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86
■ 585화. 절멸 (2) □ ᓚᘏᗢ
아이작은 전생의 기억을 빌려 수많은 관용구 및 단어를 창조했다.
덕분에 이 세상의 언어가 더 풍부해진 건 물론이요, 표현력 또한 크게 상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창조된 단어 및 관용구가 어려웠느냐. 그건 또 아니다.
아이작도 이런 일을 미리 예측했기에 친히 주석을 달아놓았다. 주석마저 없었다면 자기가 그토록 비꼬던 수능 문제집이 됐겠지.
이렇듯 아이작은 문학계뿐만 아니라 언어학도 크게 발전시켰다. 이건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잘 파고든다면 언어학자들의 머리를 부수다 못해 창문 밖으로 뛰쳐보낼만큼 다양했다. 다시 말하지만 복잡한 게 아니라 다양하다.
두 단어를 결합하는 방식이라던가, 동사를 형용사화하는 방식이라던가, 명사를 동사화하는 방식 등등.
현대 언어의 초석을 아주 말끔하게 다져놓았다. 심지어 언어를 난잡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구분돼 있다.
제논 일대기 발매 전의 책들은 실생활에서 안 쓰이는 것들로 넘쳐났지만, 제논 일대기는 완벽하게 반대다.
언어학자들에게는 연구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인 셈이다. 특히 피와 강철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연구감이다.
아이작은 현재의 언어학자들은 물론, 미래의 언어학자들도 쌍욕을 퍼부움과 동시에 밥줄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느냐.
“오늘도 원고가 왔습니다.”
“그 인간은 밥만 먹고 글만 쓰고 있냐?”
“아마 그렇겠죠. 아니면 미리 써놓는다던가.”
“에휴.”
언어학자들이 머스크의 출판사에서 편집자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출판사는 본래부터 편집부가 따로 있었지만, 제논 일대기 중반부터 더욱 증축시켰다.
당연하게도 원고를 받는 즉시 검토 후 발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오타 및 비문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아이작은 현재의 언어를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수준을 넘어 재창조하는 경지에 이른 작가.
본인 딴에는 전생에 있던 관용구 및 단어를 갖고 온 거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조어를 넘어선 무언가다.
따라서 평범한 편집자가 아니라 언어에 능통한 실력자가 필요했다. 그에 적합한 인력이 바로 언어학자였고.
머스크는 여태까지 구축한 인맥을 통해 언어학자들을 편집자로 모집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한다고 했을까?”
물론 처음부터 언어학자들이 편집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교수가 되지 뭐하러 편집자가 되겠나?
아이작의 명성은 분명 신 바로 아래에 위치할만큼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편집자가 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은 많이 주잖아요. 겸사겸사 연구거리도 넘쳐나고.”
“부정할 수가 없군.”
허나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연봉이 지급되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머스크는 인재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언어학자 입장에서도 돈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지급되고, 화제의 연구감으로 떠오르는 아이작의 언어를 연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그 자체. 참고로 일석이조라는 말조차 본래 없던 관용구였지만 아이작이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편집부는 열심히 일 아니, 노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원고들 덕분이다.
“오늘도 야근은 확정이군.”
“야근을 안 하던 날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날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사장 말로는 한 달동안은 이럴 거라고 하더군.”
“하아······”
편집부장이자 언어학자, 뮐러는 부하의 한숨에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본인도 한숨을 쉬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원래 이렇게까지 일이 바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갑자기 원고가 사흘에 한 권 꼴로 발송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죽어나가는 건 편집부다. 제논 일대기는 그나마 괜찮은데 피와 강철은 머리가 터질 듯했다.
“부장님.”
“뭐야, 또.”
“나쁜 소식 하나와 더 나쁜 소식 하나가 있습니다. 뭐부터 알려드릴까요?”
안 그래도 좋지 못한 상황에 일을 하고 있던 부하가 안 좋은 소식들을 들고 왔다.
커피를 마시며 피로를 쫒고 있던 뮐러는 그 소식을 듣고 해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미 반쯤 포기한 상황이다.
