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58
■ 457화. 후속작 (4) □ ᓚᘏᗢ
나는 앞에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난데없는 부름에 당황스러운 건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두 손을 다소곳이 모아 다리 위에 올려두고, 긴장감에 식은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반적인 생김새는 그야말로 ‘마리오’ 그 자체다. 독특한 콧수염과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면서도 순박한 얼굴.
심지어 복장마저 멜빵이라 정말로 마리오를 닮았다. 모자도 화가들이 쓸 법한 빵모자여서 판박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칼스 즈바사. 1년 전 제논 축제에 참여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그 유명한 ‘헥토파스칼 킥’을 내가 원하는 구도대로 그린 사람. 너무 인상 깊어서 편지에 그의 이름까지 언급했다.
언급하고 나니까 온갖 예술가들을 비롯한 귀족들이 몰려왔다고. 당시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찾은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성함이······ 칼스 즈바사. 맞죠?”
“예, 예! 그, 그렇습니다.”
확인차에 질문하자 칼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마치 사단장과 대면한 이병 같은 모양새다.
현재 내 명성이 하늘을 찌를듯이 높아져 있으니 저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상황이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라고, 소시민적인 마음은 그대로 갖고 있었으니.
하물며 전생의 영향 탓인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허리를 과하게 굽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물론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면 똑같이 나오겠지만 칼스는 아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동등한 입장으로 나서야 된다.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칼스가 나를 쉽게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겠지.
내가 그의 이름을 한 번 언급한 것만으로도 명성이 미친듯이 높아진 것처럼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칼스 입장에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1년 전 제논 축제 이후로 꽤 바쁘셨다고 들었는데.”
“아, 네! 네! 제논 님이 제 작품을 언급해주신 덕분에 많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은혜까지야······”
긴장도 잠시, 순식간에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감사 인사를 보내는 칼스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를 언급하여 이름이 알려진 건 맞다. 하지만 이후의 승승장구는 오로지 그의 몫이다.
한 번 조사하니 현 시대와 다른, 다소 독특한 화풍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는 따지고 보면 르네상스 시대라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그림 또한 그 시대에 유사한 화풍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칼스의 그림은 그것과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내 눈에 아주 익숙한 그림체라고 해야 되나.
물감과 붓을 이용해서 차이가 나긴 해도 ‘삽화’에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체다.
‘다른 화가들이 아니꼽게 본다고 했나?’
내 언급으로 명성을 얻긴 해도 칼스의 그림은 현대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도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기에는 부족한 그림.
결정적으로 그는 먼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의뢰를 먼저 받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전생의 삽화가 즉, ‘일러스트레이터’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때문에 미술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칼스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칼스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는 중이고. 대신 수요가 확실하여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다.
“칼스 씨는 다른 화가 분들과 달리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리시죠?”
“예. 저는 다른 분들과 달리 예술적인 감각이 떨어져서······.”
칼스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외모가 외모다보니 순수한 시골 아저씨 느낌이 물씬 풍긴다.
화가가 의뢰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귀족이나 왕족이 초상화를 위해 유명 화가를 초청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예술’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칼스처럼 의뢰 아니, 외주를 받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전생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1900년도는 그러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히틀러가 그림으로만 먹고 살았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했으니. 제일 중요한 미대를 떨어져서 그렇지.
“대신 인물 및 상황 표현 자체는 자신 있으시죠? 충분한 액수와 설명을 준다면요.”
“예. 그렇습니다.”
“헥토파스칼 킥 이후로 어떤 걸 그리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헥토파스칼 킥 하나만 해도 그의 실력은 시험할 필요가 없다. 구도, 인물, 표정 모든 것이 완벽한 그림이었으니까.
솔직히 그 그림 하나만 보고 나와 같은 환생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판박이었다.
“예상하시다시피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의뢰가 가장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제논 님께서 직접 언급을 해주셨다 보니 그쪽에 관심이 많더군요.”
“예를 들자면 어떤 장면인가요?”
“사크란의 최후라든지, 카이르의 과거 회상이라든지, 진의 각성이라든지 등등. 입으로 말하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이미 구매한 그림을 다시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
이럴 때를 대비해서 여태까지 그린 그림들 즉, 포트폴리오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은 없지만 심심풀이 삼아 그린 것들이 남아있었기에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칼스는 미리 준비했던 그림들을 하나 하나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건······”
“증기 기관차입니다. 이미 제논 일대기에 기재돼 있던 거지만 제가 보충한 겁니다.”
기대한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는 도중에 내 눈에 띈 건 단연코 증기 기관차였다. 제논 일대기에 기재된 것보다 몇 배는 발전된 그림.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증기 기관차 삽화를 첨부했으나 아마추어인지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칼스는 여기에 보충하여 더욱 와닿는 그림을 탄생시켰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와 증기 기관으로 돌아가는 바퀴.
허접한 내 그림 실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내가 딱 원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이건······ 아니지.”
