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1
■ 50화. 칠죄종 (3) □ ᓚᘏᗢ
나는 할 말도 잊은 채 세실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턱을 괸 채 요망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숙한 미모를 지닌 세실리가 저런 포즈와 목소리로 말하니 뭐랄까.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비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섹시한 외모인데 포즈, 표정, 목소리 이 세 가지가 합일을 이루어 빠져들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대로 빠져들었겠지. 다행히 평소 그녀와 함께 다니면서 어느정도 면역이 생긴 상태다. 물론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크흠… 큼…”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난데없이 훅 찔러들어오는 기습 질문 때문인 것도 있지만 세실리의 분위기가 너무 야릇해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라앉힐 수는 있었다. 나는 한 쪽 눈을 힐끔 뜨며 세실리와 마주쳤다.
세실리는 내가 대답을 하기 전까지 그대로 있겠다는 듯, 아까와 모습 그대로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정되었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진짜 서큐버스의 후예인가?’
어쨋거나 간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눈치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네요.”
실제로 색욕을 관장하는 간부, 릴리스의 외모는 세실리와 놀라울만치 흡사한 편이다. 릴리스는 악마로 타락한 마족으로 세실리처럼 흑발적안, 그리고 노출이 심한 복장 덕분에 농염한 몸매를 뿜낸다는 설정이다.
물론 세실리와 완전히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눈물점이 있어 매력을 더해준다거나, 머리 스타일이 다르다거나, 어깨에 한 쌍의 악마 날개가 있다거나, 마지막으로 노출이 심한 복장도 아니다.
지난 번 모임에서 봤던 드레스라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실리를 참고한 건 맞지만 몇몇 부분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변명하자면 세실리를 참고한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든 릴리스가 내 앞에 존재하는 격이다.
‘그나저나 왜 저런 말을 하는거지? 떠보는 건가?’
나는 한 쪽 눈만 뜨며 세실리의 얼굴을 확인했다. 뭐가 재미있는지 싱글벙글 웃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세실리는 내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반쯤 확신하는 중이다. 다만 완전한 확신이 아니니 저런 말을 꺼내어 내 반응을 확인하려는 게 아닐까.
내가 그 의문을 지닌 동안 세실리는 내 대답을 듣고 전보다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뭇 남성의 마음을 뒤들듯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래? 너무 똑같아서?”
“네.”
“흐음…”
무뚝뚝한 내 대답에 세실리는 미소를 유지하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실로 부담스러운 눈빛에 시선을 스윽- 돌려버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세실리의 붉은 눈과 마주하면 마주할 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녀의 미모는 반칙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알았어. 뭔가 기분이 좋네.”
세실리는 방긋 웃더니 뭔가 후련한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속으로 들켰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싶었다.
어쨋거나 그녀가 풍기던 매력적인 분위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화끈거렸던 얼굴은 가라앉았고 눈치없이 두근거리던 심장도 점점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살짝 피곤해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물은거예요?”
“그냥 물어본 거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싶었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누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자의식 과잉이라고 했을 거예요.”
“흐응.”
내 대답에 세실리가 야릇한 비음을 흘리더니 눈매를 반쯤 접었다. 접힌 눈매 사이로 붉은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그에 살짝 불안한 마음을 지녔을 때 쯤, 세실리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나에게 속삭였다.
“아이작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그렇다는 거지? 농염한 외모와 몸매를 지닌 서큐버스로?”
“… …”
어떻게든 비밀이 밝혀지는 걸 피하려다가 되려 본심이 까발렸다. 나는 세실리의 그윽한 표정을 보고 헛웃음을 흘리는 걸 참지 못 했다.
이게 바로 100년 이상 살아온 마족 공주의 연륜이라는 걸까. 대화를 진행하면 진행할 수록 수렁에 빠져들어갈 듯한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대답조차 못 하고 있을 때, 세실리는 내 헛웃음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물렸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식당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파악하고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얼굴의 미소는 여전했다.
“아이작. 혹시 입학할 당시에 그런 소문 들었어? 내가 서큐버스의 후예라는 소문.”
“당연히 들었죠.”
비밀이 아닌 본심이 나왔겠다, 긴장이 탁- 하며 풀려서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비밀을 들킨 것보다 본심이 들킨 게 더 부끄러웠다.
세실리는 내 대답을 듣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나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인 것 같다.
뒤이어 그녀는 소리가 약간이라도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한 손을 입 옆에 갖다대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 소문이 진짜라면 믿을거야?”
“음…”
나는 세실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싱글거리는 미소만 본다면 장난인 것 같으나 말투는 매우 진지했다. 이를보아 진실일 확률이 크다.
그런데 세실리가 정말로 서큐버스의 후예였다니. 내심 의심하고 있었지만 소문으로 듣는 건가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이에 잠깐 놀랐지만 나는 그저 그렇구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믿을 거 같네요. 그런데 서큐버스의 후예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지 않아요?”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더라고한들 세실리는 악마가 아니라 마족이다.
문헌 상에서 나오는 서큐버스는 전생과 비슷하게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며 힘을 키우지만, 여기는 진짜 악마답게 정기를 죽을 때까지 흡수한다.
