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14
■ 613화. 축가 (3) □ ᓚᘏᗢ
노래는 각 문화권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만약 내가 대한민국 노래를 골랐다면 고생을 덜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의 유명 밴드를 선택했다.
대한민국에서도 큰 인지를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심하면 내한 공연까지 오는 그룹. 유명 그룹인만큼 히트곡도 많다.
나는 그중에서 가사가 매우 달콤한 노래 즉, ‘Sugar’를 선택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해석될 여지가 다양한 곡.
애걸복걸 매달리는 형식은 똑같지만 순정남이 부른다면 순정을, 바람둥이가 부른다면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까 말했듯이 문화권마다 해석하는 방법이 다 달라서 꽤 고생했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Sugar가 제일 난관이었다.
이 세상의 언어는 그리 발달되지 않은데다가 관용어는 더욱 침체돼 있다. 사랑은 달콤하다는 은유적인 표현도 없더라.
그래서 완전히 뜯어고치는 형식으로 새로운 가사를 만들었다. 늘 그랬듯이 빙빙 꼬는 게 아니라 직설적인 방식으로.
[Sugar.] [Yes, please.] [Won’t you come and put it down on me.]가장 유명한 하이라이트를 예시로 들겠다. 위의 가사를 직설적으로 해석해도 괜찮다.
하지만 이 세상 문화에 맞도록 변경하다 보니 음절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히 설탕의 음절도 두 개여서 치환하기는 편했다.
[설탕(내 사랑).] [그대여.] [나에게 다가와 달콤함으로 녹여줘.]하이라이트 하나만 해도 고심에 고심을 거쳤는데 다른 가사는 오죽할까.
그렇다 해서 다른 곡으로 바꿀 수도 없는 것이, 이 곡만큼 부르는 사람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 곡을 못 찾겠더라.
전반적인 가사는 사랑을 설탕으로 비유하는 곡. 허나 아까 말했듯이 바람둥이로 각인된 내가 부른다면 마리가 더 돋보이는 가사다.
대외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마리를 제쳐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도 상관없다. 실제로 여러 애인들과 사귀고 있다.
이것만 본다면 마리가 찬밥 신세로 보이겠지만, 이번 결혼식을 통해서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둥이 기질을 막을 수 없어도 그녀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반대로 내가 매달리는 중이라고.
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영웅조차 마리의 매력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긴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일종의 도장이다.
연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Yeah, I want that red velvet.] [I want that sugar sweet.] [Don’t let nobody touch it.] [Unless that somebody’s me.]집착성을 보여주는 가사다. 너의 달콤함은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못 만지게 하겠다는 의미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새하얀 뺨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눈처럼 새하얀 뺨은 마시멜로우처럼 말랑말랑하다.
마리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가 내가 뺨을 만지자 베시시 웃으며 손을 잡았다. 목덜미에서부터 시작해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I gotta be a man.] [There ain’t no other way.] [Cause girl you’re hotter than southern California Bay.]스스로에 다짐과 동시에 마리의 아름다움을 돋보여주는 가사.
마지막의 캘리포니아 바다는 무지개로 대신했다.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자연경관이 거의 없다.
몇 개 있긴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탐험 수필을 읽지 않는 이상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무지개가 적당하다.
마리도 저 가사의 뜻을 알았는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안 그래도 새하얀 피부여서 더 빨개진 듯하다.
눈동자도 점점 몽롱해지는 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래도 노래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Sugar.] [Yes, please.] [Won’t you come and put it down on me.]마무리로 하이라이트 부분을 반복해서 불렀다. 나뿐만 아니라 리루스 악단 쪽의 사람도 함께 불렀다.
참고로 리루스 악단은 내가 원하는 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연주해줬다. 특히 악기 쪽에서 대단한 싱크로율을 발휘했다.
드럼은 내가 직접 제작했다지만 베이스는 콘드라베이스를 이용했다. 베이스의 원형이 콘드라베이스인 걸 상기하면 재능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윽고 하이라이트 후에는 리루스 악단의 연주를 끝으로 노래가 완벽하게 끝났다.
와아아아아!!
노래가 끝나자마자 거센 함성 소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평민, 기사, 귀족, 왕족 계급을 가리지 않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열띤 박수를 치는 모습에 도리어 내가 당황스러웠다.
모라의 특훈 덕분에 이 어려운 곡을 부를 수 있던 거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을 텐데. 조금 얼떨떨하다.
“멋지십니다!”
“정말 달콤한 노래였습니다! 도련님!”
“휘이이익!”
그냥 열심히 부른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되나. 노래를 불렀을 때와 달리 철면피를 깔지 않아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 쑥스러움도 얼마 가지 않았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웃는 동안 마리가 먼저 행동에 나섰으니.
그녀는 두 손으로 내 뺨을 덥썩 붙잡더니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녀의 푸른빛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할 수 있었다.
감동을 받았는지 약간 물기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취한 듯이 몽롱해진 것 같기도 한 눈동자.
강한 ‘열망’을 띄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마리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너야 말로 설탕처럼 달콤해. 이러니까 내가 빠지겠니?”
“그, 그래? 나 잘 부른 거 맞······ 우읍?!”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리가 먼저 내 입술을 막아버렸다. 손이 아니라 자신의 입술로 말이다.
케이트의 주례가 끝나고 백년가약의 의미로 입맞춤을 했으나 그때보다 훨씬 진하다.
입술 전체를 덮어버린 건 물론이요, 스위치가 올라갔는지 혀가 안을 비집고 들어왔으니.
“우읍! 푸하! 자, 잠깐······”
“조용해. 지금 널 녹일 거야.”
