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596
■ 595화. 재능 기부 (3) □ ᓚᘏᗢ
엘프는 보수적이다. 세계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엘프에 대한 인식이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 엘프가 보수적인 건 맞다. 너무 보수적인 탓에 종족전쟁까지 말아먹었다.
하지만 보수적이라 해서 꼭 나쁜 건 아니다. 일례로 전세계의 기록물이 모여있는 ‘성지’가 있다.
성지는 특정 조건만 만족한다면 종족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출입이 가능하다.
종족전쟁으로 갈등의 골이 깊은 인간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의식할 수밖에 없는 마족까지 출입하는 중이다.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선민사상이 깔려있긴 해도 인정만 받는다면 전부 의미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런 경향 덕분인지 엘프는 마법에 대해 매우 관대한 시선이 깔려있다. 너무 위험한 것만 아니면 대부분의 마법은 공유하고 있다.
덕분에 마법학의 깊이는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하물며 마법은 재능의 영역이었기에 습득력이 강한 인간조차 따라잡기는 요원한 일.
그나마 마족이 균등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은 기초 학문이 부족해서 배우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마법 하나는 엘프가 독점하고 있다.
특히 마법의 기계화 작업은 엘프의 도움이 없다면 드워프조차 힘들다. 애당초 마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나.
이것만 해도 충분히 사기적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여기서 엘프의 보수적인 면모가 좋게 작용했다.
[마법은 신의 필멸자들에게 선사한 선물. 마법이 퍼지는 걸 막는다면 우리는 신의 선물을 거부하는 것이다.]지식은 한정해도, 마법만큼은 누군가 대놓고 공유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때 인간에게 마법을 전수한 적이 있다. 문제는 엘프에게 있어서 마법은 손발과도 같은 힘.
고위급 마법이 아닌 기초적인 마법조차 버거워하는 인간인데 엘프쪽에서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 입장에서는 말은 통하는데 머리는 빡대가리나 다름없는 원숭이를 상대하는 기분이었을 터.
게다가 본인들의 깊이가 너무 깊은 것도 있다. 고인물을 넘어서서 석유가 되기 직전이다.
이처럼 엘프는 마법에 한해서 매우 관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만의 리그가 된 탓에 다른 종족은 따라하는 것도 힘들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엘프가 마법에 능숙하고, 또 한 명 한 명이 마법사라는 뜻이다.
그렇다 해서 이것저것 배우는 잡캐가 아니라 한 우물만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명이 너무 긴 탓에 가끔 가다 심심풀이로 다른 종목을 배우긴 해도 각자 뚜렷한 장기가 있는 법.
아르웬은 공간 마법에 능숙한 것처럼, 다른 엘프들도 저마다 능숙한 마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대들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느냐?”
“바모스 케이프싱이라 합니다!”
“나탈리 케이프싱입니다!”
아르웬의 물음에 누가 봐도 남매로 보이는 두 엘프 남녀가 힘차게 대답했다.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기다란 두 귀는 쫑긋 올라가 있다.
두 엘프 모두 전형적인 엘프의 스테레오타입의 외모를 갖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색채가 적은 금발 및 벽안.
하지만 열정을 넘어 정열적인 태도는 여타 엘프들과 달랐다. 많은 사람들은 엘프가 조용하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줄 안다.
이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이, 마법사는 늘 침착하고 냉정을 유지해야 되기에 시끄러운 걸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프는 곧 마법사다.
“으음······”
아르웬은 빠릿빠릿하게 서 있는 엘프 남녀를 보며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침착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방금 저들이 보여준 건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용되던 마법, 가상현실이다. 아이작이 칭하길 CG에 가까운 마법.
그 마법도 널리 공유되고 있지만 꽤 고위급 마법이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본인의 기억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상상력이 아니라면 구현조차 불가능하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지만······’
헌데 앞의 엘프 남매는 그 일을 독자적으로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성과다.
그 가상현실을 카드 게임 즉, 콜 오브 듀티에 접목시켜서 문제지. 한 술 더 떠서 드워프의 도움 없이 힘들다는 기계화마저 성공했다.
지금 남매 앞에는 특수 제작된 테이블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마찬가지로 특수 제작된 T-34 카드가 한 장 올려져 있다.
마나를 주입하지 않아 마법이 소멸했을 뿐, 마나를 충전시킨다면 방금 전처럼 전차가 튀어나올 것이다.
‘토니 스타크가 동굴에서 아크 원자로를 만든 걸 본 느낌이구나.’
영화 제작은 국가 단위로 지원해줬다. 그렇기에 엄청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케이프싱 남매는 아무런 지원조차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명했다.
마법, 공학, 문화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발명품. 아르웬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대단하구나. 케이프싱이라고 했느냐?”
“예! 여왕님!”
아르웬의 물음에 남매가 힘차게 대답했다. 여러모로 엘프와 거리가 먼 남매다.
순간 하프 엘프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책과 논문을 읽었으나 그대들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구나. 어디에 종사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저희 모두 환영 마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역시.”
