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52
■ 451화. 게리오스 왕국 (2) □ ᓚᘏᗢ
원정대와 시리스가 모건 왕과 대면하고 왕궁을 탐험하는 동안, 엘레나는 데이모스의 권유대로 바깥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정치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중요한 수도인만큼 조사할 건 많······ 지는 않았다.
악마 전쟁 당시 악마들의 마법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대부분의 문명이 바다로 쓸려갔기 때문이다.
이건 게리오스 왕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왕궁은 주술을 위해서라도 그 존재가 뚜렷하게 남았으나 다른 곳은 대부분 소멸됐다.
수도에서부터 거리가 먼 점령지들은 그나마 곳곳에 흔적이 남았으나 수도는 그러지 못했다.
바다가 코 앞에 있는데다가 악마들이 최초로 등장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유골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네. 빌어먹을 바다가 전부 쓸어가서 조사할 게 없어.”
“유골도 전부 분해됐을 걸요오······”
도무지 발굴될만한 물건이 보이질 않자 엘레나가 투덜거렸다. 여기에 더해서 신디의 흐물거리는 팩트까지.
실제로 유골은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1000년이 흐르면 죄다 분해되기 마련이다.
아주 운이 좋게도 화석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극히 드물다. 하물며 게리오스 왕국은 현재 사막이 된 지역.
3000년의 시간이 흐른데다가 사막이 되었으니 유골은커녕 제대로 된 물건조차 찾기 어려웠다.
“스켈레톤이라도 튀어나왔으면 좋겠네.”
엘레나는 애꿎은 땅만 발로 치며 투덜거렸다. 다른 지역과 달리 수도는 왕궁을 제외하고 남은 건물이 거의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잔재를 조사하고 있었으나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으로 쥐기만 하면 모래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으니.
마음 같아서는 땅속에서 스켈레톤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켈레톤은 마나와 원념 덕분에 수천 년 넘게 보존되는 편이니.
보물에만 관심을 갖는 도굴꾼들과 달리 탐험가에게는 그런 스켈레톤조차 엄청난 값어치를 자랑한다.
“그것도 다 쓸어갔을 걸요······”
“너 정말 학자 맞니? 왜 그리 부정적으로 말해?”
“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옆에서 조수, 아니 최근 교수로 승급한 신디가 속까지 박박 긁는다. 그러나 팩트라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다른 곳과 달리 수도는 해수면 상승을 직격으로 맞은 곳이다. 하물며 악마가 해수면을 상승시킨 건 기록상 전쟁 중후반부터다.
엘레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평평하기 그지없는 수도를 바라보다가 바닥을 쳐다봤다.
“그래도 길 하나는 기똥차게 만들어놨네.”
그녀의 발 아래에는 바다에 쓸려나가지 않은 유적 중 하나, ‘도로’가 존재했다. 소금기를 머금어 약간 변형되긴 해도 물자 이동에 편한 도로.
이 도로는 수도뿐만 아니라 점령지에도 있었다. 아마 이 도로를 통해서 원활한 보급을 할 수 있었을 터.
인간임에도 서쪽 전체를 지배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이 도로 덕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악마들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멸망했다면 그 나라가 유용하게 썼을 텐데.’
사실 이 도로 하나만으로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무려 3000년 전에 도로가 있었으며 대부분 마름돌로 만들어져 있었으니.
비록 악마 전쟁의 여파로 군데군데 파손되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마법은커녕 마나조차 발현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런 도로가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기록상 테르스 왕국은 악마 전쟁 이전에 세워진 국가였고······’
엘레나는 반듯하게 설치된 도로를 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최초의 문명은 모두 알다시피 알븐하임이며, 이다음에 테르스 왕국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록상’일 뿐이지, 게리오스 왕국를 비롯한 다른 고대 문명의 건국년도는 현재까지 모른다.
전부 다 소실되었으니까. 모든 기록을 보관하는 알븐하임의 성지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테르스 왕국을 문화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무려 3000년 전 악마 전쟁에서 반파되었을지언정 꿋꿋이 명맥을 유지했으니.
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 또한 테르스 왕국이다. 그냥 땅만 팠다 하면 온갖 유적들이 튀어나오니까.
이때문인지 토지 매입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테르스 왕국이라는 웃지 못할 속설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왕국을 세운 거지? 알븐하임에서 멀어도 너무 멀잖아.’
서쪽 끝에 게리오스 왕국이 있었다면 동쪽 끝은 알븐하임이 있다. 알븐하임은 신의 축복을 받은 땅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지대다.
