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22
■ 621화. 공모전 (4) □ ᓚᘏᗢ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완결시키기에는 소재가 너무 아깝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우선 세기말이라는 것부터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고도 남는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개가 넘는다.
물론 로만은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내놓을 때마다 무슨 악마 새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기왕 소재도 빼앗긴 거 아이디어를 무한정 쏟아낼 예정이다. 때마침 필력도 세계관에 어울렸으니 일석이조다.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선을 넘는다면 신들께서도 좌시하지 않으실 텐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책임질 수 있어요.”
“어떤 식으로요?”
“천벌을 내리지 말라는 식으로?”
“··· ···”
로만은 내 장담 아닌 장담에 미심쩍어하면서도 믿기로 정했다. 그도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더라.
하지만 악마 숭배자를 토벌하느라 온갖 참상을 목격한 그조차 창의력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건 많이 목격한 반면 ‘비극’과 관련된 건 잘 모른다. 나는 멸망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비극’임을 강조했다.
이건 로만도 동의한 바다.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에서 진정한 축복은 완전한 죽음이었으니.
“다만 비극만 등장하면 독자들이 지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조력자나 동행자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조력자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주인공처럼 이성을 유지하는 망자를 ‘워커’라 하셨으니 워커가 모이는 장소를 따로 만드는 게 어떨까요? 그곳에서 조력자가 조언 및 도움을 주는 거죠.”
“잠깐만요. 정리를······”
내가 온갖 아이디어를 내놓자 로만은 따라가는 것도 벅찬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종이를 건네줬다.
“조력자가 꼭 한 명일 필요는 없어요. 여행 도중에 만나는 조력자들이 있을 테니까.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주는 조력자는 있어야 할 겁니다. 릴리, 그러니까 성녀 같은 캐릭터면 되겠네요.”
“그 성녀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겁니까?”
“정말 많은 도움이요.”
“··· ···”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싶지만 그러면 창작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로만도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더 낫다 생각할 거고.
물론 나도 완벽한 건 아니다. 로만과 의논을 해야 하는 부분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로만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여정을 떠나는 목적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건데······ 이건 어떻게 할까요?”
“음······”
나는 저 질문을 듣고 고민했다. 사실 목적 자체는 미리 구상한 게 있다.
문제는 그것이 이 세상은 물론, 신들 입장에서 아주 민감한 문제라는 것. 바로 만물의 아버지다.
원래 구상했던 엔딩은 쌍둥이 남매신의 친부, 만물의 아버지와의 전투. 작품에서는 ‘이름없는 신’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만물의 아버지와의 전투 이후에는 세상이 그대로 멸망한다. 세상을 약간이나마 지탱하던 신마저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져 온 세상이 바다에 잠기고, 먼 훗날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것으로 끝난다.
“외부의 신을 완전히 토벌하는 건 어떨까요? 악마들의 기원이자 또다시 세상을 망가뜨린 원흉으로 지목하는 거죠.”
“······한낱 필멸자가 신을 해하는 게 가능합니까?”
로만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지구에서 ‘신 죽이기’는 판타지의 기본 중 기본이었는데.
그나마 다행히 거부감 자체는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루미너스나 모라도 아니고 외부의 신이다.
로만 입장에서는 이단자가 믿는 신. 이단심문관다운 생각이다.
“소설이잖아요? 그런 걸로 따지면 제논 일대기는 말이 됩니까?”
“그거 예언서 아니었습니까?”
“··· ···”
가끔 제논 일대기가 이런 식으로 빅엿을 먹이더라. 사람들이 전부 예언서로 취급하고 다니니 어이가 없다.
“······아무튼 소설은 소설입니다. 개연성만 확보한다면 충분해요. 어차피 세기말인데 뭐가 나오든 이상하지 않겠죠.”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아이디어 구상은 여기까지로 끝냈다. 비극을 강조하는 것부터 시작해 캐릭터 조형까지.
로만은 종이에 빼곡히 채워진 아이디어를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로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표정이다.
이어서 그는 나와 종이를 서로 번갈아 보더니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힘드네요. 여의치 않다면 제논 님께서 쓰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이대로 끝내려고요?”
“끝내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저도 일이 따로 있는 이상 연재는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악마 숭배자가 날뛰기 시작하면 펜을 잡을 수 없겠죠.”
