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76
■ 575화. 업보 (2) □ ᓚᘏᗢ
가이스트로부터 선전 포고 아닌 선전 포고문을 받아들이고 또 며칠이 흘렀다.
며칠 사이에는 그저 그런 일상만이 흘러갔다. 제논 축제가 코앞이라 아버지 일을 도와야 됐으니.
중간중간 애인들에게 달달하면서도 화끈한 케어도 받고, 아리엘이랑 릴리랑 놀아주기도 하고, 클라크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기도 하고.
아, 바둑 하니까 생각난 건데 최근 클라크 할아버지는 케이트와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인내심 테스트라나 뭐라나.
내가 보기에는 뉴비가 나타났으니 어떻게든 꼬신 걸로밖에 안 보인다. 그래도 바둑은 인내심과 소양을 기르는데에 좋으니 상관없겠지.
이외에 각 국의 주요 인사들 중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누가 올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나 예상 외의 인물이 참석했다.
“아버지. 스타비르크에서 온 분들이 있다는데요?”
“뭐?”
아버지는 서류 작업을 하다가 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셨다. 아버지가 저리 놀라는 건 보기 어려운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류를 건네니 아버지가 인상을 약간 구기며 내용을 살펴보셨다.
이윽고 그는 쯧, 하며 혀를 차며 골치 아프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올 게 왔다고 생각해야지. 네가 정체를 공개했을 때도 왔던 자들이니. 대신 정치적인 활동은 하지 말라고 주의해야겠어.”
“그건 반드시 막아야죠.”
특정 축제에 정치적인 의도가 깔리는 순간 그 축제는 본질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축제는 모두가 아무런 반감 없이 즐기는 문화니까.
물론 제논 일대기와 피와 강철을 이용한 ‘풍자’를 통해 정치적인 메세지를 보내는 예술가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용인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작품에 한해서만 가능한 거지, 대놓고 시위만 하지 않으면 된다.
게다가 스타비르크에서 올 사람들은 축제를 전부 즐기고 난 후 나에게 찾아올 터.
나는 정체 공개 당시 만났던 스타비르크 사람을 떠올렸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스타비르크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별 관심이 없단다. 다만 이런 식으로 시끄럽게 굴 바에야 시원하게 독립해버렸으면 좋겠지. 원래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거리감이 있기도 하고.”
“근데 위치 때문이라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아버지는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전에 말했듯이 스타비르크는 한반도와 비슷한 지형이다.
바다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많으며, 바다 건너 테르스 왕국과의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
또한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해서 알븐하임에 갈 수 있으니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심지어 땅도 한반도보다 넓고.
실제로 역사를 보면 스타비르크는 한반도마냥 침략을 자주 당한 곳이다. 뭐만 하면 위아래로 침략당했다.
종족전쟁 당시 인간 연합에 편입된 건 당시 인간 연합측 지도자가 천재적인 외교술을 발휘한 덕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연결 고리가 약화되면서 조금씩 독립의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비르크 인사들은 따로 만나서 주의를 주는 게 좋겠구나. 다른 건 다 좋지만 작품이 아닌 대외적으로 독립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이미지만 더 나빠진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줄 일은 없나요?”
“없지. 그냥 기사들을 시켜서 내 말을 전달하는 건데. 혹시 다른 건 없느냐?”
“다른 거라면······”
나는 공식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귀인들 중, 유독 신경 쓰이는 인사를 생각했다.
그건 바로 테르스 왕가의 참여. 테르스 왕국의 귀족들은 몰라도 왕가가 참여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된통 당한 탓에 본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가 국서로 격하되고, 마리아 여왕이 집권하기 시작한 테르스 왕국.
다행히 마리아 여왕도 통치를 잘하는 편이라 혼란을 금방 수습하고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참여자는 여왕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라······’
나머지라함은 라오스, 히리야, 마지막으로 라라 이렇게 세 명이다. 첫번째 축제 당시의 인원들.
