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12
■ 511화. 연참 (3) □ ᓚᘏᗢ
한 달동안 나도 모르게 쌓였던 욕구와 스트레스도 풀었겠다. 남은 건 그동안 출판하지 않던 책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대공황이 터지는 바람에 8권까지 출판된 상황이지만, 이제는 슬슬 출판을 할 시기다.
하지만 무작정 출판만 한다면 머스크의 등골이 휘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마키나가 슬슬 안정되고 있다지만 산재한 문제는 많았으니.
마력 기관차가 등장하고 철도가 깔린다면 공급 문제는 상대적으로 나아지겠으나 그래도 부족하다.
마키나의 공장들이 전처럼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바뀐 이념에 따라 온갖 기계들을 발명할 계획이니까.
듣자하니 부르주 5세가 꿍쳐놓은 자금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탓에 예산은 풍족하다. 재료가 없을 뿐이지.
대공황의 분수령이었던 미네르바 제국도 뉴딜 정책을 기반한 행정 명령으로 조금이나마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키나의 무지막지한 공급량을 따라갈 수 없어서 여전히 허덕이는 중이다. 제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당장 자기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무역이란 무역이 거의 다 끊긴 상황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알븐하임 덕택에 식량난을 얼추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 원래 사용하지 않던 땅까지 개간했다고 언급된 적이 있다.
이렇듯 공급난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출판을 했다간 욕은 욕대로 먹을 가능성이 높다.
고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람은 간사하기 그지 없으니까. 나를 향한 원망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루미너스의 신탁이 내려왔다! 이번에 발생한 대공황은 언젠가 터졌을 문제. 제논을 원망하지 마라.] [모라 신전에서도 신탁이 내려와········· 제논은 뭉쳐있던 고름을 짰을 뿐이다.]시기적절하게도 히르트에게 단단히 혼났던 두 신들이 나를 변호해줬다. 자그마치 신들이 변호하는데 과연 나를 원망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간 큰 사람이어도 여론의 뭇매를 넘어 천벌까지 받을 수 있다. 덕분에 나를 향한 비판들이 쏙- 들어가는 건 덤.
허나 대공황은 마키나의 혁명으로부터 터진 거니 내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런 부분을 아프게 꼬집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제논. 현 사태에 드디어 입을 열다! 마력 기관이야말로 현 사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 [마키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설계도가 존재해도 제작하는 건 힘들다. 제작이 가능한 장인이 필요하다.] [전차처럼 무거운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닌, 작은 물건을 제작하기 위한 기계를 따로 제작해야 된다.]그래서 나는 전생의 일론 머스크마냥 입으로 똥을 싸기로······ 아니, 아니. 지식을 기반으로 둔 조언을 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작동 원리가 다르다지만 마력 기관은 ‘동력’을 주는 기계. 증기 기관이 처음 탄생했을 때와 별다른 게 없다.
현재 대공황은 인구수에 비해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것. 비록 드워프제보다 품질은 낮아지겠지만 공급난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검이나 창, 화살 같은 냉병기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수공업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으나 의류, 종이, 목제품 등등.
당장 물가가 폭등하다 못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제품들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키나의 가이스트. 제논의 말에는 기꺼이 따르겠다. 곧 있으면 가이스트의 수장, 에인스가 직접 방문할 것.] [미네르바 제국. 동력만 있다면 자동화가 가능한 기계들은 준비돼 있다.] [마력 기관에 필요한 건 석탄이다. 미네르바 제국은 광산 개발에 힘을 싣고 있으며 실업자들을 고용해······]그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에인스는 바쁜 와중에도 기끼어 내 부탁에 응해줬으며, 미네르바 제국은 이때다 싶어 정책에 탄력을 붙였다.
에인스가 마력 기관을 제작해준다지만 그걸 자동화시키는 건 엄연히 미네르바 제국의 몫이니.
워낙 마키나에 공급을 의존하다 보니 자동화시키는데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제국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언급했던 부분이 하나 있다. 이곳은 마나와 마법으로 인해 과학 발전도가 언밸런스하다고.
