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78
■ 577화. 업보 (4) □ ᓚᘏᗢ
로이와 앤과의 만남 이후로도 제논 축제 준비는 꾸준히 이어졌다.
작년보다 더 많은 극단 및 악단, 그리고 기타 자잘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탓에 서류를 보는 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나마 황실의 공무원들이 파견을 온 덕분에 한결 수월했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골병이 들고도 남는 양이다.
정작 아버지는 황실을 못 믿는다며 최종 결재만큼은 본인이 하기로 했다는 거지만.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검문소에 드워프들이······!”
“검문소에?”
게다가 가이스트 쪽에서 전차가 아닌 ‘전차들’을 끌고 오는 바람에 소동이 일기도 했다.
전차를 끌고 올 거라는 건 아버지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일 줄은 생각치도 못하셨을 터.
이건 아버지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내가 직접 대동하고 나섰다. 빠른 이동을 위해 텔레포트를 사용한 건 덤이다.
“아니! 우리는 전쟁을 하러 온 게······ 오! 마침 선지자께서 오셨구만!”
검문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람한 전차들이 줄 지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차들과 다르게 왜소한 체구의 드워프들이 검문소 경비대랑 싸우는 것도 볼 수 있었고.
저 얼굴은 익히 아는 얼굴이긴 하지만 뭐라고 했지? 나 보고 선지자라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아니. 됐습니다. 그냥 들어오게 하세요.”
“하지만 저것들을 정말로······”
“운행은 되도록 안 할 겁니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니 그냥 시원하게 통과시켰다. 뒤이어 전차 부대를 끌고 온 드워프, 에인스와 대화했다.
아까 나를 선지자라니 뭐니하는 건 상관없다. 전차 한 대가 아니라 전차들을 몰고 온 것도 상관없다.
다른 건 몰라도 에인스를 포함한 가이스트는 딱 하나만 지켜주면 된다.
“술 마시고 전차를 끌었다가는 곧바로 추방시킬 테니까 그리 아세요. 이건 당부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끄응······ 조금만 마시면 안 되겠습니까?”
“작년에 당신들이 음주운전했다가 사고 낸 거 기억 안 나세요?”
술 마시고 전차 운전하지 않기. 가이스트는 작년에 무려 세계 최초의 교통 사고를 낸 위인(?)들이다.
그때는 덩치가 작은 자동차여서 망정이지, 전차를 끌고 음주 운전을 했다가 어떤 참사가 날지 아무도 모른다.
굳이 바퀴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포를 쏘는 순간 참사를 넘어 재앙이겠지.
그리 된다면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키나와 전쟁을 벌여야 된다.
“이런 위험천만한 물건들을 아무런 조치 없이 들일 수 없으니 서약서부터 씁시다. 이건 관례라 어쩔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서약서까지 쓰고 나서야 무려 5대에 해당하는 전차들을 영지 내에 들여보낼 수 있었다.
이윽고 육중한 소리를 뿜어내며 영지 안으로 들어가는 전차들. 무한궤도가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나는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혁명에서 사용했다고만 들었지,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 내 입장에서는 얄팍하디 얄팍한 지식을 전수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비행기까지 나오는 건 아니겠지?’
드워프들의 기술력을 보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전차처럼 단기간에 나오는 것이다.
비행기는 언젠가 발전될 기술. 증기 기관을 모델로 둔 현재의 마력 기관으로는 힘들 것이다.
‘이건 차차 생각하고.’
소동도 끝났으니 다시 일을 하러 가야지. 가장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전차는 해결했다.
전차를 어디에 둘 지도 미리 생각해놓은 상황이다. 그나마 변수라면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라는 점일까.
이것도 어련히 잘하겠지. 우리 영지는 원래부터 땅이 쓸데없이 넓었던지라 여전히 비어있는 장소가 많다.
꾸준히 언급했듯이 잠재력이 좋은 땅이다. 농사를 짓든 뭘 하든 간에 성공할 수 있는 땅.
나중에 마력 기관차 정거장이 생기든, 공항이 생기든, 뭐가 생기든 간에 다 넣을 수 있다.
물론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 머리는 터지겠지만. 내 후손이 나를 욕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제논 축제 당일이 되었다. 당일이 되는 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없다는 건 즉 마이샬 영지가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뜻.
전차를 확인하러 검문소로 갔을 때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다 함께 축제가 시작될 광장으로 향했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질문하셨다.
“아들아.”
“······네.”
“혹시 우리 마이샬 영지가 언제부터 베를린이 됐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나는 그 질문에 어떠한 반박은커녕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 우리 앞에는 판타지판 베를린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으니.
광장 중앙에 전차가 떡하니 놓여있었으며 그 위에는 드워프들이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건 어느 정도 약과다. 드워프들과 그 주위의 ‘독일 병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전진뿐이고.] [악마는 이를 보고 그저 웃는다.] [하. 하. 하. 하. 하.] [우리는 독일을 위해 싸우고.] [우리는 히틀러를 위해서 싸운다.] [빨갱이들은 결코 안식을 취하지 못 하리라!]콘로드 군단의 분열행진곡을 개사한 ‘친위대는 적진에서 행군한다’.
전생의 매체에 올리기만 하면 곧바로 짤릴 정도로 나치 친위대와 깊은 연관이 있는 노래다.
친위대를 상징하는 행군가라서 피와 강철에서 넣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사만 넣었지, 음은 절대 넣지 않았다.
