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71
■ 470화. 수인식 민주주의 (1) □ ᓚᘏᗢ
애니머즈는 건국왕 히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족장제’를 표방했지만, 사실상 다른 곳처럼 군주제에 가까웠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대족장’이 애니머즈 전체를 다스렸으며 혈통에 따라 세습되는 문화.
여기까지만 본다면 다른 나라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었으나 수인의 문화가 합쳐지니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그건 다름아닌 ‘홀름강’. 정식으로 왕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는 반란이자 유서 싶은 문화다.
히크가 수인들을 규합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인답다는 문화라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문명’ 앞에서는 그저 하찮은 ‘야만’에 불과할 뿐. 실제로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야만수인이 이를 고집하다가 미네르바 제국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다행히 히크의 뒤를 이은 후손들도 무력으로는 결코 지지 않아 300년간은 안정된 통치를 이을 수 있었다.
허나 최근에는 우려했던 부분이 터져버렸다. 바로 홀름강으로 인해 대족장이 살해된 것.
심지어 홀름강을 통해 대족장이 된 자도 얼마 가지 않아 폭정으로 사살됐다. 이후로 애니머즈는 한동안 혼란기에 접어들어 나라가 위태위태했다.
이처럼 문명과 수인 특유의 야만적인 문화가 합쳐지면서 여러모로 한계를 맞이한 상황.
불행 중 다행히도 아이작이 레오나에게 전달했던 지식 덕택에 어느 정도 혼란이 가라앉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애니머즈의 건국 이념이자 수인의 문화인 홀름강을 ‘축제’로 만든다고 해도, 통치 방식 자체에 한계가 명백했으니.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한 수인에게 있어서, 좀 더 안정된 통치를 위해서는 군주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이 민주주의라고?”
“그렇다만?”
“흐음······”
사자 수인이자 레오나의 이복형제, 발칸 라이언즈는 앞의 하이에나 수인이 말한 이야기를 듣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길쭉한 주둥이와 찢어진 눈으로 하여금 비열한 인상을 풍기는 하이에나 수인, 지나이 크로추커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양옆에는 두 하이에나 수인이 그녀를 보좌하고 있다. 물론 수인의 문화상 둘 모두 남자였으며 지나이의 남편들이다.
한 명은 옆에서 부채질을, 다른 한 번은 포도를 쟁반 위에 올려둔 채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
무언가 방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으나 정작 지나이 본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열심히 처리하는 중이었다.
“내가 말한 대로 각 족장마다 연락은 보냈지?”
지나이는 남편 중 하나가 입에 포도를 넣어주자 맛있게 먹으면서 입을 열었다.
발칸은 그녀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말대로 보내긴 했다. 다만 호족이 가장 큰 반발을 보일 것 같은데 괜찮나?”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발칸의 우려에도 지나이는 태평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업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게 참 기묘하다.
처음에 지나이를 대족장의 자리에 앉일 때만 해도 수많은 반발이 터졌는데 이제는 군주제를 폐지하려 든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발칸으로서는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나이는 유능하다. 여태까지 해먹은 비리고 뭐고 대족장의 자리에 앉히니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 과정 속에서 여러 반발이 터졌으나 라이언즈 일족이 방어해줬기에 대족장이 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본인의 능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혼란기에 접어든 애니머즈를 차츰 안정시키더니 곳곳에 쌓여있던 악습을 대부분 폐기했다.
문명에 어울리지 않는 홀름강의 규제부터 시작해서 약육강식 문화의 처벌까지.
특히 이중에서 가장 큰 규제는 다름아닌 ‘무력’의 규제다. 다시 말하지만 ‘힘’이 아니라 ‘무력’이다.
수인은 호전적이고 거친 성정을 지니고 있어서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때문에 야만적이라 부르는 거고.
하지만 이 또한 옛날부터 이어져 온 문화의 영향이 강했다. 일단 수인의 신체 능력은 모든 종족을 통틀어 최강이라 할만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지만, 반대로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는다.
몬스터? 몬스터도 수인의 강함을 알아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설령 침범하더라도 죄다 갈려나간다.
건축? 인간과 드워프는 신체가 약해 도르래를 이용했지만 수인은 그냥 몸으로 뚝딱뚝딱 건설했다.
물론 너무 높은 건축물은 도르래를 사용했으나 반드시 필요한 건 또 아니었다.
이처럼 신체 능력이 좋아도 너무 좋은 바람에 머리를 안 쓰는 문화가 지금까지 짙게 내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은 독특하단 말이지.’
레오나는 혼혈이라서 이해할 수 있다만 발칸의 시선에 지나이는 그야말로 별종이었다.
