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7
■ 56화. 고백 (3) □ ᓚᘏᗢ
식사는 당연하게도 방음과 보안이 철저한 방에서 이루어진다. 황족 남매와 식사하기 전까지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지금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신 가격이 상당히 비쌌는데 거의 보름치 생활비에 육박했다. 아무래도 방의 구조상 가격을 이리 책정한 것 같은데 약간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거디가 먹튀를 방지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가격 때문인지 몰라도 선불이었다. 이에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가격을 지불할 생각이었다.
“돈은 내가 대신 낼게.”
식당에 들어오고나서도 붙잡았던 내 손을 놓지 않던 마리가 선듯 나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쳐다봤다.
“마리?”
“괜찮아. 내 가문이 어디인지 잊었어? 이정도는 간식거리도 안 돼.”
자부심이 뚝- 뚝- 묻어나오는 말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내가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마리는 더욱 으쓱거리며 붙잡은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었다.
뒤이어 마리가 가격을 지불하자 직원이 따라오라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손을 그대로 붙잡은 채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부끄럽네…’
내가 여자 손도 잡아보지 못 한 숙맥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생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적이 있다. 사귀는 도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서 자연스레 헤어졌지만.
그러나 환생하고나서는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당연히 세실리였으나 그녀는 반강제적으로 내 손을 잡았던지라 느낌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고된 단련으로 고생한 세실리의 딱딱한 손과 달리 마리의 손은 보들보들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 장난을 치고 싶을 정도로.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주문을 원하신다면 여기 있는 종을 울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직원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예의바르게 문을 닫았다.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방 내부의 모습을 둘러봤다.
지난 번에는 4인실이라 매우 넓은 편이었지만, 우리가 들어온 방은 2인실이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좁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다는 거지, 2인실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비싼 가격을 책정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방을 둘러보다가 마리를 힐긋거렸다.
당당하게 가격을 지불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고개를 내리깐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붙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으니 귀여울 따름이다.
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이 손을 놓아야한다. 마음 같아서는 나란히 앉아 정답게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마리.”
“…응.”
“이제 손 놓고 자리에 앉자.”
그 말과 동시에 아래로 내려갔던 마리의 고개가 올라가며 나를 직시했다.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눈동자에는 진한 아쉬움과 약간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뒤이어 그녀는 내 시선과 똑바로 마주하다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힘겹게 대답했다.
“…그냥 이렇게 있으면 안 될까?”
“… …”
이거 너무 위험한데. 나는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마리의 모습에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활발하고 시원털털한 성격을 지닌 마리가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애처롭게 말하니 뭐라고 해야할까.
반전매력? 아무튼 그리 느껴졌다.
나는 애교에 가까운 얼굴로 올려다보는 마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조용히 답했다.
“…그럼 주문한 게 올 때까지만 기다리자.”
“응!”
내 대답에 마리가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답했다. 나는 그렇게도 좋은건가 싶어 못 말린다는 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자리에 착석하기 전, 각자 주문을 고르고 직원이 언급한대로 문 쪽에 걸려있던 종을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방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문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후로 각자 주문을 끝낸 뒤, 우리는 식사가 올 때까지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 있는 상태로 기다렸다. 서로 손을 잡은 채 말이다.
“… …”
“… …”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기분이다. 마리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 건지 몰라도 고개를 아래로 내리 깐 채 얼굴만 붉히는 중이다.
아까의 멘트는 실수를 한 것이지만, 눈치없이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기껏 좋은 분위기가 모두 사라질 것 같다. 솔직히 나도 나쁘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마리에게 호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전까지의 마리는 단순한 여사친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도 마리를 좋아하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손을 잡은 이후부터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건 확실하다.
나는 방 안에 가라앉은 미묘한 침묵에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다시 마리를 바라봤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나를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 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는 의미다. 나는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과 지그시 마주하다가 바보처럼 웃었다.
그러자 마리도 헤프게 웃으며 자신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했다.
“아이작.”
“응.”
“아이작. 아이작.”
“응. 나 여기 있어.”
“히히히.”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마리.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마리는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건지 새하얀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얘가 나를 좋아하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티를 낸다면 그 어떤 남자가 싫어할까. 나는 해맑게 웃는 마리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마리.”
“응.”
“마리.”
“왜에?”
이번에 내가 이름을 부르자 마리가 애교를 담아 대답했다. 그러면서 몸을 좌우로 살짝 흔들며 본인의 기분을 표현하기까지.
나는 살랑살랑거리는 그녀의 몸짓에 붙잡았던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었다. 그러자 마리의 얼굴이 좀 더 진하게 붉어지는 것이 내 눈에 잡혔다.
‘이거 참…’
곤란하기 짝이 없다. 원래는 이런 의도로 만남을 가진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변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이다. 마리와 손을 잡고난 이후부터 그녀가 점점 더 예뻐보이고, 또 귀엽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임 당시 마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건 또 아니다. 마리는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여자가 확실하다.
‘정말로 제논 일대기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진 거라면…’
내가 마리와 교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물론 대외적인 시선으로는 공작의 딸과 남작의 아들이 서로 사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폄하는 물론이고 서로에게 좋지 못한 소문이 나올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밝히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리가 꺼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난 정말로 함부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몸값을 지닌 사람이다. 나라가 친히 모셔가려고 안달이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상을 지닌 작가.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바뀔 줄은 누가 알았을까. 나는 방실방실 웃는 마리와 얼굴을 마주하다가 겨드랑이에 끼웠던 초판본이 떠올랐다.
