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18
■ 517화. 유행 (3) □ ᓚᘏᗢ
세계수로 가는 길은 매우 멀다. 이전에 설명했듯이 텔레포트를 비롯한 마법이 사용 불가능하여 도보만 가능하다.
길 주위는 광활한 평야였으나 세계수의 기운을 받은 것처럼 황금색으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까지. 산책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리라.
특히 앞에 보이는 세계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마치 나 스스로가 한 폭의 그림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이번이 두번째인 세계수 방문. 첫번째는 아르웬과 단 둘이 걸어갔지만 오늘은 아리엘까지 추가된 상황이다.
귀여운 아이를 가진 선남선녀 부부가 커다란 나무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
아리엘은 내가 목마를 태워주고, 아르웬은 나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림 같겠지.
“······그런 일이 있었느냐? 전혀 몰랐는데.”
“모를 수밖에 없지. 알려주지를 않았잖아.”
“그건 그렇다만······ 정말 괜찮은 것이냐?”
아르웬이 걱정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녀와 마주했다.
은하수를 담은 듯한 은회색 눈동자에 담겨있는 걱정과 근심.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
세계수로 향하면서 내가 겪은 고행, 그리고 이후에 밝혀진 사실들을 아르웬에게 전부 알려줬다.
그녀도 앞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이니 알려줄 필요가 있다. 미리미리 알아야 예기치 못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으니.
“괜찮아. 게다가 지금도 히르트 님을 뵈러 가는 길이잖아.”
이에 나는 빙긋 웃으며 편안하게 화답했다. 고행을 겪었으나 결코 신들과 대적할 생각이 없다.
비록 지금은 사이가 어색해졌지만 차차 나아질 예정이다. 오늘 히르트를 찾아가는 것도 그 일환이고.
“그래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잖느냐.”
아르웬은 내 말을 듣고 나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헸다.
하기야 신들이 나를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쉬이 흘려들을 수 없겠지. 다시 말하지만 신들과 대척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내가 사회적으로 막대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지만 심성 자체는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
“꾸준히 대화하다 보면 신들도 나를 믿어줄 거야. 잠깐 급했던 거라고 생각해야지.”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그대는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다른 세상에서 왔으니 예상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건가?”
“칭찬으로 들을게.”
내 능청스러운 대답에 아르웬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정말 속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짹! 짹!”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자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새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몸과 색깔이 제각각 달라서 어떤 새인지 하나도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알겠다.
지난번에도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새들이 살포시 안착했지 않은가. 오늘도 비슷하다.
“아빠. 아빠. 새들이 아빠한테 말하고 있어.”
“노래한다고?”
“응. 아빠랑 다시 만나서 기쁘대.”
놀랍게도 아리엘은 새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지금도 나에게 새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세계수의 씨앗에서 태어난 천사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바깥에 나선 적이 거의 없고 집에서만 지내고 있었으니 아리엘의 능력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슬슬 보여줘야겠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는 친구들과 두루두루 지내면서 성장해야 된다. 매번 집에 박혀있을 수는 없다.
비록 한바탕 시끄러워지긴 하겠다만 무려 히르트가 주신 선물이라 하면 다들 납득하고 넘어가겠지.
나는 내 목 위에서 꺄르르 웃으며 새들과 노는 아리엘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옆의 아르웬도 나와 비슷한 표정이다.
그리하여 화목한 가족처럼 걸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도저히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세계수의 거대한 줄기 앞에 도달했다.
두번째로 찾아오게 된 세계수. 경이로운 걸 넘어서 신비로운 신의 거목.
“우와아~ 크다!”
“크지?”
“응!”
탄생 이후 처음으로 세계수와 마주한 아리엘이 탄성을 내질렀다. 순수하디 순수한 반응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여기서 데려왔다고 하면······ 아냐, 생각하면 안 돼.’
가끔 전생에서 부모님들이 하던 장난이 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자식이라고.
아리엘은 따지고 보면 나무 밑(…)에서 줍긴 했지만 그것과 약간 다르다. 입양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내 자식이 맞으니까.
괜히 내 속마음을 읽었다가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 그 생각을 멀리 던져버렸다. 지금은 히르트 님을 기다리는 게 우선이다.
[왔구나.]머지않아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저음에 가까우면서도 성숙한 어조.
