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87
■ 586화. 절멸 (3) □ ᓚᘏᗢ
제논 일대기가 각 종족 별로 크고 작은 영향을 줬다면, 피와 강철은 문명 그 자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다 보니 제논 일대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제논 일대기는 종족마다 ‘뽕맛’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인기가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종족별로 뽕을 주입시키지는 못해도 미래를 보여주는 책이라며 널리 퍼졌다.
실제로 마력 기관을 이용한 전차 및 공장이 등장했지 않았는가. 더 나아가 석유의 가치가 급등했다.
무엇보다 피와 강철은 판타지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판타지.
게다가 완전한 판타지도 아닌, 실현 가능한 판타지라는 점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미래를 보고 싶다면 피와 강철을 읽어라.]유명한 평론가가 남긴 말처럼 피와 강철은 말 그대로 미래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 미래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상 및 과학 문명의 발전. 더 나아가 그로 인한 끔찍한 전쟁까지.
이 세상은 지구처럼 전쟁이 자주 발생하지 않아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피와 강철은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알븐하임이 있다. 종족 전쟁에서 인간 연합에서 패배하여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남긴 나라.
만약 여기에 히틀러 같은 인물이 떨어졌다면 알븐하임은 곧 나치 독일처럼 됐을 거라고 평가되고 있다.
비단 알븐하임뿐만 아니라 헬리움도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헬리움이 더 위험했을 거라고 말한다.
다른 종족에 비해 꿀릴 것이 거의 없는데 차별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엘프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종족.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있었기에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지만, 파시즘이 번지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피와 강철은 미래를 보여주는 책이면서도 경고하는 것이다. 훗날 히틀러 같은 사람이 등장해도 광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이런 의미에서 헬리움은 피와 강철의 우수한 고객이다. 제논 일대기 때처럼 필수 독서 및 교과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제논 일대기에 비해 상당히 매운맛이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게다가 주요인물들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이로 인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느냐. 2차 세계 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는 약간이나마 그랬었다.
[전쟁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독소전쟁은 나라가 벼랑 끝으로 몰렸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독소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독소전쟁 초반부, 소련은 대숙청과 스탈린의 병신짓으로 속절없이 쭉쭉 밀렸다.
그로 인해 ‘아귀도’가 펼쳐질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발발하고, 더 나아가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밀리기 직전까지 왔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죄다 전선으로 향해 목숨을 걸고, 여자를 포함한 나머지는 군수공장에서 물자를 생산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이가 전쟁에서만 집중하는 전시 체제. 생생하다 못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다른 의미로 몰입이 되었다.
희망적인 내용도 거의 없었다. 전선이 뚫려 병사들이 사라진다면 민간인에게 남은 건 끔찍한 전쟁 범죄였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훗날 나치 독일이 소련이나 다른 국가에게 비 오는 날 먼지나게 털리기를.
나치 독일은 분명 멋진 악당이지만, 그 매력조차 악행을 덮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매력이 더욱 상승하는 효과를 낳았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나치 독일의 패망을 바라고 있었지만, 모두가 바라는 건 아니었다.
“빨리 모스크바가 함락됐으면 좋겠는데.”
여기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족 소년이 있다. 마족 특유의 흑발적안에다가 평범한 뿔을 갖고 있는 소년.
현재 소년은 자기 방 침대에 누워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그의 허벅지 위에는 이번에 발간된 피와 강철 신간이 올려져 있었다.
이것만 본다면 평범하디 평범한 피와 강철의 독자처럼 보였지만, 소년의 방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무려 나치 독일의 국기,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진 천을 떡하니 걸어놓았으니까.
소년이 어디에 흠뻑 빠져있는지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똑똑-
“아들? 지금 저녁 먹을거니?”
책을 막 펼치려고 할 때 바깥에서 여성이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노크는 덤이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질문에 소년은 대충 대답했다.
“이것만 보고 먹을게요!”
“그래. 꼭 먹어야 한다?”
“네~”
여성은 소년의 대답을 듣고 문에서부터 멀어졌다. 정확히는 멀어지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책을 보는 건 좋단다. 하지만······”
“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전과 달리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소년. 소년의 대답에 바깥의 여성이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대신 밥은 꼭 먹으렴.”
