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11
■ 610화. 보급 (2) □ ᓚᘏᗢ
최근에는 바쁨의 연속이었다. 결혼식은 서서히 다가오지, 노스는 어그로를 끌지, 축구 일정도 잡아야하지.
글을 쓰는 건 비축분을 한가득 쌓아놓은데다가 비장의 카드, 통조림이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그냥 바쁘다. 엄살을 피우는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상당히 많아 바쁘다.
피와 강철 연재 초반만 하더라도 글만 쓰면 끝이었기에 여유가 넘쳤지만, 내가 이것저것 일을 벌리다보니 시간이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히 귀찮은 건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는 걸까. 아버지와 다르게 황실에서 파견한 인력을 적재적소로 사용 중이다.
“오프사이드.”
“네? 이게요?”
하지만 축구가 진행될 때마다 심판직으로 나가야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축구가 유행한지 2주밖에 지나지 않은데다가 규정집조차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
당장 축구 선수들조차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곳이 없는데 심판은 오죽할까. 그냥 내가 해야지.
문제라 하면 축구팀이 거의 10팀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 덕분에 매일매일 축구 심판을 보러 나가야 된다.
“오프사이드 아닙니다! 전 공을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루미너스 님께 맹세코!”
“웃기지 마! 네 다리에 걸린 거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너나 개소리 집어치워! 네가 한 패스가 우리 팀한테 갔는데!”
“감히 신들이 보필하는 영지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신의 천벌이 무섭지 않느냐!”
축구를 즐기는 영지민들도 내가 심판을 보는 건 만족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했으니까.
하지만 이처럼 진짜 억울한 경우에는 거세게 항의를 하는 편이다. 지금도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전에 마리가 제안했던대로 상품을 건 리그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은 무려 돼지 2마리. 고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시대상을 따졌을 때 어마어마한 상품이다.
지금도 먼 과거에는 가축을 도둑질한다면 사형 내지 종신형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그것이 닭이어도 상관없다.
자칫하다가는 돼지 2마리가 저 멀리 날아가는 셈이니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눈 뜨고 코 베일 수도 있다.
[한 번 확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애매하군요.]페널티가 맞다, 아니다라는 언쟁이 오가는 도중에 머릿속으로 가르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그 목소리가 울려퍼지자마자 한 손은 앞으로 내밀고 한 손은 귓가에 갖다 대었다.
아까 자기가 오프사이드 깃발을 올렸지만 본인이 보기에도 확실하게 판정을 못 내린 모양이다.
좀 더 확실한 판정을 위해 부심을 세워놓았지만 이처럼 애매하다는 판정을 내릴 때가 있다.
이럴 때를 위해 매 경기마다 영상을 녹화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세실리의 도움도 있지만 리나의 역할이 크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홍보를 하기 위해 영상을 멀리 퍼뜨릴 거라는 이유였으며, 조만간 제국 전체에 축구 광풍이 불 거라 예견했다.
‘그 결과가 이 세상의 VAR이지 뭐.’
삐익!
좀 더 확실한 판정을 위해 뿔피리를 강하게 분 후 영상이 녹화된 곳으로 달려갔다.
본래 영상을 녹화하는 구슬은 더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싸지만, 썩어넘치는 것이 돈이다.
게다가 헬리움은 이미 영화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 있다. 미네르바 제국이 적당한 가격에 타협하면 그만이다.
파앗!
“음······”
영상이 녹화된 구슬을 툭- 툭- 건드리니 홀로그램이 눈 앞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경기 첫 시작부터 보여줬지만, 가르츠가 다가와 이것저것 만지더니 방금 그 장면으로 넘어갔다.
기술력의 한계로 일일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역시 마법은 사기가 맞다.
더구나 미네르바 제국 특유의 돈지랄도 다양한 각도에서 그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세상이다.
‘오프사이드가 아니네.’
절묘하게도 공이 자기 팀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 상대편에게로 갔다. 자기 팀을 상대로 알까기를 한 것이다.
공은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고, 다시 말해 오프사이드도 아니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에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일단 가야겠지.
나는 영상을 다 지켜본 후, 등을 돌려 경기장 쪽으로 뛰어갔다.
삐익!
뒤이어 뿔피리를 강하게 불고 손으로 네모 박스를 그렸다. 홀로그램도 네모난 창이어서 그대로 따라해도 상관없다.
