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12
■ 611화. 축가 (1) □ ᓚᘏᗢ
음악은 신이 허락한 마약이다. 전생에서 한 번쯤 들었던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기원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탄생하고, 예술로서 점점 더 발전했다.
현대의 음악은 중세와 달리 다양하여 콕 집어서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음악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도 음악은 예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리루스 악단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단체라는 걸 상기하자.
리루스 악단처럼 단체를 이루며 음악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개개인이 악기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가 바로 음유시인들이다. 음유시인들은 전세계 곳곳을 방랑하면서 노래를 퍼뜨린다.
어느 기사의 영웅담, 귀족의 선행, 왕의 정책 등등. 시나 노래를 이용해 퍼뜨리는 것이다.
음유시인이 곧 가수인 셈이지만, 악단의 힘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은 없다.
성악가나 코러스가 아닌 이상 음유시인이 악단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음유시인은 기본적으로 방랑하는 존재고, 악단은 의뢰를 받아 음악을 펼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맞는 노래를 고르는 것도 힘들다······’
축가를 불러주겠다고 다짐했건만 노래를 고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왜냐고?
축가는 대부분 일편단심이 주제인 경우가 많은데 나를 보아라. 이미 세상 전체에 바람둥이로 찍혀있다.
이런 상황에서 순정남에 가까운 축가를 부른다면······ 내가 다 부끄럽다. 양심을 아주 그냥 엿장수랑 바꿔먹은 수준.
더구나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꼴값 떤다고 웃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대놓고 표현하지 않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다.
게다가 마리를 향한 시선도 나빠질 수 있다. 마리가 먼저 고백하고, 나 또한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였는데 상황이 꼬여 이리 된 것이니.
자칫하다가 축가 하나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될 결혼식의 분위기가 싸해질 수도 있었다.
‘이걸 타파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바람둥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에 걸맞도록, 내가 매달리는 형식이 더 낫다. 그러면 적어도 유쾌할 테니까.
허나 축가가 대부분 그렇듯이 순정에 관한 내용들밖에 없었다. 때문에 노래를 고르는 것만 며칠이 걸렸다.
다행히 어찌저찌 노래를 선택할 수 있었으나, 하필이면 그 노래의 난이도가 더럽게 높더라.
혹시나 싶어서 모라를 찾아가 가사 및 멜로디를 기억한 뒤 노래를 불렀는데······
“모라 님?”
[··· ···]“여보세요? 모라 님?”
[어, 어? 다, 다 불렀어?]그 활기차던 모라조차 침묵을 고수할 정도로 끔찍했다.
보통 같았으면 ‘너 진짜 못 부르는구나?’라며 놀려댔겠지.
하지만 진짜 망한 사람에게 놀리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지금 모라가 딱 그 기분일 터.
[여, 열심히 불러주면 그 아이도 좋아할 거야! 그리고 누가 널 놀리겠니?]모라가 뒤늦게나마 위로를 해줬지만 이미 늦었다. 내 노래 실력이 파멸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라의 말마따나 열심히 부르기만 한다면 마리는 좋아 죽겠지. 어쩌면 꺄르르 웃을 수도 있고.
그러나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한다. 나를 위해 헌신하는 마리에게 추억을 선물해주는 건데 대충 할 수 없다.
“그건 그냥 광대잖아요. 저는 광대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신성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나는 기대를 담아 물었다. 전에 모라가 설명해주기를 신성은 곧 시간이다.
시간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하고, 더 나아가 ‘단위’로 세는 존재들.
그러니 신성으로 파멸적인 내 노래 실력을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했다.
[그건 힘들어. 재능은 유전자 단위로 각인된 부분이거든. 성별은 몰라도 특정 부분과 관련된 유전자를 건드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려.]“성별은 왜 가능한 건데요?”
[염색체를 하나만 바꾸면 끝이잖아. 그게 얼마나 쉬운데?]“··· ···”
모라의 설명은 이랬다. 성별을 바꾸는 건 특정 유전자 하나만 찾으면 끝인 반면, 노래 같은 재능은 다양한 분야를 바꿔야 한다고.
성대의 구조라던지, 그 성대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던지, 복식 호흡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 등등.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이루어져 하나의 재능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걸 일일이 바꾸는 건 사실상 수술이다.
[당장 나도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잖아? 우리로 치자면 재능은 곧 권역이야. 내가 평화를 관장하고 오빠가 전쟁을 관장하는 것처럼.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맡아야 하는 거지.]“그러면 신이 짐승으로 변해서 놀러다니는 건요?”
[그건 유전자를 바꾸는 게 아니라 마법을 이용한 변신이야. 유전자까지 바꿨다면 진짜 짐승이 됐겠지?]역시 신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이해하는 걸 포기하는 게 더 빠를 테지.
어쨌거나 내 노래 실력을 끌어올릴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이대로 망신을 당하기는 싫은데.
[정 고민되면 여기서 연습하면 되잖아? 내가 도와줄게.]“모라 님이요?”
[응. 옛날에 내 조······]모라는 말을 하다가 우뚝 멈췄다. 마치 고장난 것마냥 침묵을 유지했다.
