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495
■ 494화. 공황 (3) □ ᓚᘏᗢ
미네르바 제국발 대침체로 세계 경제가 혼란스러워졌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언젠가 발생할 사태다.
제아무리 드워프들의 성격이 좋다지만 300년이 넘도록 노예처럼 착취당했는데 혁명이 발생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물론 공산주의라던가, 마력 기관의 설계도를 뿌린다던가, 전차의 등장이라던가 등등. 예상치 못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마키나에서 혁명이 터진다는 건 거의 확정된 수순이고, 그로 인해 발생한 대공황이 세계를 뒤덮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공황처럼 알음알음 조짐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다가 기어코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황.
전생의 지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널리고 널렸다. 다른 부분에 치중하다가 정작 거품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심지어 이번에 발생한 공황은 무려 ‘300년’ 동안 꾸역꾸역, 그리고 알게 모르게 크기를 키우던 버블이다.
만약 역대 황제들이 조금만 신중했다면 마키나가 무너진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공급망을 따로 만들었지도 모르지.
하지만 드워프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는 게 문제다. 인간은 불가능한 일을 뚝딱뚝딱 해치우니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제들이 무능한 게 아니라 종족 간의 능력 차이가 낳은 폐해. 따라서 이번 경기 침체는 예상된 결과인 셈이다.
[정말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가? 그 기술을 배우고 기술자들을 양성시킬 수는 없었는가?] [드워프들의 능력이 뛰어난 건 맞다. 하지만 다른 종족에 의존한 탓에 인간은 발전한 게 하나도 없다.] [종족 전쟁에서도 드워프가 없었다면 인간 연합은 패배했을 것. 이제는 인간의 능력을 키워야할 때.]수많은 학자들이 이제 인간이 다른 곳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할 때라며 일침을 놓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과거에 비해 세계의 주도권을 쥔 건 맞지만, 종족 간의 차이는 좁힐래야 좁힐 수 없다.
다른 분야에 의존하는 게 아닌, 스스로 발전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책으로 세계를 혼란으로 밀어넣은 제논? 아니면 미리 예견된 사태?] [제논이었다면 이 사태를 예상했을 것. 그러나 그는 무책임해도 너무 무책임했다.]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있고, 없는 사고가 있다. 제논은 몸 안에서 기생하는 해충들을 박멸시켰지만 혹은 제거하지 못했다.] [제논은 자기가 스스로 예언자라고 하지 않았다.]이외에 나를 향한 날선 비판을 가하는 세력과 옹호하는 세력의 치열한 토론이 맺어졌다.
예언자인데 이것도 예상하지 못 했냐. 설령 예측하지 못 했어도 이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느냐.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라 한 적도 없고 악마 숭배자가 아닌 우리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던 사건이다. 그것과 별개다.
피와 강철에서도 대공황을 예언하지 않았느냐. 예언을 했어도 우리가 무시한 거다.
그건 수요가 문제고 이번 사태는 공급이 문제다. 그것과 다르다.
그러면 소련 이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발한 건 어떻게 설명한 거냐. 우리가 무시한 거 맞다
······어쩌다 보니 또다시 나를 예언자로 몰아갔지만 박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몇몇 예술가들이 현재 사태와 제논의 관계성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려······]이뿐만이 아니라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항상 등장하는 문물, ‘풍자’ 또한 등장했다. 평소 나를 고깝게 보던 예술가들이 틈을 타 비판한 것이다.
내가 책을 쓸 때 그 원고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이 흘러나오는 건 양반이다. 이밖에 다양한 풍자성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의 혼란을 빌려 유명세를 얻어보겠다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제논 일대기를 쓸 때는 입 한 번 뻥긋 안 하더니 어처구니가 없다.
뭐, 이래나 저래나 내가 너무 무책임하고 개새끼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이게 맞는 건가 싶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부르주 5세를 폄훼하여 끌어내리고 싶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내가 끌어내려봤자 달라지는 점도 없을 테고.’
만약 내가 부르주 5세에게 ‘너는 해로운 군주다’라고 칭한다? 그러면 누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까?
루미너스를 신봉하는 세이비어 교국은 물론이고 헬리움마저 나설 수도 있다.
