼 호칭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됐고, 남은 건 내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과학 및 기술에 관한 건 둘째치고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문화’다. 각 국의 전통적인 문화가 아닌 전세계에 퍼져있는 문화.
예를 들어 현재 헬리움이 선두 주자로 우뚝 달려나가고 있는 ‘영화’에 대해서다.
“실제 배경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배경을 따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응. 그 기술 덕분에 다양한 시간대와 배경,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참고로 방법은 나도 몰라. 그런 기술로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것만 알아줘.”
“정말 좋은 발상인데? 그 기술만 있다면 적절한 배경과 환경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거니까. 조만간 매트릭스 극단과 연락을 해야겠어.”
알다시피 헬리움은 국가 차원에서 영화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지난번 제논 축제에서 영화를 공개한 이후, 대대적인 제논 일대기 영화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다만 CG를 마법으로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CG는 처음부터 배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연기를 끝마치고 컴퓨터로 작업하는 거니까.
나는 벌써부터 구상 중인 세실리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연기를 할 때부터 배경을 만드는 게 아니야. 특수한 판을 뒤에 둔 뒤, 모든 촬영을 끝내고 작업식으로 배경을 만드는 거지.”
“그래? 처음부터 배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그 부분은 신기루 마법을 응용하면 될 것 같구나.”
“응?”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웬이 입을 열었다. 그에 나와 세실리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르웬은 시선이 모이자 우리 둘을 번갈아보더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내놓았다.
“그대가 말했던 방식은 신기루 마법과 매우 유사하니라.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연구한 마법 중 하나지. 특히 이건 유적을 조사할 때 매우 유용하니라.”
“신기루? 어떤 방식이야?”
“상위 마법이라 말로 설명하기는 힘드니라. 대신 신기루처럼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상황 표현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은 할 수 있지.”
대신 내가 언급한 CG처럼 미리 촬영을 하고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가상 현실을 만드는 식이란다.
대규모 전쟁 파트에도 이걸 잘 이용한다면 불필요한 인력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특히 제논 일대기 속 엘븐하임 점령 파트는 세계수가 폭발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마법이라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고 뭐 그딴 마법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여기는 판타지 세계.
CG 작업 따위는 집어치우고 가상 현실을 마법으로 표현하여 촬영한다는, 정말 놀랍고도 경악스러운 발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듣는다면 게거품 물고 달려들겠네.’
빈말이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은 현실주의 연출을 중시하기로 유명하다. 병원 폭파씬에서 실제 건물을 터뜨렸다는 일화를 모두 알 것이다.
내가 그 생각을 하면서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쯤, 세실리도 비슷했는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마족은 ‘화력’이 강하지만 아르웬이 언급한 신기루 마법처럼 ‘세심함’에서는 다소 뒤떨어진다.
아무래도 헬리움이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다보니 기초적인 학문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그게 정말 가능한 거예요?”
“물론이니라. 헬리움이 부탁한다면 우리 알븐하임은 기꺼이 응해줄 용의가 있다. 제논 일대기에 한해서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니라.”
“······이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둘이서 따로 얘기하도록 하죠.”
“알겠다. 재미있는 대화가 될 것 같구나.”
나도 저 이야기에 끼고 싶었으나 마법 문외한인 머글은 짜져있어야겠지. 나는 다소 해탈한 마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마리와 가족들과 대화할 때는 미묘한 우월감이라도 있었지만, 이 둘 앞에서는 한낱 인간의 재롱에 불과하다.
산업 혁명도 터지지 않은 시대에 고퀄리티 영화를 선보인 것부터 대단했는데 연극마저 마법을 사용했다.
이러니 과학의 발전이 느릴 수밖에. 마법으로 모두 해결하면 장땡인데 과학따위 필요할까.
“영화 말고 다른 건 없어? 간단한 놀이라도 괜찮아.”
“놀이라······ 그나마 생각나는 건 바둑 정도?”
“바둑?”
