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41
■ 440화. 빙의 (4) □ ᓚᘏᗢ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첫 빙의는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경험을 시켜줬다. 웃긴데 웃을 수 없는 일들이라고 해야 될까.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건 그닥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바로 대련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나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며, 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고 있으나 부족한 점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클라크가 내 몸에 빙의를 했다지만 나에게도 주도권이 있다. 클라크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움직이는 순간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겁 먹지 말거라! 두 눈은 끝까지 공격을 따라가! 내가 알아서 움직일 테니 너는 지켜보면 된다!”
“······그거 내 아들한테 말하는 거 맞소?”
클라크가 내 입으로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마다 몸을 움츠렸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클라크를 못 믿는 건 아니다. 그의 무력이 나보다 몇 배는 강한데 못 믿을 리가 있나.
그러나 몸이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클라크에게 주도권을 주고 싶다.
헌데 커다란 도끼가 내 앞으로 내려찍히는 광경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줌이나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특히 아버지는 내 몸에 클라크가 있다는 걸 알고나서 전보다 훨씬 강경하게 대했다.
덕분에 아버지에게 받은 훈련은 어린애 장난 수준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야이, 새키야! 이 몸 내가 아니라 네 아들이야! 난 적응도 힘든데 그렇게 강하게 나왔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그냥 말하지 마쇼. 말은 아이작이 대신 전달하는 게 낫겠군.”
본의 아니게 패륜을 저지를 뻔했으나 아버지도 허탈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앞으로 말만큼은 내가 무조건 하기로 정했다.
그래도 대련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클라크도 차차 적응해나갔다. 나 또한 그가 내 몸을 조종하는 동안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했다.
두 손에 쥐어져 있는 배틀액스의 느낌도 이상하고, 그걸 가볍게 휘두르는 것도 많이 어색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익숙해졌다. 실력도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고 뭔가 신기했다.
“후우······”
[녀석. 신들에게 예쁨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체력은 좋구나. 그 애처럼 재생 능력도 좋고.]잠깐의 휴식 시간이 이어지고 클라크가 흐뭇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까 아버지가 건의했듯이 말만큼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기로 정했다. 클라크의 생각을 내가 대신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 애요?”
[걔 있잖느냐. 케이트였던가?]그러고 보니 케이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도통 소식이 없다.
겨울 방학 도중에 온다고 말은 해놓았으니 기다리면 알아서 오겠지.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할 일이 있을 테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얘야. 혹시 그 애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니?]‘아뇨. 어릴 적에 도적떼한테 기습을 당해서 마을 전체가 당했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케이트 씨는 교단으로 들어갔고요.’
[그러냐? 그거 참 안 됐구나.]‘그나저나 그건 왜 물어요?’
[내가 알던 여자와 닮아서 말이다. 신앙심도 유달리 깊은 편이었고. 물론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외모가 흔한 편은 아니지 않느냐?]‘그렇긴 하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케이트의 얼굴을 떠올렸다. 미남미녀가 많은 세계라지만 케이트처럼 화려한 외모를 지닌 사람은 흔치 않다.
아델리아보다 색채가 짙은 하늘색 눈동자에, 밀밭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머리카락.
다른 건 몰라도 그토록 선명한 금발만큼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네르바 제국의 상징 중 하나가 황금을 실로 짠 것 같은 머리카락이지 않은가.
케이트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관심을 기울일 정도는 아니다. 오지랖이라 할 수 있겠지.
‘그 분 이름이 뭐예요?’
[엘리. 엘리 루이제 에스토냐. 루미너스 교단의 성기사였지. 여정 중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엘리 루이제 에스토냐······ 기회가 된다면 찾아보도록 할게요.’
[고맙구나.]클라크와 잡담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휴식 시간이 끝났다. 클라크는 곧바로 내 몸을 움직여 아버지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대련은 거의 저녁 식사 전까지 이어졌다. 여태까지 꾸준히 체력을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체력을 키우기 전이었다면 2시간은커녕 30분도 안 되서 기진맥진했겠지. 전투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체력을 요구한다.
이런데도 아버지는 그 지옥 같은 국경 지대에서 기사단장으로 지냈다고 하니 얼마나 강하셨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악마 숭배자 군주들을 홀로 도륙내버린 클라크도 마찬가지. 그들은 체력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아니지. 이런 분들을 상대한 야만수인이나 군주들이 대단한 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엄청 강하다고요.’
