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4
■ 43화. 위기 (2) □ ᓚᘏᗢ
나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잠깐 멍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특유의 짧고 굵은 문체를 보아 아버지가 보낸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내용만 본다면 무슨 첩보물을 찍는 것도 아니고 비장함이 실려있다. 이탓에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으나 머지않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밟혔다고?’
내가 익명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할 수 있던 이유가 아버지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작업을 거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인맥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얼추 짐작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제논 일대기가 대히트를 치고나서 모두가 나를 찾을 때도 끝까지 익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 아버지도 황실과 귀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나를 찾고 있다 하셨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꼬리가 밟힌 모양이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편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누구인지는 모르시나?’
주어가 깔끔히 생략돼 있어서 누가 꼬리를 밟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 성격상 짧게 쓰셔도 중요 부분은 다 적으셨을텐데 없는 걸 보니 누구인지 모를 확률이 크다.
하기야 꼬리를 밟은 쪽도 사람을 시켰을텐데 누구인지 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아무튼 간에 내가 조심해야한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일단 경각심은 가져야겠다.’
누가 꼬리를 밟았는지도 모르고, 꼬리가 밟혔다고 내 정체가 완전히 들통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아버지의 경고대로 따르는 것이 좋다.
솔직히 까고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로서는 아버지가 밟힌 꼬리를 자르기를 빌 수밖에 없다.
괜스레 신경이 쏠렸다간은 집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평소처럼 행동하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
‘근데 편지가 한 장밖에 없나?’
보통 부모님은 함께 편지를 보내시니 아버지가 편지를 쓰셨다면 어머니의 편지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짧게 썼다지만 어머니는 내 안부를 묻을 겸 진척도를 확인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쓰셨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아까 전 찢은 편지 봉투 안에 또다른 편지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이에 편지를 꺼내 반듯하게 펴니 예쁘게 잘 쓰여진 글씨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버지와 달리 섬세하신 문체가 특징적인 어머니의 편지가 맞다.
[아이작. 네 아버지가 안부는 안 묻고 할 말만 적은 것 같아 엄마도 편지를 보낸단다. 지난 번에 네가 보낸 편지를 읽고 아카데미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엄마는 안심이 되는구나. 다만 요즘 날씨가 부쩍 더워진 것 같은데 더위를 잘 타는 네가 고생하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단다. 옛날에 아버지를 따라 훈련을 하다가 쓰러졌던 네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구나. 엄마가 다음 권은 언제 나오냐고 장난스럽게 묻고 있지만 항상 중요한 건 건강이야. 아카데미 생활도 바쁠텐데 부디 건강 생각을 하면서…]A4 용지 크기에 가득히 채워진 문장들을 읽고 가슴이 저절로 따스해지는 기분이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엄마라는 존재들은 자기보다 자식밖에 생각하지 않는 천사인 게 분명하다.
가끔씩 몇몇 귀족가 안주인들은 본인의 자식을 정치적 도구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으나 우리 어머니는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의 어머니에 불과했다.
나는 진심이 우러러 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가 쓰신 편지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유려한 필기체로 하여금 눈이 저절로 즐거워졌다.
[네 아버지가 몸 조심하라고 편지를 썼긴 했다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단다. 설령 들켜도 우리 가족은 너를 지켜줄테니까. 특히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네 아버지는 왕년에 유명한 기사단의 단장이셨단다. 그러니 설령 들켜도 황실에서조차 우리를 쉬이 건드릴 수 없을테니 걱정하지 마렴. 여차하면 네 아버지가 직접 황실에 나설 거란다.]황실에서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다니 도대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하기야 백작의 작위를 마다하고 남작이 되었다고 리나가 알려줬으니 범상치 않은 인물인 건 확실하다.
소설에서나 나오는 은둔 고수의 표본이랄까. 그러나 스스로 낮은 작위를 받은 걸 보면 어두운 과거가 있는 건 확실하다. 상당히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고 말했으니 더더욱.
[…해서 우리 가족은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단다. 무리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하렴. 사랑하는 엄마가.]편지를 모두 읽고나서도 여운이 잠겼다. 어머니는 옛날에 글을 잘 쓰셨다고 하셨는데 편지를 보면 그 말이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답다고 할만큼 유려한 필기체하며, 감동을 선사하는 글귀까지. 무엇하나 빠질 게 없었다.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지.’
반 장난식으로 진과 릴리는 언제 이어지냐고 재촉하긴해도 어디까지나 장난에 불과했다. 오히려 어머니는 주위의 압박 때문에 스토리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싫어하신다.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내린 뒤에 가지런히 접어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첫 번째 서랍에는 원고지와 여분의 노트가, 두 번째 서랍에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편지가 저장되어있다.
‘우선은…’
오늘 할 일도 모두 끝났겠다, 의자에 앉아 제논 일대기가 아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으니 그걸 안심시켜줘야하지 않겠나.
물론 사정상 제논 일대기의 다음 권은 최소 2달 뒤에 나올거라는 말은 적는 게 좋을 듯했다.
‘꼬리가 밟힌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글이나 쓰자.’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답장을 써내렸다.
* * *
미네르바 제국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다. 영토가 넓은 건 물론이고 군사력과 경제력도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하다.
이렇다보니 제국에서 내뱉는 발언 하나 하나가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다른 종족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미네르바 제국에게도 예로부터 영원한 숙적이라 평가받는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테르스 왕국이다.
테르스 왕국은 미네르바 제국과 비교했을 때 군사력도 낮고 경제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다른 하나가 너무 압도적이다. 그건 바로 소프트파워 즉, ‘문화’다.