이곳에서도 보드게임 중 하나인 ‘체스’와 비슷한 놀이는 있다. 사실 명칭만 다를 뿐이지 체스와 똑같은 규칙을 가지고 있다.
반면 바둑이나 장기는 없다. 동양과 흡사한 나라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아예 존재하지가 않는다.
아무튼 바둑의 기원은 잘 모르지만 대개 중국에서 내려왔던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막장 인생 제조 게임으로 유명하다.
구시대적 놀이라 해도 한 번 빠져들게 되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악마의 게임.
관우가 독을 제거하기 위해 뼈를 깎아낼 때도 바둑을 뒀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언뜻 보면 관우의 초인적인 정신력을 보이는 거지만, 많고 많은 것들 중에 바둑을 뒀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거다.
“응. 가끔 제논 일대기에 이런 단어를 본 적이 있지? 초읽기, 포석, 자충수를 두다, 사활을 걸다. 이런 거.”
“아. 그건 본 적이 있다. 생소한 단어라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 다행히 밑에 주석을 달아준 덕분에 뜻을 알게 됐느니라.”
“그거 원래 바둑에서 나온 용어야. 내가 새로 만든 단어가 아니라.”
바둑이 없다보니 위의 표현들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저것들만큼 달리 표현할 만한 용어가 없어서 그냥 내가 만들었다.
때문에 평론가들이 새로운 단어를 창조했다니 뭐니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정말 부끄러웠지.
단어 자체는 이곳의 언어를 결합하여 새로 만든 건 맞다만, 원래 있던 걸 그대로 가져다 쓴 것과 다름 없으니까.
나도 어린 시절에 바둑을 배웠던 적이 있어서 규칙 자체는 알고 있다. 사실 규칙 자체가 매우 간단해서 모르는 게 이상하다.
경우의 수가 미친듯이 많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세실리와 아르웬을 번갈아 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지만 조금 있다가 알려줄게. 룰 자체는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놀이거든.”
“알겠다. 조금 있다가 세실리 공주와 얘기할 때 하면 되겠구나.”
“그전에 보드 게임부터 이기고 오시죠?”
“하. 그때는 내가 봐줬다는 걸 정녕 모르는 게냐?”
보드 게임은 또 언제 했대. 나는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둘을 간신히 말렸다.
이 상태에서 바둑까지 둔다면 어디까지 내려갈지 도통 예상을 못 하겠다. 그만큼 바둑은 중독성이 심한 놀이였으니.
어쨌거나 이후로도 이런 저런 문화에 대해서 알려줬다. 마법을 손발처럼 쓰는 종족들이다 보니 과학보다는 문화에 관심이 쏠린 모양이다.
그렇게 나온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 그것도 ‘축구’였다.
공으로 하는 놀이 자체는 나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다. 단지 스포츠가 없었을 뿐이지.
“마나를 이용한 강화 없이 오직 신체 능력으로만? 흥미롭긴 하다만······”
“그러면 수인이 너무 강해지지 않을까? 특히 드워프가 너무 불리해. 다소 한정적일 것 같네.”
문제는 서로 공평하지 않다는 것. 드워프는 특유의 신체로 인해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불리하고, 수인은 너무 유리하다.
당장 레오나조차 겉보기에는 여리여리해도 80kg가 넘어간다. 체급부터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스포츠와 관련된 건 인간, 마족, 엘프 이렇게만 성행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이건 그냥 넘어가기로 정했다.
“음······ 아무래도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 혹시 궁금한 거라도 있어?”
“나 하나만 물어볼게.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어.”
내가 제안을 하자마자 세실리가 살포시 손을 들며 말했다. 아르웬도 순간 움찔거렸다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뒤이어 세실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여유롭게 차를 한 잔 마셨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다소 시끌벅적했던 방금 전과 다르게 진중하디 진중한 분위기. 그녀에게서 나오는 아우라조차 심상치 않았다.