이렇게 손만 잡고 가만히 있는 건 좋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하지 않겠나. 이에 나는 마리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리?”
“응. 아이작.”
“이제 슬슬 앉을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이대로 말하면 안 될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그거 아니야. 나는 마리가 능글거리는 투로 얘기하자 헛웃음을 흘릴 뻔한 걸 간신히 인내했다.
“네가 생각하는 건 아니야. 어쩌면 더 큰 거일 수도 있어.”
“…더 큰 거?”
“응. 참고로 그렇고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렇고 그런…”
마리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현했다가 눈을 크게 뜨더니 아예 고개를 반대로 돌려버렸다. 제 딴에는 창피한 심정을 감추려는 시도였겠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로 인해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뒤이어 내가 맞잡은 손에 힘을 천천히 풀자 마리도 스르르 힘을 풀어줬다. 다만 힘을 완전히 풀기 직전 다시 잡으려고 시도한 걸 보아 많이 아쉬운 듯했다.
“그럼 앉을까?”
“응…”
그리하여 한참동안 손만 잡던 우리 둘은 자리에 착석했다. 거의 20분 가까이 손만 잡고 있던 것 같다.
이윽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맞은편에 조신히 앉은 마리에게 시선을 두었다. 때마침 마리도 타이밍 좋게 나를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 …”
“…히.”
내가 물끄러미 보고만 있자 마리가 쑥쓰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는 피식거리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마리.”
“응. 아이작.”
“아카데미 생활은 할 만해?”
일단은 이 분위기부터 어떻게 해야할 것 같아 간단한 질문부터 꺼냈다. 계속 이 상황으로 갔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았으니까.
마리는 내 질문을 듣고 파란색 눈을 깜빡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음… 처음에는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검지 손가락으로 뺨을 두드리며 말을 흐리던 그녀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활짝 웃더니 진심이 우러러 묻어나오는 말을 꺼냈다.
“아이작을 만나서 좋아졌어.”
“… …”
이제 제 마음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렇게 티를 냈으니 반쯤 연인 관계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간신히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한 번 날뛰려고하자 최대한 억눌렀다. 억누르지 못 한다면 보나마나 내 얼굴이 타오르듯이 붉어질테니까.
“크흠… 큼. 그래? 그거 다행이네. 불편한 점은 없고?”
“불편한 점이라… 지금은 딱히 없어. 너도 알다시피 문학생은 무학보다 수가 적은데다가 하루하루 수업에 따라가기 바쁘잖아. 뭐, 3학년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이작 너는?”
“나도 불편한 점은 없어. 지난 번에 조별 과제했을 때를 빼면은.”
“아, 조별 과제. 그때 진짜 힘들었었는데…”
다행히 이야기는 도중에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중간에 식사가 들어와도 우리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가 단절되는 일은 없었다.
황족 남매와 함께 식사를 했을 때는 피가 말리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편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는 느낌이 이런걸까.
나와 마리는 식사를 하면서도 신나게 웃고 떠들기 바빴다. 식사 예절에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 물론.
“… …”
“… …”
식사를 모두 끝내고 정리가 끝나자마자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처럼 입을 다물게 되었지만.
아마 마리도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식사가 모두 끝나는 순간부터가 본격적인 주제가 시작된다고.
나 또한 그럴 계획이었기에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속으로 고심했다. 일단 미사여구 다 집어치우고 말하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빌드업을 해놓아야 좋겠지.
“…마리.”
“…응.”
내가 이름을 부르자 마리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동안 나는 허벅지 위에 있던 초판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리는 테이블 위에 초판본이 올라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게 마리의 눈에는 단순히 우편물로밖에 보이지 않아 이게 뭐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마 그녀는 이게 제논 일대기의 초판본인 것을 꿈에도 모르겠지. 다른 사람과 달리 마리는 내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을테니까.
“후우…”
하지만 막상 말하려고하니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한숨을 내쉬어도 식은땀이 날 것 같이 두근거렸다.
‘괜찮을거야.’
암. 마리라면 괜찮고 말고.
그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작.”
긴장을 추스리고 있는 도중에 마리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에 내가 딱 눈을 떴을 때였다.
“…?”
눈을 뜨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본래 나와 마리의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였다.
헌데 지금은 마리의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을 때, 뒤늦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기울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네가 그렇고 그런 게 아니라고 했었지?”
내가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 하고 있는 와중에 마리가 나에게 말했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세실리와 다른 의미로 야릇한 목소리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알겠지만… 아마 상관없을 거야.”
그 말과 끝남과 동시에 마리는 서서히 내 얼굴에 접근하더니…
쪽-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가 쪽- 소리를 내며 곧바로 떼었다.
연인끼리 하는 진한 키스가 아닌, 단순히 가벼운 입맞춤.
그러나 내 입술에 전달된 느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볍다지만 이 입맞춤은 일종의 선포나 다름없다.
깃발을 꽂아버리는 것처럼, 이성의 마음에 확신을 새겨넣는 행동.
덕분에 내 사고가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마리가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그사이 마리는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로 베시시 웃더니 따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단지 너를 좋아하는 것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