[너도 언젠가 이렇게 될 수 있을 게다.]몇 백년이 걸려도 힘들 것 같은데. 나는 전투가 생활 속에 녹아있지도 않고 최대한 기피하는 삶을 살 생각이다.
빙의 또한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지, 내가 직접 위험한 곳으로 걸어 들어갈 일은 절대 없다.
함정에 빠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게 장장 몇 시간동안 이어진 대련이 종료됐다.
[하체는 좋지만 팔과 등의 힘이 다소 부족한 것 같구나. 앞으로 이걸 집중적으로 단련하면 되겠어.]‘알겠어요. 다른 거는요?’
[다른 부분은······]대련 후에는 클라크가 직접 피드백을 해줬다. 아무래도 남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사용했기에 문제점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여인들과의 잠자리 때문에 하체를 집중적으로 단련했다. 그때문인지 아버지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버티기가 어렵다.
하체가 땅 속 깊숙히 박혀있는 뿌리라면, 등은 단단한 거목의 줄기와도 같다고.
앞으로 강도 높은 턱걸이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근육은 재능 아니에요?’
[그렇지. 아마 노력해도 우리처럼 되기는 힘들 게다. 골격 자체는 일반인보다 훌륭하지만, 나와 호크 그 놈이랑 비교하자면 썩······]‘··· ···’
나는 아버지와 생전 클라크의 외양을 떠올렸다. 무슨 한마 바키에서나 나올법한 근육 괴물들.
재능이고 뭐고 ‘인자강’ 그 자체의 모습을 띠고 있었으며 볼 때마다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만 있으면 충분하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전투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으니까.
이후로 대련이 모두 끝난 후에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신성력 덕분인지 체력도 금방 회복되어 쉴 필요도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은 됐어?”
여전히 아리엘을 껴안고 있던 레오나가 동물귀를 까닥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아리엘을 아예 인형 취급하고 있다.
또한 코를 막았던 휴지가 없는 걸 보면 방 안에 남아있던 시가향이 모두 빠져나간 모양이다.
나는 혓바닥에 붙은 새싹을 떼어낸 후, 새싹이 클라크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나서 대답했다
“응. 처음에는 조금 헤맸는데 차차 괜찮아지더라.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되겠더라고.”
“원래 그래. 주술사들도 자기 몸에 빙의한 영혼을 전적으로 믿고 싸우거든. 합이 잘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지.”
“안 그래도 합을 맞추기가 어렵더라.”
내가 겁을 먹지만 않으면 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숨을 내쉬었다가 앞을 바라봤다.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레오나가 눈에 들어왔다. 뒤의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는 것까지 보인다.
정말로 덩치 큰 고양이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두 귀가 양 옆으로 접히면서 쓰다듬기가 좀 더 편해졌다.
“그릉. 그르릉.”
특유의 골골 소리를 내며 좋아하는 레오나. 아리엘까지 안고 있는 탓에 귀여움이 증폭되는 것 같다.
꼬리 또한 본인의 기분을 표현하듯 내 팔에 돌돌 말았다. 이게 개냥이지 무슨 사자야.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두 볼을 주물럭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다.
“레오나.”
“응? 왜?”
“저녁 먹고 내 방으로 찾아와. 알겠지?”
나는 그리 말하며 빙긋 웃어줬다.
“너에게 할 말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이쯤 되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지. 레오나도 내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가 베시시 웃었다.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어.”
물론.
“아리엘도 가도 돼?”
“안 돼.”
“뿌우. 왜 안돼? 나도 아빠랑 있고 싶은데.”
“그런 게 있단다.”
아리엘을 막느라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 * *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말끔하게 목욕까지 한 뒤에는 방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혹시 몰라 아리엘을 마리에게 맡기는 건 잊지 않았다.
헌데 맡기러 갔을 때도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더라. 심지어 세실리와 아르웬의 대국이 아니라 마리와 리나의 대국이었다.
옆에서 훈수를 두는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기긴 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유희 문화를 만든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그리하여 다시 방으로 돌아온 상황. 나는 오직 목욕 가운만 입은 채 책상에 앉아있다.
레오나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고 그때까지 집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문제는······
[한 번만 피우면 되겠느냐?]“안 돼요. 이건 제 몸이라고요.”
