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43
■ 542화. 참 쉽죠? (2) □ ᓚᘏᗢ
지구는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만큼 신화와 관련된 매체도 다양하다.
실제 신화를 기반으로 둔 창작물은 기본이고 그 신화를 약간 비틀어서 흥미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중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유명한 건 신살 즉, 신을 죽이는 행위다. 무슨 이유든지 간에 신이 죽는 클리셰를 차용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필멸자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이며, 그 신을 죽였다는 것부터가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각인시킬 수 있다.
특히 이 분야 본좌급에 속해있는 캐릭터는 틈만 나면 신들을 쳐죽이기로 유명하다. 전쟁의 신이 얼마나 강한지 독보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신들이 툭하면 죽어나간다지만 그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준다. 괜히 신이라 숭배받는 것이 아니다.
간혹 압도적인 과학력을 기반으로 신에 걸맞는 힘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건 상대적이라고 봐야겠지.
지구 기준으로 ‘핵폭탄’은 신의 힘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힘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신의 힘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마법은 신이 선물한 능력이나 지구 기준으로는 말 그대로 신의 능력일 테고.
이렇듯 ‘신화’와 관련된 수많은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구이니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우선 신들의 과거를 최대한 조사한 후, 지구의 신화 및 창작물들에서 나온 이야기를 갖고 와 짬뽕시키면 그만이니까.
‘아예 성별을 바꾸는 경우도 있지.’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과연 천벌을 맞는 것으로 끝낼까, 아니면 허허 웃으며 넘어갈까.
건드리기 민감한 부분이 종교라지만 ‘모욕’만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관대하기 넘어가는 편이다.
여기서 일본 같은 나라를 통해 진정한 광기가 무엇인지 직면할 수도 있고.
예상컨데 신들도 그걸 보며 경악하지 않았을까.
[정말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게냐? 그대 같은 필멸자가?]한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모건 왕이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친 모양이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질문으로 바꾼 것 같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은 불신에 가깝다. 하기야 이 세상 기준으로는 도저히 믿지 못할 말이겠지.
더군다나 이곳은 제대로 된 신화마저 없다. 그나마 신화라 할만한 것도 일종의 역사에 가깝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루미너스와 모라가 직접 세상을 가꾸었다는 이야기였지?’
북유럽으로 따지자면 라그나로크 이후의 설화다. 부활한 발두르가 황금 시대를 열고 하늘에서는 두 초인이 내려와 인류를 번성시킨다는 신화.
루미너스는 강력한 빛의 힘으로 악들을 물리치고, 모라는 어둠의 힘으로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은 신화가 아닌 역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세세히 기록돼 있다. 나 또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네. 이 세상 입장에서는 신화겠지만 저에게는 소설에 가까우니까요. 대신 신들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죠.”
[신화를 창조한다라······ 믿기 어려운 말이로군. 그대처럼 신화를 창조한 필멸자가 있는가?]“범위를 어디까지 둬야하는지 애매하지만 있긴 있어요.”
‘크툴루 신화’로 유명한 러브크래프트가 있다. 허무주의와 코즈믹 호러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
여타 신화 못지 않게 정교하고 매력적인 내용 덕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존하는 신화로 착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보통 크툴루 신화 속 신들은 우주를 돌아다니기에 외부의 침략자 혹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고대의 악신 혹은 외세로부터 넘어온 신이면 대부분 크툴루와 관련된 신이다. 인간은 당연히 영원히 고통 받는 필멸자고.
하지만 너무 남발한다면 내용이 산으로 향하기 딱 좋은 소재여서 적절히 버무리기 힘들다.
[허······ 그럼 그 신화 속의 내용은 실존하는 겐가?]“아무도 모르죠. 저희 세상은 신의 존재마저 불분명한 세상이니까요. 애당초 너무 많은 신화가 존재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다양한 신화들, 그리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거겠군. 신들이 필멸자의 세상에 직접적인 간섭을 가하지 않으니까.]모건 왕은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이 세상처럼 신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선을 넘는 사람들은 무조건 등장하겠지.
만약 이 세상의 문화가 지구처럼 발달되었을 때 어떤 혼종이 탄생할지 궁금하다.
‘루미너스 님이 여자로 변하실 수도······’
저런 경우가 제일 곤란한 경우이지 않을까. 직접적으로 모독한 건 아니지만 취향이 심하게 갈리는 상황.
루미너스의 성격상 곤란해하며 넘어갈 수 있어도 신도들은 신성모독이라며 피터지게 싸울 것이다.
말리고 싶어도 못 말리겠지. 한 쪽 편을 드는 순간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으니.
[들으면 들을수록 지구라는 곳이 궁금해지는구나. 신화를 포함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더 나아가 그걸 창작하는 필멸자들이 존재한다니.]“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 한 번 예시를 들어보거라. 신화의 시작은 어떻게 할 겐가?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여전히 믿기 어려운지 모건 왕이 예시를 부탁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보통 신화의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신이 탄생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수많은 매체에서 주로 차용되는 설정.
그리스·로마 신화든, 북유럽 신화든, 마지막으로 사람이 창작한 신화든 간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부터 시작이다.
이후로 최초의 신이 탄생하고 그 신이 아이를 낳거나 누군가 죽이면서(…) 본격적인 신화가 이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신이 탄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신이 등장한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신화니까요.”
[··· ···]나의 명료한 대꾸에 모건 왕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신화에서는 개연성이 박살나는 게 개연성이다. 필멸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어야 된다는 소리다.
그런 내용이야말로 신들의 존엄성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며, 필멸자와 초월자를 명확히 구분시키는 행위다.