모두가 긴장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중앙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골이라는 뜻이다.
와아아아아!!!
오프사이드로 넘어갈 뻔했던 골이 인정되자 선수는 물론 관중들도 열렬하게 환호했다.
최근 축구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 관중석도 더 늘린 참인데, 그 덕분인지 환호성이 더욱 강해졌다.
결국 그 골에 힘 입은 팀이 승점 3점을 챙겨가는 것으로 경기는 종료됐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진짜 축구로 발전되는 게 느껴진다.
물론 그에 따라 내가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퍼뜨린 문화였으니 직접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 심판직도 넘겨야겠지만 조금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규정집부터 세세히 짜야했으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게 축구라는 거군요!”
그리고 오늘은 특별하게도 복귀하자마자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리나가 제국 차원에서 홍보를 한다는 건 곧 귀족들도 함께 참여해야 된다는 뜻.
시간이 될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귀족들이 축구를 보러 오고 있다.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심드렁했던 귀족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라. 그만큼 유흥에 대한 열광은 계급을 가리지 않고 똑같다.
“오랜만이네요, 칼라스 자작님.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편하게 마셜이라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저 축구라는 것도 아이작 님이 생각하신 겁니까?”
“일단은······ 예. 그런 거죠. 애들끼리 공놀이를 하는 걸 보고 고안한 겁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자니 양심이 찔린다. 나는 부담스럽기 그지 없는 마셜의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하니 마티우스 후작과 딱 시선을 마주쳤다. 그도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였지만,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꿰뚫는 것처럼 직시했다.
“그대는 보면 볼수록 정말 신기한 사람이로군. 콜 오브 듀티부터 시작해서 축구까지. 정말 미래에서 온 게 아니오?”
“콜 오브 듀티는 제가 아니라 제 파트너의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름을 빌려준 거에 지나지 않아요. 축구는 단지 발상의 전환일 뿐이고요.”
전국 각지에서 축구 구경을 하러 온 귀족들과 항상 만나는 건 아니다.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귀족들은 대충 얼굴만 익히고 돌아가는 편이다.
마셜과 마티우스 후작은 전에 나와 안면을 익혔고, 특히 마셜은 한때 편지로 자문을 주고 받았으니.
게다가 마티우스 후작은 아버지와 개인적인 연이 있었기에 손님으로서 대우하는 것이다.
“헌데 그대의 약혼녀는······”
“마리는 지금 자고 있습니다. 소문을 들었다시피······”
“그렇군.”
마티우스 후작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유부남이었으니 이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이미 미네르바 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나와 마리 사이의 결혼 소식이 널리 퍼졌다.
당연히 과속을 했다는 것까지 친히 알려줬다. 그래도 대부분 축하한다는 반응이다.
물론 가끔 가다가 다른 여자와의 결혼식은 언제 할 거냐는 언론도 있었다. 이건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다.
지구였다면 비꼬는 용도로 들리겠지.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데다가 일부다처제가 용납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이미 내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건 전세계가 알고 있다. 아마 역사에 짐승이라고 기록되겠지.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알고 있네만.”
“네.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결혼식이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다. 성대하게 열 필요까지는 없고 아는 사람만 초청할 계획이다.
물론 여기에 영지민들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 귀족들의 사교회가 아닌, 영지 그 자체의 축제로 남을 것이다.
마리를 위한 웨딩 드레스도 구비해놓았다. 내가 고심해서 제작한 디자인이라 정말 마음에 들어하더라.
결혼식 자체는 중세답게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의 결혼식을 빌미로 둔 축제나 다름없다.
“혹시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 중에 누구의 축복을 받을 예정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케이트 추기경 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실리가 있지만 서로 간의 합의 하에 사양했다. 어차피 세실리와도 결혼할 건데 모양새가 이상해지니까.
애당초 결혼식은 루미너스 교단 쪽에서 진행하는 편이다. 여기까지는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가 하나 있다. 마리에게도 안 알려줬다.
어쩌면 프로포즈보다 더 긴장되는 이벤트일 수도 있는 것이, 프로포즈는 마리와 나 단 둘이만 있었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행할 예정이다.
“참석하실 건가요? 사교회 같이 딱딱한 자리가 아니라 축제 형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참석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사령관의 위치라 힘들 것 같소. 칼라스 자작도 막중한 임무를 가져서 힘들 테고.”