테르스 왕국의 마지막 양심인 라라는 괜찮다지만 나머지 두 명이 신경 쓰였다.
라오스 왕태자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던 인물이었으며 히리야는 폐인이 되었으니.
어떻게 나올지 한 번 지켜봐야겠지만 전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테르스 왕국이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괜찮아요.”
“테르스 왕국이라······ 알겠다. 그들만 조심하면 되겠군.”
똑똑똑-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와 아버지는 그 노크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어지간한 사안이 아니라면 가급적 노크하지 말라고 말해놓은 상태. 그런데도 노크를 한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호크 남작님.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손님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아델리아의 목소리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도 미리 말을 들었기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 화답했다.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는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덜컥-
“그 분들이 도착하셨다고?”
“응. 지금쯤이면 저택 안으로 들어왔을 거야.”
아델리아와 얘기하면서 저택 1층 중앙 현관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하면서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특이한 건 없었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덜덜 떠는 것만 빼면? 자기가 정말로 너랑 만나는 게 맞냐고 셀 수도 없이 물어보더라.”
“그거 참 부담스럽게. 호위까지 뚫고 사인까지 받았으면서.”
“아. 그리고 또······”
아델리아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추며 나를 힐끔거렸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것만큼 감질맛나는 것도 없다. 나는 어서 말하라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러나 그녀는 피식 웃더니 이내 알쏭달쏭한 말만 남겼다.
“아니다. 이건 직접 보는 게 낫겠네.”
“대체 뭐길래?”
“네가 저지른 일 중 하나랄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겠네. 내가 연신 물어봐도 아델리아는 만나보면 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 뜻은 1층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분 맞지?”
“응. 맞아.”
“1년 전 나한테 사인 받으려고 목숨을 걸었던 분?”
“응.”
악마 숭배자 토벌 이벤트의 당첨자이자 나에게 사인본을 받은 모험가, 로이.
이벤트 동안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친 덕분에 이름은 물론 얼굴까지 모두 팔린 상황이다.
진의 장례식 이벤트 당시에도 참여했던 걸로 알고 있다.
“웬 근육질 히틀러가 있는데?”
그런데 어째서 히틀러가 된 것이지. 그것도 근육이 빵빵한 히틀러가.
콧수염은 그렇다 쳐도 전반적인 외모가 아예 히틀러를 닮았다.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나를 발견한 근육질 히틀러가 화색을 띄었다.
옆에 있던 단발머리 여인도 마찬가지. 그녀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제, 제, 제논 님이다! 하일······!”
“그만해! 미친 놈아! 그걸 진짜 하면 안 되지!”
누군지 몰라도 막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
곧 있으면 발발할 제논 축제. 아직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마이샬 영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들은 불티나게 팔리는 음식들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며, 여관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광객들의 안식을 권했다.
1년에 단 한 번 존재하는 축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축제.
세계의 거장들은 본인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꿈을 지닌 예술가들은 본인의 첫 발자취를 위해, 고이다 못해 썩은 예술가들은 본인의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목적이 섞였으나 본질은 같은 이 축제는 신들의 안배를 받아 매우 안전하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종족들이 몰리는만큼 온갖 사건사고가 터지는 법.
주점에서 마족을 차별한 누군가가 피떡이 되었다던지, 수인에게 뭣도 모르고 덤볐다가 치아에 물렸다던지, 엘프를 귀쟁이라 불렀다던지 등등.
이런 경우는 신의 심판이 곧장 이어지기에 뒷처리는 매우 깔끔했지만 사고 자체를 예방하는 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네르바 제국에서 직접 지원을 할 정도로.
그리고 이 치안대와 비견될 정도로 고생하는 곳이 있었으니.
“왜 통과가 안 된다는 거요! 여기 신분증이 있잖소!”
“신분증이 아니라 몸 안을 수색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그 옷 좀 벗어주시죠.”