“응? 무슨 소리지?”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에 아리엘이 어리둥절하는 동안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봤다.
아르웬도 조심스레 팔짱을 풀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아무리 내가 좋다고 해도 자연의 여신 앞에서 애정 표현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뒤이어 그녀가 위를 올려다 보고, 아리엘도 우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짝- 반짝-
지난번처럼 반딧불이 같은 빛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인영을 이루기 시작한다. 곧이어 하나의 인영이 된 빛이 조금씩 걷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풀잎을 연상케 하는 연두빛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은 별빛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인자함을 보여주듯이 살짝 처져 있는 눈매와 머리카락과 같은 연두빛 눈동자.
3m를 훌쩍 넘길 듯한 거대한 크기는 자연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은밀한 부위는 겨우 나뭇잎 몇 장으로 가렸을 뿐이지만 그 어떤 음심조차 들지 않았다. 반대로 경외감만이 느껴질 뿐.
자연의 여신이자 이 세상의 주신, 히르트가 다시 한 번 우리 앞에서 현신했다.
스윽-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히르트가 바닥에 조용히 착지한다. 가히 태산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어서 그녀는 우리와 한 번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눈높이를 맞추셨다.
무릎을 꿇었음에도 크기가 크기다 보니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까보다 목을 덜 아프다.
“어서 오거라. 아이야.”
“오랜만이에요, 히르트 님.”
“천사의 후예가 보배로운 자연의 여신, 히르트 님을 뵙습니다.”
간략하게 인사한 나와 달리 아르웬은 무릎까지 꿇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히르트도 빙긋 웃어주며 우리 인사를 받아줬다.
“우와. 크다!”
아리엘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무려 3m가 넘는 히르트가 신기했는지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감탄했다.
다소 무례한 행동이긴 했지만 히르트는 별말 없이 온화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본인이 건네준 씨앗에서 태어난 천사다 보니 모든 게 귀엽겠지.
따지고 보면 히르트는 아리엘의 할머니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라면, 히르트는 신화적 의미로 할머니인 셈이다.
“후훗. 그동안 잘 지냈니? 못 본 사이에 많이 큰 것 같구나.”
“엥. 날 알아?”
“그럼. 잘 알고 말고.”
“··· ···”
어서 빨리 존댓말 교육을 시켜야겠다. 다른 사람은 괜찮아도 히르트 님에게까지 저러니 가슴이 쫄깃쫄깃해졌다.
그사이 히르트는 손가락을 뻗으며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머리 위의 새싹을 건드리는 등. 손녀를 보는 듯한 얼굴로 열심히 놀아줬다.
아리엘도 그녀의 커다란 손을 잡으면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무언가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안 어울리는 듯한 느낌.
“하아암······ 왜 이리 졸리징······”
“피곤하면 자도 된단다.”
“코오······”
히르트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어느새 잠에 빠져든 아리엘. 아무래도 무슨 수를 쓴 모양이다.
나는 그녀가 잠에 들자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놓았다.
잠든 아리엘을 어디에 놓으면 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내 앞에 커다란 손바닥 하나가 내밀어졌다.
“내 손 위에 올리렴.”
“그래도 될까요?”
“물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예의상 한 번 물어보고 허락이 떨어지자 손바닥 위에 아리엘을 올려놓았다.
아리엘의 체구가 작은 데다가 히르트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사이즈가 딱 맞았다. 사이즈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한데 아무튼 사이즈겠지.
뒤이어 히르트는 자기 머리 위에다가 아리엘을 살포시 얹었다. 마치 새를 둥지에 얹어놓는 것 같은 모양새라 오묘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니?”
아리엘을 머리 위에 얹은 히르트가 나에게 물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으나 그 안에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본인의 자식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녀도 알고 있을 터. 아마 그 일 때문에 그런 거겠지.
이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히르트 님에게 사과를 받으러 온 건 아니에요. 사과는 모라 님이 하셨고, 히르트 님에게 벌까지 받았으니까요. 단지 히르트 님께서 뒤늦게 사실을 안 것 같아서요.”
