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6
■ 45화. 위기 (4) □ ᓚᘏᗢ
“아이작. 혹시 저 애한테 들킨 건 아니지?”
약속 시간인 6시가 되자마자 마리가 숙소로 돌아가고 둘만 남게 된 상황에서 니콜이 나에게 질문했다. 시선을 그녀에게로 옮기니 걱정과 염려가 담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친근한 나와 마리의 사이를 보고 혹여 비밀이 들키지 않았을지 우려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 달리 몇몇 실수를 제외한다면 들킨 적은 없었다.
“걱정 마. 들키진 않았어. 아직까지는 그냥 친구야, 친구.”
“…그래?”
니콜이 의문을 표하더니 퍽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걸 보고 살짝 황당해졌다.
누구를 진짜 친구없이 외톨이인 줄만 알고 있던 걸까. 나도 내 교우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나 니콜이 저런 눈빛을 보이니 마음이 조금 상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그 눈빛은? 썩 못 믿겠다는 눈빛인데?”
“음… 모르면 됐어. 아무튼 걔는 네 비밀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왠지 급하게 화제를 돌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나는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의심들을 접어두고 대답했다.
“실수를 한 적은 있는데 그정도는 괜찮을 거야.”
“실수라면… 지난 번에 그림을 보여줬다는 거? 설마 쟤가 그 애였어?”
나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확인을 구하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줬다는 사실은 니콜도 알고 있다. 단, 그녀는 실수를 범한 대상이 마리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려줘봤자 괜한 걱정을 살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마리와 안면을 텄으니 이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약간 들어서 말한 것이다.
“후우…”
내 예상과 약간 다른 반응이 나왔다. 니콜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로서는 조금 긴장이 들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잠깐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이작. 너도 아버지에게 편지받았지?”
“꼬리가 밟혔다는 거?”
나의 되물음에 니콜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나처럼 부모님에게 편지를 전달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녀는 현재 상황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인 듯했는데, 표정을 자세히 확인하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쩌면 니콜에게는 다른 편지가 갔을테니 어쩌면 그것과 관련돼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도 잠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하지 않았어?
나에게 부쳐진 어머니의 편지에는 걱정 말라며, 말 그대로 꼬리가 밟힌거라 큰 문제는 없을거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솔직히 그것만 제외한다면 평소 보냈던 안부 편지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평소처럼 행동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주의하는 중이었다. 오늘 마리가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질문 때문에 큰 사단이 날 뻔했지만 지금은 무사히 넘긴 상황이고.
니콜은 그런 내 반응을 보더니 더욱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듯한 부모님의 얼굴과 흡사해보였다.
“…아이작. 꼬리가 밟혔다는 뜻이 뭔지 알아?”
전보다 힘이 빠져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한 니콜.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채며 말없이 끄덕였다.
이에 니콜은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잠시 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다.
“…아니다. 이건 나중에 말할게. 지금은 식사나 하자.”
“…응. 그나저나 아델 누나는?”
“갑자기 오늘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했어. 이유를 물으니 오늘 집에서 보낸 편지가 도착하는 날이라 하더라고. 거의 1년만에 받는 편지라고 하더라.”
“그래?”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그마치 1년이나 집 상황을 듣지 못 했으니 그녀로서는 집에서 보내는 편지가 그리웠을 것이다.
나는 집 위치가 헤일로 아카데미와 상당히 가까워서 길어봐야 일주일밖에 소요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다. 대게 일주일은 기본으로 깔며 집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곳도 있다.
특히 평민들이 더 심한 편인데 그 이유는 제국의 법 중에 귀족들의 우편을 우선시하라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나라의 공무를 맡는 경우가 많아서 우편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법으로 우편을 보낼 수는 없어서 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편지를 발송하고 수신인이 받기까지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델 누나는 도대체 어느 지역에 살길래 편지를 1년만에 받는거야?”
“글쎄?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좀 멀리 산다고 하더라. 일단 미네르바 제국이 아닌 건 확실해.”
“흠. 혹시 신분을 숨긴 귀족이라던가 그런 건 아냐?”
“그 녀석이 얼굴이 귀족처럼 생겼긴하지. 나도 처음에는 귀족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더라고. 평민인 건 확실해.”
니콜이 저리 단언하니 더이상 뭘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평민이라기에는 믿지 못할 아델리아의 미모를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곧바로 치워버렸다.