넣지 않았다라기보다는 못 넣었지. 책에 ost를 삽입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랬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지금 저들이 부르는 군가도 전생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진짜 천벌 받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애써 그 장면을 외면했지만 우리 가족들은 흥미롭게 구경했다. 다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나치 독일와 히틀러는 전생의 스타 워즈와 다스 베이더에 가깝다. 심지어 성향조차 혼돈 악이 아닌 질서 악이다.
나치 독일이 무슨 질서 악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일단 국가가 유지되고 있으니 무법자들은 아니다.
홀로코스트조차 ‘질서’가 유지된 광기였으니 나치 독일이 질서 악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내년에는 소련까지 있겠지? 소련은 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소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문제는 당장은 독일만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펼쳐질 독소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각각 소련과 미국이 득세할 예정이다.
소련은 복수에 굶주린 야인 같은 이미지를, 미국은 악에 대항하는 정의를 보여줄 터.
둘 다 나치 독일 못지 않은 인기를 뽑을 것으로 추축하고 있다. 일본은 뭐냐고?
뭐긴 뭐야. 미국 형님한테 깝쳤다가 개처럼 탈탈 털리는 역할로 나오겠지.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 역사가 그렇다. 당시 일본의 행보는 정말 이해가 불가능한 것밖에 없다.
“피와 강철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아이작이 보여줬던 영화를 본다면 얼마나 놀랄까? 조금 궁금하네.”
“그건 우리끼리 보기로 했잖아. 우리만의 특권이지.”
“이러다가 눈만 높아지면 안 되는데. 제논 일대기 영화도 분명 좋은 작품이란 말이야.”
사랑하는 애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고 피식거릴 수밖에 없었다.
피와 강철 다음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멀고 먼 고대의 시절, 그것도 신들이 활동하던 시기다.
지금처럼 신탁만 내려주는 게 아니라 이따금씩 지상에 내려와 본인의 권능을 마음껏 펼치던 시기.
그걸 위해서는 피와 강철의 완결이 우선이다. 내년에 개최될 제논 축제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 줄 세상이란.] [손 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그래도 날아오를 거야.]제논 축제에는 피와 강철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피와 강철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 뿐, 제논 일대기는 ‘근본’이라 불리고 있는 작품.
지금 무대에서 음유 시인이 부르고 있는 노래도 제논 일대기 외전, 진·릴리 외전에 넣은 노래다.
노래 가사부터가 마족인 진을 위한 헌사에 가까웠기에 음유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춰 부르고 있다.
누구는 빠른 템포로, 누구는 느린 템포로, 누구는 경쾌한 어조로, 누구는 잔잔한 어조로.
저마다 본인의 매력을 과시하며 가사밖에 없던 곡을 재탄생시켰다.
원곡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저런 식으로도 부를 수 있구나라며 감탄했다.
“너희 세상에는 저것보다 더 좋은 노래 많지 않아?”
“노래야 많지. 저것보다 좋은 노래는······ 잘 모르겠네. 좋은 노래가 워낙 많아서.”
“그럼 나중에 알려줘. 태교로 들으면 되니까.”
모처럼 좋은 노래를 들은 마리가 만족한 얼굴로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나는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그녀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줬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자가 원한다면 기꺼이 들어줘야지. 원한다면 직접 업어서 데려갈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제논 님과 만나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논 축제에는 축제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명성이 명성인만큼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예의주시하던 스타비르크 민족도 있었는데, 솔직히 마땅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기회가 된다면 자기 지역에 올 수 있냐고 초청한 것정도. 물론 내가 갈 일은 없다.
스타비르크 쪽도 알고 있었는지 쓴웃음을 지었으나 나를 만났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하고 있던 테르스 왕국은······
“아델 언니!”
“라라? 정말 라라니? 정말 많이 컸구나!”
마지막 양심이라 칭했던 라라 왕녀만 만났다. 1년 정도 흘렀는데 라라는 소녀가 아닌 어엿한 처녀로 성장했다.
지금 아델리아에게 앵기고 있다만 아이 같았던 면모도 상당히 성숙해졌더라.
또한 그녀에게 듣자하니 라오스는 다른 문제 때문에 바쁜 상황이고, 히리야는 여관에서 안 나왔다고.
결국 자기 혼자서 축제를 즐기고 있던 차에 우리를 발견했단다.
“원하면 아델 누나랑 같이 놀아도 돼요.”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예, 물론이죠.”
두 신들이 지켜보는 축제라지만 왕녀 홀로 있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친분이 깊은 아델리아와 놀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이처럼 준비한 게 많았던 축제는 준비한만큼 흘러가고, 아무런 사건사고도 없이 진행되었다.
나도 중간중간 귀찮은 만남이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원없이 즐겼다.
“””하일! 제논!”””
“··· ···”
업보를 맞이한 것만 빼면은. 독일 제복 혹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저러더라.
그렇다 해서 내가 직접 나치식 인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고 나서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대신 홀로코스트로 엿을 먹이기로 다짐했다. 나중에 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참 기대가 된다.
‘콧수염 다 뜯어버리게 해주마.’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축제가 흘러가고 어둑어둑한 저녁이 다가왔을 때.
“아빠. 아빠. 이거 봐봐.”
“응? 뭐니?”
“하일! 제논!”
“··· ···”
나는 아리엘로부터 최악의 업보를 맞이하고 말았다.
‘호, 홀로코스트를 써야 해······’
빨리 날이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