루미너스와 모라가 음모 아닌 음모를 꾸미는 동안 히르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정황상 그렇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말리는 걸 넘어 모라를 서둘러 끌고 갔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시 히르트의 말투를 떠올리면 자식이 사고를 친 걸 수습하는 것에 가까웠는데, 어째서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음······ 조금 복잡한 이유지만 내가 이 세상을 관리하는 신이기 때문이란다. 세상에 관여하지만 세상 밖의 일도 주시해야 되거든.”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다시 말해 히르트는 국정을 운영하는 왕이자 총책임자고, 루미너스와 모라는 보조하는 역할이다.
국정, 특히 외교에 힘 쓰다 보면 자연스레 자식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 정체가 정체다 보니 히르트도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한눈판 사이에 사달이 난 거나 다름없다.
어디까지나 ‘히르트 입장’에서 한 눈을 팔았다는 게 문제지. 수천 년을 영위한 신에게 있어서 찰나는 필멸자 기준으로 매우 긴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여신. 외세면 모를까, 내 아이들과 달리 내세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단다.”
“외세라면 지구의 신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당장은 그렇지. 지금까지 만난 건 지구의 신들밖에 없으니까.”
“많이 힘드시겠네요.”
모라에게 들었다. 만약 나에게 심한 간섭을 하거나 무슨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당장 전쟁을 선포할 거라고.
히르트에게 있어서 이번 고행 사건은 간담을 서늘해지는 걸 넘었겠지. 그래서 단단히 혼을 낸 거고.
“하아······ 네가 그리 말하니 위로가 되는 것 같구나.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착한 아이를 못 살게 굴었는지.”
자식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부모의 심정이 절절히 묻어나왔다. 쌍둥이 남매신도 그렇고 히르트도 그렇고 정말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니 실수를 하는 거겠지. 더구나 내 미래는 전혀 안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전에 비유했듯이 예쁘게 키운 사냥개가 내 목을 물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사고를 친 거다.
여태껏 한 번도 없던 일이 발생한 거라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만약 내 아이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싶으면 기꺼이 묻도록 하마. 자식의 잘못은 곧 부모의 책임이니.”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사과도 받았는데요, 뭘. 저도 모라 님에게 심한 말을 하기도 했고.”
그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모라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역겨우리만치 인간적이라고.
다시 만난다면 그 폭언에 대해 조심히 사과하고 싶었다. 그녀가 먼저 잘못을 한 거라지만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대신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콩알만한 검은색 영약을 꺼냈다.
모라의 손을 잡았던 손에서부터 나온 알약. 이게 어떤 건지 궁금하다.
“이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 ···”
히르트는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걸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반응이 살짝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히르트가 묘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이게 왜 여기 있지? 라는 얼굴이다.
반응을 보면 분명 심상치 않은 영약일 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히르트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더욱 궁금해졌다.
“아이야. 어디서 난 건지 물어봐도 되겠니?”
한동안 검은색 구슬을 바라보던 히르트가 궁금하다는 투로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자연의 여신마저 구슬의 존재를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고 대답을 피해봤자 얻을 것도 없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시원하게 대답해드렸다.
“히르트 님께서 모라 님을 끌고 가셨을 때 얻은 거예요. 그때 모라 님의 손을 잡았거든요.”
“그 애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
“네.”
“흐음······”
히르트는 내 대답을 듣고 더욱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아······ 하며 탄식하더니 씁쓸하게 웃으셨다.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눈만 끔뻑이고 있을 때쯤. 히르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게 어떤 건지부터 알려주마. 이건 모라에게서 떨어져 나온 ‘신성’이란다.”
“······예?”
“······에?”
내가 뭘 들은 거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옆에서 가만히 듣던 아르웬도 비슷한 반응이다.
신성이라니. 그동안 루미너스와 모라가 가끔씩 내걸었던 그 신성이 맞나.
무슨 내기도 아니고 계속 신성빵을 거는 탓에 저렴해진 느낌이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신성은 아주 작은 양이라 해도 필멸자 따위가 버틸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내가 가진 모라의 신성도 마찬가지다.
“시, 신성이요? 제가 알고 있는 신성?”
“그렇단다. 초월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이지. 아주 미미한 양이긴 해도 분명 신성이 맞단다.”
“왜, 왜 제가 모라 님의 신성을······ 그때는 손만 잡았는데······”
손만 잡았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도 아니고 신성이 생겼다. 익살스럽게 비유했지만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검은색 구슬 아니, 신성을 바라봤다. 만약 이걸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됐을까?