내가 증기 기관차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다른 그림을 꺼내려던 칼스가 멈칫거리며 도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눈에 더 띄었다는 건 알기나 할까. 나는 그림을 잠시 내려놓고 칼스에게 말했다.
“그건 무슨 그림이죠?”
“그것이······ 지금 보여드리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괜찮으니까 보여주세요.”
“··· ···”
내 말이 압박처럼 들렸는지 몰라도 칼스는 망설이다가 힘겹게 그림을 꺼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림을 받아들였다.
뒤이어 그가 어째서 그림을 도로 집어넣었는지 깨달았다.
“··· ···”
“큼. 큼.”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 뒤에 서 있던 아델리아가 민망한 헛기침을 토했다.
칼스도 차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콧수염만 매만지고 있다.
왜 이런 반응들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림 때문이다.
무려 진과 릴리의 첫날밤을 그린 그림이었으니. 진의 시선에서 내려다 본 릴리의 나신이 그려져 있다.
침대 위로 탐스럽게 퍼져있는 황금빛 머리카락. 부끄러운 것인지 뺨에 미미한 홍조가 일어나 있었으나 시선만큼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손으로는 풍만한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으며, 다른 한 손은 침대 위에 올려져 있다.
자연히 은밀한 비처가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다. 누가 보아도 첫날밤을 고대하는 새신부의 모습이다.
‘······진짜 시대를 잘못 타고났네.’
칼스의 그림은 실사체와 만화풍을 적절하게 섞은 그림이다. 알다시피 이런 그림체는 몇 시대 뒤에나 등장하는 기법이다.
더 대단한 건 이 모든 게 붓과 물감으로만 그렸다는 것. 컴퓨터와 태블릿도 없는데 이런 걸작(?)을 그린 건 정말 대단하다.
내가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적어도 시대를 잘못 탄 케이스인 건 확실하다.
“······칼스 씨.”
“죄송합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칼스 씨는 언제부터 이런 화풍을 사용한 건가요?”
“예?”
칼스는 사과하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내가 화를 낼 줄 안 모양이다.
나는 그림을 슬쩍 옆에 두며(혹시 몰라 뒤집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칼스 씨 같은 화풍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서요. 어디서 배운 건지 궁금해서 질문하는 겁니다.”
“배웠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저는 다른 분들과 비해 독창성이 부족하거든요. 특히 실사체는 제대로 못 그리는 순간 불쾌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약간 건드리는 것이죠.”
“그게 독창성 아닌가요?”
“그, 그렇습니까? 다른 예술가 분들은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하셔서······”
칼스는 내 칭찬에도 와닿지 않은지 어리숙한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 정확히는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 문화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칼스의 그림체가 더 선호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심지어 몇 백년이나 더 앞서 있어서 각광받기 어려웠을 터.
내가 이곳에 환생하고, 더 나아가 제논 일대기를 집필해서 망정이지 원래였다면 그저 그런 화가로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좀 더 빨리 만날 걸 그랬나.’
제논 일대기 매권마다 적절한 삽화를 넣었을 텐데 정말 아쉽다. 헥토파스칼 킥을 우연이라 취급한 게 실수다.
그림을 크게 그려도 상관없는 것이, 축소 마법을 이용해서 작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 뒤로 인쇄만 하면 끝이고.
아까 보았던 야짤······ 아니, 아니. 그림을 보면 굉장히 섬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딱 내가 원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인물이랑 상황 표현은 엄밀히 달라. 이건 유념해야지.’
세계 2차 대전은 인물도 인물이지만 상황 표현이 중요하다. 대지를 가로지르는 전차 군단과 하늘에서 박터지게 싸우는 전투기들.
마지막으로 드넓은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해전까지. 칼스가 이걸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안을 내가 그릴 수 있다는 것. 그 초안을 보충하여 삽화를 그리면 끝이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사실 칼스 씨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의뢰 때문입니다. 여태가지 꾸준히 받으셨던 것과 비슷하지만 달라요.”
“뭐가 다르다는 건지······?”
무려 제논이라 칭송받는 내가 부탁해서 일까. 칼스는 놀람과 호기심이 듬뿍 묻어있는 표정으로 조용히 물었다.
의뢰를 받는 것 자체는 계약만 잘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르다는 말을 듣고 무언가 느낀 모양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마리오 그 자체나 다름없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꺼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앞으로 또다른 작품을 낼 예정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삽화 즉, 그림이 필수에요. 제논 일대기에 넣은 증기 기관차 기억하시죠?”
“물론이죠.”
“그것과 비슷합니다. 독자의 이해를 보다 더 끌어올리기 위한 그림. 그러나 제 전문은 그림이 아니라 글입니다. 그러니 칼스 씨께서 제가 원하는 삽화를 그려주었으면 합니다.”
“······예?”
드디어 이해가 간 것인지 마리오 아니, 칼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상 일을 같이 하자는 것과 똑같다.