타국의 힘을 빌려 반란을 도모하거나, 반대로 저지한 나라가 어떤 꼴이 됐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도 그 모양이 그 꼴이 되서 종국에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됐지 않는가. 이러다가 또 ‘독립’을 외친다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차라리 깔끔하고 간결하게 ‘혁명’해버리는 게 더 낫지. 중심세력이 될 드워프 삼인방도 있으니 이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루미너스님.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래도 불안하니 루미너스에게 확인차 질문하는 건 잊지 않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은 걸 한참 넘어선 상황이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나라고 해도 뭔가 좆됐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조신하던 리나가 내 멱살까지 잡으며 짤짤 흔들 정도다.
미네르바 제국에서부터 시작된 대공황. 악마 숭배자를 보았듯이 이런 건 내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괜찮단다. 당분간 혼란스럽겠지만 성장을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하면 돼.]내 불안함을 알아차렸는지 루미너스가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줬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절로 편해지는 목소리.
[이번에 발생한 대침체는 언젠가 발생할 일이었단다. 예정대로였다면 최악의 상황 이전에 터질 일이었지.]‘최악의 상황 이전이라면······’
[악마 대침공.]악마 대침공이라는 대답에 잠깐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설명에 곧바로 이해했다.
[기억하니? 네가 쓴 작품 덕분에 예정된 악마 침공이 2000년이나 미루어졌다고. 원래대로였다면 146년 후에 침공을 시작했겠지.]‘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악마가 침공하기 3년 전에 마키나에서 혁명이 발발한단다. 최악의 침체에서 최악의 침공이 겹친 셈이지. 악마의 침공으로 인류가 대동단결하겠지만 무기 공급망이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피해가 극심해지거든. 도중에 마력 기관이 발명되지만 상용화가 안 돼 의미가 없는 수준이고.]‘··· ···’
들어보면 정말 답이 없는 수준이다. 대공황은 마르지 않는 수요, 즉 2차 세계 대전으로 해결했지만 이번에 발생한 침체는 다르다.
이번 침체는 마르지 않는 수요가 필요한 게 아니라 마르지 않는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악마들까지 침공한다면 인류는 단결하겠으나 보급이 없어 피해가 극심했겠지.
심지어 세계수마저 오염으로 제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땅이 쩍쩍 갈라진 가뭄에서 메테오 스톰이 떨어지는 재앙과 같다.
‘그런데 원래 역사대로라면 혁명까지 100년이나 걸린다고 하셨죠?’
[응.]‘원래 그렇게 오래 걸리나요?’
아무리 그렇다지만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상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니?]내가 앞당긴 거였구나. 괜스레 머쓱해졌다.
‘······그럼 제가 앞당긴 건 맞다는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 거품?]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루미너스가 ‘거품’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잠깐 멈칫거린다. 아무래도 용어에 대해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 거품이 원래보다 일찍 터진 셈이니 피해는 예상보다 더 적을 거란다. 혁명도 전차라는 신병기 덕분에 일찍 끝날 테고. 이 일을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겠지.]‘그럼 전 뭘 하면 될까요?’
마음 같아서는 돈을 뿌리면서 자선을 펼치고 싶지만 의미가 없다. 돈이 있어도 사지를 못 하는데 자선은 무슨 자선.
리나가 닥치고 글이나 쓰라고 강요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적어도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단다. 대신 절망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도록 해주렴. 그거 하나면 돼.]‘루미너스 님이랑 모라 님에게 피해는 가지 않나요?’
[우리는 힘을 줄지언정 물건이나 돈을 주지는 않는단다. 신도들도 이걸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여러모로 신답다면 신다운 대답이다. 하기야 신문에서도 신을 책망하는 비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전에 방문하여 어떻게든 해결해달라는 신도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단지 신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뿐이라고.
인류가 문명을 쌓아올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고 쌓인 것들이 터져버린 상황.
신이 노하여 천벌을 내리거나 재앙이 발발한 게 아닌, 신들 입장에서는 평범한(?) 대공황이다.
그 공황이 가히 재앙에 가깝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냥 규모가 커진 거에 지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작?]‘네. 말씀하세요.’
[다음 권은 언제 공개할 예정이니?]다소 생뚱맞은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질문은 거의 처음 받는 거다.
제논 일대기 집필 당시에도 신간이 언제 나오냐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루미너스에게 듣는 건 처음이다.
물론 장난식으로 물어본 적은 아주 가~끔 있다. 그때는 웃으며 넘어갔지만 지금은 약간 다르다.
약간 진심과 기대가 묻어나와 있달까. 미묘한 차이였으나 나에게는 커다란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글쎄요. 리나가 닦달하고 있지만 상황도 상황인데다가 의논할 게 있어서요.’