애니머즈가 혼란기에 접어들었을 때도 간신배 노릇을 하여 이곳저곳 재물을 축적하고, 이제는 대족장 자리에 앉아 나라를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홀름강의 규제도 괜찮았으나 무력을 규제한 게 가히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수인들이 머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그렇다 해서 수인들이 다짜고짜 무력을 사용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문명인은 무례하게 굴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아 예의가 없지만, 야만인들은 머리가 깨질 것을 알기에 예의를 차린다고.
이건 수인도 똑같다. 상대방 쪽에서 무례하게 굴지만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 말이다.
“에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무식하게 몸만 사용하려고 해? 문명인답게 이성적으로 대해야지.”
“··· ···”
“그나저나 아이작 그 놈도 참 신기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지나이의 투덜거림에 발칸도 심히 동감하는 바였다. 그녀는 물론, 그 또한 피와 강철을 애독하면서 얼마나 놀랐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쥐어주고, 그 투표권으로 지도자를 선출한다니. 이 시대에 살만한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동시에 애니머즈에 반드시 도입이 필요한 제도였다. 지나이는 피와 강철 4권을 읽자마자 곧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지나이.”
“왜 불러?”
“넌 정말 이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우리 애니머즈에 잘 정착될 거라 생각하나?”
“처음에는 힘들겠지.”
발칸의 우려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하는 지나이. 그에 발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려 언론에다가 사실까지 공표했으면서 자기는 부정적인 태도로 보이고 있다.
설마 정말로 대족장의 자리에 앉기 싫어서 일부러 저러는 건가 싶었지만, 다음에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을 달리했다.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치 체제는 첫 도입시 쉽게 자리잡을 수 없어. 멀리 가지 않아도 테르스 왕국을 봐. 의회제가 도입되었을 때 귀족이랑 평민이 얼마나 치고 박고 싸웠는데?”
“그러면 왜 급하게 한 거지? 이 민주주의라는 게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도 아니잖나.”
“음······ 우리 귀염둥이들? 이 누나가 잠시 바빠서 그런데 잠깐 물러날래?”
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지 지나이는 양옆에 서 있던 남편들을 물렸다.
이윽고 하이에나 수인들이 떠나가자 족장실 안에 남은 건 지나이와 발칸 단 둘뿐.
지나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로 피와 강철 속 민주주의가 우리 세계에 똑같이 접목될 거라고 봐?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럼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선거 그 자체야. 선거 하나만 하더라도 이 빌어먹을 나라의 문제점 대부분을 고칠 수 있겠지.”
자의로 대족장이 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지나이는 애니머즈를 빌어먹을 나라라고 지칭했다.
지도자라면 저런 언행은 삼가해야 되지만 발칸도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그녀인데 저 정도는 넘어갈 만했다. 진짜로 끌어내릴 생각도 없고,
“우리 사자 수인들이 곁에 있다면 너도 안전할 텐데 굳이 필요한가?”
왜냐하면 자신을 포함한 라이언즈 일족들이 그녀를 끝까지 올려놓을 테니까.
처음 아이작이 말했을 때는 미심쩍었으나 정작 지나이가 대족장이 되니 이처럼 편할 수가 없었다.
건국왕 히크의 후손으로서 라이언즈 일족은 언제나 훌륭한 대족장이 될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하지만 나라를 통치하는 건 부족을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 라이언즈 일족은 ‘장군’이 될 역량은 충분했으나 ‘왕’의 역량은 제각각 달랐다.
만약 왕의 자질도 충분했다면 전대 대족장이 홀름강으로 살해되지 않았겠지.
게다가 전대 대족장이 홀름강으로 인해 살해되면서 라이언즈 일족에게도 하나의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우리보다 강한 자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전통에 따라 순순히 따라야 하는 건가?]300년 동안 어찌저찌 통치했지만 이번 사태 한 방으로 흔들리게 된 애니머즈.
만약 아이작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간신의 지혜로움(?)으로 애니머즈를 안정시킨 지나이가 없었더라면 애니머즈는 여러 갈래로 쪼개졌겠지.
미네르바 제국의 전신이었던 인간 연합이 전쟁에 전쟁을 거쳐 하나의 국가로 탄생했던 것처럼, 애니머즈도 똑같은 절차를 밟았을 수도 있다.
“너희들이 있다면 안전은 보장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도 대족장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나 같은 하이에나 수인이 앞으로도 쭈욱- 대족장이 되는 걸 보고 싶어?”
“··· ···”
“거 봐. 그러니 선거를 도입하자는 거야. 누구든지 대족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무력이 강한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가 대족장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흠······”
역시 간신배 출신이라서 그런가. 언뜻 들으면 장점만 존재하는 제도일 것 같다.
