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27
■ 526화. 서술 트릭 (1) □ ᓚᘏᗢ
마력 기관의 등장과 코크스 정제법의 도입으로 경제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꽉 막힌 탓에 대부분 정지됐던 돈의 흐름도 조금씩 흘러가는 건 물론 사람들의 활동도 전보다 활발해졌다.
물론 공장이 덜 세워진 탓에 물가를 비롯한 금리는 낮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살만해졌다는 평가다.
각 나라가 펼쳤던 정책도 슬슬 효과를 보는 중이고 일자리 또한 대공황 이전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앞으로 이런 대공황이 또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아니, 먼 미래에 반드시 터질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피와 강철의 대공황도 기계 혁명 이후에 발생했지 않았는가.] [수요의 부족이 아닌, 먼 미래에 공급의 과잉으로 인한 대공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우린 이걸 대비해야 된다.]대공황은 기간으로 따지면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여파는 무시무시했다.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지구 경제가 막장이 된 것처럼 이곳 또한 세상 전체가 주저앉아버린 수준이었으니.
문제는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것. 특정 나라의 경제가 망가진 게 아니라 대공황처럼 전세계가 박살났다.
금리와 물가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폭등하지. 일자리는 구할 수 없지. 그렇다고 몬스터는 무시할 수 없어서 물건은 구해야하지.
한 번 강하게 얻어맞은 탓에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철학’과 ‘경제학’이 서로 완벽히 구분됐다.
원래 철학과 경제학은 서로 붙어있던 학문이다. 애당초 철학이 모든 학문의 근원이자 아버지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대공황으로 완전히 분리되고, 더 나아가 좀 더 세분화된 기관이 생길 것으로 전망되었다.
[미네르바 제국. 별개의 권력을 둔 기관 설립 논의. 경제는 전문가가 다루어야 하는 문제. 지금은 운이 좋았지만 훗날 황실이 경제에 개입하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귀족들이 반발했으나 베리트 황제는 본인조차 건드리기 어려운 권위를 하사할 거라고 반박했다.] [이후로 베리트 황제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군주제의 한계가 드러날 거라며, 테르스 왕국처럼 평민 의회의 설치를 논의해······]게다가 미네르바 제국에서 평민 의회를 설립할 수도 있다는, 혁명 못지 않은 폭탄급 발언이 떨어졌다.
미네르바 제국은 테르스 왕국이나 마키나처럼 혁명이 터지지 않았고, 심지어 백성들의 민심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한때 황권 다툼으로 시끌시끌했으나 그건 정치적인 문제지, 백성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미네르바 제국은 이번에 대공황을 직격탄 수준으로 얻어맞은 나라.
베르트 황제를 비롯한 황실로서는 군주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인재가, 좀 더 많은 생각이, 좀 더 많은 정치인이 필요하다.] [백성이 뿌리라면 정치는 줄기다. 제아무리 뿌리가 튼튼해도 줄기가 가늘다면 열매를 맺기 어려운 법.] [대공황을 완전히 해결한 이후에 천천히 도입시킬 것. 대공황이 우선 과제다.]이처럼 미네르바 제국에서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듯이 다른 나라도 이와 비슷하다.
가장 먼저 미네르바 제국의 숙적, 테르스 왕국이 있다.
[미네르바 제국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나라처럼 보였다. 우리는 굳건한 단결력으로 버텼을 뿐, 실질적인 힘은 몇 단계 아래였다.] [하지만 이번 대공황으로 제국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고 깨달았다. 앞으로 제국은 옛날과 같지 않을 것.] [마력 기관은 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우리 테르스 왕국도 제국처럼 강해질 터.] [마법이 아니라 과학의 시대가, 양이 아닌 질의 시대가 올 것이리라.]미네르바 제국이 테르스 왕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많고 많지만 이것 또한 종족 전쟁으로 흘러간다.
테르스 왕국은 알븐하임의 영향을 짙게 받은 나라. 더구나 악마 전쟁에서 꿋꿋이 버텨낸 문명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알븐하임과 좋든 싫든 가까운 사이가 될 수밖에 없고, 종족 전쟁에서도 참전만 했지 활약은 거의 하지 않았다.
테르스 왕국의 지리상 알븐하임의 옆구리를 바로 칠 수 있는, 전략적으로 훌륭한 지리.
하지만 종족 전쟁에서 모른 척하며 길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미네르바 제국의 전신이었던 인류 연합에게는 짜증이 날 수밖에.