9권은 상황이 상황인만큼 발매하지 않았지만 10권에서는 오스트리아 병합 즉, ‘안슐루스’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이 안슐루스 안에 ‘민족자결주의’가 듬뿍 첨가돼 있다는 것.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 있던 가장 큰 원인이다.
물론 민족자결주의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의 3·1 운동도 민족자결주의로부터 파생된 운동이었으니.
그러나 이 세상에 대한민국과 비슷한 처지의 지역이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지금도 대침체를 틈타 독립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이 10권을 발매한다? 리나가 내 뺨을 시원하게 쳐도 할 말이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래도 중요한 부분인 만큼 빼지는 않을 거고요.’
[그러니?]반색하는 것 같은 루미너스의 목소리. 평소에 워낙 인자하고 온화한 말투를 사용하는 분이라 미묘하지만 티가 난다.
‘······루미너스 님?’
[응? 왜 그러니?]‘음······ 아니에요.’
잘못 들은 거겠지.
자칫하다가 독립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데 왜 기뻐하시겠어.
* * *
아이작이 루미너스와 대화를 나누고 기숙사로 돌아갔을 시간.
세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침체로 인해 혼란에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여태까지의 경제 침체와 전혀 다른, 전대미문의 사건.
말 그대로 ‘전대미문’이었기에 그 누구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 하고 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상승시키는 것뿐.
하지만 이것조차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기에 미네르바 제국의 상층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마키나의 혁명을 멈추도록 저지해야 하오! 이러다가 내전이라도 발발한다면 심해지면 더 심해지지, 절대 낫지 않을 거요!”
‘칫솔 수염’에다가 어디서 많은 본 듯한 헤어스타일의 중년인이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크게 외쳤다.
목청을 높인 탓에 쇳소리마저 끼어있었으나 전혀 불쾌하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만약 아이작이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손으로 얼굴을 가렸겠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마키나의 혁명을 멈춘다고 되겠소? 이건 우리 제국의 생산력이 원인이잖소! 드워프에게만 의존한 결과가 이것인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해야 되지 않겠소?”
마찬가지로 칫솔 수염(······)을 하고 있는 남자가 차분히 반박했다. 방금 전의 남자와 달리 풍채가 유달리 커보였다.
“지크 백작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제국은 강하지만 속은 비어있습니다. 이걸 무시했다가 터진 게 지금의 상황이고요.”
“그렇다고 드워프제를 포기할 수는 없잖소? 드워프만이 가능한 대량 생산을 누가 할 수 있겠소?”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켜 우리도 생산이 가능하도록 발전시켜야 됩니다.”
“종족 간의 능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요. 그러니······”
혁명을 멈춰야 된다는 쪽과, 혁명을 도와줘야 된다는 쪽. 마지막으로 지켜보자는 쪽까지.
여러가지 의견이 섞이고 섞이면서 광란의 현장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중에 침착한 얼굴들이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미네르바 제국의 황제, 베리트. 그 옆에는 파트너로 알려진 레킬리스 공작가의 드미트리까지.
베리트는 서로 목청만 높이는 회의실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용.”
“··· ···”
“··· ···”
“··· ···”
시끄러운 회의장 속에서도 귓가에 막히는 묵직한 목소리. 꽥꽥 소리쳤을 때가 언제라는 듯, 귀족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시끄러워 죽겠군. 당장 백성들이 살 물건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뭐? 혁명을 멈추니 마니? 그대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크흠.”
“흠. 흠.”
베리트의 따끔한 설교에 귀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무안해했다. 본인들도 부끄러운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어서 베리트는 다시 한 번 좌중을 훑어봤다. 아주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그 놈의 ‘유행’으로 인해 수염이 죄다 비슷하다.
몇몇은 칫솔 수염을 하고 있는 반면, 몇몇은 아주 풍성한 카이저 수염을 하고 있었으니. 잘 어울리는 사람은 잘 어울리지만 안 어울리는 사람도 많다.
당장 자신도 수염을 길렀다가 영 이상해서 바꿨지 않았는가. 베리트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미리 당부하겠네. 본인이 책 속의 인물이라 생각해서 이입이라도 하는 순간, 어명으로 수염을 강제로 밀어버릴 거야. 알겠나?”
“······예. 폐하.”
“귀담아듣겠습니다.”
귀족들은 찔리는 게 있는지 저마다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에 베리트는 본격적인 회의에 돌입하기 위해 서두를 뗐다.
