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85
■ 584화. 절멸 (1) □ ᓚᘏᗢ
한바탕 석유 파동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플라스틱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됐으나 무난히 흘러갔다.
세실리의 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인 데스칼도 플라스틱의 분해 방법을 찾겠다고 말한 상황.
만약 공장이 먼저 발명되고 플라스틱이 등장했다면 환경오염이 겉잡을 수 없이 심해졌겠지만, 순서가 뒤바뀐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마법은 물론, 기상천외한 문물들이 넘쳐나니 플라스틱 분해는 머지 않아 찾을 수 있을 터.
처음에는 물질을 분해하는 데 최적화인 슬라임을 떠올렸으나 금방 폐기해버렸다.
몬스터 도감에 나온 바로, 슬라임은 산성을 지니고 있지만 플라스틱은 산성에 매우 강하다. 분해가 거의 불가능하겠지.
슬라임조차 분해가 불가능한 물질이라니 이 얼마나 사기적인 물질이란 말인가. 지구에 살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야말로 기적의 물질이다.
어쨌거나 신들도 약간의 경각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고, 너무 빨리 발명된 물질이라 시간은 넉넉하다.
“아빠. 아빠. 뭐해?”
“아빠 지금 일하고 있어.”
“글 쓰기?”
“아니. 공부.”
나는 아니지만. 지금은 집필이 아니라 공부를 할 때다.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이 참전하고, 더 나아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으나 지금은 신문을 볼 여력도 없었다.
중요한 건 공부다. 그것도 평범한 공부가 아니라 앞으로 교수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되는 공부.
명예 교수나 다름없는 직위라지만 가끔 가다가 강연 혹은 수업을 해야 되기에 개인적인 공부는 필수다.
“쉬엄쉬엄해도 돼. 많이 바쁜 것도 아니잖아?”
반면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가장 보호해야 할 여인,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
임신한 여인은 고금을 막론하고 보호 대상 0순위. 지금도 그녀는 침대에서 생활 중이다.
제논 축제까지 끝나고 아카데미 개학이 슬슬 다가올 시점, 그녀가 내 아이를 밴지 한 달가량이 흘렀다.
안정기에 돌입하기 전까지 임산부는 가급적이면 자극을 받아선 안 된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자면 자연 유산을 할 확률이 높다고.
다만 내 신성을 머금은 아이다보니 유산을 할 확률은 상당히 낮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보호해야 된다.
“안 돼. 미리미리 준비해야 아카데미에 가서도 편안해지지. 명예직이라 해서 아예 활동을 안하면 양심이 찔리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엄마~”
지루함을 참지 못했을까. 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리엘이 마리에게 오종종 다가갔다.
마리도 기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살포시 안아들었다.
“아리엘. 동생이 생겼는데 기분이 어떠니?”
“좋아!”
“좋지? 아빠가 더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니?”
“아리엘은 동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저건 이미 예정된 미래나 다름없으니까.
마리의 임신은 분명 예기치 못한 사고다. 신성이 약을 뚫어버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면 그 후의 내 미래는 보나마나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씨를 뿌리기에 바쁘겠지.
‘세기의 난봉꾼으로 역사에 기재됐······ 겠지.’
이미 되고도 남았지. 머나먼 미래에 엘프 혹은 마족에게 빨간머리가 있다?
내 후손일 가능성이 거의 99.9%다. 안 그래도 세상에 몇 없는 빨간머리인데 답이 나오지.
그러니 후손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악마 숭배자도 그런 이유에서 적대하는 거고.
‘난봉꾼으로 기록될지언정 다른 불명예는 없어야지.’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마찬가지다. 교수로 활동하게 된다면 내 밑천이 모두 드러날 터.
그 밑천이 드러나 ‘제논은 속 빈 강정이었다’라는 불명예만 얻지 않으면 된다.
나는 전생의 힘을 빌려 글을 쓸 수 있던 것이지,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지언정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시간 끌기나 다름없지만 그 시간 끌기만으로도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아델 언니. 나 이제 슬슬 졸리니까 아리엘 좀 맡아줄 수 있어?”
“알았어. 아리엘? 마리 엄마는 피곤하니까 아델 엄마랑 놀자.”
“뭐하고 놀 거야?”
“음······ 일단 밖에 나가서 생각할까?”
때마침 마리가 임신으로 인한 졸음이 다가왔다. 어머니의 경험담에 따르자면 임신 초기에 나른함과 졸음이 시시때때로 덮친다고.
이윽고 아델리아가 아리엘을 데리고 밖에 나가고, 마리가 잠에 들면서 집중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 마련되었다.
세실리를 비롯한 다른 여인들은 각자의 여가를 즐기고 있다. 지금쯤이면 신나게 바둑을 두고 있겠지.
나는 자리에서 잠깐 일어서서 마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다가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마리의 눈처럼 새하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잘 자. 조용히 있을게.”
“가기 전에 뽀뽀해줘.”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지. 나는 빙긋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다 가볍게 키스해줬다.
마리는 내 애정 표시에 배시시 웃더니 이내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머지않아 고른 숨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신성을 머금은 아이라서 그런지, 최근에 마리가 낮잠을 자는 횟수가 늘어났다. 식사량도 마찬가지.
벌써부터 엄마를 고생시키는 자식이다. 태어난다면 어떤 사고를 칠지 정말 기대가 된다.
‘그래도 돈은 많으니까.’
돈보다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준비해야겠지.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꾸준히 모으는 중이다.