주위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지던 말던 마리는 내 입술을 덮치기 바빴다.
가끔 가다 내 뺨을 강하게 깨물기도 했지만 키스를 하는 빈도가 더 많았다.
안 그래도 보는 사람이 많은데 이대로 간다면 위험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위험하겠지.
나는 아랫도리가 점점 불끈불끈해지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서 괜스레 망신살을 당할 수는 없다.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 도망칠 수밖에 없다. 물론 마리를 여기 두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여전히 내 입술을 틀어막고 있는 마리의 번쩍 안아들었다. 흔히 칭하는 공주님 안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리가 꺅! 소리를 내지르며 내 목에 두 팔을 감았다. 뭔가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여러분! 거듭 말씀드리지만 결혼식에 참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축제를 즐겁게 즐겨주세요!”
그리고 그대로 마리를 안아든 채 저택으로 날랐다. 귀족들의 만남이고 나발이고 마리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남기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어차피 일은 거의 다 해결했으니 말이다.
뒤이어 저택으로 복귀하자 우리를 발견한 경비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대문을 개방시켜줬다.
“흣차!”
“꺄악!”
침실로 들어간 후에는 마리를 침대로 던졌다. 새된 비명을 지르는 그녀.
웨딩 드레스로 온통 새하얀 그녀의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나는 예복을 거칠게 풀어헤쳤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는지 마리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오늘 축구 심판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가르츠 씨에게 맡기면 돼. 결혼식인데 다들 이해해주겠지. 그리고······”
준비 같은 건 필요없다. 그녀 쪽에서 먼저 나를 유혹한 거다.
뱃속의 아이가 걱정된다는 핑계도 없다. 우리 아이는 튼튼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더군다나 케이트가 주례를 해주면서 ‘축복’까지 친히 걸어놓았지 않았는가.
나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마리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네가 먼저 기절하면 상관없는 일이잖아?”
“맞는 말이네. 그러면······”
이어서 그녀는 두 팔을 나에게 펼치며 말했다.
“날 달콤하게 녹여줘.”
관용어다. 그것도 직설적인 관용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그녀를 덮쳤다.
정말이지, 축가에 불렀던 노래처럼 달콤하디 달콤한 시간이었다.
* * *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떠나간 광장. 아이작과 마리가 급히 떠났으나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게 정상이다. 결혼식이 끝난 신랑신부는 저택에서 화끈한 날을 보내기 일쑤였으니까.
축제를 즐기지 않고 저택으로 직행했다는 점이 차이점이었으나 다들 이해했다.
솔직히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작의 노래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 충격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어쩜 그리 달달할 수가 있죠? 저조차 녹아버릴 뻔했어요.”
“저도에요. 마리 공녀가 정말 부러워요.”
“제 약혼남도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작 님과 비교할 수 없네요.”
과학 발전은 근대로 넘어가는 중이지만 감성은 여전히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중세 시대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전반적인 문화부터 시작해 자잘한 분야까지.
아이작이 축가로 불렀던 노래는 시대적 배경에 적절했으며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사실 저는 마리 공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저런 남자에게 빠졌는지.”
“저도에요. 하지만 제논이 워낙 강하잖아요? 그래서 포기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죠. 오히려 제논이 마리 공녀에게 푹 빠져있던 거예요.”
전에 마리가 직접 언론에 말했다. 아이작의 밤일을 버티지 못해 다른 여자를 끌어들였다고.
저것만으로는 아이작의 바람기를 설명할 수 없었다. 밤일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들 타국의 공주는 선을 넘었으니.
그래서 사람들은 마리를 폄하했다. 아이작이 지닌 권력을 놓지 못해 묵묵히 속을 썩이던 여자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이작의 축가 한 방으로 마리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제 약혼자가 저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마리 공녀가 입었던 웨딩 드레스도 입고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상상만 해도 정말······”
겸사겸사 영애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건 덤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뻔하다.
먼 미래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 마지막으로 현재의 영식들에게 두고두고 까이겠지. 왜 이런 문화를 퍼뜨린 거냐고.
물론 아이작 본인은 마리를 위해서라는 변명이 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저는 어떤 노래를 불러줄지 기대되네요.”
그러나 아이작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마리에게 보여준 축가처럼, 다른 여인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세실리가 유달리 강한 열망을 띄고 있었는데, 사실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 자체에 별 감정은 없었다.
단지 마리가 주인공이라는 질투만 있었을 뿐, 아이작을 향한 사랑은 전혀 식지 않을 테니.
더구나 자신 쪽에서 먼저 아이작에게 마음을 드러낸 경우이지 않은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으나, 축가를 듣고는 약간의 욕심이 생겼다.
“그대도 결혼식을 열 계획인 것이냐?”
세실리의 부러움 섞인 중얼거림을 들은 아르웬이 조용히 질문했다.
자신은 위치가 위치다보니 결혼식은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지만, 세실리는 다른 모양이다.
하기야마음이 흔들릴만도 하다. 이게 다 아이작이 지구의 문화를 퍼뜨린 탓이다.
“마음 같아서는 열고 싶지만 상황을 봐야겠죠? 설사 열어도 지금처럼 축제 형식이 아니라 교단에서 할 듯해요. 그게 편하고요.”
“그러면······”
“제 결혼식 때 불러줄 아이작의 노래가 기대되서요.”
이번에 부른 노래처럼 달달한 노래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노래일지.
세실리는 붉은 입술을 고혹적으로 핥다가 장난스레 말했다.
“이 참에 마리처럼 확 저지를까요?”
“······조금만 참거라.”
아르웬은 진심으로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