한 마디로 정기를 빨리는 남자 입장에서는 복상사를 한다는 것이다.
아, 물론 좋다고 생각하는 건 금물이다. 역사에 기록된 바로는 성기에 피가 나와도 관계를 이어나간 걸 물론이고 고환을 잡아뜯었다는 기록도 있다. 정말로 끔찍하지.
“여러 가지가 있지. 예를 들어…”
세실리는 말을 흐렸다가 드물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양볼에 홍조가 깃든 걸 보아 자기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사안인 듯했다.
과연 비밀이 무엇이길래 평소 야시시한 농담도 서슴치 않고 꺼내는 그녀가 망설이는 것일까. 나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칠흑색 머리카락을 베- 베- 꼬더니 창피하다는 어조로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생리 때 성욕이 폭발한다던가?”
“… …”
“서큐버스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유독 참기 힘든 편이야. 그래서… 여기까지만 말할게.”
본인도 말해놓고 창피했던 건지 그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나 또한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살아온 세월은 100년이 넘으니 어쩌면 그 세월동안…
“호, 혹시나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나는 그런 경험은 전혀 없다? 욕구도 하루종일 명상만 한다면 참을 수 있어.”
내가 딱 그쪽으로 생각이 가기 직전 세실리가 다급하게 오해를 풀었다. 아무래도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것 같은데 오히려 이게 더 이상했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전생과 현생을 합친 내 나이가 40살도 안 되는데 세실리는 무려 10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이 발생했을텐데 연애 경험이 없다는 건 약간 믿기 어려웠다.
나는 드물게 당황한 세실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조심스러운 투로 질문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남자 경험이 없었다고요? 그럴 수가 있나?”
“…전에도 말했지만 아빠를 제외한다면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그리고 나는 헬리움의 공주이니 스캔들이 나면 정치적으로 곤란해지니까.”
“음… 하긴 그렇겠네요.”
세실리나 리나처럼 통치자의 자식이라면 몸가짐에 더욱 신경써야할 것이다. 전생에서도 정치인들의 아들딸에게 안 좋은 소문이 난다면 그 부모까지 싸잡아 욕을 먹는 일이 태반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세실리는 다음 대 차기 마왕으로 예정돼 있는 헬리움의 공주다. 작은 소문이라도 났다간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럼 나랑 같이 있는 건 괜찮은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모임 당시 팔짱을 끼는 건 일종의 포상이라고 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니면 문화 차이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나는 그 의문이 떠오르자 세실리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서 물었다.
“지난 번 모임에서 팔짱을 끼는 것 정도는 괜찮은 거예요?”
“응? 아, 그거? 내가 그때 팔짱은 낀 건 포상 개념이라 상관없어. 대신 그 이상은 안 돼. 예를 들어 뿔을 만진다던가 아니면 서로 깍지를 낀다던가.”
얼굴에 올라온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하던 세실리가 설명했다. 인간인 나에게는 팔짱을 낀다는 부분이 더 이상했지만 문화 차이라며 넘겨짚었다.
이후로 서로에게 오고 가는 대화가 없어 단절되려던 찰나, 세실리는 눈치를 살살 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는지 얼굴에는 미약한 붉은빛이 은은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이작은 이런 비밀 같은 거 없어?”
“비밀이요?”
“응. 남들에게는 차마 말하기 힘든 비밀. 사실 내가 연애 경험이 없는 이유도 서큐버스의 후예기 때문이거든. 너도 알다시피 서큐버스는 남자의 정기를 죽을 때까지 흡수하잖아? 헬리움의 남자들은 그 소문을 철썩같이 믿는 바람에 나를 꺼려하는 편이야. 독이 든 꽃이라고 생각하는거지.”
“오…”
뭔가 신박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며 감탄했다.
나야, 세실리가 서큐버스든 서큐버스의 후예던 상관하지 않으나 마족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본인들이 악마의 후손인만큼 그런 부분에는 민감한 듯했다.
인간인 나조차도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비밀이라…”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후 작게 중얼거렸다. 맞은편의 세실리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든 것이 포착되었다.
그녀가 나에게 비밀을 알려준 걸 보면 신뢰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세실리는 살살 떠볼지언정 리나와 달리 내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추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나를 제논 일대기의 저자로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었으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겠지. 본래 비밀은 자기 입으로 밝혀야 그 진정성이 있는 법이다.
‘과연 믿을만한 사람일까?’
세실리와 인연을 맺은지 두 달이 흘렀으나 아직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비밀을 스스로 밝혔다고한들 그녀를 신뢰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반쯤 확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하기 꺼려한다면? 오히려 그녀가 실망할 수도 있다. 자기는 비밀을 알려줄 정도로 믿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구나라면서.
나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힐긋 시선을 위로 들어올렸다. 긴장한 낯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중인 세실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응. 아이작.”
“누나는 입이 무거운 편이에요?”
세실리는 내 진중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정이 매우 진지한 것이 장난을 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콧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최소한 조용한 공간에서 말해야 좋을 것 같다.
이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세실리에게 조용히 권유했다.
“일단 잠깐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응!”
내 권유를 들은 세실리의 얼굴에 미소가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