[이 할애비의 소원이다. 한 번만 부탁하마.]내 몸에 빙의한 클라크가 흡연을 부탁하고 있다는 것. 저녁 식사가 끝나고 기다리는 동안 새싹이 내 앞에 등장했다.
어디서, 어떻게 내 침실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만 아마 내 뒤를 몰래 밟은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가 빙의를 원하는 것 같아 입에 넣자마자 저런 부탁을 한 것이다.
무슨 몸 안에 흑염룡이 아니라 흡연룡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이 골초를 어찌 하면 좋을꼬.
“그리고 흡연은 원없이 하고 계셨잖아요. 제 몸으로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있어요?”
[당연히 있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폐 속 가득히 연기가 들어오는 상쾌한 기분. 그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구나.]“아버지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 듣자하니 그 놈이 담배를 안 피는 이유가 따로 있어서 그렇단다.]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쪽 눈을 치켜떴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지만 담배는 유독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클라크가 지독한 골초여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라도 있던 걸까. 이에 궁금해져서 조용히 질문했다.
“그게 뭔데요?”
[현역 시절 경계 근무 중에 흡연을 하다가 옆의 동료가 화살에 맞고 죽었다구나. 작은 불빛 때문에 위치를 알려준 꼴이었지.]“··· ···”
현실성이 엄청나게 높은 과거사라 마음이 숙연해졌다. 실제로 전쟁 중에 담배를 폈다가 부대가 궤멸당한 사건이 있다.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는 밤에는 사소한 불빛조차 선명하게 보인다. 이건 내가 군대에서 직접 경험했던 사실이다.
하물며 국경 지대는 오죽할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대신 한 대만이에요.”
[역시 내 손자 최고다!]평소에 근엄한 분이 어떻게 담배 앞에서는 철이 없어진다. 남자는 성숙해져도 아이 같은 면모를 지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더군다나 클라크에게 있어서 담배는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없을 터. 인생의 반 이상을 홀로 지냈을 테니 이해가 간다.
게다가 세계수잎 시가는 몸에 해롭기는커녕 이롭다. 평범한 담배였다면 완강히 거부했을 테지만 세계수 시가라서 받아들인 것이다.
안 그래도 몸 관리하느라 힘든데 폐가 썩어들어가는 것만큼은 한사코 사양하고 싶다.
드르륵-
이윽고 그가 원하는대로 책상 서랍을 열자 시가가 담긴 담배갑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미엄 딱지까지 붙은 세계수 시가였기에 담배갑조차 세련된 문양이 그려져 있다.
나는 그 상자 안에서 시가 한 대를 꺼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가처럼 보이지만 표면에 세계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옛날에는 이걸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있다던데 최근에는 문양을 그려놓음으로써 방지하는 중이다.
치익-
시가를 꺼낸 후에는 미리 준비한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라이터 같은 물건이 없으니 성냥밖에 없다.
뒤이어 시가 끝에 불이 붙자마자 곧바로 입으로 넣었다. 이때부터 내 행동과 클라크의 행동이 완전히 겹치기 시작했다.
스읍-
마지막으로 강하게 흡입하자 연기가 목을 넘어 폐 속 안까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전생에서도 담배를 피지 않아 영 어색했지만 클라크는 골초 중의 골초.
“콜록! 콜록!”
입 안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폐 안까지 연기가 들어오는 느낌에 기침을 토했다.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던 몸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입맛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달달한 박하향이 맴돌면서 상쾌함까지 느껴진다.
동시에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하아······ 그래. 이 느낌이야. 역시 뼈다귀보다는 살아있는 몸이 훨씬 좋지.]“··· ···”
[어떠냐? 괜찮지 않느냐?]“······나쁘진 않네요.”
정말로 나쁘진 않다. 그냥 담배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을 뿐이지.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힘이 들어가는, 이 기묘하디 기묘한 기분이 나를 한껏 고양시켰다.
게다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게 아니라 아까보다 또렷해졌다. 원래부터 강하던 집중력이 상승되는 기분.
나는 감았던 눈을 뜨며 책상 위의 작업물을 쳐다봤다. 이 정도 집중력이면 밤을 새도 정신이 멀쩡할 것 같다.