“아무튼 우리 제국은 물론, 전세계가 마키나에서 발발한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라네. 동시에 우리 제국의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났지.”
미네르바 제국발 대공황은 경제도 경제지만 제국의 약점을 전부 노출시켰다.
드워프의 생산력으로 몸집을 키웠으나, 마키나에서 혁명이 터지자 바람 빠진 풍선마냥 쪼그라 들었다.
강력했던 경제력도 지금으로서는 휴지조각이다. 거품이 잔뜩 끼어있던 경제력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만약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우리 제국은 제국이라 부를 수 없겠지. 혁명은 뒤로 미루고 근본적인 해결책부터 찾아야 하오.”
“하오나 폐하. 마키나의 혁명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하다간 내란으로 이어져 침체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베리트 기준으로 왼편에 앉아있던 귀족 한 명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그 의견에 동조하듯이 몇몇 귀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근시안적인 해결책에 베리트가 미간을 꿈틀거렸을 때, 그의 옆에 앉아있던 드미트리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렇다고 군사를 투입하자는 거요? 지금처럼 보급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불난 집에 기름을 들어붓는 격이구려.”
“··· ···”
“차라리 그 가정을 두고 얘기를 나누는 게 낫겠소. 우리 제국이 마키나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도록 말이오.”
드미트리가 확실한 주제를 내놓았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악을 가정해야 앞일이 편해진다.
“우선 상회와 상단이 줄줄이 도산되는 걸 막아야 됩니다. 아니면 이 참에 문제가 많았던 상회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그들이 진 빚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빚을 회수하지 못 한다면 의미가 없잖소.”
“빚은 당분간 동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지원금을 주는 게 나을 거요.”
근본적인 해결안을 제시하라고 했지만 결국 ‘틀어막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혁명은 마키나에서 터졌으니 어쩔 수 없다.
베리트도 그 부분을 명심하고 있어서 나무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게다가 몇몇 의견은 꽤 유용했다.
“무엇보다 제국의 생산력을 책임질 구역을 만들어야 하오.”
“그건 스타비르크가 있잖소? 그들의 생산력을 얻는다면······”
“지금 당장 독립하니 마니 소리치고 있는데 퍽이나 잘 되겠습니다.”
“말 조심 하시오. 어쨌거나 스타비르크가 아닌, 다른 지역에 생산력을 책임질······”
“생산에도 분류를 나눠야 하오. 무작정 검을 만드는 것보다 하나하나 분류해서······”
유례가 없던 국난인지라 귀족들도 신중하게 의견을 나눴다. 자칫하다가 민심마저 돌아선다면 그때는 진짜 제국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
물론 중간중간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그래도 선을 넘지 않았기에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생산만을 위한 지대라······’
베리트는 귀족들이 의견을 나누는 걸 가만히 들으며 생각했다. 그는 이미 리나를 통해 몇몇 귀중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중에 가장 가치가 높았던 건 바로 마력 기관의 공용화. 혁명이 성공할시 에인스가 마력 기관의 설계도를 뿌릴 거라 선언했다.
‘이건 가닥이 잡혔을 때 얘기해야겠어.’
하지만 당장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순간 너도 나도 할 것없이 자기 지역에 배치해달라고 아우성을 외칠 테니까.
생산만을 위한 지역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거 하나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올릴 수 있을 뿐더러 권력도 자연스레 강해지니까.
마음 같아서는 마이샬 영지를 지정하고 싶으나 그곳은 이미 문화 도시가 되는 중이다. 외관을 위해서라도 배제하는 게 옳다.
그렇게 저마다 꿍꿍이를 가지며 의논을 거치고 있을 때.
“폐하! 폐하!”
급보인 듯, 어느 한 귀족이 헐레벌떡 회의실로 달려왔다. 그에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보통 같으면 무례하다고 호통을 쳤겠으나 워낙 급해보이는 얼굴인지라 그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다.
단지 무슨 일이길래 저 정도 급할까, 싶었을 뿐.
“무슨 일이냐?”
베리트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여서 전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전령을 숨을 가다듬더니 크게 외쳤다.
“마, 마키나에서 혁명이 발발했습니다!”
“혁명?”
“그건 이미 발발했잖아.”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그게 아닙니다! 부르주 5세가······!”
전령이 꺼낸 소식은.
“시위대에게 화살과 대포를 발사했습니다!”
판타지판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