가상현실 마법은 환영을 이용한 마법. 두 남매가 환영 마법에 종사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환영 마법은 비전이 좋지 못했던 분야로 유명하다. 환영을 대체 어디에 쓸 거라는 의문이 많았지.
허나 영화가 등장한 이후로 비전이 창창한 분야로 재탄생했다. 제논 일대기를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환영 마법만으로는 부족해. 저걸 어떻게 카드와 접목시켰는지가 중요하지.’
단순한 환영 마법이었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매가 보여준 환영 마법은 공학과 접목시킨 것.
특수 제작된 테이블과 카드. 하나하나 파고들 필요가 있다.
“대단하구나. 환영 마법을 이리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드워프만이 가능하다는 기계화를 성공시키다니. 누가 가르쳐 준 것이냐?”
“아닙니다! 저희가 따로 발명한 물품입니다!”
이번에는 여동생 쪽이 힘차게 답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카나리아를 연상시키게 했다.
아르웬은 따로 발명했다는 여동생의 대답에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을 부탁했다.
“무슨 원리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예.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카드 하나만 가지고 환영 마법을 발동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테이블을 보시듯이 특수 제작된 테이블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면서 만든 건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악용 당할 우려가 있을 뿐더러 다양한 결괏값을 도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카드 한 장만으로 환영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면 여러곳에서 악용당할 수 있다.
당장 전차만 해도 우렁찬 포음을 내뿜었지 않았는가. 이것만으로도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으니 위험하다.
이에 납득했다는 듯, 아르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가 뒷말이 문득 의아해졌다. 다양한 결괏값을 도출시키기 위해서라니.
“환영 마법은 정해진 값만 결과를 보내지 않느냐?”
환영 마법은 능동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항상 정해진 값에서만 환영을 보여준다.
속칭 CG 작업이 더럽게 어려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변했다면 진작에 채용했겠지.
경악보다는 의문이 더 컸기에 아르웬으로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매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테이블을 이용한다면 다양한 결괏값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능동적이진 않아도 저희가 추가만 한다면 더 다양한 결괏값을 보여줄 수 있죠.”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된다는 뜻이구나.”
“예.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르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정리했다.
환영 마법을 접목시킨 카드. 그 카드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특수 제작된 테이블이 필요하다.
테이블이나 카드 모두 혼자서는 100%로 활용할 수 없으며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그저 비싼 쓰레기에 불과하다.
또한 환영이 보여주는 결과도 다양하다. 비록 지금은 일일이 추가하는 것밖에 안 되지만 좀 더 발전한다면······
‘······응? 잠깐만.’
이거 어디선가 본 기분인데. 아르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생각에 빠졌다.
‘분명 아이작의 전생에서······’
컴퓨터에 깔린 게임을 하면서 시원하게 패드립을 날리던 아이작의 전생. 거기서 본 것과 비슷하다.
특수 제작된 물건이 있어야 온전히 작동되는 카드도 마찬가지. 뭔가 심상치 않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했길래 고작 카드 따위가 환영 마법을 만들어 내는 거지? 테이블이 있어야 작동되는 것도 그렇고.’
아르웬은 고개를 들어 케이프싱 남매를 지그시 쳐다봤다. 남매는 예의 기대가 된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기다리는 중이다.
다른 엘프였다면 거 참 쓸데없는 걸 만들었다 하겠지만, 아이작의 전생을 지켜본 아르웬은 달랐다.
남매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상상 그 이상의 뭔가를 발명한 것 같다.
“······하나 묻도록 하마.”
“예!”
“저 카드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어떤 거냐면······”
오빠 쪽이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아르웬에게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
대충 들어보니 연금술 쪽인 것 같다만 연금술은 기초적인 건 알아도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한 것 같으니 치하 정도는 해야겠지.
“훌륭하구나. 다만 이게 양산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구나. 드워프와 공장의 힘을 빌리더라도 많이 힘들 테고.”
“으음······”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남매 모두 침음성을 흘렸다. 위로 솟아났던 귀 또한 아래로 추욱 처졌다.
하지만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설치 자체를 못한다는 건 아니다.
아르웬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남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줬다.
“그래도 제논에게 건의는 해보도록 하마. 아마 제논이라면 기꺼이 허락해줄 테니.”
“저, 정말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오빠 쪽은 놀라고 동생 쪽은 뒤늦게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아르웬은 그 반응에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이미 알븐하임 전역에 널리 퍼진 소문이다.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봐야겠지. 아르웬은 얼굴이 괜스레 화끈거려 다급히 말했다.
“조만간 연락하도록 하마. 그대들은 앞으로 내가 아닌 제논에게 보여줘야 할 테니 착실하게 준비하거라.”
“예, 예! 알겠습니다!”
“제논 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렇듯 알븐하임에서 폭탄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어때? 이해가 가니?”
“악마가 침공하고 멸망을 나아가는 세계? 그런 세계를 상상하면서 역할 놀이를 할 거라고요?”
“응. 그리고 각자마다 능력치를 정해줄 거야. 혹시 주사위는 준비했니?”
“여기요.”
아이작은 본인의 영지에서 또다른 놀이를 전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