지금은 아델리아보다는 니콜과의 식사가 우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니콜과 함께 하는 식사였으니 마음편히 저녁을 먹을 수…
“음?”
“…레오르트 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기로 생각해뒀던 레스토랑의 정문 앞에서 레오르트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안녕? 우연이네.”
“…그러게요.”
심지어 레오르트의 곁에는 리나까지 있었다. 나는 리나가 반갑다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떨떠름한 마음으로 인사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레오르트와 리나도 남매끼리 식사를 할 예정이었던 것 같다. 사복이 아니라 교복 차림인 걸 보면 미리 약속을 잡아놓은 듯했다.
하지만 앞의 남매와 같은 식당에, 그것도 같은 시각 레스토랑 정문 앞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나. 당최 말이 안 되는 확률이었다.
나는 속으로 상황이 꼬였다고 직감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니콜의 얼굴을 체크했다. 그녀도 두 사람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들도 저녁 식사를 하러 온 건가?”
미묘한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레오르트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그에 니콜이 정신을 차리며 다급히 대답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아이작과 식사를 하러 왔습니다.”
“흠…”
“… …”
니콜의 대답 이후로 레오르트는 우리 남매를 번갈아보더니 이윽고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불길함이 감돌 수밖에 없었다.
부디 불길함이 들어맞지 않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
이어서 레오르트는 손을 내밀더니 부드러운 음색으로 우리에게 제안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떤가? 가격은 내가 모두 지불하겠네. 때마침 자네들에게 긴히 할 이야기도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말만 제안이지 사실상 반쯤 강요에 가까웠다. 그 누가 다음 대 황제로 유력한 황태자의 제안을 거절하겠는가.
니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마지못해 수락한 모양새다. 설령 거절한다고해도 레오르트가 뒤끝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 괜찮을테지만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레오르트의 제안에서 신경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들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 것.
굳이 그런 말을 꺼낸 걸 보면 우리에게 좋던 안 좋던 중요한 사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니콜도 거절할 명분도 없고 레오르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승낙했을 것이다.
“좋아. 아이작 자네는?”
“저도 상관없습니다.”
“알겠네.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 아까도 말했지만 돈은 전부 내가 지불할테니 부담없이 아무거나 시켜도 된다네.”
“정말요?”
“아이작.”
내가 진짜 그래도 되냐는 뉘앙스로 묻자 옆에서 니콜이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나는 그제서야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아 급히 입을 다물었다.
허나 레오르트는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약한 웃음을 떠뜨리며 대답했다.
“하하하. 물론이지. 자네가 원하는 건 다 시켜도 된다네. 그게 스테이크든 아니면 와인이든.”
“아이작. 설마 우리가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지?”
“… …”
레오르트의 대답 뒤로 리나가 살풋 웃으며 놀리듯이 물었다. 나는 리나의 놀림을 듣고나서 눈을 깜빡거렸다가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눈 앞의 남매가 어떤 사람들인가. 무려 미네르바 제국을 통치하는 황족들이다. 재력이라면 썩어넘칠 정도로 풍족할 터.
그러니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거다. 니콜도 그걸 알고 있어서 내 이름을 부른거고.
본래 나는 말을 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아…”
“… …”
옆에서 니콜이 부끄럽다는 한숨을 내쉬어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리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신하게 웃었다. 덕분에 더욱 창피해졌다.
“혹시 4인실 중에서 방음이 잘 되는 곳이 있나? 돈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네.”
“알겠습니다. 잠깐 따라오십시오.”
약간의 해프닝이 발생한 뒤로 레오르트가 웨이터에게 방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레오르트가 원하는 방의 특징이 조금 이상했다.
평범한 4인실도 아니고 방음이 되는 4인실이라니.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방음이 되는 방을 고를리가 없다.
그때부터였을까.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불안과 걱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 나는 무언가 쎄-한 느낌이 들어 니콜을 쳐다봤다.
니콜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감지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표정도 약간이나마 굳어있었다.
“직원을 호출하고 싶으면 여기 있는 종을 울리시면 됩니다.”
“고맙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이윽고 레오르트가 종업원에게 부탁했던 4인실, 그것도 방음이 되는 공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웨이터가 문을 닫아주자 방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식사를 위한 공간치고는 상당히 넓은 편에 속했다.