이에 무슨 질문을 할지 궁금해져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을 때, 세실리는 붉디 붉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외모라 생각할 때, 그녀가 특유의 고혹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작. 너희 세상은 다른 종족 없이 오직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했지?”
“응.”
“그럼 모두가 공평했어? 신분과 능력에서 나오는 차별이 아닌, 종족 단위의 차별이 있었는지 궁금해.”
“있지.”
나는 있었지가 아니라 있지라고 답했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세실리도 이 점을 눈치챘는지 썩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그녀가 다급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어, 어째서? 과학과 문화가 이곳보다 훨씬 발달된 곳이라며? 민주주의? 아무튼 그 체제 덕택에 신분제가 완전히 사라졌잖아.”
“대신 권력은 없어지지 않았지. 게다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라는 또다른 신분제를 낳았거든. 완전히 사라졌다 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어.”
그걸 완전히 파기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지만, 알다시피 현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실 체제 자체만 보자면 의의는 좋지만, 그걸 사용한 주체가 소련과 스탈린이다.
물론 이건 ‘신분’에 한해서지, ‘민족’을 넘어 ‘종족’ 단위로 박해를 받은 인종이 있긴 있다.
“아까 종족 단위의 차별이 있는지 물었지? 그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단지 피부가 새까맣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있지.”
예상했다시피 흑인이다. 지금은 차별하는 순간 욕은 욕대로 먹지만 안타깝게도 인종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옛날보다 나아졌다는 것. 세실리는 내 말을 듣더니 충격 받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피부가 새까맣다면······ 남방민 아니야?”
“비슷해.”
“남방민한테는 덤비지 말라는 풍조가 있다고 들었는데······”
세실리의 말처럼 남방민은 흑인에 가까운 민족으로, 사막의 나라 ‘굴탄’에서 거주하거나 유목민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더럽게 강하다. 빈말이 아니라 전투 민족이라는 단어에 딱 부합하는 민족이다.
사막에서 꿋꿋이 살아남은데다가 주변의 몬스터까지 퇴치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강하다.
천만다행히도 성질머리가 더럽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예의가 발라서 미네르바 제국과 협조하고 있다.
더군다나 회색 사막의 횡단에도 남방민의 도움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다.
아무튼 남방민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지만, 적대시하는 순간 끝장난다고 보면 편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쪽 세상 기준이었지. 내가 살던 곳은 여러 이유 때문에 차별 받았어.”
“대체 누가 그랬던 거야?”
“그것까지 말하면 너무 길어져서 넘어갈게. 무엇보다 여기도 옛날에 노예제가 있었잖아? 인간이 다 그렇지, 뭐.”
“모든 원흉이 인간에게 있기라도 한 거야······?”
그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네. 이곳의 인간은 이종족이 있어서 민족 간의 차별이 덜하지만 지구는······ 말을 말자.
아무튼 세실리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는 동안, 나는 아르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르웬도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무슨 의미인지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지. 그대가 나에게 준 연설문을 기억하느냐?”
“당연히 기억하지.”
“그럼 두번째로 준 연설문이 아니라 첫번째로 준 연설문은 누가 말한 것이냐? 나는 두번째보다 첫번째 연설문이 더 기억에 남더구나.”
“어······”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준 두번째 연설문은 링컨의 게티즈버그에서 따온 것이고.
“마치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고양시키고, 더 나아가 자부심까지 주는 연설문이었지. 대체 누구이길래 그런 명연설을 한 것이냐?”
“··· ···”
첫번째는 짝부랄 콧수염이 발표했던 연설이었으니.
‘······어떡하지?’
결국 나중에 책을 내면 알 거라고 대답했다. 이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니까.
“기대되는구나. 과연 누가 그런 연설을 했는지. 다음에 쓸 책에 나온다고?”
“······응.”
“그렇다면 분명 존재감이 강한 인물이겠구나. 필히 그렇겠지.”
존재감 하나는 확실하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