이후로도 그 앙금은 쭈욱 이어졌으며 알븐하임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진 동안 두 나라 간의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했다.
[세상은 제국이 주도하는 게 아닌, 누가 더 앞서 나가냐의 싸움으로 바뀔 것이다.]원래 미네르바 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찍 눌려 있던 테르스 왕국이었지만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가 ‘신냉전’에 돌입했듯이, 이 세상도 그와 비슷한 흐름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셈이다.
당장 전쟁을 일으키진 않겠지만 미네르바 제국의 국력은 확실하게 약해진 바.
대공황이 물러간다면 나라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게 명백하다.
[일주일 동안 3권이나 발매된 피와 강철의 신작들!] [출판사에도 설치한 마력 기관. 더이상 종이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렇게 세계 곳곳에 갈등의 씨앗들이 심어졌을 때쯤, 아이작은 무려 3연참을 시도했다.
또한 출판사에도 마력 기관을 설치했는데, 사실 출판사는 종이의 원자재가 되는 목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했느냐. 간단하다. 베리트 황제가 친히 노동자들을 그쪽에 넣어줬다.
뉴딜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니 명분도 충분하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했지.
[민족자결주의를 이용하여 활약하는 히틀러. 민족자결주의란 무엇인가?]피와 강철 11, 12, 13권은 1937년 말부터 1939년 말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가장 심오한 주제가 되고, 더 나아가 민감하게 반응할 민족자결주의에 대해서 많고 많은 말이 떠돌았다.
이 세상은 민족보다 종족 간의 분류가 강했지만 스타비르크나 다크 엘프 등등. 독자적인 민족성을 띠고 있는 민족도 있다.
이렇다 보니 스타비르크와 다크 엘프 쪽에서 반응이 나올 것으로 추측됐지만, 13권 끝부분에 나온 거대한 사건으로 대부분 사그라들었다.
[민족자결주의를 이용한 결과는 폴란드 침공 즉, 전쟁이었다.]적어도 독립을 외치는 스타비르크 입장에서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다크 엘프는 워낙 조용한 종족이라 어떤 반응인지 모른다.
아무튼 리나는 물론 아이작도 가장 우려했던 민족자결주의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됐지만, 사건사고들은 많이 남아있다.
안슐루스. 중일전쟁. 수정의 밤. 뮌헨 협정. 독소 불가침조약 등등.
이 시기의 미국은 대공황으로 빌빌거리고 있어서 별다른 활약은 없다. 소련은 뭐······ 불가침조약을 제외하면 대숙청이 진행 중이고.
너무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터지는 바람에 일일이 조명하기 어려웠으나 반응들은 대략 이렇다.
안슐루스?
[히틀러는 위대하다!]뮌헨 협정?
[대전쟁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영국과 프랑스가 저럴까?] [아무튼 히틀러는 천재다!]독소 불가침조약?
[역시 히틀러! 근데 소련은 라이벌 아니었음?]이 뭐 병······ 같지만 일단 저렇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히틀러가 주인공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히틀러에 대한 찬양만 주를 이루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수정의 밤.
T4 작전이 홀로코스트의 전신이라면, 수정의 밤은 나치 독일의 광기가 본격적으로 발휘된 사건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확산시킬 필요가 있었나? 유대인이 도화선에 불을 지폈지만 확산시킨 건 괴벨스다.] [이제는 선전이 아닌 실질적인 위협으로 변한 유대인들.] [마족들이 악마 취급을 받았던 것과 실제로 위협이 되었던 사건들이 연상된다.]그러나 수정의 밤조차 다들 ‘납득’하며 넘어갔다. 이러한 반응들에 아이작은 충격을 받았으나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마족도 이런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차이점이라면 유대인은 나라가 없고 마족은 헬리움이 존재했던 것.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민족의 말로가 어떤지 역사가 꾸준히 증명했다. 유대인은 그 절정이고.
이처럼 수정의 밤은 납득해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광기’에 대해서는 불안함을 품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중일전쟁에서 터진 ‘난징 대학살’은······
[저것이 전쟁이다. 비극적이어도 전쟁은 사람을 저렇게 만든다.] [그렇다고 학살이 정당화되는 게 아니다. 일본 제국은 언젠가 신의 천벌을 맞을 것.] [반항하는 자를 죽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건 도를 넘은 수준.]많은 사람들이 경악함과 동시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논 일대기에서도 수많은 비극들이 존재했으나 전쟁은 철저하게 주인공들의 승리로 끝맺었다. 적어도 약간의 희망이 있다는 소리.