특히 전기를 대신해주는 ‘마나’의 존재 덕분에 자동화 기계는 얼추 준비돼 있는 상황이다.
마력 기관처럼 특정 물질을 마나로 치환시키는 기계가 없어서 그렇지. 괜히 세상을 바꾼 발명품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미네르바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력 기관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해······] [점차 하락세를 걷기 시작하는 실업률. 제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몇 개월이 걸릴 것.] [절망만 가득하던 상황에서 희망이 점차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상황이 원하는대로 딱딱 돌아가자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숙였던 고개를 점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미네르바 제국은 석탄 공급을 위해 실업자들을 고용했으며 임금까지도 높았다. 여기에 석탄 운송을 위한 고급 인력들까지.
다만 광산 하나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인력 및 예산이 투입되기에 여러모로 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자동화와 공장 설립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그 타격은 고스란히 미네르바 제국에 돌아올 테니까.
하물며 입으로 똥을 싼 거나 마찬가지인 나에게도 악영향이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이미 마키나에서 마력 기관을 이용한 자동화 기계가 제작되었다. 그걸 토대로 제작하면 될 것.] [품질을 추구하려는 자는 계속 드워프제를 사용해라. 우리에게는 당장 사용할 물품이 필요하다.] [드워프제는 대공황 이후에도 가격이 상승할 것.] [마력 기관차 또한 서둘러 활용해야 된다는 소리가······]원인이 명확한 역병은 예방할 수 있어도 치료제가 없으면 말짱도루묵이다. 하지만 이번 대공황은 치료법까지 명확히 제시되었다.
비록 당장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마력 기관이 도입되고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나아질 터.
사람들은 물가가 박살났을지언정 실업률이 점차 줄어들자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지 지금 시기가 힘들 뿐이라고. 전쟁이 터진 것보다 낫지 않냐고. 제논도 명확한 해결법을 주지 않았냐고.
베리트 황제를 비롯한 국가의 수뇌부들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나아지는 게 눈으로 보이니 피로를 감수하면서 꾸준히 갈려나갔다.
나 또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진전되는 상황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우려스러운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마력 기관이 등장했으니 생산력은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생산력이 식량을 추월하는 순간 맬서스 트랩이 다시 도래할 수도 있어.’
다름아닌 ‘식량’이다. 산업 혁명 덕분에 인구가 급격히 상승했지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만약 프리츠 하버가 인공비료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지구의 인구는 70억은커녕 20억을 겨우 넘겼을 테지.
1차 세계 대전이나 2차 세계 대전도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만한 전쟁을 뒷받침하는 건 막대한 식량 덕분이었으니까.
심지어 인공비료가 발명되었음에도 기근은 인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중국조차 자급자족이 불가능해서 미국에게 식량을 수입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처럼 개십사기 땅덩어리를 가지지 않는 이상 자급자족하는 것마저 어렵다.
그래서 막대한 식량을 수출해도 멀쩡한 알븐하임이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라 부르는 거고.
이처럼 마력 기관 덕분에 생산력이 충족되어도 식량난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맬서스 트랩은 깨지지 않는다. 이건 필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여태까지 아 몰랑~ 라는 태도로 일관했지만 대공황을 직접 겪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온갖 착각이란 착각을 다 불러도 상관없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를 예언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텐데 이제 와서 부정해봤자다.
하지만 무작정 입을 놀렸다가 진짜로 일론 머스크가 될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한사코 사양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발발한 대공황을 보듯이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기형적인 경제 구조도 이 세계에 있어서 정상이다.
여기에 마력 기관과 최소 2세기 후에나 등장해야할 전차까지. 여러모로 언밸런스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내가 쉬이 입을 놀릴 수 없다.
그러니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만 콕콕 집어서 알려주자. 이미 하늘을 뚫는 명성을 이용하도록 하자.
“재단을 만들 거라고?”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의문을 표하셨다. 옆의 어머니 또한 비슷한 표정인 걸 보아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언론에 몇 마디 뿌린 후로 잠시 집으로 돌아온 상황. 나는 부모님을 불러 한 가지 계획을 건넸다.