그 말만 남긴 채 조용히 사라지는 소년의 엄마. 소년은 그러거나 말거나 기대된다는 얼굴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스토리가 펼쳐지자 소년의 얼굴은 곧 실망으로 변했다.
진주만 공습의 영향 때문인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영국이 주된 국가로 등장했으니까.
‘그래도 재미있으니 됐지. 이런 세세한 부분도 중요할 거야.’
소년은 실망도 잠시, 즐거운 마음으로 피와 강철을 읽기 시작했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분명 세계를 정복할 거야.’
현재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부정할 여지가 없는 ‘악당’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린 상황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둘을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들마저도 악당으로서의 매력이 출중했기에 응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행보와 사상에 깊이 감명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뜻. 하지만 이것도 대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헬리움에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와야 했는데.’
소년이 이에 부합하고 있다. 소년도 마족이었기에 아이작을 구원자로 추종하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히틀러를 원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사랑하는 독일을 패배주의의 수렁에서 구했던 것처럼 마족 영웅이 헬리움을 구하기를 원했다.
‘우리 마족은 엘프처럼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는데다가 무력도 뛰어나. 그런데 어째서 절제를 추구하는지 모르겠어.’
세실리는 나치 독일로부터 강력한 압박을 받는 유대인을 마족에 대입시켰지만, 소년은 반대로 독일을 헬리움을 대입시켰다.
엘프와 쌍벽을 이루는 태생적 능력. 엘프와 다르게 결코 오만하지 않으며 스스로 구축한 문화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데 헬리움은 지금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립되었다. 악마의 후손이라는 알량한 이유 하나로.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소년의 사고 방식으로는 헬리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모라님께서도 우리를 보호해주시잖아. 우리 마족이 인간임을 보여주겠다는 명분으로 전쟁해도 상관없었을 테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피와 강철이라는 작품이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사상적 부분은 소년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아이작이 우려한 부분 중 하나가 소년에게 나타난 것이다.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사상의 동화.
하물며 소년은 마족들이 가장 주의하는 사춘기 즉, ‘소악마’ 시기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미성숙하여 온갖 다양한 사고를 칠 나이.
옛날 같았으면 악마화의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작 덕분에 어느 정도 덜어진 문제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건 변하지 않았기에 마족 부모들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엄마랑 아빠는 그런 생각을 품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난 아냐.’
소년은 헬리움에도 히틀러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의 국기를 방에 걸어놓은 것이 아닌가.
유대인을 차별하다 못해 혐오하는 분위기? 아이작이 없었더라면 마족은 전부 차별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 나치 독일이 과격한 것뿐이지, 전쟁은 원래 이런 법이다.
파시즘에 가장 휘둘리기 쉬웠을 거라는 아이작의 예상처럼, 소년은 진심으로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하고 있었다.
물론 미성숙한 정신 및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사고 방식이 한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면모는 보지 않고 그마저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는, 불안정한 정서에 어울리는 판단력.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많아.’
비단 소년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현재 헬리움에는 파시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존재했다.
세실리가 기껏 노력해서 강경파 마족을 몰아냈거늘, 이제는 파시즘에 대항할 차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 강경파 마족처럼 선을 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단순히 모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히틀러가 처음 가입한 정당도 이와 비슷했지. 차차 크기를 키울 수 있을 거야.’
허나 그 모임이 성장한다면 훗날 헬리움의 골칫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마키나에 드워프식 공산주의가 들어섰지 않았는가. 심지어 애니머즈에도 민주주의가 도입될 기미가 보였다.
피와 강철 속 파시즘에서 과격한 면모를 약간씩 덜어내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파시즘.
강경파 마족이 그랬듯이 주위에 적을 만드는 사상이 아닌, 마족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틀러처럼 강한 지도자가 필요해. 세실리 공주님이 그런 지도자가 되어주지 않을까?’
실제로 세실리는 헬리움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우선 아이작의 연인이라는 것부터가 크게 먹고 들어갔다.
원래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제논 축제에서 대놓고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다는 소식이 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대서특필이 될만한 소식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작이었기에 모두가 납득하고 넘어갔다.
약혼녀가 있다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 그녀조차 아이작의 밤일을 당해내지 못해 다른 여인을 끌여들였다고.
물론 여기까지는 소년이 이해하지 못하는 범위다. 단지 세실리 공주가 강한 지도자가 될 거라는 것만 예상하고 있을 뿐.