음악, 문학, 교육, 과학, 기술, 마법, 심지어 이종족의 문화까지. 이 세상의 모든 문화가 테르스 왕국에 포함돼 있다고 해도 무방할만큼 방대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미네르바 제국도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지 않고 테르스 왕국을 압박해 문화를 침탈한 경우가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라 칭해지는 헤일로 아카데미가 있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아카데미를 설립할 당시 테르스 왕국에 속해있던 교수와 관련 장인들을 모두 포섭하여 생긴 결과다. 테르스 왕국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라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후로 법으로 철저하게 막기 시작했다.
아무튼 간에 미네르바 제국이 군사력이나 경제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강하다면 테르스 왕국은 내실이 단단하다고 봐야했다. 별명조차 문화의 나라였으며 이건 엘프조차 인정할 정도다.
대신 부작용이 없진 않았다. 문화조직이 너무 탄탄한 나머지 ‘제이로스 혁명’ 같은 대형사고도 발생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발판삼아 더욱 성장했으니 테르스 왕국 입장에서도 마냥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꼬리를 잡았지만 그 위까지 추적하기는 힘들다는 말이구나.”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집무실 안.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중년인이 맞은편에 서있는 한 남자에게 말했다. 온화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예리함이 감도는 하늘색 눈빛하며 말투 또한 심상치 않았다.
그에 맞은편에 기립해 있던 검은 제복의 남자가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송구하다는 본인의 마음을 여실히 표현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전부 제 능력 부족 때문입니다.”
“아니. 됐다. 꼬리를 잡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꼬리에게 캐낼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있나?”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돈만 받고 의뢰를 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한데다가 의뢰인도 추적이 어렵습니다.”
“으음…”
테르스 왕국을 통치하는 왕, 프리드리히 듀커드 폰 커쳐스는 턱에 주먹을 갖다 대며 고심했다.
정말로 우연히 기회가 닿아 꼬리를 밟게 되었으나 아쉽게도 도마뱀 꼬리에 불과했다. 잡히는 순간 알아서 잘려나가게 되는 그런 꼬리.
꼬리를 밟았을 때만 해도 수수께끼나 다름없던 제논 일대기의 작가를 찾기 위한 단서가 될 줄 알았더만 하등 쓸모없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
프리드리히는 아쉬움에 한숨을 토했다가 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다른 나라의 동향은? 우리가 꼬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그들도 알고 있을텐데.”
“당장은 선듯 나서지 않을 겁니다. 꼬리를 잡아도 끝이 아니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테지요.”
“그렇군.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하는데 말이지.”
세계 각지에서 제논 일대기의 저자 즉, 아이작을 찾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열정적인 건 단연코 테르스 왕국이라 할 수 있다.
미네르바 제국에서도 황실을 포함해 고위급 귀족들이 인력을 동원하여 찾고 있는 상황이나 테르스 왕국만큼은 아니었다.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괜히 자극해봤자 도망가면 큰일이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중이라면, 테르스 왕국은 그딴 거 없이 마구잡이로 단서를 모으는 중이다.
이처럼 테르스 왕국이 어째서 아이작을 찾는 거라면 간단하다.
“빨리 찾아서 미네르바 놈들한테 크게 한 방 먹이고 싶군요.”
“동의하네. 여태까지 뺏긴 게 워낙 많아서 분통이 나는군.”
헤일로 아카데미의 예시를 보듯이, 미네르바 제국에게 빼앗긴 문화자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법으로 막아놓았다지만 예전부터 야금야금 문화를 훔쳐가서 손해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도 결국에는 ‘돈’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미네르바 제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빌미로 수많은 장인과 예술가들을 데려갔다. 테르스 왕국에게는 복창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거기다 역사적으로 제논 일대기의 작가처럼 단순히 소설로만 세상을 바꿔놓은 경우는 없었다네. 전대미문이라고 봐야겠지.”
“네. 마족의 공주가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놀라운데 곧 있으면 우리나라에 사절단을 보낸다니… 정말로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만약 그 작가가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거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엇보다 아이작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당장 제논 일대기로 마족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꾸었는데 여기서 특정 나라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
지구에서는 인터넷이 대중에게 보급화되어 그저 그런 책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말 그대로 세뇌를 위한 ‘무기’로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략이 아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기둥이 무너지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특히 제이로스 혁명을 통해 큰 홍역을 치뤘던 테르스 왕국이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선은 알겠네. 지원이란 지원은 모두 해줄테니 반드시 작가를 찾아주게나. 그대신 찾더라도 ‘정중하게’ 모시고 올 수 있도록. 알아들었나?”
“명심하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을 갖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다른 소식은 없나?”
“아델 왕녀님에 관한 소식이…”
프리드리히는 보좌관의 입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인상을 콱 찌푸렸다. 이름조차 듣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됐어. 이미 내다버린 녀석인데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이유가 있나?”
“하오나 전하. 아델 왕녀님은…”
보좌관이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더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만. 내 자식이었으면 헤일로 아카데미가 아니라 테르스 아카데미에 입학시켰겠지. 내 자식은 4명밖에 없어. 이건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단호하디 단호한 프리드리히의 말에 보좌관도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 것일까. 프리드리히는 턱을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보좌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뭐… 소식은 알려주는 게 좋겠군. 네가 좋아해마지 않던 제논 일대기의 저자를 곧 있으면 찾을 것 같다고.”
“…굳이 알려주시는 이유가?”
“그래야만 그 녀석이 쉽게 목숨을 끊지 않을테니까. 희망은 줘야겠지.”
“… …”
악취미구나. 보좌관은 눈쌀을 찌푸릴 뻔한 것을 간신히 인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