“말도 안 되는 소리! 감히 이 옷을 만지겠다? 장인이 한땀한땀 공들여 만든 이 제복을?!”
검문소다. 검문소를 담당하는 기사는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행인에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 말 같지도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이. 기사는 피로에 젖은 표정으로 앞의 사람을 바라봤다.
행인의 복장은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복을 약간 개조한 듯한 복장이었으며 군인을 연상케했으니까.
그러나 피와 강철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저 사람도 나치의 멋진 제복에서 영감을 받아 손수 제작했구나라고.
‘빌어먹을. 할 거면 나치처럼 새까맣게 하던가.’
문제는 본래 제복이 군인 혹은 그에 준하는 귀족들만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당초 법으로 제정돼 있다.
물론 제복이라는 복장 자체가 멋을 뿜어내는데다가 제논 축제에서만큼은 눈 감아주기로 정했다.
특히 나치식 제복, 그러니까 악당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제복은 그냥 넘어갔다.
나치 독일이 완벽한 ‘악당’으로 변모한 지금, 어디까지나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따라할 거였으면 제대로 따라하셔야죠. 당신이 군인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어서 빨리 벗어주세요.”
“제길······”
단, 군인이 아닌 사람이 제복을 입을시 반드시 꼼꼼한 확인 과정을 거칠 것.
한 두명이 제복을 입고 와야지, 너무 많이 입고 오는 바람에 일일이 검수해야 된다.
나중에 사고라도 터지게 된다면 발뺌을 할 수도 있을 뿐더러 애먼 곳에 불똥이 튈 수도 있었으니.
기사는 제복을 입은 남자를 제대로 검수한 후에 통과시켰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제복은 낫잖습니까. 어떤 미친 놈은 악마 분장을 하고 왔던데.”
“에휴. 말도 마라. 세상에 변태 새끼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기사의 푸념처럼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았다. 제논 일대기에 등장하는 거라며 악마 분장까지 한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오죽하면 화들짝 놀란 나머지 비상 알람을 울릴 뻔했다. 다행히 그쪽에서 분장을 해제한 덕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어찌 된 게 날이 가면 갈수록 질이 높아지고 있냐. 이러다가 폭격기가 날아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차라리 기갑부대처럼 전차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게 현실성이 높겠습니다.”
“그건 전쟁을 하러 오는 거잖아. 어떤 미친 놈이 그러고 오겠······”
둥- 둥- 둥-
기사가 말을 하던 와중에 거친 북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소리가 작아서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둥! 둥! 둥!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기사와 그 후임은 북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검문을 하거나 받고 있던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들 모두가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척! 척! 척! 척!
일정한 북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발걸음 소리. 절도 있는 소리가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기사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기 위해 감시탑에 소리쳤다. 감시탑이라면 지금쯤 확인하고 있을 터.
“감시탑! 뭔가 보이나!”
“예!! 보입니다!!”
다행히 보이는 것 같다. 기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뭐가 보이는데!”
“어······”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에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감시탑으로 올라갔다. 차라리 직접 보고 말지.
“망원경 내놔. 대체 뭐길래 대답을······”
망원경으로 소리의 근원을 파악한 기사는 할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저 멀리 나치 독일의 깃발이 아주 생생하게 보였으니까.
덤으로 그 깃발 밑에서 절도 있게 ‘행군’하는 나치 독일의 군인들까지도.
총은 나무로 대충 제작한 듯했으나, 복장만큼은 깔끔했다. 피와 강철에서 나온 이미지 그대로다.
[우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전진뿐이고] [악마는 이를 보고 그저 웃는다.] [하. 하. 하. 하. 하.]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노랫소리도 귀에 서서히 들어왔다.
기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표정으로 망원경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이제는 망원경 없이도 행군 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넓고.
“······저것들도 통과시킬 겁니까?”
“······변태 새끼들이어도 해야겠지. 일이나 하자.”
변태는 너무나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