더군다나 피와 강철은 판타지로 취급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도 무언가 다르겠지라는 생각을 내심 품고 있던 상황이다.
그 생각을 철저하게 부숴버렸다. 전쟁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끔찍한 비극들이 따라붙는다.
그나마 시대적 상황이 ‘중세’에 가까워서 충격이 덜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난징 대학살의 충격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단 하나, 스스로가 사람임을 버리면 된다.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한 자루의 검 혹은 창이 되어 상대방을 죽여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승자는 모든 것을 쟁취하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여도.]학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침착했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지식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냉정히 평가할 수 있었다.
허나 평민들은 아니다. 피와 강철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독하고 있으며 평민의 비율이 훨씬 많다.
평민 중에서도 기사나 모험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만 대부분이 전쟁과 거리가 멀다.
간혹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경우가 있어도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적다.
[전쟁은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나 아름다운 것이다.]저 말에 딱 어울리는 현상이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제논 일대기의 줄거리에 혹해 모험가가 된 사람들이 온갖 지옥을 경험했듯이, 기사를 선망하여 입대한 사람들도 지옥을 겪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어디에 전쟁이 터지진 않았다는 것. 하지만 난징 대학살을 통해 전쟁의 편린을 보여준 상황이다.
[살인은 악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는다. 악은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 것인가?] [일본 제국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은 명백한 악.] [학살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본격적인 전쟁 파트로 돌입하면서 다소 철학적인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 난징 대학살 하나만으로 온갖 말이란 말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심지어 종족 전쟁에서 인간들이 수인을 학살한 것과, 세이비어가 마족들을 사냥한 역사도 존재한다.
[피와 강철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 *
많은 학자들, 그리고 사람들이 피와 강철에 대해서 떠들고 있을 때.
대공황이 점점 물러날 기미가 보이자 고요하기 그지 없었던 벨루아 공국도 점점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벨루아 공국은 미네르바 제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히 경제적인 활동이 가장 활발했으며 이건 모험가도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교두보 역할을 하는만큼 품질이 뛰어나도 값도 싼 장비도 많은 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모험가는 반드시 벨루아 공국을 방문했다.
“후후후후후······”
“좋냐?”
숏컷에서 머리를 길러 단발이 된 여성 모험가, 앤이 기분 나쁘게 웃는 남자에게 핀잔을 줬다.
아니꼽다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하기야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저리 웃는다면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볼 터.
그러거나 말거나 최근 명성을 얻고 있는 모험가, 로이는 쭈욱 찢어진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좋지! 내가 어? 내가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알아?”
“그래. 그래. 존나게 부럽네.”
로이가 이리 행복해 하는 이유는 딱 하나. 제논이 직접 발췌했던 ‘이벤트’에 추첨됐기 때문이다.
이벤트는 본디 악마 숭배자를 얼마나 족치냐에 따라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에 악마 숭배자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이벤트 또한 빠르게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첨된 사람이 바로 로이드다. 어떻게든 제논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악마 숭배자를 토벌하고 다녔다.
다소 위험천만한 일들이 있었지만 파트너, 앤의 보조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한 건 덤이고.
“뭘 부러워하고 그래? 어차피 너도 갈 건데?”
“뭐? 나는 왜?”
“네가 없었으면 난 이미 몇 번이라도 죽었잖아. 이 정도는 봐주겠지. 안 그래?”
“어······”
로이의 제안에 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제논의 열렬한 팬이라는 걸 알고 있는 그녀다.
그래서 당연히 독대할 줄 알았는데 자신까지 끌어들이다니 다소 얼떨떨하다.
이에 앤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머쓱해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뭐가?”
“······아냐. 둔한 새끼.”
그 표정은 곧바로 답답함으로 변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벤트에 당첨된 로이는 싱글벙글거리기 바빴다.
“제논이랑 만나면 뭐 하려고? 이제는 피와 강철에도 사인을 받게?”
“당연하지! 내가 이때까지 모은 책들마다 다 사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너는?”
“나는 가능하면 제논 일대기만 할 것 같네. 피와 강철은 재미있긴 한데 제논 일대기보다는 아니어서.”
앤의 말처럼 피와 강철은 제논 일대기보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아이작의 작품이라 재밌기는 한데 취향을 탄달까.
특히 남성보다 여성 쪽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다.
남자는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반면, 여자들은 아니다.
“마나가 없으면 남자가 강한 건 알아. 그런데 뭐랄까······ 여자를 너무 싸고도는 것 같달까? 그걸 넘어서서 계급이 나뉜 것 같아.”