“마티우스 후작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하루라도 쉰다면 전선의 병사들이 굶을 수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티우스 후작은 물론, 평소 활발하던 마셜조차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그들의 참군인스러운 모습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다른 귀족은 몰라도 마티우스 후작만큼은 신용할 수 있다 말씀하셨다.
비록 현실적인 문제로 신뢰까지는 힘들지만 신용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북부 지역의 보급은 마셜이 전부 담당하고 있다 했었지?’
북부 지대, 정확히는 북부의 국경 지대는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다.
철도조차 깔리지 않은 지금, 마셜은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나조차 놀랄 정도로 말이다.
시대의 한계로 현지 보급이 우선시인데 북부 지대는 춥고 가혹한 환경으로 현지 보급이 매우 힘들다.
따라서 보급대를 따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보급대조차 식량을 상당수 소비하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모된다.
네이비 기사단이 소수정예로 활동할 수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과거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마냥 사람을 갈아넣은 것도 이때문이다.
미네르바 제국조차 북부 지대로 보급할 여력이 되지 못해 사람만 무작정 투입시킨 것이다.
그곳에서조차 현지 조달을 했다면 나폴레옹과 히틀러 꼴이 났겠지.
“그러고 보니 어떻게 그 먼 북부 지대까지 보급을 할 수 있던 거예요?”
“저 말씀이십니까?”
“네. 책 속에 등장하는 마셜과 이름이 똑같은 당신이요.”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처칠로부터 ‘승리의 설계자’라 칭송 받은 조지 마셜 장군.
전선에 직접 나서는 사령관이라기보다는 참모에 가까웠는데,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대통령조차 그에게 매달렸다.
정작 본인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책상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만큼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나마 마셜은 철도가 깔린 이후였지 이 세상의 마셜은 철도조차 깔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먼 거리의 보급을 수월히 해냈다.
“전에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함께 네이비 기사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날씨가 살인적으로 추운 걸 제외하면 음식도 훌륭하고 막사도 따뜻하더군요. 이게 전부 마셜 씨 덕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호크 경이 막대한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더라면 체계를 구성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겁니다.”
마셜은 손을 흔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아버지가 시간을 벌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을 터.
그러나 시간을 벌어줘도 못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아버지의 위업도 뛰어나지만 마셜의 능력을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겁니다. 피와 강철은 철도를 비롯해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있어서 가능하지만, 여기는 철도조차 없지 않습니까? 일일이 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예.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별 거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귀족들과 원만하게 합의를 했을 뿐입니다.”
“원만한 합의요?”
마셜의 설명은 이렇다. 미네르바 제국은 테르스 왕국과 달리 황제의 권력이 매우 막강한 나라다.
허나 황제를 견제할 세력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백작들이 주를 이룬 계파가 존재하며 각각 실권을 쥐고 있다.
마셜은 그걸 교묘하게 노린 것이다. 황실과 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름아닌 명예.
명예와 이권을 둘 다 챙기면서 지출되는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그에 따라 윗선으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뜯어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석유의 중요성이 대두되어서 예산을 얻기 더 쉬워졌습니다. 더구나 백작들 중에서 자금을 담당하던 케리손 백작가가 악마 숭배자 결탁 혐의로 조사 중에 있고요. 당장은 무리없이 보급할 수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이랬는데도 아이작 님의 조언 이전까지 포탄 관련 연구는 진척이 없었지만요.”
“흠. 흠.”
마셜이 활짝 웃으며 말한 반면 마티우스가 머쓱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지었다.
아무튼 마셜이 쉽게 설명을 해서 그런 거지, 저것도 굉장한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수많은 귀족들은 물론 황실까지 말빨로 구워삶았다는 뜻이 아닌가.
아버지가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상황이 좋았다지만 여러모로 뛰어난 능력이다.
“철도가 깔린 이후는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입니다. 철도가 깔리고 마력 기관차까지 운행된다면 예산이 크게 감축될 테니까요. 황실에서 계속 미루고 있어서 문제지만.”
“제가 한 번 말씀드려볼게요. 제 형제들이 그곳에서 근무 중이니까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 당장 우리 형제들이 그곳에서 근무하는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고, 형제들이 미안해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근무지를 옮기는 것만 아니면 된다.