테르스 왕국은 그런 알븐하임 옆에 세워져 있었으며, 악마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당시에는 바다도 없었을 텐데. 흐음······’
엘레나는 도로를 쭈욱 바라보면서 시선을 천천히 올렸다. 도로의 끝은 저주받은 환경이라 부르는,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어째서 이 도로가 바다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불안하긴 해도 주변이 죄다 황량하니 바다에서 뭐라도 건질 게 있으면 좋겠다.
“신디. 그리고 여보. 이제 바다로 이동할 테니 각자 준비하고 있으세요.”
“알겠소.”
“네에······”
엘레나 일행은 도로를 따라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로 향하면 향할수록 바다 특유의 짠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동쪽 끝에 있는 알븐하임도 바다가 있긴 하나 도시를 세우진 않았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어업을 할 필요도 없었고, 애당초 바다는 불길한 지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래도 조사 자체는 많이 하는 편이다.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는만큼 바다는 조사할 가치가 크다.
물론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더 위험한 것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어지간하면 손도 안 댔지만 말이다.
“여기는······”
“항구······ 인 거 같은데요······?”
“3000년 전의 항구라······”
하지만 바다에 가까워지자 엘레나 일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수면이 상승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지긴 해도 특징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제작된 통로와 건물. 어떻게든 파도를 막겠다며 방파제 대용으로 쌓아올린 돌무더기.
마지막으로······ 밤중에도 선박이 자유자재로 항해할 수 있도록 세워진 ‘등대’까지.
참고로 등대는 반절이 파괴되어 등대라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위치를 보나 구조를 보나 누가 보아도 등대다.
3000년 전의 기술력으로 등대를 세우고 그걸 활용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자세히 조사해봐야 저 잔해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겠으나 가설대로라면 충분히 ‘불가사의’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물론.
“저건 뭘까요오······?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글쎄? 잘 모르겠네.”
항구가 발달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전혀 없었다. 신디는 물론, 엘레나마저 반파된 등대를 보며 의아하게 여길 뿐, 제대로 된 용도는 전혀 몰랐다.
‘등대’라는 문물 자체가 항구의 발달이 이루어져야만 세워지는 것. 그러나 항구가 발달되어도 등대까지 세워진 도시는 아예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항해를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드넓은 바다를 누비는 게 아니라 땅과 땅 사이에 끼여있는 넓은 호수를 건너는 것에 가깝다.
아이작이 곁에 있었다면 대충 눈치챘겠지만 그는 현재 저택에서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건 여기가 정말로 ‘항구’가 맞냐는 것. 흔적을 보면 여러 정황이 있었으나 3000년 전이다 보니 쉬이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얼마 가지 않아 부정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3000년 전에도 바다가 있었다고? 바다는 악마들이 비를 뿌려서 나온 거잖아.”
“그런 것 치고는 조선소도 있는 것 같다만······”
그나마 온전히 보존돼 있는 항구를 보며 엘레나가 부정하는 동안이었다.
아이케르는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에 엘레나와 신디의 그쪽으로 향했다.
배가 지나가는 통로와 그 건물이 아닌, 선박을 제조하기 위해 따로 마련돼 있는 ‘조선소’가 눈에 들어왔다.
배를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바닥. 그 뒤에 조선공들이 일하는 곳으로 추측되는 건물 잔해.
비록 진짜 선박은 없었지만 현재의 조선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똑같은 형태를 갖고 있었다.
“어쩌면 저곳에 남아있는 게 있을 수도 있겠소.”
“······한 번 가보도록 하죠.”
“우와······”
항구의 존재를 알자마자 진지해진 엘레나와 달리 신디는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아이케르는 두 학자가 발걸음을 옮기자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검을 꺼냈다.
바다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니 단단이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이윽고 그들이 조선소로 추정되는 곳에 다다르고, 엘레나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확실한 증거를 위해서는 ‘선박’이 있어야겠지만 그건 바라지도 않았다.
배는 유골과 달리 나무로 제작되는 것.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썩는데 3000년이 흐른 시점에 남아있을리가 없다.
“일단 건물로 가보자. 거기에 뭐라도 있겠지.”
“네에······”
찾아도 도움이 될만한 건 없었다. 엘레나의 명령에 신디와 아이케르는 군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배를 제작한 곳이 아닌, 그 배를 제작한 조선공들이 지내는 곳으로 추측되는 건물.
안타깝게도 그 건물마저 대부분 파괴되어 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악마 전쟁 와중에도 잔존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더 나아가 해수면이 모든 걸 쓸어가지는 않았다는 뜻일 터. 그녀는 건물 내부를 세세히 뒤지기 시작했다.