다름아닌 내 명의로 둔 재단을 세우는 것. 더 이상 멀리서 관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게 뭐냐? 먹는 건 아닐 테고.”
“··· ···”
아참. 여기는 후원이라는 개념은 있어도 재단이라는 개념은 없다. 아버지가 저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도 이해는 간다.
사실상 가문 자체가 재단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귀족들은 쉽사리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후원하지 않는다.
괜스레 후원한 대상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잘못된다면 그 오명은 전부 본인과 가문이 뒤집어 써야 되니까.
이에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재단에 대한 개념을 상세히 가르쳐줬다.
“일종의 후원과 비슷한 개념이에요. 보통 후원자의 명성이 오르면 후원한 가문의 명성도 오르잖아요?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차이점은?”
“후원이 개개인에 치중돼 있다면 재단은 그보다 더 범위가 넓다는 거죠. 또한 명성도 명성이지만 사회공헌에 이바지하는 바가 커요. 제가 재단을 설립하는 것도 그쪽에 가깝고요.”
부모님은 내 설명을 듣고도 알쏭달쏭한 표정이셨다. 하기야 후원과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니 약간 생소하시겠지.
내가 재단을 설립하는 이유는 단 하나,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다. 좀 더 폭 넓게 말하자면 이과 계열이겠지.
아카데미에서도 물리학이나 수학을 가르쳐주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그것마저 부족하다.
아카데미는 ‘무학’과 ‘문학’이 서로 구분돼 있지 ‘문과’와 ‘이과’가 구분된 건 아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몬스터의 존재로 인해 무력이 강한 자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초 학문이 제일 뛰어난 엘프는 기본적으로 무력이 뛰어나기에 다른 쪽에 집중할 수 있는 반면, 인간들은 자기자신을 지키는 것조차 벅찬 상황.
리나가 전에 내 조언을 지원하기 시작했다지만 사실상 마법사를 지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발생한 과학 혁명에서 철학과 과학을 분리했듯이, 마법과 과학을 서로 구분시킬 필요가 있다.
어째서 분리가 아니라 구분이냐면 두 분야가 서로 합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마력 기관을 접목시킨 전차를 보아라.
상식과 동떨어진 부분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분야를 파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옛말에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대성하는 법이라고, 그 우물을 직접 만들면 된다.
“흠······ 네가 그리 결정했다면야 나는 상관없단다. 어차피 돈도 썩을대로 넘쳐나는 상황이니 나쁘진 않겠지.”
“이 엄마도 흥미롭구나. 명예를 올리는 데에 그만한 방법은 없겠지. 엄마가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와주마.”
이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하니 두 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셨다. 말로만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야말로 기부 천사에 가까울 터.
실제로도 맞는 말이긴 하다. 세상에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꿈을 꽃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내가 재단을 세울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단 하나, 신분을 버리고 동등한 연구자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에서 과학 혁명이 발발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다. 동구권 문화에서 상대방에게 이의 제기를 하면서 비판한다?
고착화된 문화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반면 서구 문명은 민주주의 덕분에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또 비판하는데에 상당히 자유롭다.
이건 알븐하임과 비슷하다.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꼰대스러울 정도로 보수적이라 과학 혁명이 터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겉보기에는 전세계의 학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처럼 보여도 엘프가 주류이다 보니 고이고 고였다고.
반면 내가 세울 재단은 신분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곳이 될 예정이다.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다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대공황 이후에 설립할 거예요. 그때까지 조금씩 기틀을 잡아나갈 거고요.”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늘 말했지만 우리는 너를 항상 응원하고 있단다.”
“얘가 성숙해진 것 같네. 그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 아니지?”
어머니가 웃으면서 예리한 질문을 날리셨다. 그 질문에 순간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부모님에게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자식은 없다고,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몸을 흠칫거린 이상 티가 다 났겠지. 어머니도 이를 아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았단다. 만약 힘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부탁하렴. 너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단다.”
“······감사합니다. 그럼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그게 뭐니?”