“바다의 신과 히르트 님은 서로 부부고,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을 낳으셨죠. 하지만 바다의 신과 히르트 님이 어떤 관계인지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지?]“히르트 님이 바다의 신의 딸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소리죠.”
[··· ···]또다시 말이 없어진 모건 왕. 자기가 들은 이야기가 진실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뒤이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그답지 않게 불안해하는 반응이다.
[흠. 흠. 이보게.]“말씀하세요.”
[짐은 루미너스나 모라는 무섭지 않아. 하지만 자연의 여신이자 모든 생명의 여신인 히르트 님은 두렵다네. 짐이 살아있을 시절 가장 무서웠던 건 다른 게 아닌 자연재해였어. 그런 분에게 모욕을 해도 되는가?]의외라면 의외겠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서쪽 전체를 제패했던 게리오스 왕국조차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기력하니까.
하물며 히르트는 최고주신이자 대지모신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적어도 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갖고 있다.
지난번 고행 사건에서도 태양과 달이 우뚝 멈췄지 않았는가. 과학적으로 보면 행성이 자전을 멈춘 셈이다.
“괜찮아요. 신화니까요. 저희 세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였고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곳인지 심히 궁금하군.]“자식이 아버지의 고간을 잘라버리고, 그 고간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다로 흘러갔는데 그곳에서 신이 탄생한 경우도 있습니다.”
모건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 설화를 알려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겨우 이런 걸로 저런 반응이라니, 이 세상의 신화가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지.’
신화는 최초의 철학이자 가장 오래된 철학이다. 신화가 없었다면 이 세상이 이토록 발전하기는 힘들었을 터.
악마전쟁도 따지고 보면 신화다. 엘프와 마족이라는, 장수종들 때문에 다소 가깝게 느껴질 뿐.
하지만 루미너스와 모라가 너무나도 선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탓에 여러 사건사고들이 튀어나왔다.
대표적으로 세이비어의 마족 사냥이 있다. 마족의 씨를 완전히 말리기 위해 단체로 광기에 물들었던 사건.
그때 루미너스가 말린 이유도 본인의 과거와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루미너스 님이 빛과 전쟁을 관장하는 것처럼, 신들은 다양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 땅, 식물, 바다, 태양, 달, 힘, 강, 산 등등. 과거에는 수많은 신들이 각각의 영역을 관장했을 겁니다.”
“··· ···”
이제는 내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모건 왕은 내 반응에 껄껄 웃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뭘 그리 놀라나? 신화를 쓴다고 했으면 당연히 전쟁의 신, 루미너스의 이야기겠지. 그대의 세상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나?]“어······ 있긴 있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적당히 차용하면 될 거예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신들의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건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가장 유사하다.
멸망 이후 루미너스와 모라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라그나로크 이후의 세상도 똑같다.
여기에 루미너스가 전쟁의 신으로서 미쳐날뛰는 것만 적절하게 설명한다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상을 전파한 지구의 신인데······’
지구의 신화는 알고 보면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대표적으로 틈만 나면 발생하는 대홍수가 있다.
더군다나 다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동일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이집트 신화다.
이집트 신화가 북쪽으로 넘어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탄생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지구의 신이 독을 풀고 튄 경우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다소 난감하다.
‘사상의 무서운 점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개연성이 박살나도 상관없는 것이 신화라지만 이건 개연성 이전의 문제다.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으니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생뚱맞게도 외세의 신이 찾아온다?
이걸 보는 독자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안 봐도 비디오다. 뭐 이딴 게 있냐고 코웃음치겠지.
피와 강철은 ‘판타지’로 취급하고 있으니 괜찮겠지만 신화는 궤를 달리하는 분야다.
‘이건 책을 쓸 때 생각해야겠다.’
아직 제대로 된 과거도 조명되지 않은 마당에 책부터 쓸 생각을 하다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지금은 피와 강철을 집필하면서 천천히 신들의 과거를 알아놓는 것. 이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조금 기대되는구나. 루미너스를 주인공으로 둔 신화라······]“엄밀히 따지자면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이 주인공이죠.”
[상관없지.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주겠네. 신들의 과거를 정리한 서적은 지하에 보관돼 있을······ 아, 그렇지 참.]말을 이어가던 모건 왕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나에게 설명했다.
[지하에는 짐의 묘지를 제외한 다른 선조들의 묘지가 있을 걸세. 짐의 묘지는 개방돼 있겠지만 다른 묘지는 아니지. 그걸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다네.]“어떤 열쇠인가요?”
[피.]“네?”
피라는 대답에 당황하는 동안 모건 왕이 말을 이어갔다.
[묘지의 문을 잘 살펴본다면 미세한 구멍이 있을걸세. 그 구멍에 피를 흘려보내면 돼. 마이샬 가문의 피에만 반응하는 장치지.]“······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왜 못 하겠나?]판타지 특징 중 하나. 고대에 건설된 도시는 다양한 부분에서 현재보다 앞서고 있다.
나는 지문 인식을 아득히 상회하는 유전자 인식에 헛웃음을 흘렸다.
저쪽은 우리 세상을 신기해하는만큼, 나 또한 이쪽 세상의 문물이 신기하다. 이것도 문화 차이라고 해야겠지.
“······몇 번을 생각해도 이 세상은 신기한 것 투성이네요.”
[나는 그대의 세상이 더 놀랍네만. 혹시 신화와 관련된 것 중에 흥미로운 건 없나?]“흥미로운 거라······”
흥미로운 거라면 있긴 있다.
“예언이라고 아세요?”
그 질문을 하자마자 모건 왕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 빌어쳐먹을 예언 말인가?]“··· ···”
안 좋은 기억이 있으신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