“초안은 제가 그려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초안은 일종의 뼈대이니 칼스 씨께서 살을 붙여주시면 됩니다.”
“그런 거라면 제논 님께서 직접 하시는 게······”
“아뇨. 제 그림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증기 기관차는 어디까지나 구조물에 가까워 쉬운 편이었죠.”
내 그림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낙서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아마추어조차 못 된다.
특징 같은 건 대충 그릴 수 있어도 딱 거기까지일 뿐. 그랬다면 매권마다 삽화를 첨부했겠지.
인물도 마찬가지. 까놓고 말해 얼굴은 괜찮아도 몸은 그냥 통나무다.
“그러니 칼스 씨께서 대신 그림을 그려줬으면 합니다. 칼스 씨의 화풍이 딱 적당하고, 더 나아가 원래 하시던 일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다른 분이었다면 질질 끌었을 겁니다.”
“제논 님의 부탁이라면 누구라도 수락했을 텐데요······?”
“그나마 확실한 게 칼스 씨라는 거죠. 그래서 받아들일 겁니까?”
“··· ···”
칼스는 내 질문을 듣고 고심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콧수염을 살살 잡아당기는 걸 보아 생각이 복잡한 것 같다.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뒤의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내 눈짓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리 준비한 물건을 갖고 왔다.
그리고 물건이 준비되는 사이, 이제 막 생각을 정리했는지 칼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설마 제가 부담스럽다거나 그런 건가요?”
“그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겁니다. 제논 님은 거의 열흘에 한 번씩 신간을 발매하시잖습니까? 초안을 주신다지만 그걸 따라가는 것조차 벅찰 것 같습니다.”
“흠.”
나는 일리 있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작업 속도가 따라올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그러면 초안이 있다면 며칠 정도 소요되나요?”
“빨라야 일주일입니다. 여유로우면 보름 정도가 걸리죠.”
뭐야. 존나 빠르잖아. 컴퓨터랑 태블릿도 없는 세상인데 저 정도면 말도 안 되게 빠른 거다.
하물며 이번 작품은 제논 일대기에 비해 발매 속도가 다소 늦을 예정이다.
단순히 전쟁의 흐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각 나라마다 사회 및 정치 상황을 설명해야 됐으니.
이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됐는지, 더 나아가 어떤 전쟁 범죄가 발발했는지 묘사해야 된다.
당장 나조차 모두 기억하는 게 아니라서 모라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판국이다. 당연히 작업 속도가 제논 일대기에 비해 느릴 수밖에.
“오히려 좋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논 일대기에 비해 집필 속도가 늦어질 예정이거든요.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제논 님의 부탁하신 그림은 기꺼이 그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델 누나?”
아델리아는 내가 부르자마자 웬 네모난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칼스의 시선도 자연스레 상자 쪽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상자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안에 든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다.
뒤이어 상자를 개봉하기 전, 어리둥절해 있는 칼스를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칼스 씨.”
“예?”
“칼스 씨께서는 보통 의뢰를 받을 때 얼마 정도 받으십니까?”
“보통 한 장에 5골드 정도 합니다만······”
원화로 치자면 50만원에 가깝다. 전생의 일러스트도 약 그정도 했으니 적당한 수준이다.
다만 칼스의 재능과 실력에 비하자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이었으니.
오직 물감과 붓으로만 전생의 일러스트 못지 않은 그림을 탄생시키는 괴물. 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림이 실력의 척도를 드러냈다.
“5골드라······ 생각보다 비싸군요. 실은 제가 당장 드릴 현금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나는 그 말이 나오자마자 상자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칼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상자 안으로 향했다.
“대신 금괴는 어떤가요?”
상자 안에 든 물건은 다름 아닌 금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다량의 금괴가 보관돼 있다.
아델리아여서 쉽게 들고 온 것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낑낑거리며 끌고 와야 할 정도의 양.
칼스는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 무더기에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황금색 금괴가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이 모든 금괴를 당장 주는 건 아닙니다. 계약도 맺어야 할 뿐더러 시험할 게 있어서 말이죠.”
“··· ···”
“초안 한 장과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름 내에 그림을 완성시켜주세요. 만약 제 마음에 든다면 이 금괴 무더기 중 하나를 가져가시면 됩니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후에는······ 아실 거라 믿습니다.”
제아무리 예술가들이 배고픈 직업이라지만.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
그로부터 약 보름이 흐르고······
[새로운 주인공, 아돌프 히틀러의 원화가 등장하다!] [콧수염이 다소 독특한 중년 남자. 과연 이 남자는 세계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팔에 붙여진 마크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소속된 집단을 표현하는 거라며······]선공개용으로 미리 준비한 히틀러의 원화를 세계에 뿌렸다. 당연히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표했으며.
[독특한 콧수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귀족들 중에도······]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인물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또다시 시작된 모티브 사건? 하지만 이건 제논 일대기와 다른 판타지 세계이기에 큰 효력이 없을 거라 판단된다.]나는 세상에 독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