그냥 밥 좀 잘 먹여주고 재미있는 거 보내주고 따뜻한 곳에서 재워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아무 문제 없다.
“그래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저, 정말 고맙소.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마셜은 무덤덤한 반면 마티우스 후작은 목소리를 떨면서 감사를 전했다. 나는 그저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이렇듯 오늘의 손님 맞이는 끝났다. 저녁 식사까지 초청할 예정이었으나 그들 쪽에서 먼저 거절했다.
여기 온 것도 시간을 짬낸 건데 저녁 식사까지 먹는다면 일이 더없이 밀릴 거라고.
나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아무 미련없이 보내줬다.
“마셜 씨.”
“예, 아이작 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떠나기 전 마셜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내 딴에는 평소처럼 잘 해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티우스 후작에게는 아니었던 걸까. 뒤늦게 알았지만 저 발언이 마셜에게 종신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건 훗날의 이야기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그들을 보내주고는 침실로 돌아갔다.
“왔어?”
아델리아로부터 빗질을 받고 있던 마리가 나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머리를 빗는 걸 보아 일어난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이처럼 평소에는 아델리아가 마리의 곁을 지키고 있다.
나는 해맑게 인사하는 그녀에 빙긋 웃어주며 천천히 다가갔다. 이윽고 아델리아로부터 빗을 넘겨받은 후 살살 빗어주기 시작했다.
눈처럼 새하얀 은빛 머리카락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청량했다.
“언제 일어난 거야?”
“방금 전에. 신기하게도 저녁 식사 전에는 눈이 떠지더라. 손님들은?”
“아델 누나한테 들었구나. 아까 나갔어.”
“저녁은 여기서 먹을 거야?”
마리가 아닌 아델리아의 물음이다. 최근 마리의 거동이 힘들어진만큼 식사도 침실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나는 마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리는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냐. 저녁은 가족끼리 얼굴을 보면서 먹어야지. 이번에는 언니도 같이 먹자. 근무 시간도 끝났잖아.”
“내 근무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유지될 거야. 네 아이기도 하지만 아이작의 아이기도 하니까.”
“······뭔가 묘한 말이네.”
진짜 묘하다. 뭔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을 법한 말이지 않은가.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마리와 아델리아가 약하게 웃었다.
아델리아도 나와의 관계가 반쯤 공인된 상황이어서 결속이 더 강해진 상황이다.
마리가 내 밤일을 버티지 못해 호위 기사를 끌어들였다고 신문에 퍼뜨렸는데 모르면 이상하지.
그 덕분인지 라이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미안하면 아델 언니한테도 한 방 쏴. 그러면 공평하잖아.”
“괜찮아. 딱히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고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거든.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에이. 아델 언니. 전에도 말했지만 욕심을 부리라니까? 언니면 내가 인정해줄 수 있어.”
“인정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니?”
“어······ 몰라. 아무튼 언니는 돼.”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싸우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마리부터 시작해 애인들은 정말 착하다. 가끔 가다가 장난식으로 싸우기는 하지만 분열되지 않았다.
최대한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런데도 다들 이해해주고 사랑을 퍼부어줬다.
앞으로도 열심히 사랑해야지. 나는 미소를 머금으로 다짐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우리 결혼식에 리루스 악단도 온다는데 맞아?”
빗질이 거의 끝나가던 찰나에 마리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살짝 흠칫거렸다가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아델리아를 힐긋거리기까지.
일종의 이벤트였다지만 마리를 제외하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특히 리루스 악단과 ‘개인적인 연락’까지 했다.
“맞아. 축제에 가까운 결혼식이라 내가 초청했어. 혹시 싫어?”
“전혀. 오히려 좋은 걸? 빨리 드레스 입고 싶다.”
다행히 잘 넘어간 듯하다. 나는 마리가 생글생글 웃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미너스 님의 축복을 받겠지만 모라 님도 좋아하시겠지?’
내가 꾸미고 있는 또다른 이벤트.
그리고 모라에게 직접 부탁하면서까지 노력하고 있는 것.
‘가수들은 참 대단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지?’
바로 ‘축가’다.
참고로 난 노래를 더럽게 못 부른다.
얼마나 못 부르냐면 그 활기차던 모라가 침묵을 유지할 정도.
‘······잘 해야지.’
그래서 최근에 통조림이 되어 실력을 기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