옛날에 루미너스와 대화하는 도중에 모라가 끼어든 적이 있다. 두 신성의 충돌로 신열을 앓아 한동안 골골거렸는데 신성을 먹었다면?
히르트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소리없이 웃으며 미래를 알려줬다.
“먹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거란다. 다만 보름 정도 신열을 앓았겠지. 신성은 신성력이 압축된 힘. 초월자가 되기 위해서 신성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에 상응하는 ‘권능’과 ‘상징’이 필요하단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니?”
“······대충은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와닿지가 않는다. 필멸자 따위가 신들의 세계를 어떻게 알겠나.
“그럼 이게 왜 제 손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지구의 신들이 걸어놓은 제약 때문이란다.”
“지구의 신들이요?”
“우리가 너에게 직접적인 접촉을 할시 신성을 빼앗도록 조치한 것 같구나.”
“그 말씀은······”
설마 모라가 나에게 술수를 부리려고 했다는 건가. 배신감이 드려던 찰나 히르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모라가 너에게 이상한 짓을 하려던 건 아닐 거란다. 손만 잡는 것만으로도 서로 연결된 거겠지.”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는 좀 미안하지만, 그때 모라님이 저에게 악신으로 묘사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라고 매달리셨는데요?”
“그때는 피부와 피부가 서로 맞댄 것도 아니고 일방적이었잖니. 다시 말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이란다. 너에게 신성력을 주는 것까지는 괜찮아도 그 이상은 방지하기 위해서겠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가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궁금한 부분은 남아있다. 모라가 아주 약하지만 신성을 빼앗겼다면 히르트에게도 통하는 건가.
약간 불온한 생각일 수도 있다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히르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못 말린다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를 만져도 큰 의미는 없을 거란다. 나는 자연 그 자체의 존재니까. 땅이나 나무를 만진다고 너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니잖니?”
“그럼 순수한 축복을 하사하신 거는요? 별개로 쳐야 되나요?”
“설명하려면 긴데 알려줘도 되겠니?”
“음······ 넘어갈게요.”
괜히 머리 아프게 이것 저것 들을 필요까지는 없다.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히르트는 내 단순한 사고에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나는 뒷목을 매만지다가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모라 님께서 저에게 나쁜 짓을 하려던 건 아니라는 거죠?”
“자연의 여신이자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단언하마. 너에게 걸린 제약으로 신성을 뺏긴 거지, 결코 모라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니란다.”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또 하나.”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의문에 찬 어조로 말했다.
“어째서 지구의 신들이 이런 제약까지 건 거죠?”
악마 숭배자가 거하게 트롤링을 저질렀다지만 지구의 신들은 이 세계의 신들을 불신하고 있다.
물론 내가 강제로 넘어간 탓에 순리가 어긋난 걸 넘어 개박살났으니 불신할 수밖에 없다. 자칫했다가 전쟁이 터질 뻔했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런 저런 보험을 발라놓았다. 절대로 나에게 허튼 짓을 하지 못 하도록.
도대체 왜일까. 지구의 신들이 나를 감싸도는 경향도 있지만 이 세상의 신들을 불신하는 것도 크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세계의 신들은 인간적이며 필멸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사태는 비록 성급했어도 끝내 사과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이다.
“··· ···”
히르트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눈동자 또한 착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잔잔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입이 열리기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히르트는 쓰게 웃더니 조심스레 본인들의 비밀을 밝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단다.”
“그럴만한 이유······ 알려줄 수는 없는 거죠?”
“적어도 지금은.”
사람에게는 한 평생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이건 신이라 해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히르트의 대답을 듣고 납득이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대답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거면 괜찮아요.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뭘. 우리가 더 고맙단다.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니?”
“딱히······ 아. 하나 있어요.”
지구의 신들이 이 세상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았을 때는 피와 강철이 발매하고 난 후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그렇고 그런 유행이 번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반응이라······”
그사이 내 머릿속을 읽은 히르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뒤이어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녁쯤에 알게 될 거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건 네 옆의 아이에게 물어보렴.”
아르웬?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르웬을 쳐다봤다.
아르웬은 자신이 지목되자 흠칫한 것도 잠시, 이윽고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모양.
그녀와 관련된 거라니 대체 뭘까.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노발대발할 신이 한 명 있지······”
히르트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