하지만 발칸은 대족장이 되기 위해 여러 교육을 받았던 몸. 레오나처럼 아카데미를 재학한 건 아니나 지혜에 한해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
이에 그는 지나이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우려되는 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 보나? 특히 호족(호랑이)이 가장 큰 반발을 할 것 같은데?”
“나도 알고 있어.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하겠지. 전사의 영혼도 없는 하이에나가 자기 멋대로 전통을 부순다고 말이야. 뻔하다, 뻔해.”
그 정도는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킬킬 웃는 지나이. 뒤이어 그녀는 옥좌에 등을 기대며 태평하게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 테니까. 제아무리 호족들이라도 전례가 있으니 고민하겠지.”
“전례라면······”
“뭐겠어? 대족장 홀름강 사건이지.”
애니머즈 건국 이후 가히 최악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을 언급하자 발칸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대족장 홀름강 사태는 발칸과 같은 라이언즈 일족에게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았다.
“내가 보기에 지금 유지하고 있는 체제는 반란에 쉽게 무너져. 군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라의 가장 큰 약점이지.”
“하지만 민주주의도 선거가 있긴 해도 결국 왕을 선출하는 거잖나.”
라칸의 말에 지나이는 쯧쯧 혀를 찼다. 어쩜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냐는 핀잔이었다.
“이 사람아. 선거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게 아니야. 당장 피와 강철 속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봐. 나치당뿐만 아니라 여러 당이 서로 권력을 먹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잖아.”
“그건 알고 있다.”
“그리고 당이라는 것들은 표라는 걸 먹고 살지. 모두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건 모든 사람이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과 똑같아. 누군가에게 표를 줌으로써 권력을 주고 당은 그 권력을 얻기 위해 온갖 쇼를 하는 거지.”
“······듣기만 해도 엄청 복잡할 것 같다만?”
“제대로 이해했네. 난 그걸 원하고 있어.”
민주주의는 복잡하다. 그리고 이 복잡성이 민주주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카마르 백작은 51%로 당선된 왕이 나머지 49%를 압박할 수도 있다고 말했으나 정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선거로 선출된 왕은 그 하나만으로도 정당성을 갖고 있어. 만약 이 정당성에 불만을 품고 홀름강을 신청한다?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뒷일도 감당해야 될 걸? 그리고 투표를 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건데 호전적인 수인들이 이를 무시할까?”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 과정 속에서 유혈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고. 안타깝지만 이게 자연스러울 거야.”
씁쓸하긴 해도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와 시민의 피를 먹고 성장하는 법이었으니.
특정 계층이 민주주의를 무작정 도입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가 쟁취해야 의미가 깊은 정치 체제.
“대신 만장일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대족장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법도 만들고.”
“네가 해야 할 일이 많겠군.”
“내가 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5년만 지나면 난 자리를 바로 내려놓을 거야. 아, 체제가 잘 이루어졌는지 확인해야 되니 선거도 한 번쯤은 나가야겠네.”
그게 목적이었나. 발칸은 지나이가 진정한 속마음을 드러내자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나이는 뻔뻔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이래 보여도 대족장인데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한다.
이에 발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뒷감당은 전부 네가 해야 될 테니.”
“나야 고맙지.”
“헌데 정말로 이게 정당하다고 볼 수 있나? 인간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또다른 차별을 낳는다고 하던데?”
“드래곤도 때려잡는 전사와 일반 평민에게 똑같은 한 표를 주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거?”
인간 사회가 민주주의에 회의적인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
지나이는 그 말을 듣고나서 피식 웃더니 명료하게 대답했다.
“대신 공평하잖아? 그리고 드래곤도 잡는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일반 평민이 더 많을까? 나라를 구하는 건 영웅이지만 나라를 지탱하는 건 백성이야. 백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수록 나라는 더 발전되지.”
“··· ···”
“무엇보다 우리 수인은 누구라도 전사가 될 수 있어서 차별과는 거리가 멀어. 호족의 목을 딴 견족이 얼마나 많은데?”
지나이의 말마따나 수인은 인간과 달리 기본적으로 ‘전사’들이다. 그야말로 신체에 한해서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종족.
당장 토끼 수인의 뒷발차기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수인들이 수두룩하다. 약하게 보여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나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특징이 민주주의에 적합하다.
너도 한 발, 나도 한 발로 유명한 ‘총’ 또한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버리니 민주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지켜주기나······”
지나이가 말을 이으려던 찰나.
콰앙!
“이 하이에나 자식 어디에 있어!!”
문이 부서짐과 동시에 우렁찬 호랑이의 포효가 대족장실 내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