“나쁜 소식부터.”
“대충 훑어보니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해전을 주로 하네요.”
“해전?”
“예.”
가관이다. 뮐러의 머릿속에는 가관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는 악마들이 창조한 환경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와 강철 속의 세계관은 그저 ‘무대’에 지나지 않았다.
완벽히 지배하지는 못해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다. 크라켄을 비롯한 해양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온갖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해전이라 했으니 괴상망측한 관용어도 나올 터.
“그나마 다행이군.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공중에서 싸웠지. 바다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어. 더 나쁜 소식은?”
“끝부분에 나치 독일이 반제 회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 괜찮아도 특정 단어가 조금 이상해서요. 아니지. 이상하다기보다는······”
뭔가 찜찜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하. 이 부하 직원도 언어학자다.
뮐러는 명성 및 명예, 그리고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몇 수 위였기에 편집부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잠자코 기다렸다.
깨어있는 사고방식으로 자기가 옳다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경청하는 스타일이었으니.
여기에는 아이작이 영국 같은 놈인 것도 한몫하고 있다. 집단지성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 넘쳐났다.
“빨리 말해. 우리 시간 없어.”
“말해도 됩니까?”
“이 작자가 악마 같은 놈인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이때까지 폴란드에서만 수십 만명이 학살당했어.”
피와 강철의 초반부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 부흥기다. 따라서 더러운 면모가 존재할지언정 긍정적인 부분을 상당수 다루었다.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연설과 업적으로 일으켜 세운다던가. 강력한 지지자들을 모집하여 내부를 탄탄하게 결집시킨다던가.
더 나아가 영원한 숙적이자 대전쟁에서 독일을 패배시킨 프랑스를 함락시킨다던가 등등.
나치 독일을 주인공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점들이 많아 분위기 자체도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독소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틈만 나면 학살에 학살을 일으키고, 유대인들은 핍박하고 있지. 심지어 우크라이나조차 처음에는 나치 독일을 환영했다가 학살로 보답 받았잖아?”
나치 독일이 본격적으로 악역으로 바뀌던 시점. 꽁꽁 숨겨놓았던 사악한 본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히틀러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악인으로 바뀌었고, 나치 독일은 최종보스로 재탄생했다.
문제는 알고도 못 막는 게 현실이라는 것. 그나마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참전했으나 전황은 여전히 불리하다.
심지어 모스크바는 함락 직전까지 내몰려 있다. 소련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모스크바가 점령당하면 더 심한 게 나올 텐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은데······”
“그럼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원고를 갖고 와! 말만 하지 말고!”
뮐러의 윽박에 부하가 서둘러 원고를 들고 왔다. 그런데 원고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함께 돌아왔다.
“뭐야? 너희들은 왜 왔어?”
“사실 저희들끼리 미리 검토를 했습니다.”
“그럼 그냥 내면 되지.”
“일단 한 번 보는 게 나을 겁니다.”
부하가 정중하게 원고를 내밀자 뮐러는 의아하면서도 잠자코 받았다. 야근의 원인이자 보기만 해도 토가 쏠리는 원고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다른 의미로 토가 쏠리는 거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평생 이어질 밥줄인데 싫어할리가.
단지 직장인으로서 싫어하는 거지, 한 명의 언어학자로서는 한 권 한 권이 연구거리이기에 아이처럼 좋아할만했다.
“반제 회의라고? 그것부터 보면 되나?”
“예. 반제 회의 전까지는 일본과 영국의 해전입니다. 참고로 영국이 패배했습니다.”
“너 일단 엎드려.”
스포일러하는 새끼는 모두 뒤져야 된다. 뮐러의 담담하면서도 분노 어린 명령에 부하 직원이 곧바로 엎드렸다.
다 좋은데 어딜 가나 입이 문제인 놈들이 있다. 뮐러는 혀를 쯧쯧 차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부하가 말했던 대로 반제 회의는 결말 부분에 있었다.