그에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모라는 헛기침을 하더니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 말이 잘못 나왔네. 이래보여도 노래를 잘하는 존재들을 셀 수도 없이 지켜봤어. 신성을 섭취했다고한들 필멸자 한 명을 가르치는 건 일도 아니야.]“믿어도 되죠?”
[감히 신을 의심하는 거니?]“루미너스 님은 믿지만 모라 님은 썩······”
[우쒸.]모라는 내 대답에 툴툴거릴 뿐 별다른 항의는 못했다. 여태까지 나에게 했던 짓이 한두 번이어야지.
어쨌거나 나는 이후로 모라에게 강습을 받았다. 마리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에 노력했다.
[아니! 가성을 섞으라고, 가성을! 네가 부르는 노래는 가성이 중요하다니까!]“그걸 어떻게 섞어요?”
[너 혹시 지구에 살고 있을 때 노래 부른 적 없니?]“있기야 있죠.”
[언제?]“수행 평가 때요.”
그때 오솔레미오 정말 열심히 불렀는데. 음악 선생님도 후한 평가를 내리셨다.
모라는 순간 할 말을 잃는 듯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도 최대한 영혼에 맞는 몸을 찾았으니 된 거지. 우리 업보니까.]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모라를 애써 무시했다.
[혹시 다른 노래는 안 돼? 더 좋은 노래가 많잖아. 이건 객관적으로도 어려운 노래야.]“안 돼요. 축가에 어울리면서도 제가 매달리는 식의 노래는 이것밖에 없거든요.”
[이럴 때는 정말 고집이 세구나.]“정 힘드시다면 루미너스 님에게······”
[자! 바로 시작하자! 그 악마 같은 실력을 인간으로 바꿔줄게!]* * *
아이작의 파멸적인 노래 실력 덕분에 모라의 스트레스가 나날이 상승하고 난 며칠 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지도를 얻고 있는 악단, 리루스 악단은 마이샬 영지에 도착했다.
며칠 후면 영지의 축제나 다름없는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며 리루스 악단도 초청을 받았다.
리루스 악단 같은 경우는 귀족들조차 거금을 들여야만 초청이 가능하지만, 아이작은 예외다.
세계 최초의 영화에 음악을 담을 수 있는 영광을 리루스 악단에게 줬으니 이정도는 가뿐하다.
그러나 아이작은 의뢰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축가에 사용될 음악을 작곡하기 위함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작곡만큼은 음악가의 긍지나 마찬가지였기에 리루스 악단도 아이작이 지불하는 금액을 기꺼이 받았다.
“정말 달콤한 내용이로군.”
아이작으로부터 축가에 사용될 노래를 넘겨받은 리루스가 감평을 내렸다.
그의 손에는 녹화용 수정 구슬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 구슬에는 아이작이 부른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라가 얼마나 채찍질을 했는지 ‘악마가 부를 법한’ 실력에서 ‘괜찮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만약 리루스가 그 노래를 들었다면 악마다! 라며 소리쳤겠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역시 세상을 구한 예술가의 재능은 남다른 것인가? 이런 건 처음 듣는데.”
착각이다. 전생의 노래를 그대로 들고 온 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리루스는 아이작이 예술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감탄했다.
이 노래와 자신의 음악이 합쳐진다면 음유시인과 악단이 합쳐져 다른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방랑을 즐기는 음유시인과 방랑이 힘든 악단. 섞일래야 섞을 수 없는 존재들.
리루스는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기간이 짧다 했더니 이미 다 구상하고 있었군.”
수정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뿐만 아니라 아이작은 가사 및 구성까지 전달했다.
첫 도입부는 어떤 식으로, 하이라이트 부분은 어떤 식으로, 중반부는 어떤 식으로 등등.
무작정 이런 식의 분위기를 연출해달라라고 의뢰를 했다면 곤란했겠지만, 이미 다 구상하고 전달한 거라 난이도가 매우 쉽다.
물론 문제점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리루스 악단이 세계 제일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허나 아이작이 원하는 건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아닌 ‘소규모’ 오케스트라. 사실 오케스트라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단장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한동안 아이작의 노래를 듣던 중, 단원이 리루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에 리루스도 수정 구슬을 잠시 품 안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러면 아이작 님께서 준비하셨다던 ‘악기’도 다 준비되었나?”
“예. 박자감이 중요하긴 해도 다루는 데에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신문물이라 다들 신나하더군요.”
“좋아. 그 분께서 직접 준비하신 거니 조심히 다루도록 하게. 이후에 우리 악단에도 요긴하게 쓰이겠지.”
이윽고 리루스는 단원과 함께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인 방으로 들어섰다.
마이샬 영지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인만큼 음악가를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또한 리루스 악단 같은 거장들을 위한 공간도 마찬가지. 그러나 공간에 비해 준비 중인 단원들이 매우 적어보였다.
“헌데 저 악기가 뭐라고 했나? 듣자하니 헬리움 측에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리루스는 정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신문물을 가리키며 단원에게 물었다.
아이작이 전생의 기억을 빌려 세실리에게 몰래 부탁했던 타악기.
“드럼······ 이라고 들었습니다. 타악기의 일종이죠.”
“저렇게 많은 북은 처음 보는군.”
“그래도 박자를 주기에 훌륭한 악기입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더군요.”
‘역사대로’라면 몇 백년 후에나 등장할 악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