“후우-”
이후로 입에 시가를 문 채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깜빡하고 창문을 열지 않아 방 안에 시가향이 가득 채워졌으나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여타 담배처럼 재떨이도 필요 없어서 손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재가 되어 흩날리지도 않고 마나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몸에 이로운데다가 뒷처리도 필요 없는 담배. 모든 흡연인들이 원하는 제품인 이유가 있다.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마.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어.]“조심히 들어가세요.”
무려 3개까지 깔끔하게 피고 나서야 클라크가 자기 몸으로 돌아갔다. 혓바닥에 붙어있던 새싹이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새싹도 일종의 영혼 취급인지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지금 벽을 통과하고 사라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입 안에 맴도는 시가향을 만끽하면서도 작업을 이어나갔다. 평소보다 타자가 훨씬 빨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내 손놀림이 빨라진데다가 막힘없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현란하게 춤을 추는 모습. 이것도 세계수잎 시가의 위력인 것일까.
‘이런 게 중독성이 더 심할 텐데.’
아무래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서 클라크가 원할 때마다 피는 게 가장 베스트일 터. 계속 피우다간 골초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 만큼은 한사코 사양하고 싶다. 내가 부탁할 때마다 아르웬은 기꺼이 줄 테지만 세계수잎 시가는 알븐하임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다.
그 수출품을 마구잡이로 땡겼다가 알븐하임에서도 문제가 생길 터.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요소가 많다.
똑똑똑-
엄청난 스피드로 집필한 덕분에 결말부를 작성하려던 찰나,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집중이 깨지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손님은 손님. 나는 현란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고 문 쪽을 쳐다봤다.
[아이작. 나야. 들어가도 될까?]레오나다. 벌써 시간이 되었나 싶어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밤이 되려면 약간 남았다.
보아하니 대화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듯싶다. 때마침 커피를 비롯한 다과도 준비돼 있다.
이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무심하게 허락을 내리는 것보다는 직접 여는 게 낫다.
끼익-
“왔어?”
“응. 나 왔······”
레오나는 내가 문을 열어주자 반가운 얼굴을 지은 것도 잠시, 말을 하다가 말고 그 상태로 굳었다.
그러더니 눈이 점점 흐리멍텅해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의아해졌으나 이내 아차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나는 클라크가 원하는 대로 시가를 피는 중이었고, 환기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 몸에 향이 배긴 것도 모자라 방 안은 연기로 가득 채워져 있을 터.
레오나, 그것도 발정기에 돌입한 수인에게는 그야말로 발정제를 몸에 한가득 뿌린 거나 다름없다.
“아. 미안. 잠깐만 기다려······”
턱-
내가 다급히 문을 닫으려던 찰나, 레오나가 발을 걺으로써 멈춰세웠다. 그에 당황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하아······ 하아······”
이미 참을대로 참은 상황에서 이런 자극까지 가해지니 더 이상 힘들었던 것일까. 이미 레오나는 스위치가 돌아가버린 얼굴이다.
“너 진짜······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레오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가운 사이로 드러난 내 가슴을 노려봤다.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런 거 절대 아니다.
깜빡하고 창문을 열지 않은 건 내 잘못이 맞다만 그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치도 못 했으니.
이에 어떻게든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수인 특유의 강한 근력으로 문을 여는 게 더 빨랐다.
“레, 레오나?”
“더이상은 못 참아······ 내가······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리 말하며 나를 쭈욱 밀치는 레오나. 그러는 와중에도 문을 단단히 잠그는 건 잊지 않았다.
이윽고 밀쳐지고 밀쳐지다 보니 어느새 침대까지 도달했다. 침대에 도착하자마 그녀가 다시 한 번 내 가슴팍을 강하게 밀쳤다.
침대 위로 넘어간 나는 어떻게든 대화를 하기 위해 손을 뻗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렇게 다짜고짜 본방으로 들어가기는 싫다. 적어도 분위기라도 잡고 싶다.
“자, 잠깐! 레오나. 내가 긴히 할 얘기가······”
“닥치고 벗어.”
“······뭐?”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레오나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더 나아가 상의까지 탈의하는 게 아닌가.
탈의한 상의 안에는 독특하게도 속옷이 아니라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녀만의 야생성이 한층 돋보이는 느낌.
마치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돌격 전차 같은 느낌에 멍해졌을 때쯤, 레오나가 가운 아래의 내 속옷을 붙잡았다.
“이제 더이상 못 참으니까······!”
그리 말한 그녀는.
“닥치고 빨리 벗어!”
내 속옷을 아래로 내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