많고 많은 이유 중에는 하나, 제논 일대기와 달리 매력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 것.
앤은 피와 강철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그대로 말했다. 로이도 그 말을 듣고 어벙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렇긴 하겠다. 마나가 없고 신의 존재가 불투명하니까.”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높아서 재미있긴 한데 조금 씁쓸하지. 이 세상의 인간도 마나를 깨우치기 전에는 비슷했다고 들었으니까.”
이 세상의 여성 인권은 시대상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 단, 마나를 깨우친 여성에 한해서만.
마나를 깨우치고 단련을 한다면 신체 능력은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누가 마나를 좀 더 잘 다스리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여성이 아닌 인권 그 자체도 마찬가지. 지구는 신의 권력에 준하는 인간이 있는 반면, 이곳은 아예 처음부터 신이 존재한다.
따라서 모두가 신의 아래에 공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정하지 못할 뿐이지.
“그리고 나치 독일이 좀······ 이상해. 적어도 내 눈에는.”
“이상하다고?”
“응. 아기공장 알지?”
“아. 그거.”
앤의 설명에 로이 또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쳐지나가듯이 설명됐지만 그 유명한 ‘아기공장’ 사건이 피와 강철 속에 등장했다.
아리아인의 ‘양성’을 위한답시고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교접시키는, 나치의 광기를 살짝 엿보여준 사건.
심지어 국가 주도 하에 이루어진 기관이었다는 점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히틀러의 활약 아닌 활약에 묻혀지나가서 큰 파급은 주지 못 했다.
무엇보다······
“그런데 우리도 비슷한 거 있었지 않았나?”
“종족전쟁에서 그랬다는 기록이 있어. 확실치는 않지만.”
현실에서도 몇 번 일어날 뻔한 사건이라 ‘논란’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있어서 ‘우생학’은 가설이 아니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엘프가 떡하니 존재하는 마당에 부정한다면 이상한 놈으로 취급될 터.
또한 종족전쟁에서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 중 하나다. 전쟁은 살인을 비롯해 많은 악행들이 정당화되는 곳.
우생학의 정점인 엘프들을 이용해 혼혈을 양산시킨다는, 아주 정신나간 짓거리도 행할 뻔한 적도 있다.
천만다행히 미수로만 그쳤을 뿐. 만약 실제로 행했다면 알븐하임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악마 숭배자가 그랬잖아.”
“······말하지 마. 생각만 해도 토나와.”
앤이 무덤덤하게 말한 반면 로이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나는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악마 숭배자를 가장 많이 토벌한 그인만큼, 악마 숭배자의 만행을 고스란히 목격한 것도 그다.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자인 건 약과다. 차마 입으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지켜봤다.
아기공장도 그 예시 중 하나. 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그 새끼들은 아기를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저지른 거잖아. 나치 독일은 뭐······ 됐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이번에 T4 작전으로 만회하려는 것 같더만.”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이용해 아리아인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계획? 그거 싹 다 죽이려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런데.”
나치 독일의 음흉함과 광기를 얼핏 눈치채고 있던 앤이 조용히 의견을 꺼냈다.
그녀로서는 나치 독일이 정신적으로 상당히 엇나간 집단인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 의심 가득한 앤의 질문에 로이는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어림도 없다는 소리.
“그건 아닐 거야. 애당초 히틀러부터 짝부랄인 걸? 게다가 영혼의 파트너 괴벨스는 소아마비로 다리 한 쪽이 장애인이고. 이런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동정하면 동정했지, 미쳤다고 다 죽이진 않을 거야.”
“흐음······ 그런가?”
가만히 들어보면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문제는 히틀러와 괴벨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악마 새끼들이었다는 것.
아직까지 나치 독일의 광기가 터지기 전이었기에 전혀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 차라리 마지막에 등장한 누구지? 오스카 쉰들러? 차라리 그 놈이 학대 같은 걸 하지 않을까? 보아하니 부르주 3세마냥 탐욕에 미친 놈이던데.”
“뭐, 다음 편이 나오면 알겠지. 그나저나 밥은 뭐 먹을래?”
“글쎄. 할 것도 없으면 마이샬 영지로나 가자.”
“그래.”
폭탄은 이미 심어졌고.
“근데 그 좆같은 수염은 언제 자를 거냐?”
“어허. 위대한 총통의 수염을 좆 같다고 하다니! 무엄하다!”
“에휴. 병신. 나중에 제논한테 하일 제논이라고 하지나 마.”
이제 터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