고행을 겪으면서 한 가지 신경 쓸 게 생겼다.
“형이랑 누나에게 면회를 가고 싶어요.”
다칠 일이 많은 형과 누나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주자고. 안 그래도 국경지대에 배치되어 불안한데 고행을 겪고 나니 걱정된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미래지만 정말로 내가 스스로 손목을 자르는 미래가 온다면 단 하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여자들이 큰 화를 입는다는 뜻이다. 중태를 넘어 심할 경우 죽을 수도 있겠지.
이에 데이브와 니콜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야만수인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했지 않은가.
“면회 말이냐? 가능하긴 하다만······”
“혹시 신들께서 무슨 미래를 알려주시라도 한 거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런 말을 꺼내자 부모님들도 쉬이 흘려들을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나는 불안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한 부모님을 번갈아 보다가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네이비 기사단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려고요.”
“흠······ 그거라면 상관없겠구나. 다만 임무를 할 수도 있으니 내가 따로 물어보마.”
“감사합니다. 면회 갈 때 챙겨갈 거라도 있나요?”
“그냥 먹을 거만 챙겨주면 될 거다. 아니면 칼즈 그 화가에게 부탁해서 춘화라던가······”
“이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딴에는 진지하게 말하셨겠지만 돌아오는 건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억울한 표정을 지으시더라.
하긴 본인 기준으로 말씀하신 거라 억울하시겠지. 나는 투덜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아참. 그나저나 클라크 할아버지랑 아리엘은 어디에 있나요?”
“네 침실에 가보거라. 아마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게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오랜만에 내 침실로 돌아갔다. 집으로 오자마자 침실이 아닌 두 분을 먼저 만났으니.
똑똑똑-
“저예요, 클라크 할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혹시 몰라 노크를 하면서 말해도 묵묵부답이다. 이에 자고 있나 싶어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뒤이어 내 시야에는 절로 웃음이 나올만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얘야. 한 번만 물러줄 수 있으련?]함정에 빠졌는지 끙끙거리며 넌지시 부탁을 건네는 클라크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라도 안 돼! 이건 승부!”
기세등등한 마음을 표현하듯이, 새싹을 꼿꼿이 세운 아리엘이 서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이 둘이 바둑에 푹 빠져있었구나. 둘 다 잘 어울리면서 귀엽다.
툭-
“응? 어? 어어? 뭐, 뭐야?”
[그러게 할애비 말을 들었어야지.]“이, 이게 아닌데······”
고도의 심리전이었는지 클라크가 흑돌을 놓자마자 아리엘이 크게 당황한다.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던 새싹이 당황을 표출하는 듯,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리엘은 새싹 때문이라도 심리전은 안 되겠네.
“끄으응······ 어? 아, 아빠? 아빠다!”
함정에 걸려 전전긍긍거리던 아리엘이 나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화색을 띠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와다다 달려온다.
나는 두 팔을 넓게 펼치며 그녀를 와락 안았다. 못 보는 동안 성장이라도 했는지 많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그나저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달려온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아빠! 아리엘 도와줘! 할아버지가 아리엘 못 살게 굴어!”
“··· ···”
진짜였네. 이 놈의 말썽쟁이.
그래도 귀여우니 봐주자. 인사 차에 바둑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안. 이건 안 되겠네.”
“뿌우! 왜 안 돼!”
[허허허허허.]물론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 * *
대공황이 어느 정도 차츰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자 피와 강철 10권을 미리 발매했다.
이건 눈치도 볼 겸 진전되지 않던 전개를 잇기 위함이다. 종이 공급은 어느 정도 된 상황이라 여론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피와 강철 10권은 최초로 ‘전차’가 등장함과 동시에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
전차도 전차지만, 사람들은 중일전쟁의 황당한 원인에 대해 집중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병사가 변을 보러 갔는데 실종 신고? 이건 대체 무슨 집단인 건가?] [전개를 위해서 제논이 무리를 한 게 아닌가······]이때부터였을까.
[군대에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사람들이 점차 ‘고증’을 안 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