맞는 말이다. 제논 일대기를 집필했을 때는 아카데미 재학 중이었지만 주말만큼은 널널했다.
하지만 그는 이단자를 처치하는 이단심문관. 하물며 교황의 아들이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악마 숭배자가 날뛴다면 일감이 몇 배나 뛰어오르겠지. 여러모로 펜을 잡을 여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쓰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쓰셔도 괜찮습니다. 너무 급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 말씀해주신다니 정말 감사하지만······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어쩔 수 없네요. 차라리 공동집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집필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잠깐이나마 나쁜 아이작이 마음 속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허나 역사학자 혹은 언어학자에게 개새끼로 칭해질지언정 진짜 개새끼가 아니다. 나는 나쁜 마음을 저 밑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공동집필이라······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네요. 로만 씨 같은 문체를 따라할 자신도 없고요.”
“저는 제논 님의 아이디어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실 아이디어를 받는 순간부터 공동집필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름을 빌려달라는 건가요?”
내 질문이 정답이었는지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집필을 함으로써 부담감을 덜어내려는 목적인 듯했다.
하기야 언론에 내가 직접 뒤를 봐주는 것과 필명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공동집필을 하는 순간 그 누구도 로만을 직접 때릴 수 없을 테니까. 정체를 탄로나도 마찬가지.
가장 간단하면서 최고의 방법이다. 글은 로만이 쓰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나에게로 몰릴 것이다.
‘우려되는 게 있긴 있다만······’
소재가 우려되는 게 아니라 줄거리가 우려된다. 내가 원하는 줄거리는 잊혀진 신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주인공은 앞으로 다양한 비극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는 신들이 겪은 비극도 포함돼 있다.
과연 로만이 이걸 쓸 것인지, 아니면 믿지 못 하겠다며 펜을 놓을지 걱정된다.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민감하다 못해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까?”
“어떤 점이 불편하다는 겁니까?”
“알고 보니 신들이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던가, 아니면 외부의 신과 무언가 관련이 있다던가······”
말을 하면서 로만의 눈치를 살살 볼 수밖에 없었다. 은연히 그에게 진실을 뿌린 셈이니.
하지만 의외로 로만은 덤덤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이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진실도 아닌데.”
“만약 진실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죠?”
“그랬다면 기도했을 때 신들께서 이런 글을 쓰지 말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렇······ 네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네. 예전의 루미너스였다면 로만이 이런 글을 쓰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내 미래를 읽을 수 없다지만 다른 사람의 미래는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로만의 미래도 어느 정도 엿봤을 터.
정말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일까. 로만 입장에서는 신들이 막지 않으니 진실일리가 없다고 생각할만 하다.
나는 잠깐 생각에 빠져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공동집필을 하는 것으로 정하겠습니다. 저는 로만 씨에게 아이디어 및 플롯만 제공할 뿐, 그 이상의 간섭은 하지 않을게요.”
“저야말로 환영입니다. 제가 딱 원하는 방식이군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겠네요.”
멸망기사는 공동집필로 결정됐지만, 언론에 전달하는 건 뒷일로 미루었다.
로만도 따로 할 일이 있을 뿐더러 곧바로 발표하기에는 여러모로 수상쩍은 면모가 있을 테니.
무엇보다 오늘 저택에 로만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클라크와 맹훈련 중인 케이트도 안다.
로만의 직속상관이다보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으며, 로만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케이트다.
평소 악마 숭배자의 뚝배기를 시원하게 깨고 다니던 케이트이니 여러모로 두려울 수밖에.
이리하여 로만과의 의견 조율이 끝나고, 각자 할 일을 위해 헤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로만과 함께 루미너스의 신전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괜히 시선을 끌 게 뻔하니 다음 날로 미루었다.
이윽고 다음 날이 밝아오고, 나는 어째서 신들이 로만을 막지 않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회색 사막 원정대. 게리오스 왕국의 수도로 진입.] [수도의 왕궁 진입을 거부하는 세이비어 교국과 진입하려는 원정대 사이의 불화. 어째서 그들은 진입을 막는 것인가?] [점점 과열되는 원정대 분위기. 이리 된다면 원정이 조기에 종료될 수도······]까맣게 잊고 있었던 회색 사막 원정대에서 불안한 징조가 보였다.