디자인 또한 전반적으로 평범한 레스토랑과 다를 게 없었다. 단지 넓은 방 한가운데에 네모난 테이블이 놓여있을 뿐이다.
방음이 되는 공간이라길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동떨어진 모습이다.
“자자. 어서들 앉게나. 리나 너는 내 옆에 앉고.”
“알겠어요. 아이작도 어서 앉아.”
“…네.”
나는 리나의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따라 의자에 착석했다. 당연히 내 옆은 니콜이 차지했다.
참고로 레오르트와 리나는 우리가 앉기 전에 먼저 앉아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리나와, 니콜은 레오르트와 마주보는 형식이 되었다.
“…아깐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아이작의 누나이자 마이샬 가문의 장녀 니콜 듀커르 마이샬이라고 합니다. 제국의 태양이 되실 황녀님과 만나서 영광입니다.”
어색한 기류가 내려앉기 직전 니콜이 먼저 스스로를 소개함으로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러고 보니 니콜은 레오르트와 안면이 있어도 리나는 처음 만났다.
이에 리나는 딱딱한 말투로 스스로를 소개한 니콜과 얼굴을 마주했다. 뒤이어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가슴 중앙에 손을 얹으며 제국의 예법대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니콜. 아시겠지만 저는 미네르바 제국의 1황녀, 리나 우르미 크리스틴이라고 해요. 편하게 황녀가 아닌 리나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니콜은 인사가 끝나자 리나와 레오르트를 서로 번갈아봤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미소 또한 서로 비슷했다.
문제는 그 미소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걸까. 나조차도 그리 느끼고 있으니 니콜도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그에 니콜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경계심이 가득 들어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하셨던 긴히 할 이야기라는 게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전에 주문부터 하는 게 좋겠군. 그 이야기는 모든 식사가 끝난 뒤에 하게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식사를 모두 끝내고 할 생각인 것 같다. 니콜은 레오르트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작은 와인을 좋아했지? 지난 번 모임 때 엄청 잘 마시더라.”
“…네?”
그러다 갑자기 내 맞은편의 리나가 흑역사를 친절하게 꺼내줬다. 워낙 갑작스러운 이야기여서 순간 당황했지만 그보다 니콜이 제일 문제다.
리나가 저 말을 꺼내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며 나를 쳐다봤으니까.
대체 모임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황녀인 리나가 저런 말을 꺼내는 건지 해명하라는 눈빛이다.
나는 무시무시한 그녀의 눈빛에 서둘러 두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무슨 오해를 샀는지 몰라도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
“그, 그냥 와인만 마신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야!”
“…진짜로?”
“후훗. 진짜에요. 그대신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의자에서 잤긴 했지만요.”
“아이작?”
왜 굳이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내가 원망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도 리나는 그저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혹시 그때 자신의 권유를 거절해서 앙심을 품기라도 한 걸까. 다른 사람과 달리 리나와는 친하지 않아서 그것조차 잘 모르겠다.
“그럼 와인도 주문하면 되겠군. 모임에서 마셨다고 했으니 알키오네?”
“…네.”
“알겠네. 자네들은 뭘 먹고 싶나?”
“저는…”
의외로 식사 자체는 아무런 탈없이 진행되었다. 비록 내가 예상했던 가족끼리의 단란한 식사는 물 건너 갔지만 그건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더구나 레오르트가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준 덕분에 대화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리나도 중간중간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어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줬다.
사실 이렇게 황족과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입장에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대 황제로 유력한 황태자와 식사를 한다는 건 그와 친분이 있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정치적인 입지를 초장부터 탄탄하게 다져놓았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만약 우리 집안 중 누군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면 아주 훌륭한 인맥이 되어줄테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집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 나도 복잡한 정치계에 몸을 던지는 건 싫어하는 편이고.
그리하여 식사는 1시간도 되지 않아 모두 끝맺을 수 있었다. 원래 자주 오는 레스토랑이었지만 비싼 스테이크라 그런지 전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대충 식사가 모두 끝난 것 같으니 자네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지.”
내가 든든한 포만감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때 레오르트가 냅킨으로 입 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나는 편안했던 분위기가 싹 달아나는 것을 몸소 느끼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정리를 하던 니콜도 레오르트가 말하자마자 흠칫하더니 그를 쳐다봤다.
우리 남매의 시선이 모두 레오르트 쪽으로 쏠리자 레오르트는 냅킨을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긋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귀에 속속 박히는 말투하며 목소리였다.