“어디 보자······”
뮐러는 안경을 끼면서 원고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일단 초반부는 딱히 건드릴 부분이 없어보였다.
단어와 문장 자체도 담백했고, 새로운 관용구도 등장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회의였다.
1933년 뉘른베르크 법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나치 독일로부터 끔찍한 차별을 받았다.
그 차별을 버티지 못해 절반 이상이 타국으로 이주했으며 덕분에 독일 국내에는 유대인의 흔적이 옅어졌다.
‘빌어먹을 발음 같으니라고.’
여기서 언어학자들이 피와 강철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가 나온다. 바로 더럽게 어려운 발음 및 단어.
아이작 딴에는 최대한 비슷한 발음을 내기 위해 열심히 구상했지만, 이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는 발음마저 어려운 단어다.
만약 특정 단어만 어렵다면 괜찮지만, 독일과 관련된 것들은 죄다 발음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 덕분에 나치 독일만의 매력이 더욱 풍부해졌으며 인기가 늘어난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절감시켜주는 이유 중 하나였으니. 언어학자들에게는 개새끼였지만.
‘괴링? 이 인간 짤린 거 아니었나.’
반제 회의의 주제는 아까 말했다시피 유대인이었다. 나치 독일은 유럽 전역을 석권했고, 자연스레 유대인 또한 증가했다.
특히 동유럽에서는 유대인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를 확인한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이 ‘최종해결책’을 강구했다.
그 대상은 바로 게슈타포(비밀경찰)의 수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그리고 나치 친위대.
여기까지만 본다면 유대인을 노동력으로 쓸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음?”
그런데 이상한 단어 하나가 뮐러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안경을 고치며 그 단어를 빤히 쳐다봤다.
“절멸? 이게 무슨 뜻이지?”
뮐러에게는 새로운 단어였다. 뭔가 임팩트가 강한 것 같으면서도 제일 중요한 단어.
절멸이 위치한 곳 대신 다른 단어를 넣는다면 분위기가 급변할 정도로 중요했다.
구원이라면 구원이 주제고, 학살이라면 학살이 주제로 바뀔만큼.
뮐러에게는 생소한 단어였기에 궁금해 하면서도 뒤로 넘겼다. 아이작이라면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놓았을 터.
그러나 뒤로 가도 절멸에 대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하이드리히의 주장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내용만 이어졌을 뿐.
이윽고 문서에 ‘최종해결안 승인’이라는 서명이 작성되면서 원고는 끝이 났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절멸: 아주 없어지거나 없애는 것]“······?”
맨 끝 페이지에 짤막히 적혀있는 주석을 지나쳤다면 말이다.
뮐러는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가 다시금 원고의 앞페이지를 넘겼다. 절멸의 뜻을 알게 되니 그 내용이 사뭇 경악스러웠다.
유대인을 핍박하는 걸 넘어서서 전부 절멸시킨다. 다시 말해 유대인을 전부 사살하겠다는 의미였다.
이것만 듣는다면 너무 작위적이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나치 독일은 이미 ‘T4 작전’을 실행한 전적이 있다.
전혀 작위지 않고 오히려 나치 독일의 ‘악’을 더욱 높이는 프로젝트. 사람이 사람을 도축하는 행정 명령.
‘이 인간이 주석을 잘못 달아놨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주석을 잘못 단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 뜻이 정말로······?”
“예. 그리고 저희가 연구한 결과, 멸종을 살짝 변형시킨 단어인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일 뿐이죠.”
부하 직원의 확인 사살까지 이어졌다. 뮐러는 절멸이라는 단어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얼굴 쪽으로 옮겼다.
그의 손이 도착한 곳은 인중 즉, 수염이었다. 히틀러 특유의 칫솔 수염이 아닌, 스탈린처럼 풍성한 카이저 수염.
다행이다. 뮐러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다가 부하 직원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멋진 악당’을 추구한다면서 유행에 따라 칫솔 수염을 한 부하들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그는 원고를 책상에 올리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혹시 면도기 필요한 사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