팔락-
“음······”
정말 운이 좋게도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책 하나를 찾았다. 해수면이 상승했는데도 쓸려가지 않은 책인 듯했다.
엘레나는 혹시 몰라 마법까지 사용하며 책을 조심스레 넘겼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방치돼 있는데다가 소금물까지 듬뿍 먹어 변색 및 변형되어 있었다.
“에휴······”
결국 책을 읽기 포기한 엘레나.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무려 3000년 전의 ‘책’이다. 그것도 두루마리 형식이 아니라 현재의 책과 유사하다.
비록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정교하지 않았으나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거다.
“교수님······! 교수님······!”
그때 엘레나의 귓가로 신디의 흐물거리는 외침이 들렸다. 이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평소 흐느적거리는 신디가 이렇게 다급히 외친 적이 언제였더라. 모험 당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던 걸로 안다.
헌데 이정도의 외침인 걸 보면 필시 급박한 일일 터. 이에 엘레나가 크게 소리쳤다.
“왜 부르니! 거기 뭐라도 있어?!”
“지하실······! 지하실이 있어요······!”
지하실이 있다. 엘레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뒤이어 신디가 조사하던 곳에 다다르자 그녀가 외쳤던 대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하나 있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제작된 통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숨겨지지 않고 대놓고 열려있는 걸 보아 조선공들이 사용한 곳으로 보인다.
“······스켈레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 여보?”
“음.”
엘레나의 부름에 아이케르가 가장 먼저 앞장 서서 내려갔다. 엘레나와 신디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마법으로 지하를 밝게 비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덕택에 지하의 모습을 훤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정말로 지하실인 모양이네. 아마 이건 바깥 환기를 위해 뚫어놓은 구멍일 테고.”
“3000년 전인데 어떻게 지하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오······?”
신디가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꺼냈다. 도로도 그렇고, 조선소도 그렇고, 지금의 지하도 그렇고.
무엇 하나 3000년 전, 고대의 기술력이라는 게 전혀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기에는 농사만 짓고 있어야 정상이다. 바다를 누빌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바다 근처에 수도를 세운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게리오스 왕국은 서쪽 전체를 지배했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우리가 조사해야지. 그나저나 여기는 아무래도 개인 숙소였던 모양이네.”
엘레나의 말마따나 지하실은 조선공들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넓은 구조와 더불어 평평하게 다져진 땅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또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돌침대가 그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목재 침대는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때문에 쉽게 부식되었을 테니 돌침대를 애용했을 것이리라.
“유골들은 없는 모양이오.”
“그러게요. 일단 책부터 확인하죠.”
조선공들의 대우가 상당히 좋았는지 개인 침대는 물론, 심지어 개인 서랍까지 옆에 배치돼 있던 걸로 보였다.
다만 서랍만큼은 목재로 만들었는지 죄다 분해되어 사라져 있다. 단지 그 안에 보관돼 있던 걸로 추측되는 책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엘레나는 신디에게 다른 곳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책의 가치가 어마어마한 고대임에도 책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직위가 높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건 보존 상태가 양호하네.’
지하에 있어서 해수면이 상승해도 쓸려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엘레나는 부디 안의 상태가 양호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그 기대감은 산산조각났다. 아까처럼 잉크가 번질대로 번지고, 책 또한 변질되어 단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에 실망하려던 찰나, 엘레나는 문득 눈에 띄는 글귀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지금과 다른 고대의 언어였으나 충분히 해독이 가능하다. 몇 백년 동안 탐험을 한 짬밥이 있는데 이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841년 2월 21일······’
여기까지밖에 해독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책의 변질 탓에 해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엘레나를 당혹시키에는 충분했다. 게리오스 왕국이 태양력을 사용했다는 건 둘째치고, 841년이 제일 눈에 거슬린다.
한동안 그 글귀를 바라보던 그녀는 앞에서 한참 조사 중이었던 신디를 불렀다.
“······얘, 신디.”
“네에······?”
“너 알븐하임이 언제 건국되었는지 알고 있니?”
생뚱맞은 질문에 신디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도 일단 질문은 질문이니 대답은 해야겠지.
이에 그녀는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가 볼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록상으로는······ 아마 3541년 전일 거예요오······ 가장 오래 된 기록에 따르자면요······”
“······그렇지?”
“네에······ 그런데 왜요······?”
신디의 물음에도 엘레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알븐하임보다 더 앞선 시기에 건국되었다고?’
역사가 비틀리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