‘진면모는 아이작 님께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드러나겠지.’
아이작은 인간이다. 마족에 비해서 수명이 턱없이 짧은 인간.
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지만 자연이 정한 법칙은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늦어도 100년 뒤에는 아이작이 이 세상에 없어진다는 것. 그때부터 세상에 걸린 제한이 모두 풀리겠지.
‘그때를 대비하자. 내가 헬리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사춘기답다면 사춘기다운 미래를 그리는 소년. 소년은 헬리움이 나치 독일처럼 부국강병을 이룰 거라 철썩 같이 믿으며 책을 읽었다.
등 뒤의 벽에 걸린 하켄크로이츠 국기가 마치 소년의 심성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응?”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소년은 결말부 부분에서 진행되는 ‘반제 회의’를 보며 의문을 지녔다.
“유대인에 대한 최종해결책? 이게 뭐지?”
나치 친위대들이 모습을 드러내 좋아한 것도 잠시, 회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유대인을 향한 차별 및 핍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소년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유대인이 뭘 잘못했으니까 그런 거겠지라며 넘어가고 있을 뿐.
이번에 등장한 반제 회의도 유대인과 깊은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쟁 때문에 유대인이 더 많아졌다고 했지? 추방 정도로 끝내려나?’
비록 소년이 소악마여서 미성숙한 부분들이 많다지만, 적어도 ‘도덕심’만큼은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을 이유 없이 때리면 안 된다.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서는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 등등.
전쟁에서 등장한 범죄들은 전쟁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도 이것만큼은 나치 독일이 너무 과격하다고 인정했다.
결코 범죄가 정당하고 도덕적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건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였으니.
물론 히틀러도 도덕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 덕택에 나치 독일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가끔씩 혼란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소년은 ‘도덕심’이 최후의 방어기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
절멸의 뜻을 알게 된 소년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후로 자기가 잘못 본 것인지 몇 번이나 재확인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반제 회의의 주제는 딱 하나로 귀결됐다.
유대인의 절멸 즉, 유대인이라는 민족 자체를 없앤다는 것.
동물에게나 쓰일 법한 멸종이라는 말을, 사람에게조차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걸 넘어서서 프로젝트를 승인시켰다. 유대인 전체의 몰살을 위한 프로젝트를.
‘그러고 보니 T4 작전도······’
소년의 머릿속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잘못됐다’라는 판단은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조한 사상인데 그 끝을 본 듯했다.
마족을 먼저 차별한 건 다른 종족이다. 그러니 마족도 다른 종족을 핍박하는 건 정당한 대가다.
개인으로 본다면 종족차별주의자스러운 사상이지만, 이것이 국가 단위로 커진다면 나치 독일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이건 아니야. 이건 그냥······’
사람의 탈을 쓴 악마다. 악마만이 최종해결책이랍시고 절멸이라는 선택지를 취하겠지.
절대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 아니다. 신이면 몰라도 같은 사람이 다른 민족을 절멸시킨다니.
도덕심 이전에 ‘인간성’이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에게조차 거대한 충격을 줄만큼.
“··· ···”
소년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 후유증이 심한 건지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 봤다.
그러다 뒤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나치 독일 국기가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대해 보였던 국기가 ‘악마’의 상징으로 보인다.
소년은 헬리움이 강한 국가가 되기를 원했지, 결코 악마가 되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쫘악! 쫙!
바로 갈가리 찢어버렸다. 뒤이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도록 마법을 이용해 불로 태워버렸다.
“얘! 이게 무슨 기운······ 너 뭐하는 거니?”
“아! 엄마!”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집에서는 마법 사용 금지랬지! 그러다가 집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려고!”
마법의 기운을 느낀 소년의 엄마가 들이닥치며 등짝을 때리는 건 덤.
그리하여 하마터면 파시즘에 빠질 뻔한 소년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며.
[헬리움에서 파시즘을 동조하던 단체가 자발적으로 해산하다.] [반제 회의에서 드러난 내용은 ‘악마’의 발상 그 자체.] [과연 이 내용을 실천할 것인가? 정말 실천한다면 악마 숭배자도 한 수 접고 들어갈 것이다.] [악마 숭배자는 제물을 위해 노예매매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멸종을 위해 진행하는······]세상이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