“미리 말하지만 오늘 만나지 않았더라도 훗날 자네들을 따로 부를 생각이었네. 오늘 만난 건 그저 우연이었지.”
“… …”
“자네들은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벌써부터 불길함이 엄습하는 질문이다. 그와 동시에 ‘꼬리가 밟혔다’라는 아버지의 편지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분위기도 그렇고, 나중에 우리를 따로 부를 생각이었다는 말도 그렇고, 저런 질문을 한 것도 그렇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레오르트가 저런 말을 꺼내니 파급력이 상상 이상이다.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심장도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모릅니다.”
입조차 열기 힘든 나와 달리 니콜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현재 상황이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사이 니콜의 대답을 들은 레오르트가 피식거리더니 특유의 중저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간 밟히는 법이지. 그게 설령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고해도 말이야.”
“… …”
“원고를 출판사에 제출하는 사람은 단순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네. 도마뱀 꼬리와 비슷해서 조사해봤자 나오는 건 하나도 없었지. 그래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더니 누가 덥썩 물어갔다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헛수고라는 건 뒤늦게 알 거야.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열흘 전이었을 걸세.”
편지는 오늘을 기준으로 정확히 이틀 전에 받았다. 아버지가 꼬리가 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까지의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졌다.
내가 그 생각을 하는 동안 레오르트는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말을 이었다. 여유로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미소다.
“결국 보다못해 출판사를 압박해서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네. 가명을 써서 계약을 하면 그만이니 말이야. 그래서 출판사를 압박하는 건 멈추려고 했다네. 우연히 그들의 납세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납세라면… 세금 말입니까?”
니콜이 의문을 담아 묻자 레오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금. 자네도 알다시피 세금이라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걸세. 법에 따라 납세해야하는 금액이 천차만별로 바뀌니까. 그리고 출판사도 세율에 따라 세금을 냈다네. 사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계약서에는 출판사에서 미리 세금을 내는 것으로 되어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여기서 한 번 더 세금을 내는 걸로 되어있다는 거지.”
“…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평민은 소득을 얻었을시 세율에 따라 영주에게 납세를 한 번만 하면 되지만 영주는 아니야. 평민에게 받은 세금을 제국에게 일부 지급해야하고 본인 또한 특정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납세해야한다네. 부를 쉽게 쌓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동서고금 막론하고 ‘부’란 곧 힘과 직결된다. 돈만 있으면 군사력을 키울 수 있고 아니면 전보다 복지를 늘려 영주민들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세상은 ‘화폐’가 잘 발달돼 있다. 화폐가 잘 발달돼 있다는 뜻은 경제가 크게 진보했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나라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네르바 제국은 경제력과 달리 과학이 따라주지 못 하고 있다. 아까 레오르트가 말했던 세율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계산해야하다보니 여러가지 차질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문제 때문에 꼬리가 밟힐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레오르트를 조용히 바라봤다. 두 주먹은 꽉 쥐어지고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전부 다 느껴졌다.
“납세를 두 번 한다는 건 평민이 아니라 즉, 귀족이라는 의미지.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각각 세율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라네. 거기다 따로따로 납세하지 않고 한 번으로 합친 탓에 눈치채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지. 납세는 사람의 손으로 계산해야하다보니 그 흔적이 묻어있었다네.”
“… …”
“어쨋거나 세금은 두 개로 분할되어 각기 다른 곳으로 향했다네. 하나는 출판사가 위치한 영지의 영주에게로. 또 하나는 영주를 거치지 않고 우리 제국에게로. 하지만 곧바로 오는 건 절대 아니야. 중간에 거쳐가는 곳이 하나 있었다네. 우리는 역으로 추적해서 누구를 거쳐가는지 파악했지.”
레오르트는 말을 흐리더니 나와 니콜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에 내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쳤으며 꽉 쥐었던 주먹에 땀이 흥건해졌다.
니콜도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고 나처럼 주먹을 꽉 쥐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레오르트는 우리 남매에게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다.
“호크 듀커르 마이샬.”
“… …”
“네이비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으며 붉은 사자로 맹위를 떨쳤던 기사.”
솔직히 아버지의 이름이 레오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끝난 줄 알았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제논 일대기의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이지.”
“…?”
레오르트가 내가 아닌 아버지를 작가로 착각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