인맥 하나는 미친 듯이 넓으니 곧 있으면 다양한 재료가 도착하겠지. 아르웬은 아예 세계수와 관련된 걸 준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질세라 세실리도 준비하겠다고는 했지만······ 헬리움은 괴식 문화가 유명해서 솔직히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미안한 말이긴 해도 팩트라서 어쩔 수 없다. 세실리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어쨌거나 마리의 영양 보충 건은 착실히 준비되는 중이고, 나는 내 공부를 하면 된다.
‘만약 수업을 한다면 제논 일대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수업을 할지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한다면 주제는 정해야 된다. 그리고 내가 정한 주제는 관용어다.
관용어는 본래의 단어들이 그 의미와 다르게 쓰이는 언어다.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손을 빌리다’라는 관용어가 있다. 이건 말 그대로 손을 빌리는 게 아니라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또한 관용어를 주제로 삼았다지만 폭넓게 보자면 제논 일대기 및 피와 강철에 사용된 단어들 자체에 집중돼 있다.
‘내가 만든 단어들이 너무 많아.’
바둑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활, 초읽기, 정석, 묘수 등등. 이런 단어들뿐만 아니라 전생에서 자주 쓰던 단어를 따왔다.
이런 게 가능했던 이유가 문법 자체가 유사한 덕분이다. 한국어나 일본어처럼 문법의 어순이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단어의 수와 종류다. 제논 일대기 출간 전까지 책은 어려운 단어들만 빼곡히 적혀있었다.
일일이 해석해야 될 뿐더러 일상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 귀족들조차 본인의 지식을 뽐내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끝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뭐병 같은 느낌이었지만.’
평민들과 귀족 사이에 사용하는 단어는 크게 차이가 없다. ‘저길 봐’라는 쉬운 단어를 두고 ‘목도하라’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말투만 약간씩 차이가 있다. 아르웬이 다소 고풍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수많은 관용어를 만들었다.
이건 전생의 힘을, 그것도 한글의 위대함 아닌 위대함을 빌렸기에 난이도는 상당히 쉬웠다.
‘애당초 씨발이라는 단어마저 다채롭게 사용하는 나라인데.’
영어에서 가장 유명한 욕은 단연코 ‘Fuck’이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씨발에 가까운 욕.
하지만 한국에는 씨발뿐만 아니라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하고 있다. 언급해봤자 너무 상스러우니 넘어가도록 하자.
물론 이 세상도 욕에 한해서는 대한민국에 뒤지지 않는다. 오크 불알 같은 새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축제에서 몇 번 들었던 욕이며 추한 외모를 욕할 때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라고 들었다.
‘진짜 어딜 가든 간에 욕은 창조적이구나.’
이 창조성을 가지고 다른 관용어를 발달시켰으면 문학계의 질도 올라갔을 텐데 약간 아쉽다.
아무튼 내가 사용하는 관용어들은 새로이 창조한 거나 마찬가지여서 주석을 꾸준히 달아놓는 건 잊지 않았다.
그나마 제논 일대기는 배경이 배경이다보니 이해하기 쉬웠으나 피와 강철은······ 말을 말자.
나라고 해서 무작정 피와 강철을 작성한 게 아니다. 어떻게든 익숙한 단어에서 본따려고 노력했다.
민주주의(Democracy)도 본래 그리스어에서 따왔다. 최대한 비슷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백과사전 및 고대어 관련 서적을 뒤적거렸다.
‘관용어에 대해 설명해도 강의 몇 편은 뚝딱이겠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창조한 관용어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이 ‘귀가 얇다’, ‘발이 넓다’, ‘원점으로 돌아오다’. ‘속이 시원하다’, ‘사랑에 눈이 멀다’ 등이 있다.
실생활에서도 자주 쓰일 법한 관용어여서 전세계에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다. 제논 일대기의 파급력을 등에 업은 덕분이다.
체리의 작품에서도 내가 쓰던 관용어가 상당수 등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모로 문학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하다.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그 언어에 대한 진정한 헌사지.’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제논 일대기 집필 당시 문학계로부터 꽤 많은 공격이 날아왔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꽉 잡은 작품이었기에 견제를 받은 것도 있지만, 명분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신께서 하사하신 언어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멋대로 창조했다고.
문학계에 몸을 담으신 분들 아니랄까봐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참으로 주옥 같더라. 그때는 무시했다만 어이가 없는 건 똑같다.
‘강의에서 그딴 소리한다면 한 소리해야지.’
언어는 마음껏 가지고 놀아야 그 진가가 발휘된다. 오히려 통제를 하는 것이야말로 언어의 발전을 막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과거 때문인지 현재도 수많은 언어에 잔재가 남아있다.
나는 조용해진 사위 속에서 언어에 대해 공부하다가 눈을 다른 쪽으로 흘겼다.
책상 위에는 내 공부거리뿐만 아니라 피와 강철의 원고도 한가득 쌓여있다.
‘그나저나 이 단어로 되려나? 좀 더 획기적인 단어는 없을까?’
현재 피와 강철은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고 미국이 참전까지 한 상태.
또한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에 발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42년이 시작된다는 뜻.
나치 독일과 소련은 아직까지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모스크바는 함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나마 주코프의 활약으로 나치 독일을 모스크바로부터 몰아낼 수 있었지만, 제일 신경 써야할 건 모스크바 공방전이 아니다.
‘반제 회의.’
1942년 1월 말 베를린 근교 반제의 별장에서 시행될 회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주체 하에 나치 친위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다.
회의의 주제는 바로 유대인들의 처우와 관련된 것. 여기서 유대인들의 최종해결책이 발의되며,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그 최종해결책이란 바로······
‘절멸이라는 단어를 좀 더 임팩트 있게 하고 싶은데.’
홀로코스트의 시작.
‘학살이랑 멸종을 적절히 섞으면 되지 않을까?’
진정한 광기의 서막이 드러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